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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튀는 인재를 살펴보니…] 사원은 대환영, 임원은 글쎄?

[기업들 튀는 인재를 살펴보니…] 사원은 대환영, 임원은 글쎄?

올해로 직장생활 4년차인 ㈜두산의 이기웅 사원은 사내에서 ‘튀는 사원’으로 꼽힌다. 회사에서 사보 편집을 담당하는 이씨는 ‘끼웅웹진’이란 독특한 이름으로 월 2∼3회씩 지인들에게 e-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의 얼굴을 산타클로스로 패러디해 500여 명의 직원들에게 온라인 카드를 보내기도 했다. “일단 스스로 망가지는 거지요. 그러나 500명 중 10%만 즐거워도 저는 행복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튀는 행동을 이해해주는 분들도 생겼고요. 처음에는 저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지만 e-메일을 받는 대상이 늘어나고 나름대로 유명세도 타면서 지금은 업무의 연장선으로 설문조사나 공지 등에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 이씨는 “스스로 망가뜨려 인맥을 쌓는다”고 말했다. 그는 두산그룹엔 자신처럼 ‘튀는 직원’들이 계열사별로 한두 명씩은 있다고 소개했다. 임원 중에도 깜짝 이벤트를 만들어 직원들을 놀라게 하는 사례가 있다. ㈜두산 의류BG의 정세혁 대표는 지난해 말 송년회를 패션쇼로 기획하면서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다른 기업들에 ‘아주 튀는’ 사례가 될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에선 옷차림이든, 말투든, 업무 스타일이든 튀는 사람은 견제를 받게 돼 있다. 직원 시절은 그런대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임원으로 출세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A대기업의 모 부사장은 헤어스타일에서 ‘아주 튀는’ 임원이었다. 20년 넘게 꽁지머리 스타일을 고집했던 그는 그러나 A기업으로 옮겨서는 슬그머니 스스로 ‘단발령’을 내렸다. 그는 “우리 회사엔 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서 ‘보이지 않는 규제’에 굴복했다. 지난 2004년 B그룹에 영입된 모 사장은 튀는 행동으로 화제가 됐다가 결국 1년여 만에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전 직장에서 1년에 한 번씩은 사표를 낼 만큼 자유롭고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기업문화의 B그룹과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튀는 사람은 조직의 비타민” 튀는 인재는 아직까지 사원급에 머물고 있다. 중역이 되면 으레 검은 톤의 양복과 흰 드레스 셔츠에다 그에 걸맞은 말투를 선보인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 사람 너무 튀던데…”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그나마 대기업에서 ‘튀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위직까지 승진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지금도 LG그룹 계열사 고위 임원들은 김 부회장을 가리켜 “정말 특이한 분”이라고 말할 정도다. 김 부회장은 전형적인 현장맨 출신이다. 입사 후 34년 동안 부산·창원 등 지방 생산 현장을 돌다가 LG전자 CEO가 돼서야 본사로 들어온 인물이다. 김 부회장은 직원 시절부터 남들보다 독하게 일했다. ‘밀어붙이기’‘뿌리 뽑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떻게 보면 김 부회장은 ‘과거식 튀는 인재’의 전형이다. 요즘처럼 규율을 넘나들고, 권위에 도전하기보다 생각 외로 열심히 일해 튀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튀는 인재는 대기업 전문경영인의 경우 한두 명씩 눈에 띈다. 한 재벌 계열사 사장은 직원 시절 설날에 집에 가지 않고 회사에 온 눈을 쓸다가 회장에게 ‘발각’돼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것도 튀는 행동이라면 튀는 것이다. 한편으론 ‘과잉 충성’처럼 보이지만 당시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런 행동도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포스코나 대림산업·대상 등 업력이 긴 회사에서는 디자인·개발·광고 등 몇몇 부서를 빼고는 튀는 직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식품업체인 C사에서 23년째 근무하는 모 부장은 “경우에 따라서 다르지만 독선적으로 자기 주장을 펴는 사람이 일찍 승진하거나 후한 고과 점수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능력을 인정받아도 ‘다면평가’에서 낙제라는 것이다. D사의 인사담당 상무 역시 “조직의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이 임원으로 중용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D사의 한 중역은 흥미로운 해석을 내린다. “과·부장급에서 튀는 행동이 신선한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조직의 ‘비타민’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임원이 되면 달라요. 승진하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의 실수를 받아들여지는 범위가 줄어듭니다. 따라서 행동은 더욱 신중하고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승진하면서 나름대로 ‘허용 범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외환위기 이후 수 차례에 걸쳐 구조조정이라는 격랑이 몰아쳤지만 금융계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은행가에선 아직도 흰색 와이셔츠에 감색 정장을 입는 것이 기본 룰로 돼 있다.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증권가에서도 튀는 것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최근 회사의 엠블럼을 새로 정한 대우증권. 지난해 말 대우증권은 회사의 상징색으로 노란색을 결정하면서 손복조 사장이 직접 노란색 와이셔츠를 입고 이벤트를 주관하는 행사를 계획했다. 회사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끝내 손 사장은 노란색 셔츠를 입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괜찮지만 외부 손님이 불편해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물론 일반 은행 창구나 증권사 창구를 찾아도 대부분의 여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유도 ‘고객 먼저’라는 생각 때문이다. 회사 상품 설명이나 업무를 처리하기 전에 직원에게 눈길이 먼저 가는 것을 막기 위함일 수도 있다.

조직의 융화를 해친다? 이처럼 월급쟁이들은 승진할수록 튀는 행동을 자제하지만 최고위급 경영자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외부에서 들어온 전문가나 삼성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인재들을 건드리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다. 삼성전자가 해외의 우수 인재들을 유치해 와도 조직에서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아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는 보고서가 올라가고 난 뒤의 일이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오리온의 오너인 이화경 사장은 직원들에게 “제발 좀 튀어라”고 주문한다. 이 사장은 “내가 오리온그룹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제일 연장자인데 우리 회사에서 옷 입는 것도 내가 가장 튀는 편”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겠는가”라고 말할 정도다. 4~5년 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외부에서 여성 임원을 영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회사는 초일류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데 임원의 대부분이 40,50대였고, 대부분 비슷한 경력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혁신이 가능하겠느냐는 분석에서였다. 그러고 나서 영입된 인물이 윤송이 SK텔레콤 상무다.
오너들이 튀는 인재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광순 한국왓슨와이어트 사장은 “단절적인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튀는 인재를 기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너들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의 발전이 과거 방식 그대도 이어진다면 튀는 인재를 쓸 필요가 없지만 과거와 미래가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튀는 인재가 ‘솔루션’이라는 것이다. 김 사장은 “기존 인재들은 회사의 효율성(efficiency)을 위해 필요하지만 튀는 인재들은 회사의 효과성(effectiveness)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일상적인 업무는 ‘모범생들’이 더 잘하지만 회사의 장래를 결정할 중요한 일들은 ‘튀는 인재’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유순신 유앤파트너스 대표도 “요즘 기업은 수익모델이 옛날처럼 일정하지 않아 튀는 신입사원들이 필요하다. 그들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라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한국의 대기업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학교 출신에, 비슷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로 모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색다른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튀는 인재를 많이 고용하는 것이 회사의 창의성이나 활력을 위해서도 좋다는 것이 유 대표의 생각이다. 보통 튀는 인재가 조직의 융화를 해친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인재들의 문제라기보다 경직된 조직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 주로 인사와 조직문화를 연구해온 조범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튀는 인재가 조직을 해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과 측면에서 충분한 평가나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튀는 인재는 스타 인재일 수 있는데 이런 인재를 조직에서 독려하고 껴안아야 조직의 발전이 가능하다”면서 “한편으로는 튀는 인재들도 자신의 성과를 너무 자랑하거나 조직 내에서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재현 휴먼컨설팅 대표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튀는 인재라고 하더라도 조직의 핵심가치(core value)를 훼손시키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어떤 조직이든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있는데 그중 그 조직의 정체성과 관련된 핵심가치는 튀는 인재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체화시켜야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가치를 훼손하는 튀는 인재는 롱런할 수 없고, CEO도 그런 사람은 일시적인 국면 타개용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최근 기업체에서 튀는 인재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졌다”면서 “이는 그동안 성과주의 문화가 정착돼 튀는 인재가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과주의 문화가 강화될수록 튀는 인재들의 조직 적응이 쉬워지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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