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사랑일까 아닐까
이것은 사랑일까 아닐까
Falling in Almost-Love
클레어 데인스가 드디어 영화 ‘숍걸’에서 TV 시리즈 ‘내 인생이라는 것’(My So-Called Life)에서 보여줬던 가능성을 완성할 만한 배역을 맡았다. 데인스는 버몬트 출신으로 베버리힐스의 색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에서 장갑을 파는, 외롭지만 누구보다 꿈이 큰 예술가 지망생 미라벨 버터스워스로 분한다.
데인스가 연기한 미라벨은 가슴 아픈 상처에 더 없이 우울하지만 찬연히 빛난다. 스티브 마틴의 소설을 인상적으로 각색한 이 영화의 장면들 또한 대부분 그렇다. 마틴이 쓰고 애넌드 터커(‘힐러리 앤 재키’)가 감독한 ‘숍걸’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유려한 은유를 통해 일종의 사랑 얘기를 전해준다.
미라벨의 삶에 두 남자가 끼어들지만 둘 다 그에 꼭 맞는 남성상은 아니다. 빨래방 한 곳에서 꾀죄죄하고 피곤에 찌든 서체 디자이너 제레미(제이슨 슈워츠먼 분)를 만나지만 제레미는 미라벨과 데이트하기 위해 돈을 꿔야 하는 형편이다. 또 백화점 판매대에서 닷컴기업 거물이자 시애틀과 LA 등지에 저택을 소유한, 그러나 나이는 두 배인 레이 포터(스티브 마틴 분)를 만난다.
레이가 미라벨에게 관심을 보이자 착하지만 아직 어린 제레미는 그냥 뒤로 물러서고 만다. 하지만 레이는 미라벨한테 묶이고 싶지 않다고 확실히 못 박으며 심각한 것은 무조건 싫다고 말한다. 미라벨은 일단 그 말을 접어두고 계속 만나기로 한다. 가난하고 마음도 여린 미라벨은 오로지 사랑과 성실한 관계를 원할 뿐이다.
레이는 매너도 좋고 친절하지만 감성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인색하기 그지없으며 자기 자신을 편안히 풀어헤치지도 못한다. 마틴은 레이를, 무표정하게 내면을 감추며 세련됐으나 너무나 조심성이 많은 인물로 그려낸다. 레이와 미라벨이 헤어지는 모습이 너무도 슬픈 까닭은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여느 영화 같으면 레이의 캐릭터는 비열하게 그려지기 십상이지만 ‘숍걸’은 그 이상의 뉘앙스를 풍긴다. 레이는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지만 어딘가 좀 모자란 인간 같다. 지리멸렬한 연애보다는 편안한 고독이 좋단다. 레이는 그렇게 자포자기식의 자기 연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희극적 재미를 더하는 인물은 의외로 마틴이 아니라 슈워츠먼이다. 그가 연기한 의욕 상실의 사회 부적응자 제레미만 가지고도 좀 더 큰 스케일의 완전히 다른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제레미는 한 록밴드의 공연 투어에 동행하며 큰 자신감을 얻는다).
사실 제레미라는 인물의 비중이 원작보다 훨씬 커졌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좀 진부해지고 사랑의 삼각관계는 그 쓸쓸함이 훨씬 덜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다양한 양식의 충돌을 의도한다. ‘숍걸’의 등장인물은 모두 자기만의 궤도를 돌며 각자의 원칙대로 행동한다.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LA라는 도시에서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무엇과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터커는 자그마한 이야기 속에 매우 풍성하지만 구슬픈 서정성을 담아냈다. ‘숍걸’에 결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미라벨이 버몬트의 고향 집을 찾는 장면은 분명히 많이 편집됐지 싶다). 하지만 마음을 헤집는 애처로운 감성적 섬세함이 있다. 이 영화는 마치, 화음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하는 세 악기 편성의 트리오 같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클레어 데인스가 드디어 영화 ‘숍걸’에서 TV 시리즈 ‘내 인생이라는 것’(My So-Called Life)에서 보여줬던 가능성을 완성할 만한 배역을 맡았다. 데인스는 버몬트 출신으로 베버리힐스의 색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에서 장갑을 파는, 외롭지만 누구보다 꿈이 큰 예술가 지망생 미라벨 버터스워스로 분한다.
데인스가 연기한 미라벨은 가슴 아픈 상처에 더 없이 우울하지만 찬연히 빛난다. 스티브 마틴의 소설을 인상적으로 각색한 이 영화의 장면들 또한 대부분 그렇다. 마틴이 쓰고 애넌드 터커(‘힐러리 앤 재키’)가 감독한 ‘숍걸’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유려한 은유를 통해 일종의 사랑 얘기를 전해준다.
미라벨의 삶에 두 남자가 끼어들지만 둘 다 그에 꼭 맞는 남성상은 아니다. 빨래방 한 곳에서 꾀죄죄하고 피곤에 찌든 서체 디자이너 제레미(제이슨 슈워츠먼 분)를 만나지만 제레미는 미라벨과 데이트하기 위해 돈을 꿔야 하는 형편이다. 또 백화점 판매대에서 닷컴기업 거물이자 시애틀과 LA 등지에 저택을 소유한, 그러나 나이는 두 배인 레이 포터(스티브 마틴 분)를 만난다.
레이가 미라벨에게 관심을 보이자 착하지만 아직 어린 제레미는 그냥 뒤로 물러서고 만다. 하지만 레이는 미라벨한테 묶이고 싶지 않다고 확실히 못 박으며 심각한 것은 무조건 싫다고 말한다. 미라벨은 일단 그 말을 접어두고 계속 만나기로 한다. 가난하고 마음도 여린 미라벨은 오로지 사랑과 성실한 관계를 원할 뿐이다.
레이는 매너도 좋고 친절하지만 감성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인색하기 그지없으며 자기 자신을 편안히 풀어헤치지도 못한다. 마틴은 레이를, 무표정하게 내면을 감추며 세련됐으나 너무나 조심성이 많은 인물로 그려낸다. 레이와 미라벨이 헤어지는 모습이 너무도 슬픈 까닭은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여느 영화 같으면 레이의 캐릭터는 비열하게 그려지기 십상이지만 ‘숍걸’은 그 이상의 뉘앙스를 풍긴다. 레이는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지만 어딘가 좀 모자란 인간 같다. 지리멸렬한 연애보다는 편안한 고독이 좋단다. 레이는 그렇게 자포자기식의 자기 연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희극적 재미를 더하는 인물은 의외로 마틴이 아니라 슈워츠먼이다. 그가 연기한 의욕 상실의 사회 부적응자 제레미만 가지고도 좀 더 큰 스케일의 완전히 다른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제레미는 한 록밴드의 공연 투어에 동행하며 큰 자신감을 얻는다).
사실 제레미라는 인물의 비중이 원작보다 훨씬 커졌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좀 진부해지고 사랑의 삼각관계는 그 쓸쓸함이 훨씬 덜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다양한 양식의 충돌을 의도한다. ‘숍걸’의 등장인물은 모두 자기만의 궤도를 돌며 각자의 원칙대로 행동한다.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LA라는 도시에서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무엇과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터커는 자그마한 이야기 속에 매우 풍성하지만 구슬픈 서정성을 담아냈다. ‘숍걸’에 결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미라벨이 버몬트의 고향 집을 찾는 장면은 분명히 많이 편집됐지 싶다). 하지만 마음을 헤집는 애처로운 감성적 섬세함이 있다. 이 영화는 마치, 화음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하는 세 악기 편성의 트리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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