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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마다 소수 정예부대 키우기 경쟁… “은행전쟁 승부처는 핵심 인재”

은행마다 소수 정예부대 키우기 경쟁… “은행전쟁 승부처는 핵심 인재”

일러스트 박용석
하나은행 체인지 프런티어 미팅에 참석한 김승유 행장.
하나은행의 박태화 차장은 일과가 끝났는데도 마음이 부산하다. 다음주에 있을 ‘체인지 프런티어’ 미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차장이 조장인 A조 10여명은 ‘선진 인재 육성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이 내용을 가지고 김승유 행장뿐 아니라 김종렬 차기 행장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토론을 펼친다. 물론 관련 부서장들도 참여한다. 이 자리에서 박 차장 조는 하나은행의 인재 육성 전략을 짜기 위해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경영전략에 반영될 수 있도록 건의할 생각이다. 또 다른 팀인 B조와 C조는 각각 하나은행 인재 양성 시스템의 장단점과 금융지주에서의 인재 양성 전략 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토론은 체인지 프런티어들에겐 그리 어색하지 않다. 지난해 말에 처음 결성된 후 열린 세 차례의 워크숍에서도 행장과 새벽 1~2시까지 은행 통합문화·경영전략 등을 놓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신한 핵심 인재 ‘탄탄’ 이러한 경영전략 수렴 과정은 사실 GE의 ‘타운미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GE의 핵심 직원들이 모여 3박4일간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마지막 날에 참석하는 잭 웰치 회장에게 건의하는 ‘타운미팅’은 GE의 지속적인 혁신의 엔진이다. 여기에서 건의된 의견에 대해 잭 웰치 회장은 30% 이상을 거부할 수 없다. 열 가지 건의 중 최소한 일곱 가지는 받아들여야 하는 셈이다. 열정과 기지가 있는 체인지 프런티어를 뽑아 은행의 주축으로 삼으려는 것은 김 행장의 아이디어였다. 김 행장은 서울은행·충청은행·보람은행 등과의 통합 이후 문화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이끌어갈 주력부대를 찾았다. 현재 200명인 체인지 프런티어는 은행 내에서 통합문화를 확산시키고 밑바닥 여론과 생각을 경영진에 전달하면서 행장의 전략을 직원들에게 전파하는 매개역할을 한다. 최근 이뤄진 임금통합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을 점검해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체인지 프런티어 조직을 은행장 직속으로 만든 것은 김 행장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체인지 프런티어의 선발 기준은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이 중심이다. ‘열정’을 가진 직원들이 우선 지원하고 이 중에서 각종 업무평가 등을 근거로 200명을 추린다. 하나은행 변화추진팀 김왕기 부팀장은 “회사의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은행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라면서 “체인지 프런티어들은 하나은행의 핵심 인물이 돼 은행전쟁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영 프런티어’라는 조직을 1987년 만들었다. 내년이면 20기째다. 영 프런티어에는 입행 3~5년차만 신청할 수 있다. 이들 중 연수성적, 품행, 지점장 추천, 인사고과 등을 반영해 상위 10%를 뽑는다. 현재 198명이 영 프런티어로 뛰고 있다. 신한문화의 현장전파가 주어진 역할이다. 은행 곳곳에서 경영전략을 실천할 수 있는 핏줄그룹인 셈이다. 이들은 경영건의도 한다. 각종 이벤트의 선두에 서고 업무 노하우 공모대회를 열어 지식을 축적하기도 한다. 신상훈 행장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있는 졸업식·체육대회 등에 참여해 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은행처럼 행장이 직접 챙기진 않지만 은행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임을 수시로 드러내는 등 뒤에서 후원하는 편이다. 신한은행 인력개발팀 최혁재 과장은 “영 프런티어를 대기업과 같은 로열 패밀리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수한 인재들인 만큼 저절로 로열 패밀리처럼 된다”면서 “기본적으로 본인의 희망에 의해 선발하므로 은행에 대한 애정이 많고 인사상 알게 모르게 우대하기 때문에 은행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면피성 ‘리더’되는 경우도 있어 기업은행·우리은행·조흥은행은 각 지점과 부서에 1명씩 ‘리더’들을 선발해 놨다. 기업은행의 ‘비전 리더’는 지난해 9월 시작했다. 팀장급으로 뽑아 실질적인 효과를 내도록 했다. 무엇보다 은행의 경영전략을 영업점까지 제대로 전달하는 게 주목적. 특히 핵심 전략을 실천하는 데는 적극 앞장선다. 이들은 경영혁신 관련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학습동아리 참여를 유도하며 소식지를 매월 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한다. 각종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모인 것들을 각 지점에서 공유하는 데도 솔선수범토록 하고 있다. 비전 리더는 모두 432명이다. 우리은행의 ‘KM리더’는 지난해까지 통합문화를 만들고 전파하는 변화관리 요원이었으나, 올해부터는 지식기반 구축을 확고히 하겠다는 차원에서 이름부터 바꿨다. 지식관리 리더인 셈이다. 700명의 KM리더들은 모든 부서에서 한 명씩 배출해야 한다. 직원들의 노하우를 모아서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좋은 사례를 발굴, 이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역할도 KM리더의 몫이다. 380명의 조흥은행 ‘체인지 리더’도 역할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각 지점과 부에서 반드시 한 명씩 선발하도록 하는 바람에 오히려 ‘적극성’보다는 ‘면피성’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효율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는 게 은행 안팎의 지적이다. 물론 자신이 직접 신청해서 선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의무사항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청이 안 되면 인사과에서 직접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경우엔 자발적이 아닌 타율적 참여가 불가피해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청년이사회도 경영 건의 통로 기업은행 강권석 행장은 ‘21세기 이사회’를 아끼는 편이다. 부장(2명), 차장과 과장(13명), 일반행원급(5명) 등 20명으로 구성된 21세기 이사회에 강 행장은 매월 참여해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국민은행의 ‘아이디어 뱅크보드’ 역시 강정원 행장 등 경영진과 같이 경영 전반에 대해 논의한다. 특히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행장에게 조언도 하는 등 경영진으로 구성된 이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역할을 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장이 직접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이 건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들이 실제 앞장서서 실천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모이는 주기와 횟수도 제한돼 있어 은행 전반에 주는 파급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민은행은 행장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관련 임원 중심으로 회의를 진행해 실질 효과가 떨어진다는 내부비판도 있다. 아무래도 은행장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조직 내에서 관료적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능력뿐 아니라 은행에 열정을 가진 인재를 뽑는 것이다. 핵심 인재의 필요조건은 어디나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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