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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추’ 박사 험난한 연구개발 22년

‘쌈추’ 박사 험난한 연구개발 22년

"쌈추를 연구하는데 15년, 품종보호 대상작물을 등록하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이제 상표권 침해 소송을 하는데 2년째입니다. 대충 이런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게 한국의 과학자가 걸어야 할 험난한 길입니다.” 한국농업전문학교 교수인 이관호(50) 박사. 그는 그간 겪은 험난한 여정을 「이코노미스트」에 토로했다. 이 박사는 좋은 품종을 만들거나 개량하는 육종(育種) 연구 학자다. 일명 ‘쌈추’ 박사로 통한다. 1998년 배추와 양배추를 종간교잡(種間交雜)해 신종 쌈채소인 이른바 쌈추를 개발했다. 신종 채소인 쌈추는 작물학적인 면에서 볼 때 기존의 배추과 작물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종(種)이다. 40개의 체세포 염색체 수(배추 20개, 양배추 18개, 갓 36개, 순무 20개)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 개발되는 유전자 변형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 박사는 지구상에 없는 새로운 종을 하나 더 창조한 셈이다. 그의 쌈추 개발을 일부 과학자들은 우장춘 박사의 ‘씨없는 수박’ 개발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본 유학시절 본격 연구 시작 이 박사가 쌈추 연구를 시작한 건 84년께다. 98년부터 농가를 통해 시험 재배를 시작했으니 연구에만 꼬박 15년이 걸렸다. 이런 노력과 성과가 무색하게 그는 8년째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쌈추의 품종보호 대상작물 등록을 위해 농림부와 싸운 게 6년, 2년째 아시아종묘(주)를 상대로 ‘쌈추’ 상표권 침해 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84년. 이 박사는 대학 때부터 관심이 있던 배추와 양배추 간 종간교잡 연구를 시작했다. 경기도 가평중학교 교사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쌈추 연구를 하기 시작한 건 86년부터다. 일본 문부성 초청으로 쓰쿠바대 연구원으로 간 게 그에게는 연구의 깊이를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문부성 초청 장학생이 되기 위해 일부러 학교 숙직을 자청했습니다. 숙직방에서 밤새워 공부했죠. 당시 문부성 장학금이 미국 정부 장학금보다 더 많았어요. 체류비에다 학비가 전액 지원됐으니 저로선 다시 없을 기회였죠.” 이 박사는 86년 쓰쿠바 대학원에 당당히 합격한다. 쓰쿠바 종합대학은 도쿄 교육대가 전신으로 내로라하는 일본 두뇌가 몰리는 유명 대학이다. “일본은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집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우스를 들락거리며 수천 개체의 식물체 염색체를 관찰하고 관리했죠. 해가 없으면 수분과 수정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심초사했습니다. 태풍이 불 때면 비바람을 몸으로 다 맞아가며 하우스를 지켰죠.” 연구실에서는 현미경으로 시험 채소의 염색체를 1000~1500배 확대해 수시간씩 들여다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보통사람은 30분만 봐도 어지러워 쓰러졌을 겁니다. 처음에는 보는 것도 서툴러 하루종일 들여다봐도 염색체 하나를 발견할까 말까였어요.” 이 박사는 92년 쓰쿠바대에서 ‘배추와 양배추의 세포 종간 잡종으로부터 유래한 이수체 식물들의 세포 유전 육종학적 연구’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해 귀국한다. 쌈추 개발은 귀국 후에도 이어졌다. 아파트 베란다에도 씨를 뿌려놓고 교배 연구를 계속했다. 어린 자녀들이 거실에서 놀 때는 베란다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연구 시작 15년 만인 98년 쌈추 종자를 개발했다. 그해 농가 시험 재배를 시작으로 이듬해부터 종자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35년 우장춘 박사가 배추과 작물의 관계를 밝히고 ‘종의 합성’(U- triangle) 논문을 쓰지 않았습니까. 69년 말 일본 육종학자가 배추와 양배추의 종간교잡을 시도해 ‘학쿠란’이란 잡종배를 만들기는 했습니다. 쌈추는 배추와 양배추를 종간교잡한 것을 역교잡하고 또 역교잡하는 과정을 추가로 더 거쳐 나온 새로운 종입니다.” 쌈추는 상추보다 칼슘 성분이 5배, 비타민A가 2~3배, 비타민C 아스코브르산은 12배 정도로 우수하다. 맛과 영양면에서 기존의 다른 채소보다 월등한 우수성을 가지고 있는 게 입증됐다. 쌈추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작물이 아니다. 종간교잡을 통해 얻은 전혀 다른 종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육종학자의 꿈이 뭐겠습니까? 경쟁력 있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농가 소득을 올려주고 소비자들이 먹을 수 있는 작물을 개발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겁니다.” 쌈추가 세상에 알려지자 언론에선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2000년 1월 뉴스가 되자 바로 다음날 이 박사 사무실엔 쌈추 종자를 받길 원하는 농가들의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종자 개발 성공한 기쁨도 잠시

▶이관호 박사가 보낸 답변서는 특허청 인터넷에 1월 18일자로 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심판원은 답변서를 읽지도 않은 채 1월 19일까지 답변서가 오지 않았다며 심결을 내렸다. (자료:이관호 박사)

작물이 보호받으려면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등록돼야 했다.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등록되지 않으면 무분별하게 종자가 퍼져 제대로 육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99년 농림부 산하 국립종자관리소를 찾아가 쌈추를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신청했다. “종자관리소에서 대뜸 쌈추가 뭐냐? 듣도 보도 못한 작물을 어떻게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지정하느냐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어요. 나는 배추와 양배추를 종간교잡해 배양했다고 했죠.” 종자관리소는 이 박사에게 ‘배추의 품종’으로 신청하라고 권했다. 배추는 이미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지정돼 있으니까 배추종의 품종(계-문-강-목-과-속-종의 하위 개념)으로 들어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바로 ‘쌈추배추’ 로 등록해 보호받으라는 주문이었다. 일단 이 박사는 ‘쌈추배추’로 출원을 했고, 종자관리소는 시험재배에 들어갔다. 그러나 종자관리소는 ‘균일성’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며 등록을 미뤘다. 이 박사와 종자관리소의 싸움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쌈추가 배추와 가장 다른 점은 ‘결구’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배추는 포기를 형성하는 결구형인데 쌈추는 이파리가 낱개로 붙어있는 형태죠. 완전히 새로운 종인 거죠. 당연히 균일성이 완벽할 수 없죠. 새로운 종에 대한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종자관리소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99년에 품종보호 대상을 신청했지만 몇 해를 더 넘겼다. 도중에 종자관리소 담당자까지 바뀌면서 쌈추의 품종보호 대상작물 등록은 더 요원한 일이 돼 버렸다. “15년간 눈비를 맞으며 연구한 결과로 새로운 종을 탄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쌈추를 배추의 한 품종 정도로 치부해 버리려는 공무원들의 안일함에 화가 났습니다. 왜 쌈추가 꼭 배추처럼 결구돼야 합니까? 결구를 시키면 재배 기간이 60~70일이 걸립니다. 그런데 쌈추는 30일 만에 재배할 수 있거든요. 공무원들이 움직이기 싫어 서로 미루다 보니 수년씩 제자리걸음한 것이 아닙니까. 새로운 종자가 품종보호 대상을 받기 위해선 심사도 해야 하고 일이 복잡해지잖아요.” 이 박사는 공무원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분개했다. ‘비 온 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낙엽’에 공무원들을 비유했다.

종자관리소선 신청 접수 거부 “복지부동이죠. 학자가 신품종을 개발했으면 국가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구해 보호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쌈추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신품종입니다. 만약 우리가 개발한 작물이 국가 보호를 못 받아 부지불식간에 일본이나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다른 이름으로 재배된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구든 우리의 지적재산권을 먼저 가져가는 겁니다. 바로 우선권을 잃어버리는 거죠. 앞으로 세계는 식량전쟁 전에 종의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누가 우수한 종자를(혹은 우수한 유전자를) 개발해 가지고 있느냐가 국가 존폐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박사는 결국 2004년 가을 직접 농림부를 방문해 거칠게 항의했다. 그 항의가 효력을 발휘한 걸까. 2005년 2월 11일자 농림부 관보엔 ‘종간교잡종도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국내 최초로 쌈추가 종간교잡종으로서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무려 6년이 걸린 셈이죠.”(이 대목에서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쌈추는 현재 종자관리소에서 2년간 포장 시험에 들어간 상태다. 시험 재배 기간 결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품종보호 대상작물 등록 여부가 결정된다. 쌈추가 품종보호 대상작물 등록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품종보호 대상작물 지정 권한이 있는 농림부에 물었다. 농림부 기술지원과의 김민욱 사무관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작물을 한꺼번에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등록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는 98년부터 품종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법 제정 당시 17개 작물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모든 작물을 대상으로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지정할 계획입니다. 게다가 2009년이 되면 모든 작물이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적용됩니다. 그때가 되면 다 보호가 되는 데 제대로 검토도 없이 쌈추만을 서둘러 등록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거죠. 게다가 쌈추는 기존 작물과는 전혀 다른 종간교잡 작물이 아닙니까. 배추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 등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이 박사는 이 답변에 대해 변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종자관리소에서 성심껏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제도는 과학을 앞서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첨단 과학을 제도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행정의 효율성 면에서 미진했던 점은 충분히 인정을 한다는 제스처였다. 우리나라는 2002년 1월 7일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인 UPOV에 5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UPOV란 국가 간 품종보호제도에 대한 조화, 회원국에 대한 기술 지원, 품종 보호를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 등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 단체다. 1961년 신품종 보호에 관한 국제조약을 채택해 68년 발효했다. 가입시 15개 속 또는 종 이상, 가입 후 10년 이내에 모든 식물의 품종을 보호하게 돼있다. 우리나라는 95년 12월 UPOV 협약과 일치하도록 종자산업법을 제정, 98년부터 품종보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2005년 155개 작물을 대상으로 품종 보호를 실시하고 있으며 2009년까지 전 작물을 대상으로 품종보호를 추진 중이다. UPOV 가입의 가장 큰 혜택은 식물 신품종 육성 촉진의 활성화로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82년 가입했다. 우리보다 무려 20년 앞서 신품종 작물들이 보호받아온 셈이다. 중국은 99년에 가입했다. “기업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새로운 상품이 개발됐다면 당장 사업화했을 것 아닙니까? 정부에서 뭐든지 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지 무조건 안 되는 쪽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공무원이 떠밀기식으로 책임 회피를 한다면 우리 농업 발전에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

험재배 거쳐 2년 만에 등록 품종보호 대상작물 등록을 위해 농림부와 싸운 이 박사는 지난해부터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쌈추 상표법 위반으로 아시아종묘(주)를 고소한 것이다. 이 박사와 아시아종묘의 악연은 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8년부터 쌈추가 시험 재배에 들어가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자 아시아종묘 측에서 이 박사를 방문했다.

▶하우스에서 쌈추를 연구 중인 이관호 박사.

쌈추의 종자를 판매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이 박사와 아시아종묘는 99년 9월 28일~2002년 9월 27일까지 3년간 계약을 맺었다. 이 박사는 아시아종묘에서 쌈추를 파는 데 동의했다. “아시아종묘에서 쌈추를 팔려면 종자관리소에 품종명칭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품종보호권도 못 딴 상태였죠. 특허청 상표등록 담당 심사관은 쌈추 품종은 품종명이 아직 등록되어 있지 않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러므로 쌈추를 지정상품으로 등록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가장 유사한 항목으로 출원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정상품을 배추로 해 아시아종묘와 쌈추 상표를 출원, 등록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발생했다. 아시아종묘가 계약 기간 만료 후에도 쌈추 판매를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 박사는 아시아종묘를 상표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저는 99년에 이미 특허청에 쌈추 세리나로 영문 상표등록을 한 상태입니다. 비록 영문이지만 영문 쌈추와 한글 쌈추가 동일한 상품을 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아시아종묘 측에서도 이미 쌈추가 특허청에 등록돼 보호받고 있는 상표라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상표권이 판매권보다 우선입니다. 저는 제 권리를 주장할 뿐이죠.”

농림부 이어 특허청과도 싸움 이 박사의 주장을 좀 더 보충하면 이렇다. ‘품종명칭의 등록 출원일보다 먼저 상표법에 의한 등록출원일 중에 있거나, 등록된 상표와 동일 또는 유사해 오인 또는 혼동될 우려가 있는 품종명칭은 등록받을 수 없다’는 종자산업법(제109조 제9호)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종자산업법에 따라 이 박사는 지난 1월 4일 국립종자관리소에 ‘쌈추 품종명칭 등록 취소 요청서’를 발송했다. 그래서 종자관리소는 1월 5일 쌈추의 품종명칭 등록을 취소했다. 이에 대해 아시아종묘 측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아시아종묘는 이 박사의 고소에 맞서 2005년 12월 9일 특허심판원에 권리범위 확인 심판 청구를 냈다. 쌈추는 이미 배추나 사과처럼 쌈을 싸먹는 야채로 보통명사가 돼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이 박사가 주장한 상표등록 권한을 인정할 수 없고 아시아종묘도 권리 범위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아시아종묘 류경오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쌈추라는 명칭은 이 박사가 상표등록을 하기 이전부터 보통명사로 불리고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박사는 영문으로 등록하지 않았습니까. 본인이 상표권에 대한 적극적 권리를 애초부터 주장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이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레포츠라는 것도 5년 전에 상표등록을 한 명칭이지만 지금은 보통명사화해 무효화가 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이 박사는 우리와 계약한 상태에서도 종자를 농가나 ‘좋은씨앗’ 등의 업체에 공급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명백히 이 박사에게 판권 명목으로 계약금을 지불했습니다. 계약을 먼저 어긴 건 이 박사 쪽입니다.” 류 대표의 주장에 이 박사는 결백을 주장하며 반박했다. “나는 계약서에 아시아종묘에만 종자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습니다. 좋은 종자를 우리 농가에 퍼뜨리는 건 육종학자로서 당연히 할 일 아닙니까. 그리고 저 역시 쌈추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보통명사화가 되면 상표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밤잠 안 자고 휴일 없이 수십 년을 연구해 얻은 쌈추가 하루아침에 일반 채소 취급을 받으면서 홀대받는다는 생각을요. 게다가 한 기업의 영리 목적으로 팔린다는 걸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쌈추가 제가 만든 말이 아니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이 박사와 아시아종묘 간 분쟁은 지난 2월 13일 특허심판원으로부터 (상표)권리확인 심결 통보를 받음으로써 일단락됐다. 심결 통보의 내용은 이렇다. ‘국립종자관리소 인터넷 검색에 의하면 품종명 쌈추는 2000년 2월 10일 작물명 배추의 품종명칭으로 등록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바, 이는 이 사건 등록상표의 등록일인 2000년 4월 27일 이전에 이미 품종명칭으로 상표법 제6조 제1항 제1호에 해당하는 보통명칭으로 됐다 할 것이므로 비록 이 사건 등록상표가 영문자 “Ssamchoo”와 “serina”를 내용으로 해 각각 쌈추나 세리나로 관념, 호칭된다 하더라도 쌈추 부분은 그 지정상품인 배추와 관련해 보통명칭에 해당하므로 상표법 제51조 제2호의 구정에 의해 상표권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결국 특허심판원은 아시아종묘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 박사는 이 심결에 대해 취소 소송을 낼 예정이다. “저는 명백히 99년 1월 2일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을 했습니다. 아시아종묘가 99년 10월 품종명칭 등록을 했다고 하더라도 제가 9개월이나 먼저 한 것 아닙니까. 출원은 미리 했어도 상표등록은 2000년 4월에나 됐습니다. 출원 중이었기 때문에 인터넷상에 안 나왔던거죠. 쌈추는 명백하게 보통명사가 아닌 상표권의 보호를 받는 상표입니다.”


“하루아침에 일반채소 신세로” 이 박사는 2006년 1월 4일 국립종자관리소에 쌈추 품종명칭 등록 취소 요청서를 발송하고 1월 5일 쌈추의 품종명칭 등록 취소를 받아냈다. 하지만 아시아종묘 쪽에서 종자관리소에 다시 취소 신청에 대한 연기 신청을 낸 상태다. 현재 아시아종묘는 쌈추라는 이름으로 종자를 팔고 있지 않다. 분쟁의 소지를 막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종묘가 품종명칭 등록 취소 연기 신청을 낸 건 양자 간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졌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박사는 종자관리소에서 아시아종묘 측의 연기 신청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종자관리소에 다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30일 안에 무효신청 내면 그만” 특허심판원의 심결 내용보다 이 박사를 더 흥분하게 한 일이 있다. 바로 특허심판원의 심판 과정이었다. 이 박사와 아시아종묘의 소송 심판 과정에서 특허심판원은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이 박사는 인터뷰 중 기자에게 특허심판원으로부터 온 한 보따리의 심결 통지서를 보여줬다. “이것 보세요. 심결 내용에는 피청구인(이 박사 본인)이 심판장이 정한 답변서 제출기일인 2006년 1월 19일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사전에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의 흥분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특허청 인터넷에 들어가 사건번호만 두드려봐도 심판 진행 상황이 나옵니다. 명백하게 1월 18일 심판사건 답변서 수리가 돼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심판관이 답변서도 안 보고 심결을 내렸다는 말이 아닙니까. 심판관에게 전화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실수한 것 같다며 잘못했다고 시인하더라고요. 하루에 30건을 처리하다 보니 그런 불찰이 일어난 것이라고요. 30건이 아니라 300건을 처리한다 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저는 쌈추 개발을 위해 22여 년을 쉬는 날도 없이 일했습니다. 황우석 박사 같은 사람은 국가에서 수백억원씩 연구 지원금을 받아가며 했지만 저는 1원 한푼도 안 받고 스스로 연구했습니다. 저에게 쌈추 연구는 목숨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세금을 받으며 일하는 공무원이 잠깐 실수했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죠.” 인터뷰 후 이번 사건의 심판을 진행했던 장대성 심판관에게 상황을 물었다. “이번 심판은 이관호 박사가 아시아종묘를 상대로 형사상 고소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서둘러 결정해야 했습니다. 형사상 고소사건은 다른 건보다 빨리 처리해야 하거든요. 서둘다 보니 실수를 한 건 인정합니다. 인간이 하는 일인데 실수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이번 건은 1, 2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일입니다. 심결 난 당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피청구인이 무효를 주장할 수 있으니까 이 박사가 무효 신청을 내면 됩니다.” 이 박사는 아시아종묘와 특허심판원의 결탁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지만 장 심판관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특허청의 심판관은 명예를 걸고 일합니다. 당사자가 먼저 상표등록을 한 것을 인정하면 언제든지 취소를 해줍니다. 그건 개인이든 기업이든 특허 취소에 대한 권리는 똑같습니다. 특허청의 투명성에 대해 의심을 품는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이 박사는 조만간 심결 취소 신청을 낼 계획이다. 이 박사와 아시아종묘의 소송이 장기전으로 돌입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농림부 쪽에서는 이 박사가 공무원 신분으로 쌈추를 개발한 건 아닌지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 박사가 현재 적을 두고 있는 한국농업전문학교는 농촌진흥청 산하단체이기 때문에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이다. 만약 연구 과정에서 학교 부지를 사용했거나 지원금을 받았다면 상품권 소유는 국가에 귀속된다는 얘기다. 다소 감정적인 이른바 괘씸죄를 따져 보겠다는 말로 들렸다. 이와 관련, 이 박사는 쌈추 연구는 순수하게 개인이 시간과 돈을 들여 연구했다고 주장한다.

“이젠 연구에만 전념했으면…” 현재 최종 심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잘못을 했고 안 했고의 문제도 아직 밝혀진 상태는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한 육종학자가 혼신을 다해 연구하고 그 결과가 국가 보호를 받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누가 그러더군요. 학자가 연구에만 매진하면 되지 자기 이권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요. 전들 이러고 싶겠습니까. 학자는 연구만 하고 국가는 학자의 연구 성과를 성실한 자세로 인정해주고 보호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거죠.” 참고로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채소 종자 금액은 3027만 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해외 채소 종자가 아닌 순수 외국 종자 수입액은 약 570만 달러다. 국내 종자 개발에 힘쓰는 과학자의 보호는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할 사안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한국농업전문학교 이관호 교수 1955년생 1983년 2월 서울대 농대 졸 1983년 3월 경기도 가평중학교 교사 1986년 3월 경기도 문산고 교사 1986년 4월 일본 쓰쿠바대 연구원 1987년 4월 일본 쓰쿠바대 농학석사 1992년 3월 농학박사 1992년 4월 용인농생명산업고교 교사 1994년 3월 호남대 조교수 1997년 9월 ~ 현재 한국농업전문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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