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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약하는 일본 경제

재도약하는 일본 경제

Rising Again

도쿄증권거래소를 찾은 오카모토 하루히코는 희색만면했다.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7세짜리 딸 유리코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청색과 백색의 교복을 입은 꼬마 아가씨가 오래된 철제 종을 망치로 두들겼다. 바로 아빠 회사의 주식 거래 첫날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오카모토는 스스로 “운 좋은 사람”이라며 한창 성장을 구가하는 자신의 ‘크리에이트 레스토랑’ 체인이 주식을 상장하기에 꼭 알맞은 시기를 택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랜 불황을 겪은 뒤 확연히 달라진 소비심리를 느낀다. 소비자들은 지금 일종의 해방감을 만끽한다.”

당연한 해방감이다. 오카모토의 회사가 주식을 공개한 9월 28일 표준 닛케이 지수는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며 장을 마감했다. 9월 11일 총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완벽한 승리를 거두자 투자자들은 일본 증시로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자민당은 고이즈미의 강력한 친개혁적 공약에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낸 데 힘입어 압도적 권한을 갖게 됐다.

물론 총선 승리가 시장에 심리적 자신감을 불어넣었지만 사실 지난 수개월 동안 일본 경제는 여러 가지 활력의 징후를 보였다. 수년 동안 혁신을 단행한 일본 기업들은 건전성을 되찾고 수익도 크게 늘었다. 소매와 고용지수도 1997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부동산 매매에 관한 발표 자료에 따르면 15년 만에 처음으로 도쿄 땅값이 눈에 띄게 올랐다. 이로써 1990년대 초반 자산 거품이 꺼진 이래 일본 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디플레이션이 끝나리라는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낙관적 전망을 내놓던 경제전문가들조차 지난 9월 12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3.3%에 이르렀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에 크게 놀랐다. 최근 실시된 각종 기업·소비자 신뢰지수 조사에 따르면 이 모든 상황이 한데 어우러져 지금 일본인들은 자국 경제에 낙관을 표한다. “10년의 세월 동안 해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4∼5년을 더 보내고 나면 스스로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피곤함보다는 오히려 상쾌한 활기를 느끼게 된다”고 도쿄 메릴린치의 수석분석가 제스퍼 콜은 현재의 일본을 논평했다.
혹시 지나친 낙관은 아닐까? 사실 오랜 경기침체를 겪어 온 일본은 간헐적이나마 회복의 징후도 보였다. 그러나 매번 어김없이 미몽을 깨우는 경기 감퇴가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 부활은 전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1990년대 잠깐 반짝하던 회복 징후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번 경기 회복은 공공 지출이나 공공사업이 아니라 바로 내수가 이끈다. 따라서 자립도가 높고 정부나 대외환경 의존도가 낮아졌다”고 도쿄 골드먼삭스의 수석분석가 캐시 마쓰이는 말했다.

그 말이 맞다면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일본 경제의 성장동력은 줄곧 수출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일본은 중국의 경제 성장에서 큰 혜택을 봤다. 기계나 정보기술(IT)의 대 중국 수출이 급격히 늘어난 때문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수요가 썰물 빠지듯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한창이지만 일본 소비자들은 그 감소분을 대체할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일본 국민은 수입이 늘자, 엄청난 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소비를 늘려 간다. 매커리증권의 경제분석가 리처드 제럼에 따르면 지난 7년 동안 줄곧 줄어들던 임금이 지난 1년 동안 1.3% 증가했다(7월 기준). 그러는 사이 기업들은 수익을 국내 사업에 투자하면서 수요를 더욱 진작시킨다. “일본은 더 이상 세계경제와 일심동체가 아니다. 이제는 거의 분리됐다. 바로 내수 때문”이라고 마쓰이는 말했다.

경제 간섭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노력 또한 이번 경기 회복에 한몫 단단히 했다. 1990년대 경제의 반짝 성장은 주로 관료적 경기부양책의 결과였다. 당시 쓸데없는 공공사업에 돈을 퍼붓다 결과적으로 장기 공공부채의 위기만 심화시켰다. 그러나 고이즈미 집권 하에서 대단위 개발계획에 대한 정부의 지출은 거의 없었다. 대신 일본 정부는 외국인 투자 촉진에 나섰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외국인 직접 투자액은 2004년 3월부터 2005년 3월에 두 배나 늘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고이즈미 정부가 부실 대출이라는 커다란 부담을 일소하기 위해 공격적 전략을 추구했다는 점이라고 경제분석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한 부실 대출은 1990년대의 과잉소비 시기 후 원활한 금융활동을 가로막는 주범이었다. 매커리증권의 제럼에 따르면 금융권 구조조정이 있기 전까지 곤궁에 처한 은행들은 부실 부채를 감액할 만한 충분한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허약한 채무자를 떠안아야 했고, 같은 이유로 튼튼한 기업들에 대출해 주지 못했다. “이제는 상황이 정상화돼 간다. 비능률적인 기업은 몸집을 줄이고 능률적인 기업은 사업을 확장하고 생산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요인이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친다”고 제럼은 말했다. 최근 은행 여신액은 7년 전 일본 은행이 자료를 모아 온 이래 처음으로 상승했다.

게다가 민간 부문은 힘든 과업을 상당 부분 완수했다. 일본 기업들은 대차대조표상의 건전성을 높였고 주요 사업 모델을 바꿨다. 경영자들은 불건전한 ‘게이레쓰’(系列) 구조의 핵심 고리인 주식 교차 소유의 난맥을 풀고 주주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기업 부문이 지난 10년 동안 2조 달러 규모의 이자 부담이 있는 채무를 상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난 30년 동안과 비교할 때 GDP에서 민간 부채 비율은 지금이 가장 낮다. 1970년 이래 최저치”라고 콜은 말했다. 기업들은 거품경제 시기에 취득했던 비핵심 자산의 대부분을 털어냈다. 저기술 분야는 저임금 국가로 아웃소싱했다(현재 일본 생산력의 40%가 외국에 있다. 10년 전에는 10%였다). 예전의 종신고용제는 고통스러운 미국식 자본주의의 산물인 해고로 대체됐다.

비용 절감은 주주들뿐 아니라 일본의 보통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준다. 각종 고용지수를 보면 저혜택·저임금의 시간제 근로자가 일본사람들의 일터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존재로 자리 잡은 듯 보였던 세월을 뒤로하고, 기업들은 젊은 정식 직원들의 고용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철저한 기업 혁신을 견뎌내 고용 능력을 회복한 기업이거나 전사적 혁신의 결과로 태어난 신생 기업들에서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된다. 여기서 경제 전문가들은 어렵지 않게 레이건 정부의 대규모 산업 재편을 떠올린다. 당시 미국에서는 규제 철폐 조치로 자기 만족에 빠진 산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그러한 변화 전략은 미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이나 생산성 향상을 일궈냈다. 일부 낙관주의자에 따르면 일본도 그러한 경험을 뒤따를 조짐이다. 과거의 거대한 복합기업 ‘자이바쓰’(財閥)는 국제 경쟁의 압력 아래 무너졌다. 공룡기업들이 몸집을 줄이자 해고 근로자들은 일본의 서비스 부문을 빠르게 팽창시켰고 창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건 스탠리의 로버트 앨런 펠드먼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IT와 부동산 등 일부 산업군은 노동력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심화된다. 한쪽에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 또 한쪽에서는 산업 부문별 이동이 가능한 충분한 기술이 없다”고 펠드먼은 말했다. 더 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다. 도쿄의 기업가 야마다 신지로는 “1980년대의 미국과 비슷하다. 대기업에서 일하겠다는 꿈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의 산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한 선박무역 복합기업의 자회사인 미쓰이에서 중급 기술자로 일했던 야마다는 1990년 회사를 나와 동료와 INCS㈜를 차렸다. 도요타에서 노키아까지 여러 기업을 위해 소비자 기호에 맞는 최신식 모델을 디자인하고 생산한다. 이처럼 비용은 적게 들고 부가가치가 높은 전문 제품들은 일본의 새로운 산업 풍경을 형성한다. INCS의 최고경영자 야마다가 말했듯이 일본 경제의 부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2002년 여름이었다.

당시 후지쓰·도시바·히타치 같은 일본의 간판 기업들은 대규모 인원 감축을 선언해 일본 사회의 오랜 관행을 깨뜨렸고 그 누구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기업의 인원 감축에 수긍했다. 아니,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경제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원 감축의 필요성을 확고히 신봉하면서도 최근 새로운 직원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야마다의 모습은 일면 모순적이다. 2004년 총매출이 약 9000만 달러에 이르는 INCS의 현 직원 수는 320명이지만 최근 늘어난 계약 건 때문에 새로 80명을 충원했다. 야마다는 회사 수익의 절반이 컨설팅 사업에서 발생한다고 자랑한다. 이는 제조업에 대한 일본인들 특유의 집착과는 현저히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제조업은 일본인들의 여전한 장기다. 그리고 지금 일본 제조업자들은 생산시설의 국내 유입 현상에 잔뜩 고무돼 있다. 최근 몇몇 기업은 실제로 ‘인소싱’(insourcing), 즉 일부 생산설비를 일본으로 다시 들여온다. 이유인즉 어차피 중국도 속도야 느리겠지만 임금 상승이 당연한 데다 예측 불가능한 하부구조와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중국의 모호한 태도 때문이다. 일본 기업처럼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여하는 기업들에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지난해 캐논사는 일본에 새로운 디지털 카메라 공장을 열었다. 이 소비재 거대 기업에 고임금은 2004년 52억 달러라는 기록적 수익을 내는 데 하등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회복의 잠재적 걸림돌은 얼마든지 있다. 일본이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이후로 석유 의존도를 상당 부분 줄여 왔다고 해도 높은 원유가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많은 일본 기업에 능률화가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야마다는 “기업 혁신은 향후 10년 동안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와 국민이 보다 느슨한 이민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인구고령화 같은 문제도 성장을 가로막을지 모른다. 아무튼 지금 일본인들은 걱정일랑 접어두고 따뜻한 경기 회복의 햇살을 만끽해도 좋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다면 당연한 권리인지도 모른다.

이정명 ikk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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