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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여행과 사람] - 코스타리카

[조주청의 여행과 사람] - 코스타리카

30년 전 하노이 사람들은 당시 사이공으로 불린 월남의 수도 호치민을 악의 소굴로 여겼다. 월남전이 끝난 후 이들은 호치민에서 자본주의의 독버섯을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느새 하노이 사람들도 퇴폐의 달콤함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베트남에서 북쪽의 하노이와 남쪽의 호치민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하노이 사람은 얼굴색도 희고 좀 근엄한 편이지만, 호치민 사람은 가무잡잡한 얼굴이 가벼워 보인다. 이 나라의 남북은 우리나라 동서보다 훨씬 깊은 지역 감정을 드러낸다. 북쪽에서는 남쪽 사람을 미국에 빌붙어 웃음을 팔며 코카콜라를 얻어 마시던 쓸개 빠진 동포라고 업신여기고, 남쪽에선 북쪽 사람을 향해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아직도 사회주의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촌놈이라 깔본다. 실제로 월남전이 끝난 후 남쪽의 말단 행정조직인 동사무소 직원까지 모두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차지한 채 남쪽 사람을 개조시키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작업은 자본주의의 독버섯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미군이 전쟁의 허망함을 채우려고 욕망을 배설한 나이트클럽 ·바 등은 단숨에 박살이 나고, 훌렁훌렁 아오자이를 벗었던 ‘밤꽃’들은 자취를 감췄다. 썩은 도시 사이공은 이름도 호치민으로 바뀌었다. 서슬 퍼런 북쪽 사람은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어 썩은(?) 남쪽 사람을 잡아 가둬 사회주의 사상으로 재교육하고, 청렴결백으로 부패를 일소시켜 나갔다. 30년이 지난 지금, 북쪽 사람이 그토록 경멸하던 악의 소굴 사이공은 어떻게 변했을까. 한마디로 퇴폐를 일소하겠다고 내려온 북쪽 사람이 그 달콤한 퇴폐의 맛에 취해 버렸다. 월남군에 몸담고 있다가 월남전이 끝난 후 곤욕을 치렀던 초로의 여관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이 처음엔 솔선수범하더라고요. 그러나, 음습한 뒷골목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더니 이젠 남쪽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가 됐습니다.” 자취를 감췄던 화류계 콩가이(베트남의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은어)들이 하나 둘 마담이 돼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치민시에는 다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콩가이들의 자지러진 교성이 온 도시를 덮는다. 호치민시를 가로지르는 누런 황톳물 사이공 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흘러 남지나 해로 빠져나간다. 사이공 강에 어둠살이 내리면 강 건너 지저분한 판잣집들은 그 속으로 묻혀 버리고, 은하수 같은 불빛이 강물에 닿아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댄다. 유람선 미칸호는 오색등을 줄줄이 밝히고 풍악을 울리며 손님을 맞는다. 1층의 열두어 개 탁자에 손님들이 앉았고, 남녀 가수들이 4인조 밴드에 맞춰 베트남 노래를 뽑아 댄다. 창 밖의 하늘에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르면 배는 닻을 올리고 강을 따라 미끄러진다. 바닷가재 ·왕새우 요리에 술을 홀짝거리며 선창 밖 야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귀에 익은 반주 곡이 흐른다 했더니 아슬아슬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 가수가 발음도 정확하게 ‘소양강 처녀’를 뽑는다. 김수희의 ‘애모’가 터져 나오고, 마이크를 이어받은 남자 가수가 이번에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구성지게 뽑아낸다. 강 건너 농구 코트만 한 빌보드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거의 싹쓸이했다. 밤의 사이공 강에는 유람선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사이공 강은 수심이 깊어 수만t급 화물선이 호치민시 사타구니까지 접안한다. 하고많은 나날을 하늘과 바다, 갈매기만 바라보며 파도에 실려 온 뱃사람들은 배가 뭍에 정박하면 펄떡 뛰어내려 무쇠 팔뚝을 걷어붙이고 술집으로 달려간다. 술을 한잔 걸치고 나면 여자가 그리워진다. 하지만 호치민시는 옛날 사이공이 아니다. 술에 취한 뱃사람이 달러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여자를 끼고 호텔로 직행할 수는 없다. 풀이 죽어 배로 돌아온 선원들은 눈에 번쩍 띄는 모습을 바로 배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수만t급 화물선 옆구리에 노를 젓는 조각배 한 척이 붙는다. 고래 옆구리에 새우 한 마리가 붙은 격이다. 조각배 위에는 아리따운 처녀들이 두세 명씩 타고 화물선 난간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흥정을 벌인다. 까마득하게 높은 화물선 난간에서는 선원들이 그녀들을 내려다보며 새벽 어시장 대리인들이 입하된 고기 응찰을 하듯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하며 가격을 제시한다. 어떤 선원은 선장에게 빌렸는지 망원경을 들고 조각배 위 베트남 처녀들의 면면을 살핀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녀들의 손가락이 오므라진다. 처음에는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서 팔춤을 추다가 두 손가락을 오므려 세 손가락이 남더니 마지막에는 두 손가락만 펴서 흥정이 이뤄진다. 20달러로 결정된 아가씨는 배 옆에 붙어 있는 사다리를 타고 갑판으로 기어올라간다. 그리고 선원의 손에 이끌려 선실로 들어간다. 배 위에서 배를 타는 역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작은 배의 야화(夜花)들은 화물선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그들의 배에 손님을 태우기도 한다. ‘배 위에서 배를 타는’ 묘한 분위기를 찾아 허우대가 멀쩡한 신사도 찾아오고, 베트남의 진수(?)를 맛보려는 외국인도 찾아와 짭짤한 수입을 올릴 때도 있다. 그러나 가난한 동족 젊은 고객에겐 4~5달러로 차등가격제를 탄력성 있게 적용한다. 베트남에는 지금 가라오케 열풍이 분다. 시골길에도, 창도 없는 초가지붕 구멍가게 뒤에도, 도시의 엉성한 판잣집에도 가라오케 간판이 붙어 있다. 허름한 나무 탁자, 등받이도 없는 나무 의자 몇 개에 맥주가 든 냉장고, 그리고 천장에는 오색 고추등이 몇 개 달렸고 마이크와 작은 스피커 두 개, 이것이 가라오케의 보편적인 시설이다. 그러나 호치민시 대로변에 자리 잡은 휘황찬란한 가라오케는 규모와 격을 달리한다. 대리석 바닥에 멀티비전이 한 벽을 채운 으리으리한 홀 말고도 우리나라 강남의 룸살롱 같은 방이 끝없이 도열해 있다. 이 가라오케가 우리나라의 노래방과 다른 점은 아가씨가 따라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라오케의 아가씨를 보면 월남전 때 외신 사진을 타고 들어왔던, 전쟁의 포연 속에 아기를 안은 채 공포에 떠는 베트남 여인의 인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팬티가 살짝 보이도록 찢어진 시스루 룩(See Through Look) 아오자이를 입은 아가씨들은 참으로 고혹적이다. 주위의 호텔이 가라오케 아가씨들을 방으로 데려가는 것을 막으면 마담의 비밀 아지트가 새빨간 홍등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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