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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이 만난사람 … “이건희·정몽구 회장 언젠가는 맡게 될 것”

김영욱이 만난사람 … “이건희·정몽구 회장 언젠가는 맡게 될 것”

손병두 전 전경련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전경련이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올인’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14일 거절하면서다. 이로써 재계의 실세를 앉히려는 전경련의 꿈은 좌절됐다. 또 다른 실세인 구본무 LG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이 회장 추대 과정에서 강신호 전경련 회장에게서 ‘심한 말’을 듣기도 했다. 강 회장은 지난해 12월 22일 전경련 출입기자단 송년 간담회에서 “두 사람은 안 된다”고 못박았다. “구 회장은 가만히 앉아서 회의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적임자가 아니며”, “정 회장은 자기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줄 모르기 때문에 회장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전경련의 존재 이유인 오너 간 친목 도모를 저해하면서까지 전경련은 이 회장에게 올인했다. 과거 전경련은 회장을 뽑기 위해 회장단과 고문단 멤버 중 일부 인사로 구성된 추대위원회를 만들었다. 여기서 회장으로 추대했으면 하는 인사를 몇명 추려 차례로 접촉했다. 추대 과정은 대외비였다. 본인이 몇번째로 추대받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추대하는 사람도, 추대받는 사람도 그룹 총수에 걸맞은 명예가 지켜졌다. 이번엔 이런 절차가 전혀 없었다. 회장단 멤버가 이 회장의 승낙을 받기 위해 무작정(?) 출동했다. 두 차례나 이 회장의 자택을 방문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과거 추대 과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1월 20일 전경련 회장단이 첫 방문했을 때 이 회장이 승낙할 것으로 자신했다. 사전에 수십 차례 조율 과정을 거쳤으며 방문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무런 사전 조율이 없었다. 이 회장은 두번 다 거절해 회장단을 무색하게 했다. 전경련 측은 “이 회장이 승낙하도록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모두가 상처투성이가 됐다. 이 회장은 재계가 그렇게 원하는데도 일신을 위해 거절한 사람으로, 회장단 멤버는 삼고초려했는데도 거절당한 불명예를, 구 회장과 정 회장은 ‘전경련 회장에 부적절한 사람’이란 상처를 입었다.

상처받은 전경련 이런 상황에서 누가 회장이 되든 전경련 역사상 가장 허약한 체제가 될 수밖에 없고 재계는 더욱 사분오열될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없던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전경련의 산 증인’인 손병두(64) 전 전경련 부회장에게서 들어봤다. 그는 대학 졸업 후 1966년 공채 2기로 전경련에 입사해 5년간 근무했고, 97년부터 2003년까지 만 6년간 전경련 부회장을 지냈다. 이후 1년간 상임고문으로 있다가 지난해 전경련을 떠나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협의회(이하 평협) 회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그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친정’에 누를 끼칠 수 없다는 이유였다. 2월 15일 서울 명동성당에 있는 평협 회장실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도중에 몇번 중단되기도 했다. 거북한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세 회장들은 왜 모두 전경련 회장을 안 맡으려고 할까요. “누가 실세인가요. 회사 규모가 크면 실세인가요. 또 규모가 큰 기업의 회장만 전경련 회장을 맡으란 법이 있는가요. 회장단 멤버는 모두 회장을 할 만한 인품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맡아도 손색없이 잘 해낼 것입니다. 전에도 그랬어요. 고 김용완 회장이 전경련을 12년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너로 있던 경방이 대그룹이었습니까. 또 전경련 역사상 이른바 실세 회장이 맡은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요.”

회장을 해 봐야 실익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봉사에 비해 보상받는 게 적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정말 다들 안 하려 하는 것일까요. 할 생각은 있는데 여건이 안 돼 ‘지금은 안 하겠다’는 회장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추대와 관련한 과거 비화도 털어놓았다. 정몽구 회장은 김대중(DJ) 정부 시절 전경련 회장이 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당시 손 부회장은 사전에 회장단 멤버들에게 사전 내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 회장에게서도 “정 회장을 적극 지지하며,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는 언질을 받았다. 정 회장한테도 여러 차례 접촉 끝에 수락 의사를 받아냈다. 그런데 막판에 청와대에서 거부감을 표시하는 바람에 좌절됐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도 2년 전인 2003년부터 전경련 회장을 하기로 다 돼 있었다고 손 부회장은 밝혔다. 그 전 1년 동안 수십 차례 접촉해 이 회장과 회장단 멤버의 동의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초 참여정부가 들어선 데다 이 회장의 건강 문제가 대두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는 것이다. 대신 이 회장은 손길승 당시 SK 그룹 회장을 여러 차례 접촉해 전경련 회장을 맡도록 적극 나섰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두 사람이 회장을 맡을 것으로 낙관했다.

이번에도 이 회장은 건강 문제를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2년 전에도 이 회장은 “폐암 수술 후 5년이 지나야 완치된다”고 하면서 “만 5년이 되는 다음(2005년)에 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에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그때 가서 보자’고 말했을 뿐입니다.”

강신호 음모설… “설마 그러려고요”

이번엔 누가 회장이 될까요. 시간이 촉박해 강신호 회장이 유임될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결국 전경련 회장 추대위는 17일 강 회장의 유임을 결정했다). “두고 봐야죠. 그러나 누가 되든 선임될 것입니다. 강 회장과 현명관 부회장도 열심히 뛰고 있을 테니 잘될 것입니다.”

일각에선 ‘강 회장 음모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강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더 하고 싶어 이 회장 추대론을 띄웠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안 맡을 것이 분명하고, 다른 회장들은 이 회장 추대론에 눌려 하고 싶다는 말을 차마 못할 것이라고 계산했다는 것이죠. “에이, 설마 그러려고요. 분명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전경련 무용론도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대그룹에선 전경련을 해체해 미국 헤리티지 재단 같은 싱크탱크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이 시대 상황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단체로서 전경련은 반드시 존속해야 합니다. 세계 어느 선진국에 경제단체가 없는 나라가 있습니까. 전경련은 앞으로도 계속 재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로비 단체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정책 건의도 하고, 아이디어도 제공하고 정부 정책을 회원사에 설명하는 해설자 역할도 해야 합니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의 반(反)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일도 전경련이 맡아야 합니다. 경제단체로서 전경련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어느 것이 나라 경제 발전에 보탬이 될지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전경련 무용론은 재계를 무력화하려는 음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계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서 보듯 재계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해 일방적으로 정부에 밀리기도 했습니다. 또 LG는 지주회사가 됐고, 현대차는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 나가는 등 기업체제도 크게 다릅니다. “일본도 혼다·도요타 자동차는 경쟁자이면서도 게이단렌(經團連)의 주요 회원사로 있습니다. 서로 싸우면서도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자리에 모이는 것입니다. 또 서로 다른 것을 조율해 합의점을 찾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전경련은 반드시 존립해야 합니다.” 그는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를 통합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경제단체는 더 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경쟁해 회원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상의도 기업들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의무단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기업들이 상의와 전경련, 어디에 가입하는 것이 득이 될지를 따질 것입니다. 경제단체 간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죠.”

오너 간 단결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각에선 2∼3세 경영체제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시련을 겪지 않아 타협할 줄 모른다는 것이죠. “그런 점은 있지만 2세 체제이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고집 세기로 말하면야 창업자 세대가 더할 것입니다. 이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재계가 대변혁을 겪은 게 더 큰 이유일 것입니다. 특히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과정에서 이해가 너무나 첨예하게 대립됐고, 따라서 오해도 많았습니다. 또 대우는 붕괴했고, 현대는 분열하지 않았습니까. 기업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도 원인입니다. 정치자금 수사로 범죄자 취급받는 마당에 단합할 마음이 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그는 과거 김용완 회장과 같은 신뢰할 만한 원로급 지도자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회장들끼리 한번 MT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서로 툭 터놓고 얘기하면 다 풀릴 거예요. 특히 4대 그룹 총수는 모두 부친들이 전경련 회장을 지내 전경련에 애착이 참 많기 때문에 잘될 겁니다.”

강 회장은 ‘정몽구 회장은 전경련 회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코멘트.” 그러나 기자가 끈질기게 묻자 우회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말을 참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77년 전경련 회장을 처음 맡았을 때는 ‘나는 말을 잘 못한다’면서 당시 수석부회장이었던 주요한씨에게 회의 주재를 맡겼어요. 연설할 때도 남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었어요. 그런데 한 1년 지나니까 스스로 회의를 주재하고, 연설도 원고 없이 하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달변이란 얘기를 듣지 않았습니까.” “물질세계로 들어가지 않을 것” 정몽구 회장이 설사 말에 조리가 없다 해도 그것이 회장으로서 자격 미달 요건은 안 된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손 전 부회장은 지난 12월 큰 수술을 받았다. 치아를 받치는 뼈가 모두 삭아 없어져 엉치뼈를 갖다 붙였다. 수술 후 두 달여 죽만 먹다가 얼마 전부터 밥을 먹고 있다고 한다. 빅딜을 추진하면서 치아를 다쳤지만 워낙 바빠 내버려둔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그 밖의 건강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 “정말 마음이 편해요. 40여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오너 회장은 거의 다 모셨는데, 지금은 ‘오너 중 오너’인 예수님을 모시니 그럴 수밖에요. 이제 내 삶은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정치를 하라는 둥 유혹이 많았지만 다시는 ‘물질세계’로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부지런함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난 1년간 평협 회장으로 있으면서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평화 독서 감상문 대회, 3대 가족 사랑운동 등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재계를 떠난 사람에게, 더구나 재계 이야기를 일절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 ‘재계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조른 것이 못내 미안했다.

손병두 전 전경련 부회장 1941년 경남 밀양生 경복고·서울대 경제학과 卒 1990년 한양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 72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88년 동서투자연구소 소장 95년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97~2003년 전경련 상근 부회장 2004년~現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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