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은 불치병 아니다
정신분열증은 불치병 아니다
Talking to the Demons 마이크 해리스(가명·35)는 잉글랜드 케임브리지를 떠나 스코틀랜드의 대학에 갔다. 갈 때만 해도 독립생활을 시작하는 데 따르는 열의에 차 있었다. 그러나 파티와 캠퍼스에 난무하는 마약을 견디지 못했다. 1년 뒤 해리스는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다. 몇 년 후 다시 대학 생활을 시도했지만 또다시 캠퍼스를 떠나야 했다. 해리스는 환청과 “머릿속에서 찍찍거리는 소리”에 시달려, 오랜 기간 잠을 못 자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느 순간 먹지 않고, 씻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우 비현실적인 믿음을 가졌었다.” 해리스는 몇 번을 입원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집중적인 집단·개인·가족 병행 정신요법과 사회성 훈련 덕분에 마침내 정신분열증의 문턱에서 회복했다. 케임브리지의 ‘젊은이들의 서비스’라는 정신과 전문병원에서는 환자들이 함께 시장을 보고, 요리하며, 식사를 한다. 그리고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돕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분열증은 유전자의 불운한 조합으로 발생하는 평생 불치병으로 간주됐다. 환자들은 평생 약물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 과학자들은 정신분열증이 환경적 요인에 크게 영향받는다는 증거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들의 연구는 치료 방법과 관련해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제 의사들은 정신요법과 사회복지 서비스가 대부분의 정신분열증 치료에 더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증세가 호전되려면 정신요법이 필수”라고 뉴캐슬대 정신과의사 더글러스 터킹턴이 말했다. “약물치료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2005년 11월 스칸디나비아 정신과의사 협회보에 발표된 논문(지금까지의 연구들 중 가장 완벽하게 정신분열증을 다뤘다)은 정신적 상처나 어린 시절의 학대가 정신분열증 발생의 한 가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정신분열증은 여러 환경적·유전적 요인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전자가 직접 정신분열증을 일으키지는 않으며, 다만 환경적 위험에 취약한 사람들을 확인해줄 뿐”이라고 아일랜드 왕립 외과대 정신의학 연구자 메리 클라크는 말했다. 오클랜드대 정신분석 의사 존 리드가 46명의 정신분열증 환자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자 환자의 59%, 여자 환자의 69%가 어린 시절 육체적 혹은 성적 학대를 경험했다. 물리적 방치 혹은 육체적·감정적 학대까지 포함한 별도의 연구에서는 이 수치가 남자의 경우 85%, 여자의 경우 100%로 증가했다.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곳곳에는 진정한 사회적 원인을 도외시하는 진단을 받은 환자 수백만 명이 있다. 그 결과 그들은 보다 더 효과적이고 인간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 이 조사가 점점 더 신뢰를 얻으면서 이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견해가 달라지는 중이다. 지난 8월 미국 정신과 협회 연례회의에서 스티븐 S 샤프스타인 회장은 연간 항정신병 치료제 매출액이 현재 65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정신병이 과잉치료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전문가로서 우리 의사들은 약물·정신·사회적 치료를 무시하고 오로지 약물치료에만 매달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알약 하나, (의사를 잠깐 만나) 약 처방 받는 게 치료의 전부가 되고 있다.” 앞서의 연구에 따르면 환자들이 정신분열증에 조기 대응만 잘한다면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약물을 평생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 종종 터무니없는 생각·망상·환각 등의 증상을 보이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신경쇠약을 치료하면 정신분열증을 완화할 수 있다. 해리스를 케임브리지 의사들에게 처음 소개해준 정신과의사 샨카르나라얀 스리나트 박사는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정신분열증을 이겨낼 수 있다”면서 “만약 사람들이 그 단계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고통의 원인을 이해한다. 그러나 도움과 치료를 제대로 못 받으면 평생 만성적인 정신과 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도 정신분열증에 유전자가 기여하는 바 크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과학자들은 수백 개의 유전자 사슬들이 점증적으로 결합해 정신분열증에 걸리기 쉬운 상태를 야기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런던 타비스토크 앤드 포트먼 전문병원의 데이비드 테일러 박사는 “환경적 요인 없이는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해리스는 그전에도 걸핏하면 우울증이 잘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치료결과에 따르면 환경적 요인들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하다. 정신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지구의 야수들: 동물·인간·질병’(Beasts of the Earth: Animals, Humans, Disease)의 저자인 정신과의사 E 풀러 토레이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정신분열증 연구자들은) 일단 유전체 지도만 나오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정신분열증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기껏해야 두세 개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 말은 잘못됐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사고의 전환으로 공중보건 분야의 우선 순위를 두고 직접적인 갈등이 빚어진다. 영국 의학협회는 케임브리지의 ‘젊은이들의 서비스’(2006년 1월 문 닫을 예정)뿐만 아니라 옥스퍼드셔와 컴브리아의 전문병원을 포함해 영국 정신의료팀의 3분의 1이 해체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영국 보건부는 정신과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들을 포함한 관련 팀이 공백을 메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신과의사 협회보에 실린, 세계 각국의 정신분열증 치료 지침에 대한 최신 조사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약물을 추천하지만 정신·사회적 개입에 대한 조언은 빈약하다. 현재 애인과 직업(교사)이 생긴 해리스는 “이런 치료법이 너무나 중요하다. 나는 인생을 살아갈 방법들을 전수받았다”고 말했다. 정신분열증은 대개 젊은 사람이 독립생활을 할 무렵 발병한다. 정신 치료법과 사회적 치료법들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되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기는 데 도움을 받을 듯하다. 정택진 ct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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