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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주문 전성시대 연평균 100 배 고성장

안방주문 전성시대 연평균 100 배 고성장

LG 홈쇼핑의 콜센터(오른쪽)와 스튜디오 내 상황 설명판(위). 한국의 홈쇼핑은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성장모델을 구축했다.
IMF이후 '한국형 모델'로 정착 … 본고장 미국서도 벤치마킹 첫 방송에서 15만원짜리 뻐꾸기시계를 팔았는데, 4시간 만에 500만원어치가 나가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홈쇼핑 직원들과 가족들이 많이 샀더라고요.” 유난희 현대홈쇼핑 쇼호스트의 1995년 8월 1일 홈쇼핑 첫 방송의 기억이다. “북한 뉴스방송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파란 배경 앞에서 물건 가져다 놓고 설명하는 수준이었죠. 지금 같은 카메라의 현란한 움직임이나 늘씬한 모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 시간에 평균 3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3000만원에 불과하던 몸값도 3년 전에 억대로 뛰어올랐다. 같은 회사의 전준헌 MD(머천다이저)도 홈쇼핑 창립 멤버다. “상품 섭외하려고 회사를 찾아가 홈쇼핑 MD라고 하면, 잡상인 취급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악한 제품을 들고 가서 ‘품질 좀 낫게 해달라’고 애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전준헌 MD가 기억하는 초기 홈쇼핑 MD생활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를 만나기 위해 중소제조업체 사람들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홈쇼핑 업체의 상담실은 늘 만원이다.

“민족성이 성장의 발판” 이제 홈쇼핑TV(이하 홈쇼핑)는 유통업계의 ‘큰손’이다. 홈쇼핑 방송을 시작한 95년 34억원에 불과했던 시장규모는 2002년 4조원을 돌파해 1000배 이상 성장했다. 2003년과 2004년에도 내리 4조원의 매출을 돌파하며 정상 궤도에 접어들었음을 입증했다. 같은 기간에 백화점 업계는 2배도 성장하지 못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폭발적 성장이다. 홈쇼핑의 원조격인 미국은 물론 일본·유럽의 기업들도 한국을 방문해 한국 홈쇼핑을 배워갈 정도다. 실제로 한국의 홈쇼핑은 ‘완전한 독자 모델’로 평가받는다. 미국 홈쇼핑은 지금도 유통업계의 주류가 아니다. 주요 생필품보다는 아이디어 상품 등 중소기업 제품의 유통 창구 정도로 생존하는 상황이다. 1000달러가 넘는 제품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 홈쇼핑 업계의 정설일 만큼 값싼 제품들을 취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00만원이 넘는 보석 세트가 ‘흔히’ 팔린다. 신형범 LG홈쇼핑 차장은 “미국 홈쇼핑의 주 타깃은 하류층이지만 우리나라는 중·상류층까지 포함하고 있다”며 “취급하는 상품의 평균 단가도 한국은 14만~15만원 정도지만 미국은 3만~4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민소득 수준과 물가까지 감안하면 한국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실질적 단가는 더 높아진다. 판매되는 품목도 컴퓨터·명품가방·디지털카메라, 심지어 보험과 펀드 상품까지 없는 게 없다. 틈새 마켓이 아니라 새로운 주류 유통채널이 된 것이다. 지난해 홈쇼핑의 시장규모는 4조1000억원으로 전통적인 유통강자인 할인점(21조6000억원)과 백화점 (16조6000억원)에 이어 유통업계 3위 자리를 차지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한국의 홈쇼핑은 어떻게 이런 성장을 이뤘을까. 김진병 원광대 경영학부 교수는 “홈쇼핑이 견물생심의 본능을 자극해서 성공했다”고 말했다. “민족성이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다른 사람의 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데 홈쇼핑이 그걸 잘 활용했다”며 “현란한 조명, 쇼호스트의 화려한 수사와 함께 ‘지금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충동구매 욕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이 의외로 냉정한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오창호 한신대 경영학부 교수도 비슷한 견해다. “구매할 때 위험을 감수하는 민족적인 특성이 홈쇼핑 성장의 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 사람들은 제품을 꼼꼼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하는 반면 우리는 일단 사고 보자는 성향이 강하다”며 “홈쇼핑이라는 새로운 유통채널에 대해 큰 거부감 없이 구매했던 게 (홈쇼핑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고 분석했다. 물론 충동구매나 소비자의 위험감수 정도로 홈쇼핑이 생존하려 했다면 홈쇼핑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홈쇼핑은 결정적인 단점을 안고 출발했다. 만져보고 흥정을 하는 전통적인 판매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홈쇼핑에 나오는 상품은 돈을 먼저 내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구매였던 셈이다. 하지만 홈쇼핑 업계는 단점을 기회로 만들었다. 오 교수는 “리스크테이커(Riskta- ker:위험 감수자) 성향이 있는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상품을 제공한 게 성공 요인이었다”며 “더구나 대기업들이 참여하면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상품을 살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홈쇼핑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에 대해 100% 환불해 주는 적극적인 반품 정책을 펼쳤다. 마음 놓고 제품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고 홈쇼핑이 처음부터 성장 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다. 95년 현재 LG홈쇼핑의 전신인 한국홈쇼핑과 CJ홈쇼핑의 전신인 39쇼핑 두 회사가 방송을 시작했지만 첫 2~3년 동안은 지지부진했다. 좋은 제품이 많지 않았던 데다 케이블TV에 가입한 가구 수도 너무 적어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외환위기가 기회였다 하지만 기회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97년의 외환위기가 그것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대다수 기업, 특히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기에 내몰렸다. 활로가 필요했다. 그런 그들에게 나타난 것이 바로 홈쇼핑이었다. 적극적인 판로를 모색하는 중소기업들과, 품질 좋은 상품을 찾던 홈쇼핑 업계는 그렇게 극적으로 만났다. 그동안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고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주저앉는 경우가 많았던 중소기업들에 홈쇼핑은 그야말로 ‘꿈의 구장’이었다. 게다가 케이블TV 가입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게 신용카드 대중화였다. 외환위기 이후 카드회사들의 확장 경쟁으로 가정주부들이 신용카드를 가지게 되면서 홈쇼핑은 날개를 달았다. 제품 대금을 보다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게 된 것. 신형범 LG홈쇼핑 차장은 “TV의 주시청자이자 주요 구매자인 주부들 사이에서 ‘요모조모’ 따져보며 쇼핑할 수 있는 홈쇼핑만의 편의성이 이때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면서 “집에 앉아 값싸게 좋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홈쇼핑의 특성이 주부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고 평가했다. ‘대박 중소기업’이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다. 중소업체는 상품 개발에 몰두하고 홈쇼핑 업체는 마케팅과 유통을 책임지는 ‘윈윈 전략’이 자연스럽게 정착했고 대기업들도 홈쇼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초기 한물 간 연예인들의 소일거리 정도로 여겨졌던 홈쇼핑 게스트들도 스타급 연예인으로 업그레이드됐고, 황신혜·구준엽씨 등 직접 제작한 제품을 들고 홈쇼핑 시장을 찾아오는 연예인도 생겼다. 지난해 홈쇼핑에서 옷을 판매하기 시작한 가수 구준엽씨는 “홈쇼핑에서 옷을 판다고 무시당하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며 “소비자들이 백화점이나 할인점과 함께 홈쇼핑을 하나의 유통채널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들의 노력이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인 것은 물론이다. 홈쇼핑 업체들이 연평균 100% 이상의 높은 성장을 해온 데는 전략적인 상품 소싱과 물류 체계의 확립, 효율적인 고객관리 시스템 등에 아낌없이 투자했던 배경이 있다. 시장이 커지자 2001년부터는 기존의 LG와 CJ홈쇼핑 이외에 현대·우리·농수산 홈쇼핑이 가세해 5개사의 경쟁구도가 형성됐고, 이런 새로운 경쟁체제는 고객 서비스 개선 경쟁으로 이어져 시장을 확대시켰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홈쇼핑은 출발 10년 만에 완전한 주류 유통채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을 다 넘은 건 아니다. 업계에서는 홈쇼핑이 정체 혹은 성숙의 시기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홈쇼핑 매출도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업계는 T-커머스를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판단하고 있다. T-커머스는 위성방송 채널에서 TV 화면을 통해 문자로 제품을 설명하고 리모컨으로 주문을 하는 전자상거래다. 업계는 케이블TV 시청자들보다 고소득층인 위성방송 채널 시청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새로운 시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진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방송과 유통의 결합이라는 홈쇼핑의 특성상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이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눈앞에 닥친 T-커머스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까지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들도 이를 모를 리 없다. 5개 홈쇼핑 업체 모두 T-커머스 사업자 신청을 해놓고 오는 3월 사업자 선정을 기다리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10년을 기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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