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음악산업도 세계화

음악산업도 세계화

The Beat Goes on

1년 전 라틴 아메리카에서 레게톤 스타 대디 양키(28)의 외설적인 히트곡 ‘Gasolina’를 틀지 않는 나이트클럽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레게톤은 파나마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생겨난 힙합·살사·클럽댄스음악이 한데 섞인 펑크 혼성 장르다). 이 노래가 담긴 불법 음반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멕시코까지 거의 모든 노점상을 점령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 푸에르토리코 청년은 라틴계 주민이 많은 브롱크스 같은 곳을 빼면 거의 무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즘은 대디 양키와 여성 코러스가 서로 메기고 받는 ‘A ella le gusta la gasolina/Dame m뇋 gasolina’(그녀는 휘발유를 좋아해, 내게 휘발유를 더 줘)의 열정에 찬 후렴구가 코네티컷주 교외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방 흘러나오고 최신 유행에 민감한 맨해튼 고급 술집 손님들의 어깨도 들썩이게 한다.

급기야 8월 28일 대디 양키는 MTV 비디오 음악상의 무대를 환히 밝혔다. 거의 10년 동안 라틴 사회의 비밀이던 그는 드디어 레게톤과 함께 음악계의 주류가 됐다. “이제 레게톤은 거대한 흐름이다. 그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에서 레게톤이 폭발적 인기를 얻은 이유는 대디 양키의 카리스마와 멋진 목소리, 외설스러운 가사,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사람들이 신나고 새로운 힙합에 한참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습격의 진정한 동력은 급속히 진화하는, 음악산업의 세계화 현상이다.

세계화를 이끈 두 가지 촉매제는 바로 위성라디오와 인터넷이다. 이들 동력 덕분에 음악은, 공식적인 공급망이 미처 형성되기도 전에 강력한 소비자 수요를 형성하고 공간(사이버 공간 포함)을 통과해 쉽고 빠르게 전달된다. “[두 동력 덕분에] 틈새 음악 장르가 생존한다”고 미국 매체조사 회사인 커런트 어낼리시스의 스티브 코프스키는 말했다. 그리고 거대 음반사의 지원 없이도 “엄청나게 많은 청중”을 만나게 됐다. 특히 위성라디오는 음악 팬들에게 “축복받은 위안처”이며 “그동안 범접하지 못하던 세계로 가는 통로”라고 코프스키는 말했다.

그동안 팬들은 별로 아름답지 않은 통로를 통해 그 세계에 접근했다. 1980년대 중반 해적판 카세트테이프가 광범하게 유통되면서 미국 도심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머물던 래퍼들은 부유한 교외지역에 진입했다. 그런 뒤 거대 음반사와 계약하며 점차 힙합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 산업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불법 복제 기술이 한층 발전하고 파일 공유 프로그램이 양산되면서 한때 혁신적 신인과 흔쾌히 계약을 했던 미국 거대 음반사들은 큰 타격을 보고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

이윤 폭 감소와 더불어 거대 음반사는 점차 신인 계약에 몸을 사린다. 검증이 안 된 장르면 특히 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모든 주류 음반사가 계약 가수의 수를 줄여 왔다. [그리고] 막대한 투자금이 소요되므로 빅스타에만 주력한다. 불법적으로 뇌물이 제공되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는 대부분 홍보비로 쓰인다”고 LA 레이더리서치의 공동 창립자인 아람 신라이크는 말했다.

틈새 장르의 음악가와 소규모 음반사에 위성라디오와 웹은 새롭고 값싼 홍보 도구의 결정판이다. XM·시리우스·월드스페이스 같은 위성라디오 방송국(500만 가입자를 자랑하는 곳도 있으며 세계적으로 400개가 넘는다) 덕분에 소규모 음반사나, 심지어 일개 밴드가 “전 세계 10만 관객에게 음악을 배포해 소액 투자로도 이윤을 꿈꾸게 됐다. 음악산업의 경제적 특성이 변하고 있다”고 신라이크는 말했다.

한편 인터넷은 구전으로 떠도는 소문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빠르게 퍼뜨리는 자기 고유의 역할을 수행한다. 래퍼 다라 제이가 세네갈 다카르의 클럽을 벗어나 유럽과 미국에 진출하는 데 크게 일조한 latinohiphopradio.com과 africanhiphop.com은 내려받기를 통해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소개한다. 인도의 방그라에서 포르투갈의 파두에 이르는 거의 모든 음악이 MP3로 제공돼 세계 어디서든 몇 분 내에 접근이 가능하다. 어떤 이들은 레게톤에 목숨 거는 스페인어 사이트가 엄청 많았던 덕분에 대디 양키의 성공적 미국 시장 진출도 가능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졌으나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청취자들을 한데 끌어모았다. 레게톤이 대표적 예”라고 신라이크는 말했다.

사실 레게톤을 포함한 라틴 음악은 디지털 혁명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어쨌든 수요는 이미 존재했고, 거기다 최근 몇 년 새 샤키라와 후아네스 같은 가수들이 처음으로 미국 전역을 휩쓴 덕분에 라틴 음악은 유례가 없는 전 지구적 인기를 구가한다. 한편 미국 내 판매량이 증가하고는 있지만(올 들어 거의 20% 향상됐다) 불법 복제 음반이 가장 많은 장르가 또 라틴 음악이다.

그 결과 공급망이 상당 부분 축소됐다. 주요한 멕시코 음반사 여러 곳이 최근 사업을 접었고, 2004년 워너뮤직 그룹은 불법 복제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던 멕시코시티 밴드 엘 트리를 버렸다. 엘 트리는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지만 음반 판매 실적은 저조했다. 이렇듯 인기는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음악가들에게 위성라디오는 직접 대중을 만나는 통로가 된다.

조심성 많은 거대 음반사에도 위성라디오는 득이 된다. 음반사 대부분은 지금 재능 있는 신예를 찾아 위성라디오를 샅샅이 뒤진다. 지역의 성공이 주류 시장의 수익으로 곧장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음반사는 위성라디오를 통해 어느 정도의 위험 요인을 줄인다. 예컨대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는 록밴드 스테리오그램은 웹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인재를 찾던 LA의 한 프리랜서 스카우트에게 발탁됐다. 그리고 몇 주 뒤 캐피톨레코드와 거래가 성사됐다.

다시 레게톤을 보자. 대디 양키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이 소유한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유통시키겠지만 인터넷으로 형성된 인기 덕분에 미국에서 레게톤 가수들의 계약이 봇물처럼 일고 있다. 올해 초 유니버설레코즈가 발족한 마셰티뮤직은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라틴계 도시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레게톤이 전문”이다.

인기는 높았지만 미국 주류 음반사와 계약하지 못했던 레게톤의 대가 테고 칼데론은 최근 애틀랜틱레코즈와 음반 계약을 맺고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거기다 XM의 중심 라틴 채널인 알레그리아가 확실히 레게톤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큰 계약 건이 더 많이 성사되리라 예상된다. “위성라디오를 통해 음반사와 가수의 상호 이익이 모색된다”고 코프스키는 말했다.

심지어 일부 주류 음반사는 XM과 시리우스에 자사 가수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현명한 음반사는 모든 부문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선견지명이 있는 음반사 대표라면 위성라디오에 점점 더 많이 손을 내밀게 마련”이라고 에디슨미디어리서치의 숀 로스는 말했다. 한편 음반업계 거물 기업들도 가수계약·배급·방송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던 과거의 시장 장악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 모든 게 변했고 구식은 안 통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신라이크는 말했다.

얼마간의 적응기를 보내고 나면 음악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다양해지리라. 파일 공유 기술이 발달하고 위성라디오 방송국이 계속 성장하고 인터넷 사이트는 더욱 다양해진 음악을 세계 구석구석으로 전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류 음반사들은 이윤의 상당 부분을 소규모 음반사나 음악가와 나눠 가져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음악에 목마른 대중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이정명 ikke@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주금공, 12월 보금자리론 금리 동결…연 3.95~4.25%

24대은행, 경북 청도시장서 ‘공동ATM’ 운영

3iM뱅크, 가산·동탄 점포 12월 말 개점…8.5% 고금리 적금 판매

4테슬라 실주행 측정하니...'계기판 주행가능거리' 보다 120㎞ 못가

5산업은행-오픈AI, AI생태계 조성 위해 ‘맞손’

6조병규 우리은행장 "조직 쇄신 위해 연임 않겠다"

7 외교부 "추도식 관련 日 태도에 어제 유감 표명"

8내년 韓 경제성장률 '주춤'…트럼프 당선 때문?

9티웨이항공, 신입 및 경력 사원 채용...내달 4일까지

실시간 뉴스

1주금공, 12월 보금자리론 금리 동결…연 3.95~4.25%

24대은행, 경북 청도시장서 ‘공동ATM’ 운영

3iM뱅크, 가산·동탄 점포 12월 말 개점…8.5% 고금리 적금 판매

4테슬라 실주행 측정하니...'계기판 주행가능거리' 보다 120㎞ 못가

5산업은행-오픈AI, AI생태계 조성 위해 ‘맞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