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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회의’ 현장을 가다

‘생존회의’ 현장을 가다



>> 제일기획 대한민국광고대상 수상팀

3주간 아이디어 뽑기 전쟁 얼마나 ‘열심히 했나’보다 ‘얼마나 잘했나’싸움 가끔 광고 의뢰가 좀 천천히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제일기획에서 광고를 기획하고 담당하는 배용묵 CD(Creative Director)는 2005년 대한민국광고대상을 받은 ‘인생은 길기에’라는 광고를 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 ‘광고 의뢰가 들어왔다’는 말은 전쟁의 나팔소리와 같은 의미다. "제일기획에는 16명의 내로라하는 CD가 있다. 방송국의 PD가 드라마나 공연 프로를 맡아 이를 기획해 제작한다면 CD는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한다. 2005년 3월 삼성생명에서 광고 의뢰가 들어오자 5명의 CD가 광고 제작을 지원했다. 이 경쟁의 승자는 일감이 각자에게 주어진 3주 뒤 광고주가 가장 만족해 하는 광고 콘티를 제출하는 CD다. 배 CD는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 세 명으로 구성된 팀을 결성했다. 백지 위에 그릴 그림에 대한 구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대한민국광고대상팀의 3원칙 1. 평소에 아이디어를 쌓아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2.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 3. 방향이 중요하다
“첫 회의에서 생명(보험회사) 광고는 어떤 형식이고 광고주는 무엇을 원하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시간은 3주. 그중 단 1초도 낭비할 수 없습니다.” 배 CD는 팀원들과 함께 경쟁사의 생명보험 광고를 모두 보기 시작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이를 표현하려 노력했는가를 따라 생각해 보며 감을 잡자는 것이다. 밤낮없이 광고를 보고 회의실에 다시 모여 느낀 점에 대해 토의했다. 회의는 대부분 사내 회의실에서 이루어진다. 회사에서 모이다 보니 경쟁 팀들과도 자주 마주친다. 평소에 웃고 마주치던 이들과도 이때는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CD들의 사무실이 있는 제일기획 빌딩 6층은 조용하다. 모두 면도날 위에 서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광고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누구를 섭외해 어떤 멘트를 날리는가는 한참 뒤에 생각할 일입니다. 좋은 방향을 잡으면 나머지는 쉽게 따라옵니다.” 다소 막막하게 시작된 회의가 2주째 접어들자 조금씩 윤곽이 나오기 시작했다. 배 CD는 고령화를 주제로 선정했다. “사람들은 인생이 짧다고 하지만 평균 수평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은퇴 뒤의 인생이 길어지고 있고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신경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짧아 보험을 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길어졌기에 보험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향 잡기에 너무 시간을 쓰자 팀원들이 불안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서두르다 보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배 CD는 “모든 일엔 순서가 있습니다. 이를 무시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방향을 잡자 작업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피로로 녹초가 되었지만 일의 성과가 보이자 힘을 내기 시작했다. 온 가족의 인생이 길어졌으니 가족을 다 등장시켜 시리즈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어린아이, 여중생, 젊은 부부, 그리고 노인 부부 모두 좋은 소재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이의 인생도 길고 노인의 남은 인생도 길다는 메시지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끝없는 브레인스토밍 중 남자의 무식함이 화제가 됐다. 그리고 핵심 광고로 여중생의 인생을 키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버지는 딸에 대해 무지하다. 이를 모르고 지나가는 아버지와 이에 반응하는 딸의 모습을 그리자는 것이다. 여러 의견이 오가던 중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등을 두드려 주자 숙녀가 된 딸이 민망해 하는 줄거리가 나왔다. 광고는 핵심 포인트가 필요하다. 배 CD팀은 이를 브래지어 끈으로 잡아냈다.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도 클 것이다.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딸이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라고 이해할 것이다. 동시에 장면은 시청자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운명의 3주가 지났고 광고주는 배 CD팀의 아이디어를 선택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프로는 얼마나 잘했느냐로 승부를 겨뤄야 합니다.” 배 CD는 광고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최소 3할의 타율은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10개 제작해 최소 3개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 CD는 자신이 기획한 광고가 하나 나갈 때마다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선 느낌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작품이 세밀하게 검증될 뿐 아니라 광고계에서의 자신의 레벨을 결정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조용탁 기자·ytcho@joongang.co.kr

>>> 오리온제과 신상품 기획회의

“똥이 두 배 나오는 과자 어때요” 웃고, 전화받고, 잡담하는 무제한 자유회의


‘대박’과자를 만드는 3원칙 1. 웃음으로 시작하고, 잡담을 즐겨라 2. 획일성은 없애고 집중력을 길러라 3. 의견은 직급과 무관하다
12월 9일 오전 10시 원효로 오리온 제과 3층 회의실. 분기마다 한 번 있는 마케팅&연구개발(MRD)회의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내년도 신제품 공유회의. 이 회의에서는 내년에 출시될 신제품들의 컨셉트와 출시 시기, 경쟁사 제품의 강·약점, 자사 제품의 강·약점 등이 전반적으로 논의된다. 참가자는 10명. 마케팅에서 3명, 연구개발에서 5명, 생산에서 2명이 참가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조양희 연구개발팀장은 “여기에서 나오는 말은 다 우리 회사 기밀인데, 기사로 쓰면 안 돼요”라며 민감해 했다. “기밀회의라….” 하지만 회의에 임하는 사람들이나 회의실 분위기는 기밀과 거리가 멀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앉은 모습이 간담회나 동아리 모임과 비슷했다. 엄숙함이나 숙연함은 없었다. 일단 회의는 웃음으로 시작했다. “우리 제품이 타사 제품보다 파이버(섬유질)가 두 배로 많은데 이걸 좀 부각할 방법이 없어요? 이건 원가도 비싼 건데….”(팀장) “제품 앞에다 ‘똥이 두 배로 나오는 과자’ 이렇게 쓰는 건 어떻습니까?” “푸하하.” 설마 과자 봉지에 ‘똥이 두 배로 나온다’고 쓰겠는가? 하지만 분기에 한 번씩 하는 자칭 ‘기밀’회의에서 이런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나왔다. 웃고만 넘어가는 그런 회의는 아니었다. 이미 수없이 이런 회의를 해온 팀답게. 연이어 비슷한 기능성 제품이 실패했던 사례 분석도 따랐다. 경쟁회사의 ‘니코틴을 없애주는 기능성 껌’이 도마에 올랐다. “만약 그 껌을 씹고 니코틴이 없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면 성공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히트하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그 껌을 씹으면 소변이 까맣게 나온다든지….” 마케팅 쪽의 분석이었다. “우리 제품도 실제 먹고 뭔가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대히트인데….” 연구소 쪽에서 말을 받았다. “어떻게 방법 없어요? 연구소 쪽에서 실험 데이터를 만들든지, 아니면 원가가 높은 기능성 재료 사용을 줄이는 대신 맛이나 마케팅으로 몰고 가든지….” 결국 결론은 안 났지만 ‘소비자가 눈으로 몸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과자를 만들면 된다’는 방향은 잡았다. 이런 결론도 성과라면 성과다. 이런 식의 사소한 아이디어가 쌓이다 보면 ‘대박’ 상품이 나온다. 과자는 말 그대로 소비자 제품이면서 패션 상품이기도 하다. 유행이나 인기가 금방 드러난다. 당연히 경쟁도 치열하고 피드백도 빠르다. 회의가 첨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신제품 론칭이나 개발은 아이디어 싸움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회사가 일어서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한 제품에 대해 매운맛을 첨가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매운맛을 소비자에게 시험해 보니 기존의 고소한 맛보다 반응이 좋았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전반적으로 매운맛을 첨가해 세컨드 제품을 내놓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곧 반론이 나왔다. “플레이버(flavour: 향) 경쟁을 붙이면 항상 강한 맛 쪽이 이기거든요. 그걸 갖고 제품화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다소 젊어 보이는 여자 직원의 반론이었다.
매운맛으로 몰리던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이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고 그러자 처음 매운맛 첨가 쪽이 다시 누그러졌다. 소비자 정보의 오류를 막은 셈이다. 직급에 관계없이 의견이 등가(等價)로 취급되는 것은 회의에서 중요한 포인트다. 직급별로 의견에 경중이 매겨진다면 사원이나 대리가 아무리 좋은 의견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젊은 직원에 의해 지적된 의견이 대세를 뒤집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회의의 ‘영양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회의 내내 관찰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발언 기회와 빈도였다. 마케팅팀장과 연구실·생산 쪽 직원들은 다소 고참급이었고, 마케팅은 대부분은 젊고, 여성 비율이 높았다. 대부분 이런 인적 구성이면 간부급 남자 사원들이 회의를 주도하고 결론을 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발언 빈도나 의사결정에서 남녀노소 차이가 크게 없었다. 많은 회의가 ‘모여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모여 전달사항을 듣는 것’인 경우가 많다. 주도권은 팀장·부서장·그룹장들이 쥐게 되고, 아래 직원들은 리더의 의중에 맞는 얘기, 의중에 맞추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아이디어는 결국 팀장의 머릿속에 있는 의견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회의를 해도 시원한 답이 안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리온제과의 MRD 회의는 그런 면에서 다소 희망적이었다. 회의를 누가 주도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한 명이 회의 내용 전체를 발제하면서 끌고 가지만 그 사람이 주도해 의견을 묻거나 취합하는 형태는 아니다. 회의는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 정도로 중구난방이었다. 중간 중간 전화도 오고, 전화받으러 나가기도 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간간이 옆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어느 정도 산만함을 인정해 줌으로써 자발성과 참여도를 높이고 있었다. 회의 참가자 중 한 명은 “상무님이 주재하는 회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미리 내용을 준비해 가서 정해진 순서대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충분한 아이디어보다 다듬어진 얘기 위주로 하게 된다. 윗사람이 참석하면 전시효과는 커지고 내용은 좀 줄어든다는 얘기다. 특히 연구원이나 생산직의 경우 아무래도 ‘말발’이 달리게 마련인데 그런 사람들의 의견도 충분히 개진할 수 있고 경청해주는 문화가 회의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 KBS 개그콘서트 아이디어 회의

유머책 1000권 읽어야 개그맨 PD는 재능과 아이디어를 살리는 환경만 조성


‘개콘’에서 살아남기 위한 3계명 1. 법의 테두리 안이라면 무조건 웃겨라 2. 시간 남을수록 더 노력하라 놀면 순식간에 밀린다 3. 떠들수록 나오는 것이 많다
25평아파트에 50명의 사람이 들어가 5시간 정도 열심히 웃고 떠드는 것을 회의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활력이 넘치는 것은 그만큼 참석자들이 열의가 있다는 말이다.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제작팀은 일주일 내내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연습실에 함께 모여 웃고 떠든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이를 신성한 회의라 부른다. “40~50명이 함께 모여 브레인스토밍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 생활은 자율적인 경쟁의 연속입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고참이라도 힘 좀 떨어진다 싶으면 밀립니다. 열심히 해서 계속 웃기든가 아니면 자리를 양보해야 하거든요.” 개콘 중견으로 자리 잡은 박준형씨는 고참은 이미 아이디어가 바닥나고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그맨 7년차인 김대의씨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가 가장 큰 도전이다. 김씨는 한때 1년간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편하게 이 생각 저 생각 할 수 있어 좋았다는 김씨는 한 반년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혼자서 생각하다 보니 자신이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웃기는 것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웃음은 사람들과 부딪혀 가며 배우는 것”이라는 김씨는 “‘젖은 낙엽’처럼 개콘에 달라붙어 끈질기게 살아남아 결국 장수하며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청년생활백수’라는 코너에 출연 중인 고혜성·강일구 콤비는 경력 1년이 안 된 개콘의 막내다. 이들은 역시 “세상에 웃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웃기는 것이 참 어려운것 같다”고 말한다. 고씨의 집에는 유머 관련 서적과 잡지가 1000권 넘게 있다. 강씨도 주위의 웃긴다 하는 친구들과 자주 만나 얘기를 듣고 있다. 또한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웃기는 일 없나 레이더를 세우고 다닌다. 이들은 그렇게 모은 아이디어를 다듬어 회의에 참석한다. 시끄럽게 떠들고 ‘이 아이템 정말 웃기지 않느냐’며 작가와 PD에게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다.
작가와 토의를 통해 다듬어진 아이디어는 PD에게 전달된다. 회의의 하이라이트가 PD와의 대화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 이상이 모여 방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는 PD에게 찾아가는 것이다. 개콘의 김석현 PD는 항상 신중하게 이들을 대한다. “밤잠 설쳐 가며 최선을 다한 이들을 보면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는 김 PD는 이따금 조용히 짧은 충고를 던진다. ‘좀 길다, 함께 어울리는 장면 너무 적다, 사이에 뭐 좀 넣자’ 등이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다시 해오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이 없다. ‘다시’라는 평을 받은 팀은 뒤로 나가 의논한다. 그리고 다시 시끄러워진다. 떠들수록 나오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회의 분위기는 극히 자유롭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다 보니 완전한 자유방임은 아니다. 연습하다 자장면을 시켜 먹거나 잠을 자는 사람까지 있지만 이들은 정해진 규칙 내에서 행동한다.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아이템을 가지고 와야 하고, 그 내용은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웃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콘 연습장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똥, 방귀, 비속어, 패륜 멘트, 야한 노출, 옥동자 키스 절대 금지’가 적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석현 PD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제가 시청자 대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보게 될 개그를 제일 먼저 보는 사람으로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비속어 등 금기 사항을 지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떤 멘트로 사람을 웃길지는 개그맨 개개인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제가 할 일은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 선택은 우리의 소비자가 합니다. 환한 웃음으로 우리 아이디어를 반겨주시면 한 주 장사 성공한 것 아니겠습니까.” 조용탁 기자·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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