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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BIZ 시네마…보석털이의 비즈니스 법칙 이익 챙기기 ‘화끈한 전략’

임준수의 BIZ 시네마…보석털이의 비즈니스 법칙 이익 챙기기 ‘화끈한 전략’

임준수 성균관대 겸임교수.
흔히 쓰는 말 중에 ‘허가 난 도둑’이란 말이 있다. 횡령을 일삼는 공직자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 반대말인 ‘허가 없는 도둑’은 굳이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냥 ‘도둑’이다. 이 두 가지 도둑의 공통점은 남에게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타가 공인하는 도둑이 있다. 영화 ‘애프터 썬셋’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맥스 커플이 그들이다. 보석털이가 전문인 이들은 어떤 민완형사도 체포하지 못한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애프터 썬셋’은 온갖 도둑들이 총출연하는 영화다. 맥스 커플처럼 전문 절도가 있는가 하면, 그를 추적하는 연방수사국(FBI) 수사관 같은 ‘허가받은 도둑’도 있다. 그 사이로 조폭을 거느린 절도조직이 끼어든다. 이래서 도둑들의 전쟁은 3파전이 되는데, 막판에 ‘허가 난 도둑’이 새치기를 하는 바람에 최후의 승자는 뒤죽박죽이 된다. 한때 정복자 나폴레옹의 칼자루에 박혔던 전설적인 다이아몬드를 노리는 이들 3개 파 도둑은 각각 추구하는 ‘한탕의 목표’가 다르다. 보석털이 커플은 일몰 후의 낙조(애프터 선셋)를 즐기는 낭만적인 노후생활이고, ‘허가받은 도둑’은 범죄 없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매너와 죄질이 가장 나쁜 절도조직은 핍박받는 유색인을 돕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스크린 전반에 걸쳐 넘실대는 카리브해의 풍광이 볼 만하다. 산호초가 영롱하게 빛나는 바다가 그렇고, 정열적인 삼바 춤과 탱고 음악이 파도처럼 흐르는 축제의 거리가 그렇다. 특히 호화 리조트의 환상적인 휴양시설과 거리를 누비는 비키니 미녀들의 요염한 자태들은 비즈니스맨들을 유혹할 만하다. 성공한 사업가라면 사업구상을 겸해 한 번 찾을 만한 곳임에 틀림없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보석털이와 FBI 요원의 대결구도로 짜여 있다. 둘은 쫓고 쫓기는 앙숙관계지만 적당히 타협도 하고 도움도 나눈다.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적과의 동침’은 정치판에서 단골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사업계에서 더 많다. 동업은 이미 해묵은 방식이고 이제는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끼리 손을 잡는 사업 제휴가 더 많다. 그런데 이들 전략적 제휴의 특징은 언젠가는 깨지고 만다는 것. 하긴 일생을 해로하기로 서약한 부부관계도 예사로 깨지는 판에 돈으로 얽힌 비즈니스 분야에서야 어련하겠는가. 이 영화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전문 도둑의 깨끗한 매너와 철저한 프로정신이다. 비록 도둑일망정 선량한 이웃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입찰 시초가가 3000만 달러(약 300억원)를 호가하는 콩알만 한 다이아몬드 한 개에 쏠려 있다. 그걸 훔치는 과정에서 일으키는 가해행위는 기물 파손 정도로 끝난다. 돈을 벌겠다고 인스턴트 식품에 유해색소나 방부제를 섞는 비즈니스맨이 있다면 이들 도둑에 한 수 배울 필요가 있다. 007 시리즈의 단골 첩보원이었던 피어스 브로스넌의 유연한 액션연기가 여전하다. 보석 전문 도둑으로서 투철한 프로정신을 보이는 그는 동업자인 애인에게 헌신적인 애정과 지조를 나타내 007 시리즈에서 보인 바람둥이 인상과는 딴판이다. “유혹을 이기는 길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라는 그의 절도 비즈니스 철학(?)은 매우 그럴듯하지만 일반 비즈니스맨들에겐 경계해야 할 지침이다. ‘애프터 썬셋’은 도둑들의 계산된 의리와 냉혹한 배신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오락물이다. 거창하게 작품성을 따질 필요도 없고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메시지도 기대할 필요가 없다. 비즈니스맨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다면 제작진의 철저한 상업주의일 것이다.

애프터 썬셋
원제 : After the Sunset
감독 : 브렛 라트너
출연 : 피어스 브로스넌(남자 보석털이), 셀마 헤이엑(여자 도둑), 우디 해럴슨(FBI 요원)
원산지 : 미국
장르 : 액션, 코미디, 범죄, 모험, 스릴러
상영시간 : 97분
홈페이지 : www.aftersunset.co.kr
Biz Point


모델로 나온 명품 다이아몬드

범죄 영화 ‘애프터 썬셋’에서 도둑들의 표적이 되는 나폴레옹 칼자루의 보석은 세계적 명성을 갖는 두 개의 실존 다이아몬드를 모델로 삼아 각색한 것 같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있는 ‘호프 다이아몬드’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리젠트 다이아몬드’가 그것이다. 둘 다 프랑스 왕실과 관계가 깊은 세계적 명품이다. ‘호프 다이아몬드’(사진)의 원본으로 추정되는 45.52캐럿짜리 프렌치 다이아몬드는 루이 14세 때부터 프랑스 왕실의 소유였다. 1642년 원석으로 발견된 이 다이아몬드는 루이 15세를 거쳐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품은 1792년 9월 7일 프랑스 왕실의 보물 창고에서 도난당한 이래 그 행방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도난사건 20년 후인 1812년, 런던 보석시장에 매물로 나온 44.5캐럿의 블루 다이아몬드가 도난품과 너무 흡사해 문제의 프렌치 다이아몬드가 재(再)커트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 다이아몬드는 영국의 호프가에 팔려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나폴레옹 다이아몬드의 또 다른 모델 ‘리젠트 다이아몬드’의 원석은 1701년 인도에서 발견됐다. 1717년 프랑스의 섭정(regent)에 팔려 ‘리젠트’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보석은 1772년 루이 15세의 대관식용 왕관에 장식돼 프랑스 왕실과 역사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애프터 썬셋’ 제작진이 나폴레옹 다이아몬드를 등장시켜 도난당한 프랑스 왕실 보석의 사연을 짜깁기한 것은 영화가 생판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은근히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같다. 정복자 나폴레옹은 실제로 보석을 좋아해 칼자루에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칼을 애용했다. 이는 다이아몬드의 어원인 아다마스(Adamas·그리스어)가 ‘정복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은 실권 후 엘바섬으로 추방될 때도 다이아몬드가 박힌 칼을 가져 갔다는데, 불행한 말년을 보낸 정복자의 애장품을 범죄 영화의 소재로 삼은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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