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중동 특수가 시작됐다…사막에 ‘검은 노다지’ 열풍 高유가로 달러가 넘친다
新 중동 특수가 시작됐다…사막에 ‘검은 노다지’ 열풍 高유가로 달러가 넘친다
1차 특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 전 세계의 돈이 중동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2000년 이후 국제유가가 1990년대의 두 배로 급등한 데다 이 기간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량은 최근 25년래 최대치까지 급증한 결과다. 미국에너지정보국(EIA)이 올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PEC에 가입한 국가들이 올해 원유 수출로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은 3450억 달러. 지난해 3380억 달러보다 2% 늘어난 액수지만 2003년의 2430억 달러에 비해서는 무려 42%나 뛰어오른 수치다. 세계 각국이 살인적인 고유가로 허리가 휘고 있는 반면 중동 각국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주가는 지난 5월 말 현재 연초에 비해 42%나 올랐다. 사우디만이 아니다. 올해 들어 요르단 증시는 39%, 카타르 45%, 아랍에미리트 73%, 이집트 증시는 58%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비즈니스맨들이 붐비는 중동의 관문 두바이는 이미 중동의 허브가 아니라 세계의 허브 도시로 부상하면서 호텔 빈방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두바이 항만국은 물동량이 해마다 20% 이상 급증하자 4개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2020년까지 추가로 건설, 지난해 92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였던 컨테이너 처리가능 물동량을 20배인 2100만TEU까지 확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두바이 항만국은 올 초 “두바이 제벨알리항이 속한 자유무역지대는 세계 유수 기업들의 중동·아프리카 시장 전진기지”라며 “현재 10위인 두바이 항만을 세계 3대 항만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1970∼80년대의 1차 중동 특수에 이은, 이른바 ‘제2차 중동 특수’가 왔다는 신호이자, 세계 각국의 기업들에는 최대 규모의 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지금 전 세계는 산유국들과 유가를 주시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 눈은 중동의 사막지대에 흐르기 시작한 이 ‘넘쳐나는 돈’의 향방에 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번 특수가 1차 중동 특수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특수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다른 차원의 근저에는 현재 채굴하고 있는 원유가 조만간 고갈될 것이라는 조바심이 있다. 주머니는 풍족하지만 미래는 암울한 것. 이 때문에 중동국가들은 풍족해진 주머니를 미래를 만드는 전략에 쏟아붓고 있다. 그 덕분에 지금 중동지역은 ‘공사 중’이다. 각국이 고유가로 넘쳐나는 오일 달러를 밑천으로 삼아 그동안 보류했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물론이고 고부가가치형 산업시설 투자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사막에서는 대역사를 이룰 엄청난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방 은행들의 당혹스러운 표정 KOTRA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랍에미리트(UAE)·오만·리비아·카타르 등이 향후 3년간 쏟아낼 건설 플랜트 물량은 무려 300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규모 담수 설비를 비롯해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 및 석유화학시설, 공항, 철도 등 대형 프로젝트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2010년까지 예정된 10억 달러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만도 18개. 사우디아라비아가 95억 달러, UAE 45억 달러, 쿠웨이트 45억 달러 등 중동지역에서만 285억 달러 규모의 발전·담수 프로젝트가 발주될 계획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0조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3일 월스트리트저널은 “고유가로 오일 머니가 넘쳐나는 아랍권 은행들이 급속히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면서 “많은 이슬람 은행들이 까다로운 율법 체계를 피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기법으로 무장,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분명 작은 일이 아니다. 심각성은 오랫동안 중동 시장을 독점했던 서구 금융기관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구은행들은 중동으로 돈이 나가는 것에 대해 느긋했다”면서 “그들에게는 왼쪽 주머니에 있는 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차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동에 있는 은행들이 석유수출로 번 돈을 어쩌지 못하고 서구은행에 예치해왔기 때문이었다. 이슬람 금융시장은 이와 함께 대출이자는 물론 투기거래를 엄금하는 이슬람 율법체계인 ‘샤리아(Shariah)’로 인해 상당한 제약을 받아왔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고 미국·유럽계 은행들의 고민은 시작됐다. 중동 은행들이 자체 투자를 시작한 것도 고민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한 예로 얼마 전 한 사우디아라비아 은행은 바닷물 담수화 공장 건립에 50%의 자금을 투자했다. 예전에는 지급보증도 서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다. 석유가 무한정한 자원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생존을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채권 시장도 달아오르면서 서구 투자은행들은 앉아서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5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로 시작된 2차 중동 특수는 우리에게도 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공사 수주 분야가 토목·건설 같은 노동력 중심에서 석유·가스 설비 같은 기술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김주남 KOTRA 해외마케팅본부장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플라스틱 성형 사출 플랜트 같은 낮은 기술을 수출했지만 최근에는 ‘자족경제’를 원하는 중동국들에 IT인프라와 식품가공시설 등을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상 국가도 사우디아라비아·이란에서 중동 전 지역으로 크게 변했다”며 “이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정부 조달 시장에도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조달 시장은 국가 공인의 의미도 있지만 장기 수출이 가능해 의미가 크다. “껍데기에서 건물 안으로” 수출입은행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해외 건설 수주액은 52억 달러(약 5조2000억원)로, 이 가운데 37억 달러가 중동 모래밭에서 일궈낸 성과다. 지난해 중동 수주액 35억7100만 달러, 2003년의 22억5800만 달러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특히 수익성 좋은 플랜트 수주가 전체 공사의 80%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플랜트 공사는 주요 부품을 국내에서 만들어 가져가기 때문에 외화가득률이 높아진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 구기욱 상무(담수설비 영업담당)는 “전에는 빌딩 껍데기만 지었다면 이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격”이라며 “이 같은 현상은 3~4년 전부터 시작, 지난해부터 구체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권오식 중동영업총괄 부장은 “한국업체를 선호하는 이유는 선진국은 설계·관리·감독만 하는데 한국기업은 시공부터 감독까지 턴키베이스로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가운 것은 건설사만이 중동 혜택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육지가 아닌 심해 원유탐사설비와 LNG선 등은 물론 각종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등이 잇따라 발주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최근 세계 석유 메이저들이 ‘육상에서 바다로, 근해에서 심해로’ 가고 있다”며 “해양설비 시장은 오는 2010년까지는 매년 10%씩, 2010년 이후에는 10% 이상씩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전을 비롯한 정보통신(IT) 분야와 자동차업계도 덩달아 오일 머니의 혜택을 받아 지난해보다 20∼30% 이상의 매출 신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국민에 대한 보조금 확대와 공무원 임금 인상 등으로 소비심리가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9일 ‘중동 오일 달러 규모와 그 파급 효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이런 현상을 좀 더 심도있게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최근 5년(2000~2004년) 동안 중동지역으로 유입된 오일 달러가 1조500억 달러(약 1050조원)에 달한다”며 “이는 1차 오일쇼크(1974~1978년) 당시 중동으로 들어간 자금의 2배이며, 2차 오일쇼크(1980~1981년) 당시에 들어간 자금과 비슷한 규모”라고 분석했다. 이 수치는 중동지역의 수입증가율 15%의 두 배에 가깝다. 그만큼 성장시장이라는 의미다. KOTRA도 지난 5월 ‘중동 오일 머니를 잡아라’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동지역 플랜트 건설 시장 규모가 향후 10년간 1조 달러에 이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금융권이 동반 진출하는 것도 이전과 다른 양상이다. 외환은행의 경우 두바이와 바레인 지역에 사무소를 열었고, 수출입은행은 5월 초 세계 수출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두바이에 사무실을 개설했다. 국내기업의 프로젝트 금융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1차 중동 특수 때는 금융권 지원이 전무했다. “겨우 30%만 발주됐을 뿐” 그렇다고 사막의 ‘모래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중동 각국이 자국업체에 대한 보호를 시작하면서 참여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데다 중국·인도 등의 저가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황금시장을 놓칠 리 없는 미국·영국 같은 선진국의 경우 아예 국가 수반이 로비에 나서고 있는 현실도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시공능력은 선진국에 뒤지고 인건비·자재비에서는 중국·인도 같은 후발 경쟁국에 밀리는 넛크래커(Nutcraker)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배경에는 자칫하다 선진국 기업들의 잔치판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전문인력 부족도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이 지역 순회 출장을 다녀온 이병하 대우자판 수출팀장은 “아프리카 세네갈에서부터 이란까지 (석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 쓰기에) 불이 붙었다”며 “하지만 1차 중동 특수 때 활동했던 중동지역·건설 전문인력이 은퇴해 이 지역 전문가가 없는 것이 큰 손실”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렇다면 지금 중동의 사막에 흐르는 달러는 우리에게 ‘젖과 꿀’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림의 떡이 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두 가지 다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하디 살레 에스파하니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의 말을 인용, “이번 오일 붐은 과거 오일 붐보다 보다 강력하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해외 수주액(9억3000만 달러)을 이미 올 상반기에 중동지역에서 달성한 현대건설의 권오식 중동영업총괄 부장은 “현재 발주되지 않은 공사가 70%인 황금시장”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김주남 KOTRA 본부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중동 전체로 보면 예전의 특수는 특수도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짜 특수가 오고 있는 느낌”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이 기회를) 어떻게 제대로 잡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항상 그렇듯 맛있는 떡은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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