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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추적하는 첨단 ‘보존의학’

질병을 추적하는 첨단 ‘보존의학’

Tracking Disease

환경 보호는 좀더 급박한 문제들과 비교될 때 우선순위가 낮은 문제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경단체 와일드라이프 트러스트(WT)의 메리 펄 회장은 건강한 환경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환경은 인간 건강의 필요조건이다. 펄과 동료들은 ‘보존의학’(conservation medicine)의 발달을 주도했다. 보존의학이란 인간 건강, 야생생물, 생태계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과학이다.

WT의 최근 프로젝트 중에는 들새들끼리의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을 공동 감시하는 일도 포함된다. WT의 보존의학 컨소시엄은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지난 10월 사이언스지는 콘소시엄에 참여한 피터 다작과 조너선 엡스타인을 포함한 국제 과학자 팀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 중국의 관박쥐(horseshoe bat)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이었다. 펄 회장이 최근 뉴욕에서 앤 언더우드 뉴스위크 기자와 대담했다.

보존의학 구상은 어떻게 나왔나?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인간이 유발한 환경 퇴화로 인해 전례없는 수준의 질병들이 나타났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에이즈·에볼라·라임병·사스를 비롯한 30여 종의 새 질병이 등장했다. 그 대다수는 야생생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됐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그림의 전모를 파악한 사람은 아직 없다. 손상된 생태계는 독소, 서식지 퇴화, 생물종의 멸종, 기후 변화 등의 특징을 보이며 병원체들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이동하는 여건을 만든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일례로 페루 우림의 파괴는 말라리아 모기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다. 말라리아 모기는 산림 개간으로 생겨난 양지(陽地)의 연못에서 창궐한다. 미국 위스콘신대 조너선 패츠에 따르면 산림 개간지가 1% 늘어날 때마다 모기는 8% 증가한다.

미국에서는 라임병이 좋은 예다. 숲·초원에 서식하는 진드기 침 속의 라임병 박테리아는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그러나 최근에야 인간의 병원균으로 등장했다. 인간이 교외지역의 산림을 개간해 주거지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교외지역 철쭉속 식물 군락지에서 안전하게 살면서 급속도로 불어난 흰발 생쥐 역시 라임병을 옮긴다. 라임병은 생쥐에서 그들의 피를 빠는 진드기로 옮겨간다.

건강한 숲에는 줄다람쥐·족제비·여우 등 진드기가 달라붙을 동물들이 더 많다. 대체로 이런 동물들은 라임병의 숙주로선 부적당하다. 또 생쥐들보다 생존력이 뛰어나며 생쥐들을 잡아먹어 그 개체 수를 줄인다. 그 결과 애디론댁 산맥에 사는 진드기는 스카스데일 같은 대도시 교외지역의 진드기에 비해 라임병을 옮길 확률이 낮다.

지구온난화를 언급했는데, 그것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은?

특정 질병의 활동범위가 확장된다. 대양이 따뜻해지면서 바다거북의 이동 범위가 남·북으로 넓어졌다. 이에 따라 바다거북 속의 섬유유두종 바이러스(FPV)도 함께 이동하면서 새로운 생물종에 전염된다. FPV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체 유두종 바이러스와 관련 있다. 이제는 해우(海牛)에서도 발견된다.
또 다른 예는 모기를 매개로 하는 질병이다. 2주 전 발표된 유엔 보고서는 말라리아가 남부 유럽과 미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야생동물 무역이 질병 확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동물을 수입하면 그 동물 몸속의 기생충과 병원균도 함께 들어온다. 몇 주 전 영국 정부는 검역소에 보관 중인 수입 앵무새에서 AI 병원균인 치명적인 H5N1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그러나 야생생물 무역의 절반은 불법으로 이뤄지는 만큼 감시할 방법조차 없다.

살아있는 동물 시장도 문제다. 최근 우리는 사스가 중국의 관박쥐에서 유래했음을 알게 됐다. 관박쥐는 오지의 동굴에 서식하지만, 중국 상인들이 동물 시장으로 데려왔다. 관박쥐들은 가금류를 토막내는데 사용하는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한다(상인들은 장갑이나 마스크 등도 착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야생에서 박쥐를 접할 기회가 드문 대다수 인간에게 사스가 전염된 경로다. 일단 그것을 알게 되면 그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점은 희소식이다. 관박쥐는 너무 작기 때문에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도 아닌 만큼 인간이 관박쥐를 먹을 필요는 없다.

사스가 사향고양이가 아니라 박쥐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전에는 사향고양이에게서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다양한 박쥐를 조사했는데 그들에게서 상이한 사스 바이러스 변종들이 발견됐다. 그 바이러스가 다양한 변종으로 진화할 만큼 충분히 오랜 세월 박쥐 체내에 들어있었다는 의미다. 사향고양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또 시장판의 사향고양이는 사스 바이러스를 지녔지만, 농장의 사향고양이와 야생 사향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했다. 사향고양이는 사스 바이러스의 또 다른 희생물이었다. 시장의 관박쥐로부터 그 바이러스가 옮아갔다.

관박쥐를 의심한 계기는?

이 문제의 현장 과학자인 조너선 엡스타인은 니파 바이러스 때문에 박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니파 바이러스는 1999년 말레이시아에서 인간에게 발병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과일박쥐(fruit bat)에는 무해하지만, 인간에게는 고열·뇌염·발작·사망을 초래한다. 과거 숲이었던 지역의 돼지농장에서 발견된 이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돼지로, 다시 농민에게로 전염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돼지농장을 폐쇄하는 등 신속한 대응으로 그 질병의 확산을 막았다. 그 후 방글라데시에서 발병 사례가 있었다. 과일박쥐가 발견되는 곳에서는 바이러스 감시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박쥐를 박멸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것인가?

박쥐는 박멸하기에는 중요성이 너무 크다. 열대 나무의 40~50%는 박쥐 덕에 수분(受粉)한다. 박쥐는 또 농사에 해로운 해충을 잡아먹는다.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멕시코에서는 테킬라의 원료인 용설란의 수분도 박쥐 덕이다. 비난받을 대상은 박쥐가 아니다. 병원체는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자연계의 일부다. 이런 병원체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가는 여건이 인간의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이 AI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야생동물의 질병이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는 같다. AI의 경우는 서식지를 가금류와 공유하는 들새들을 통해서였다. 인간은 병원체의 원래 숙주인 동물들을 대신해 자신과 가축을 숙주로 만들어간다.

1918년 세계적으로 최대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 조류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AI 바이러스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근래에 알게 됐다. 최근의 AI를 걱정하는가?

AI는 새로운 병이 아니다. 우리 WT의 알론소 아기레 부회장은 10년 이상 AI를 연구 중이다. AI의 대다수 형태는 인간에 무해하며 조류에게도 그냥 귀찮은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그 바이러스들은 진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를 보유한 들새들은 대다수 박쥐와 달리 철새들이다. 그런 만큼 이런 새들에게서 치명적 AI가 발병하면 급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전염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효율적인 감시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면 발병 지역 가금류 농장의 철저한 감시가 가능해진다.
지난 10월 미 상원은 AI 대비책과 관련된 수정 법안을 통과시켰다. 철새 감시를 위한 예산이 처음으로 승인됐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이는 인간 질병의 확산에서 야생생물이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의회가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였다.

이런 전염 방식이 반대 방향으로, 즉 가축에서 야생동물로 진행되기도 하는가?

디스템퍼(개, 특히 강아지의 급성 전염병)와 클라미디아(성병의 일종)처럼 육상 동물만 감염되던 질병이 해양 포유류에도 전염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해변에서 질병 전염이 많이 일어난다. 애완견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면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으면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간이 새로운 질병의 확산 여건을 만든다고 했는데, 그것을 억제할 방법도 있는가?

물론이다. 보건 당국에서 보존의학 전문가들이 근무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질병이 생물종 사이의 벽을 뛰어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문제가 발생할 만한 취약 지점들을 찾아낼 능력이 있다.

장병걸 cbg5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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