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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놓친 것[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팬데믹이 만든 '글로벌 펀러닝' 열풍
못생긴 ‘호카’, 프랑켄슈타인 ‘온러닝’이 만든 신발 시장의 변혁

(왼쪽부터)서울 중구에 위치한 나이키 서울 매장과 독일에 위치한 아디다스 본사 입구 모습.[사진 AFP/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스포츠화 시장의 절대 강자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가 만든 전 세계적 펀러닝(fun-running) 열풍 속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두 브랜드가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온러닝’(On Running)과 ‘호카’(HOKA)의 성공은 시장 지배자 나이키의 자만이 만든 틈새에서 시작됐다.

펀러닝이 바꾼 스포츠화 시장의 지형도

코로나19 팬데믹은 러닝을 일상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게 했다. 실내 체육시설이 문을 닫자 사람들은 야외로 나왔고, 달리기는 전 세계 젊은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MZ세대에게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닌 자기표현과 소통의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시장의 지배자였던 나이키는 이 변화를 놓치고 말았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것이다. 나이키는 팬데믹 시기에 D2C(Direct to Consumer: 소비자 직접판매) 전략에 몰두했다. 기존 제품의 온라인 판매 확대에 집중하면서, 소비자들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적극 대응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는 신생 브랜드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주게 됐다.

‘온러닝’의 시작은 한 철인 3종경기 선수의 '불편함'에서 비롯됐다. 온러닝의 창업자인 스위스의 올리비에 베른하르트는 철인 3종경기를 6차례 석권한 챔피언 출신이다.

그는 늘 부상에 시달렸는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때 후원사였던 나이키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착지 시 충격을 줄이면서도 탄력 있는 추진력을 제공하는 신발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는 직접 나이키 신발 밑창에 고무호스를 덧대어 시제품까지 만들었다. 흉한 모습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 시제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이 거절은 온러닝이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베른하르트는 같이 운동을 했던 친구인 전략컨설턴트 , 데이비드 알레만과 전 듀퐁 엔지니어 캐스퍼 코페티와 뜻을 모았다. 신발을 만들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세 사람의 도전은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다.

그러나 세 사람은 ‘프랑켄슈타인 시제품’을 혁신적인 ‘클라우드텍’ 기술로 발전시켰다. 밑창의 중공 구조가 착지 시 충격을 분산하고, 이를 추진력으로 전환하는 이 기술은 러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인구 800만의 작은 나라 스위스에서 시작된 이 도전은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의 투자 참여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페더러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제품 개발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가 참여해 만든 프리미엄 테니스화 ‘더 로저'의 성공은 온러닝이 러닝화를 넘어 종합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2021년 뉴욕 증시 상장 당시 시가총액 72억달러를 기록한 온러닝은 글로벌 스포츠화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았다.

호카의 원래 브랜드명은 ‘호카 오네오네’(HOKA OneOne)였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어로 ‘땅 위를 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9년 프랑스의 육상선수 출신인 니콜라 메르모드와 장-뤽 디아드는 기존 러닝화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당시 러닝화 시장은 미니멀리즘이 대세였다. 맨발로 뛰는 듯한 가벼운 신발이 트렌드였다.

하지만 이들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두꺼운 쿠션으로 무장한 투박한 외형의 신발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신발은 어떤 신발보다 편했고 가벼웠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이 '못생긴' 신발을 비웃었다.

하지만 트레일러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산악 마라톤 챔피언 칼멜처는 "산을 달릴 때 바위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라며 극찬했다. 제품 본질에 충실한 맥시멀리즘의 가치가 빛나는 대목이다. 호카의 성공은 브랜드 전략의 승리이기도 했다.

2013년 ‘어그’ 부츠로 유명한 데커스에 인수된 후에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감한 행보를 이어갔다. ‘어글리 슈즈’라는 별명에 구애받지 않고,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제품의 본질에 집중하며 제품을 다양화하면서도 모든 신발에 투박한 아웃솔(밑창)을 고집했다. 그것이 바로 제품 차별화의 핵심 가치라고 생각한 것이다. 모델을 사용함에도 남성 유명 스포츠맨이나 셀럽을 이용하지 않고, 60대 여성 철인 3종 선수 줄리 모스, 케냐 마라토너 알리핀 툴리아무크 등 주류 스포츠 브랜드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 선수들을 후원했다. 이는 러닝이라는 스포츠의 대중성을 브랜드 이미지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왼쪽부터)‘온러닝’(On Running) 브랜드의 제품과 ‘호카’(HOKA) 브랜드의 제품 모습.[사진 각 사 홈페이지]

또한 호카는 풀뿌리 마케팅으로도 유명하다. 전국의 러너스 클럽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 결과 현재 미국 러너의 20%가 선택하는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주목받는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 매김하는 데 성공 했다.

두 브랜드의 성공 방정식

온러닝과 호카의 성공 뒤에는 역설의 브랜딩 전략이 있다. 온러닝은 밑창에 고무호스를 덧댄 불편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클라우트텍’이라는 편안함으로 브랜딩해냈다. 호카는 ‘못생김’을 당당히 내세워 오히려 차별화에 성공했다. 심플함을 내세운 미니멀리즘이 대세일 때 세련되진 않지만, 편안한제품 본질에 충실한 맥시멀리즘을 선택해 ‘못생겨서 더 안심이 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이들 두 브랜드의 스토리텔링 또한 칭찬받아 마땅하다. 제품의 단순한 기능적 혁신을 넘어 감성적 경험으로 승화 시킨 것이다. 온러닝의 클라우드텍은 ‘구름을 걷는 듯한 기분’이라는 감성적 메시지로, 호카는 두툼한 아웃솔을 트래일러닝 시 바위에 떠있는 듯한 ‘중력을 거스르는 경험’이라는 판타지로 전환했다.

커뮤니티 중심의 풀뿌리 마케팅 또한 주목할 만하다. 두 브랜드 모두 실제 러너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고, 러닝 커뮤니티를 통한 진정성 있는 소통에 성공했다.

각각의 차별점도 주목할 만하다. 온러닝은 프리미엄 포지셔닝과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했다면, 호카는 포용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실용적 혁신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온러닝이 혁신의 아이콘을 지향했다면, 호카는 ‘모두를 위한 러닝’이라는 가치를 추구한 것이다.

이들의 성공은 시장 지배자의 아성도 결국 소비자의 변화하는 니즈를 놓치면 무너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남겼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기존 사업 모델에 안주하는 동안, 이 두 브랜드는 러너들의 실질적인 요구에 집중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만든 새로운 시장의 질서다. 이제 스포츠화 시장은 더 이상 거대 브랜드의 독점 시장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가치와 혁신적인 기술만 있다면, 작은 브랜드도 시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온러닝과 호카가 증명해 보였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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