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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석 회장 디자인 테마빌딩 세워 … “김영세와 케빈 리 의기투합 수공예품처럼 빌딩 만들어”

정연석 회장 디자인 테마빌딩 세워 … “김영세와 케빈 리 의기투합 수공예품처럼 빌딩 만들어”

정연석 회장.
김영세.
케빈 리.
몇 달 전 한국의 대표적 산업 디자이너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은 베이징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경제주간지에 실린 짤막한 기사 한 줄을 읽었다. 가구 등 생활용품 디자인 업체인 엠포리아에서 강남 도산대로변에 디자인 테마빌딩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읽은 김 사장은 귀국하자마자 엠포리아 정연석 회장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다. 디자인에 인생을 건 두 남자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 회장에게 빌딩의 컨셉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 사장은 그 자리에서 빌딩 12, 13층 두 개층을 매입해 이노디자인 본사를 그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같은 서울대 미대 출신인 두 사람(김영세 사장이 3년 선배)은 그 전까지 일면식도 없었지만 ‘디자인’을 매개로 ‘선수’들끼리 마음이 통한 것이다. 김영세 사장이 한국의 산업디자인 수준을 한차원 끌어올린 인물이라면 정 회장은 백화점 인테리어와 가구디자인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1978년 디자이너로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한 이후 주로 삼성전자의 해외전시관을 기획하다 5년 만에 독립해 현대·신세계·애경·한신코아 등 백화점 인테리어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강남 부유층 사이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수입가구회사 디오리지날 회장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김영세 사장을 만나기 전에 이미 또 한 명의 세계적 인물과 만나 의기투합했다. 바로 파티플래너이자 디스플레이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케빈 리(Kevin Lee)와의 만남이다. 재미동포인 케빈 리는 오스카나 에미상 수상식장의 행사 준비를 책임졌던 인물이며, 톰 크루즈 등 미국의 유명 연예인과도 친분이 깊어 그들의 파티를 수도 없이 주관했었다. 지인을 통해 정 회장과 만난 케빈 리는 이 빌딩 지하에 호텔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차별화된 최고의 파티 행사장을 만들기로 했다. 대체 정 회장이 만들고 있는 강남 빌딩이 어떤 곳이기에 디자인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정 회장과 손을 잡은 것일까. “디자인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마법이 있습니다. 빌딩 하나만 제대로 디자인해도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비싼 땅에 세운 빌딩 전체 공간의 10%를 푸른 수목으로 채우려 합니다.”(정 회장) 착공한 지 3년이 지난 이 빌딩에는 정 회장의 마음이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빌딩을 수공예품처럼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다 보니 12월 초로 예정된 완공 날짜도 제대로 못 지킬 것 같아 요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한다. 정 회장은 건물 이름을 ‘디자인 돔(design-dom, design+kingdom의 합성어)’으로 정하고 건물이 완공되는 대로 입주자들을 다양한 업종의 디자인 관련 회사들로 구성할 예정이다.

유리 모양도 제각각 디자인 돔은 외관부터 예술작품을 만들듯이 명품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선 건물 외벽 사방을 투명유리로 뒤덮어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했다. 다분히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일반 건축물 개념을 뒤엎은 발상이다. 이처럼 ‘누드빌딩’으로 설계한 배경은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이게 해 건물 전체가 마치 살아 꿈틀대는 유기체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다. 누드빌딩은 빌딩 디자인의 세계적 추세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제대로 선보이는 것은 디자인 돔이 처음이다. 또 외벽 창문의 격자 사이즈도 제각각이다. 건물 설계자인 시 건축의 한철수 소장은 “창문들을 세 가지 모드로 적절히 배치해 각자의 크기가 전부 다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창문 하나하나를 손으로 직접 짜맞춘 듯한 분위기를 내 건물을 하나의 수공예품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층마다 높이를 달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창문 아랫부분이 햇빛을 받아 반사광선을 발하도록 함으로써 해가 뜨고 질 때엔 건물이 발광체처럼 반짝이는 광경을 연출하도록 했다.

홍콩서 꺾인 에스컬레이터 찾아내 각 층 화장실을 가장 전망이 좋은 건물 정면 오른쪽에 배치한 것도 상식을 깬 차별화 포인트다. 특히 조경부문에 많은 배려를 하는 등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인근 건물과의 사이에 벽을 헐어내고 값비싼 자작나무와 왕대나무를 심고, 건물 내부 곳곳에도 왕대나무 정원을 조성해 입주자나 방문객들에게 숲 속의 ‘쉼터’에 와 있는 듯한 안락함을 제공하고 있다. 벽을 허물고 나무를 심는 모든 비용도 정 회장이 대기로 했다. 이 빌딩의 탄생엔 전 세계의 성공 모델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건물을 짓는 동안 시장조사 팀이 미국·일본·중국·홍콩 등지로 수시로 달려가 최고급 건축자재를 들여오고, 건물 콘텐츠를 벤치마킹했다. 미식가이기도 한 정 회장은 이 빌딩 안에 최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본과 중국을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얼마 전 도쿄 출장 때엔 맛있는 요리를 찾기 위해 2박3일 동안 70가지 이상의 메뉴를 직접 맛볼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정 회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은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우리 빌딩에 오면 비싸지 않으면서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얼마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다녀가 화제가 됐던 도쿄의 이자카야(선술집) ‘곤바치’를 벤치마킹하고 돌아왔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최고 수준의 음악밴드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직접 남미 콜롬비아로 날아가기까지 했다. 주위에선 “빌딩 하나 짓는 데 뭐 그리 요란을 피우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음식 운반 전용 엘리베이터 운행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도입에 얽힌 에피소드도 디자인을 중시하는 정 회장의 생각을 말해 준다. 그는 당초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고민하면서 “왜 이놈의 기계는 직선이어야만 하고 넓은 공간을 차지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어느 날 홍콩 출장 길에 한 건물에서 중간쯤에 직각으로 꺾인 에스컬레이터를 보고는 무릎을 쳤다. “바로 저것이다.” 그는 귀국 즉시 진행되고 있던 1층 내장설계를 바꿔 버렸다. 이렇게 해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꺾인 에스컬레이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정 회장은 엠포리아 빌딩의 기능에 대해 “디자이너들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고품격 선진 생활문화를 보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엠포리아는 고급 생활문화의 ‘원스톱 솔루션’을 구현하는 복합 상업 건축물이다. 15개 층 전체를 상호 보완적 업종으로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엠포리아는 일반적인 건물 분양방식 대신 입주자를 엄선해 직영 또는 공동사업 형태로 빌딩을 운영할 방침이다. “디자인은 가치를 창출합니다. 건축도 돈만 많이 들인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죠. 디자인 돔을 짓는데 150억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하면 다들 놀래요.” 정 회장은 대지면적 260평에 건물 총 면적이 1610평에 달하는 지하 2층, 지상 15층(주차장 별도)의 이 건물을 값으로 평가하는 데 대해선 거부감을 느낀다.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건물 내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하 1·2층과 14·15층은 웨딩파티·콘서트·이벤트홀·댄싱룸·스카이라운지로 꾸며지며, 2~4층은 일본식 레스토랑 ‘마루’와 중국문화원에서 후원하는 패션몰과 광둥식 딤섬 레스토랑 등 ‘차이나 룸’이 자리를 잡는다. 주한 중국 대사관에선 “중국 문화에 이렇게 후한 대접을 해 줘 너무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오기까지 했다. ‘마루’는 신라호텔 조리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의 고급 일식전문점 ‘에도긴’을 운영하고 있는 이병환씨를 영입해 맡기기로 했다. 5·6층에는 명품 수입가구인 ‘디오리지노날’의 갤러리가 들어선다. 지하층과 4층 사이에 음식 운반 전용 엘리베이터가 운행돼 레스토랑들과 파티 홀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준다. 정 회장은 이 빌딩 안에 직영 또는 조인트벤처 형태의 사업체만 들여놓을 계획이다. ‘엠포리아 포럼’이란 협의체를 구성해 건물 운영과 신규사업 개발 등에 관해 협의하게 된다. 케빈 리의 경우 엠포리아와 합작사를 설립해 선진 파티문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엠포리아는 사옥이 완공되는 시점에 발맞춰 여러 신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엠포리아 빌딩을 전초기지로 한 ‘공간문화사업’. 공간문화사업은 고급 소비층을 대상으로 실내를 세련되고 우아하게 꾸미고, 행사 모임 등의 이벤트화를 대행해 주는 신종 비즈니스다. 역시 이 사업의 핵심 요소는 디자인. 이 사업을 위해 엠포리아는 국내 또는 외국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해서 공간문화사업 분야의 ‘나이키’가 되겠다는 게 엠포리아의 꿈이다. 첫 번째 타깃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엠포리아는 이들 시장에서 우리나라 대중문화처럼 디자인의 ‘한류’ 열풍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엠포리아는 최근 중국 건설부 산하 국영회사인 베이징천단주식유한회사와 합작의향서를 체결, 중국을 포함한 세계 디자인 시장의 공동 개발을 전담하는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정연석 회장
1953년 대구 출생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삼성그룹 해외마케팅 & 프로모션 팀장
밀라노 롬바르디아 디자인포럼 멤버
1994년 디오리지날 리빙 창업
2002년 엠포리아 회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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