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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는 기본…방범에 저격수까지

청소는 기본…방범에 저격수까지

단순히 인간을 닮은 기계를 로봇이라 부르던 시대는 지났다. 국내에서도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해 주는 로봇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위험에 빠진 사람은 슈퍼맨 대신 로봇을 큰소리로 부르면 될 것 같다.
중견기업의 CEO인 김익수 씨는 아침식사 전 가정용 로봇에게 혈압과 혈당을 측정해보라고 지시했다. 모두 정상임을 확인한 김씨는 출근 준비를 서두르며 로봇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독감이 유행이니 하루 두 번씩 청소를 하고, 늦둥이 막내딸의 한글공부 시간을 늘리라고 지시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비서 로봇이 커피를 들고 들어와 밤새 도착한 e메일을 읽어준다.

점심시간에 우체국에 들른 김씨는 도우미 로봇을 불러 등기 보내는 법을 물어본다. 안내를 끝낸 로봇에게 그는 비틀스의 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음악이 끝났지만 대기순번이 돌아오지 않자 김씨는 로봇에게 요즘 인기있는 비디오를 틀어 달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던 중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외부인 출입통제구역에서 낯선 사람을 발견했다는 방범 로봇의 전갈이다. 김씨는 방범센터를 통해 침입자를 붙잡도록 지시했다. 방범 로봇은 침입자를 그물로 묶어 경비원에게 넘겨줬다.

오후에는 공장에 불이 나 근로자들이 고립되는 사건이 터졌다. 소방관들이 출동했지만 유독가스 때문에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구입한 극한작업 로봇을 화재현장에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이 로봇은 짙은 연기와 유독가스 속에서 쓰러진 두 사람을 찾아내 차례로 등에 싣고 나왔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그는 기분전환을 위해 아셈타워를 찾았다. 이곳에서 로봇격투 대회인 ‘로보원’이 열리고 있다. 화끈한 난타전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오늘 승부는 판정까지 갔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자이툰 부대원으로 이라크에 파견된 큰아들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는 아들이 속한 부대에선 경계 로봇이 지켜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아내를 안심시키고 잠자리에 들었다.’
가상으로 그려본 일과이지만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국내에 이미 출시됐거나 조만간 나올 로봇을 모아놓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일을 하는 각종 로봇은 모두 국내에서 개발돼 판매되고 있다. 로봇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면서 개발자들이 종전의 사람 모습을 본뜬 로봇 ‘휴머노이드(humanoid)’를 만드는 데에서 벗어나 실무형 로봇을 제조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 덕이다.

휴머노이드에 대한 관심이 식기 시작한 것은 그저 사람을 닮은 기계가 실생활에는 아무 도움이 못 된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로봇협회(KRA) 이선영 회장은 “로봇산업 개발자들은 ‘외모’에 집착하지 않고 사람이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로봇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무형 로봇의 시조는 수년 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원형 청소 로봇이다. 초창기 대당 수백만 원을 넘던 청소 로봇은 국내 기업들이 제품을 출시하면서 진공 청소기 가격을 약간 웃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탄성을 자아냈던 청소 로봇이 탄생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로봇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일상생활에 성큼 다가섰다. 국내에서는 당장 2월부터 공공기관에 로봇이 투입돼 민원업무를 보좌한다. 로봇이 가장 먼저 ‘근무’를 시작하는 곳은 우체국. 2월부터 로봇은 우체국에서 안내 업무를 맡게 된다. 또 밤에는 경비원을 대신해 로봇이 우체국을 지키며 외부인 출입을 감시한다.

삼성전자와 우리기술 등이 공동개발한 ‘도우미 로봇’과 ‘방범 로봇’은 전국 50개 대형 우체국에 우선 배치된다. 도우미 로봇은 고객이 의자에 부착된 버튼을 누르면 다가와 우편번호나 등기 보내기 등을 안내해준다. 듣고 싶은 음악이나 비디오도 보고 들을 수 있다. 키 1m60㎝에 두 팔과 바퀴가 달린 이 로봇의 대당 가격은 5,000만원 수준. 우리기술의 신용철 기획팀장은 “양산이 시작되면 1,000만원까지 가격이 내려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도우미가 ‘퇴근’하면 방범 로봇이 근무에 들어간다. 이 로봇도 삼성전자와 우리기술이 공동개발했다. 키 1m40cm 정도로 팔 대신 ‘넷건’이라는 그물포를 장착하고 있다. 밤에 외부인이 침입하면 원격 방범센터로 신호를 보낸다. 방범센터가 승인을 내리면 로봇은 그물포를 발사해 침입자를 포박하게 된다.

엔터테인먼트 로봇은 지난 1999년 일본 소니가 선보인 애완견 로봇 ‘아이보’로 출발해 지금은 집에서 아이들 교육과 놀이를 담당하는 홈 로봇으로 발전했다. 국내에서는 유진로보틱스의 ‘아이로비’가 대표적인 제품. 방문자를 확인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각종 기능을 수행한다. 아이들을 위해 동화구연이나 학습 등의 기능도 탑재했다. 일본 혼다(本田)의 ‘아시모(Asimo)’나 한국 카이스트의 ‘휴보’ 등 휴머노이드도 엔터테인먼트형 로봇으로 분류된다.

최근 등장한 ‘2족(足) 격투로봇’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엔터테인먼트형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2족 격투로봇은 주먹질과 발차기를 하며 말 그대로 격투를 벌인다. 로봇 격투의 경기방식은 인간의 그것과 똑같다. 얻어맞고 쓰러지면 카운트가 시작되고, 10을 셀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면 KO패다. 어느 쪽도 쓰러지지 않으면 판정으로 승부를 가린다.

2족 격투로봇은 대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지만 국내에서도 이미 ‘로보원’이라는 세계 타이틀전이 열릴 정도로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특히 로봇격투 대회는 와우로봇의 ‘크루보’와 로보티즈의 ‘싸이클로즈’ 등 국내 ‘선수’들이 잇달아 우승을 차지하면서 청소년과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2월부터는 케이블TV를 통해 ‘베틀봇’이라 불리는 미국 로봇 격투리그가 중계방송될 예정이다.

유진로보틱스의 ‘트랜스봇’은 만화영화에서나 보던 변신로봇을 구현해낸 제품. 두 다리로 걸어다닐 때는 격투로봇이지만 리모컨으로 조작하면 1인승 자동차로 변신한다. 트랜스봇이 변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초. 걸어다닐 때는 시속 180m로 개미보다 느리다. 차량으로 변신해도 시속 1.4㎞를 넘지 못하는 ‘느림보’이지만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낸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트랜스봇은 5월부터 판매된다.

군용 로봇은 첨단기술의 결집체가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현재 국내에서 개발된 군용 로봇은 도담시스템스의 ‘이지스’와 유진로보틱스의 ‘롭헤즈’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이툰 부대와 함께 이라크에 파견돼 실전 테스트를 하고 있다. 이지스는 K2 소총과 주·야간용 적외선 카메라를 장착해 주변을 감시하고 침입자를 공격하는 ‘저격용 경계로봇’이다.

2km 떨어진 곳에서 소리와 체온으로 적을 탐지해 카메라로 움직임을 추적한다. 적이 다가오면 경고 방송을 내보낸 뒤 500m 거리에서 공격을 시작한다. 이 거리에서는 100발 가운데 90발이 목표물에 명중된다. 300m 거리에서는 지름 5cm의 원안에 100발의 총알을 꽃꽂이 하듯 쏟아 붓는다. 밤낮이나 악천후도 가리지 않는다. 대당 1억원인 이 제품은 미군에 납품될 예정이다. 도담시스템스의 장명광 회장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동남아와 중동의 재력가들로부터도 구입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도담시스템스는 한발 더 나아가 이지스를 무인차량에 장착한 신제품 ‘UGV’를 2월 중에 선보인다. 수륙양용으로 최고 시속 50㎞로 이동하며 적을 공격한다. 자동항법 장치를 이용해 지형지물을 엄폐물로 활용하는 능력도 가졌다. 이지스가 방어 개념이라면 UGV는 ‘돌격용 로봇’인 셈이다.

유진로보틱스의 롭헤즈는 화생방이나 지뢰폭발 위험이 있는 지역을 사람 대신 탐색하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극한작업 로봇’으로 불리며 유독가스나 방사능을 탐지하고, 지뢰 등의 폭발물을 찾아내 제거하는 능력을 지녔다. 도심에서도 작업할 수 있게 계단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도록 설계됐다. 대당 2억원인 롭헤즈는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반과 육군 방호사령부에서 사용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구조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있는 일본에도 수출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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