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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불타는데…

유럽은 불타는데…

Fiddling While the Union Burns

유럽연합(EU)이 새로운 예산안 협상에 성공할까? 토니 블레어는 영국의 EU 예산 분담금 환급을 포기하고 자크 시라크는 프랑스의 농업 보조금을 줄일까? 자랑스러운 유럽헌법은 죽었을까?
지난주 EU 본부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서 그 대답은 ‘아니다, 아니다, 글쎄’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유럽 정상들 앞에 놓인 진짜 문제는 유럽의 미래였다.

그리고 예산을 둘러싼 그들의 논쟁은 유럽 지도자들이 아직 문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유권자들은 유럽헌법 자체가 아닌 EU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은 회의 때문에 새로운 헌법을 거부했다. 특히 그들은 유럽인에게 익숙해진 경제 번영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했다. 유럽 지도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유럽이 불타는 동안에도 정치인들은 두 손 놓고 논다는 유럽인의 인식을 더욱 강화시켰다.

최근 지수들을 살펴보자. 지난해 겨우 2%를 달성한 유로 존의 성장률은 유럽중앙은행이 이자율 인하를 고려할 정도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EU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본격적으로 불경기가 시작됐다. 프랑스에서는 청년의 22%가 실업자고 실업사무소를 방문하는 일은 새로운 통과의식이 됐다. 유럽 전체에서 실업률은 9%에 육박하며 계속 증가한다. 브뤼셀에 있는 신유럽센터의 팀 에번스 소장은 “유럽의 상황에 대한 오랜 부정, 무지, 잘못된 경제 운영 등의 여파가 이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유럽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지도자들은 진짜 다뤄야 할 문제들은 무시하고 사소한 데 집착한다”고 말했다.

실제 문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유럽이 자랑하는 사회 모델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6월 초 한 정치 모임에서 프랑스 대통령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의 고위 보좌관 파트릭 데베드지안은 프랑스 사회는 “모범이 되지 못한다. 본받고자 하는 이가 없다. 사회주의적이지도 않다. 기록적인 실업률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치 지도자들은 유연하고 경쟁력 있는 경제를 만들고 그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정치가들에게 해온 조언으로 집약된다.

즉 일자리를 만들려면 고용·해고에 드는 비용을 깎고, 원천징수 세금과 정부 지출을 줄이며, 재화·용역 시장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물론 문제는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강력한 로비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을 EU 관리들의 무능력이나 중국의 재봉사 탓으로 돌리는 쪽이 유럽 지도자들을 훨씬 편하게 해준다. 브뤼셀에 있는 개혁 추진 단체 리스본 협의회의 앤 메틀러 회장은 “분별 있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토론 세력은 국민의 분노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폴란드 배관공들이 몰려와 일자리를 빼앗아 갈까 두려워하던 일을 기억하는가? 프랑스로 온 폴란드 배관공은 겨우 150명뿐이다. 그러나 프랑스 배관공 연합은 아직도 6000명의 배관공 자리가 비어 있다고 보고했다.

이데올로기와 (실직·이민, 혹은 변화 그 자체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이 합쳐지면서 유럽의 의미 있는 개혁을 둘러싼 토론은 거의 막을 내렸다. 사실 요즘 새로운 생각을 가장 빠르게 봉쇄하려면 그것이 유럽의 사회 모델에 어떤 위협이 되는지 상기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위협의 형태는 독일·프랑스·영국·덴마크에서 각각 다르다. 종종 그것은 단순히 ‘미국적인 것의 반대’를 의미한다. 어떤 경우든지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힘써 온 호세 마누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서비스 부문 강화 계획이 지연된 이유는 유럽 사회 모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했다.

많은 연금, 보건과 교육 혜택 등을 갖춘 유럽의 현대 복지국가는 유럽이 전후 30년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독일의 ‘경제기적’과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시기에 탄생했다.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고 노동 인구가 은퇴자보다 훨씬 많았던 시절에는 복지국가가 잘 굴러갔다. 오늘날 시대는 변했지만 기대치는 변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석 경제학자 장 필립 코티는 “복지국가를 해체하려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 경제성 있게 만드느냐다”라고 말했다.

유럽 지도자들은 저항하지만 학자와 하위 정책 입안가들은 불가피한 일들을 수용하면서 대안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코티스는 유럽인이 오랫동안 결합시켜온 고용 안정과 복지 사이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한 예로 최근 파리에서 인기를 끄는 덴마크의 ‘유연 안정’ 모델이 있다. 그것에 따르면 우선 고용 안정과 일자리 안정을 구분해야 한다. 고용과 해고는 쉽게 이뤄지도록 해주는 대신 개인이 일자리를 잃었을 경우에는 국가가 그들을 재교육해 가능한 한 빨리 노동시장에 복귀하도록 돕는다.

그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그 많은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실력 있고 효율적인 공무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덴마크의 제도는 노·사·정 협상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결과가 좋다. 덴마크 실업률은 10%에서 4.9%로 줄어 이제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 섬유 수입 증가는 유럽 지도자들이 회의적인 국민에게 변화가 반드시 역경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줄 만한 완벽한 기회다. 한 통계에 따르면 옷값이 5% 떨어지면 프랑스 소비자들이 15억유로를 저축하게 되면서도 위태로워질 일자리는 7000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럽은 새로운 무역 장벽을 구축하겠다고 위협했고, 중국이 자발적으로 수출을 규제하도록 설득했다. 세계화를 찬양하는 에비앙 그룹의 설립자인 정치학자 장-피에르 레만은 “중국 섬유와 [유럽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리스본 어젠다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라고 물었다. 보다 현명한 전략은 유럽인에게 중국 섬유 등을 수입하면 많은 돈이 절약된다고 설득한 다음 핀란드가 섬유 제조에서 섬유기계 제조로 업종을 바꾼 뒤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쪽인지도 모른다.

독일·이탈리아·프랑스에서의 투표는 유럽인이 필요로 하는 솔직한 대화와 분명한 행동을 방해한다. 100일 안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한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신임 총리는 국가가 지원하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구조적 경제 개혁은? 파리에 있는 과학 연구 국가센터의 엘리 코헨은 2007년 전까지는 “꿈도 꾸지 마라”고 말했다. 올 봄 독일 실업률이 12.6%까지 치솟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고용 보조금을 늘렸고 그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은 국가 실업수당 삭감 계획을 2년 연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9월 앙겔라 메르켈 기독교민주연합당(CDU) 당수가 슈뢰더를 몰아낸다면 독일에서 희소식이 들릴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좌우파 차이가 거의 불분명했지만 동독 출신의 메르켈은 과거 독일의 어느 보수 지도자들보다 개혁과 시장 경제를 지지한다. 그녀는 세금 인하, 노조의 임금 동결 저지, 노동법 완화, 관료 절차 간소화 등을 약속했다. 알리안츠의 수석 경제학자 마이클 헤이스는 그녀가 상·하원 모두를 장악할 확률이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 어떤 조치가 왜 취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진실을 국민에게 털어놓으면서 그런 공약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독일 기업들의 경쟁력이 올라가면 다른 유럽 국가들도 뒤를 따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은 개혁을 무시하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탈리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그동안 경제도 축소되고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몫이 줄었음에도 정부 부채가 EU가 정한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의 3%를 습관적으로 넘어서도록 허용했다. 이자율 인하와 평가절하만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되자 일부 정치인은 국가 간 성장률 차이가 점점 더 벌어져 유럽의 화폐 통합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면서 이탈리아가 다시 리라화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화폐 통합이 무너질 확률은 낮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로열은행의 전략 신용조사 담당 킷 적스는 “화폐 통합의 제1 원칙은 합의점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승강이를 벌이지만 유럽 지도자들은 분명 곧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큰 문제는 EU를 바로 세우는 어려운 발걸음을 떼놓는 데 언제 합의하느냐다.

정민숙 pro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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