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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객원기자의 공개하지 못한 취재수첩] 한·소 경제교류 ‘최호중 외교’ 작품

[이호 객원기자의 공개하지 못한 취재수첩] 한·소 경제교류 ‘최호중 외교’ 작품

"제가 모스크바에서 총재님 일정을 협의하고 있을 때예요. IMEMO의 키슬로프 박사가 북한에서 중요한 인물이 총재를 만나러 오겠다는데 저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피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그랬더니 즉각 북한 대사관에서 연락이 오더니 저를 만나자는 겁니다. 처음엔 권희경 북한 대사가 만나자, 전금철 조평통 부위원장이 만나자, 그런 식으로 자꾸 사람이 바뀌다가 마지막에 거물이 온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허담이라는 건 총재님이 도착해서 레닌그라드를 방문하고 있는 도중이었어요. 그러니까 북측도 관망했던 겁니다. 소련이 총재님을 어느 정도로 대접하는가를 봤겠지요.” YS와 허담의 대화는 신경전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허담이 시쳇말로 ‘맞짱 붙어서 져 본 역사가 없다’는 YS를 모르고 온 것 같았다. 전금철 부위원장, 권희경 대사, 불바다 발언을 했던 안병수를 옆에 앉혀놓은 허담의 첫마디가 “왜 나를 간곡히 만나자고 하셨습니까”였다. YS 옆에 배석했던 정재문·박관용·황병태 의원 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고, YS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간곡히 만나고 싶어하는 쪽에서 찾아가는 거 아입니까. 평양서 여기까지 먼길을 왜 찾아오셨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다. “그동안 우리가 김 총재 선생님을 초청한 바도 있고, 또 김일성 주석님께서 저한테 평양 초청 문제가 아직 유효함을 말씀 드리고, 모시는 문제를 토의하고, 통일 문제를 논의해보라는 말씀이 계셔서 왔습니다.”(허담) “허 선생께서는 대화를 해야 하고 통일 논의를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왜 국회 회담을 중단시키고 있습니까. 국회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기구 아입니까. 우리가 국회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고 편지를 보낸 바도 있는데 그쪽에서 응답이 없습니다. 이산가족들의 고향 방문을 왜 막습니까. 서로 만나게 해주는기 동질성도 찾아내고 통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 아입니까?”(YS)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김 총재 선생님 같은 분이 먼저 평양에 오셔서 회담도 하고 토의도 하는 거이 좋습니다.” “평양 가는 문제는 좀 있다 얘기하겠지만,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 송환 같은 인도적이고 비정치적인 문제부터 풀어야 점진적인 통일방안 협의가 가능해진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허담은 답변이 궁색해지면 잠시 포즈를 둔다. 그리고 주제를 바꾸는 화법을 쓰고 있다. 그는 대학생 방북 문제에 대해 불만을 꺼낸다. “총재 선생님은 남조선 야당의 지도자로서 잘못하고 계시는 거이 있습니다.” “허 선생 보기에 뭐가 잘못하고 있습니까.” “대화 창구를 단일화한다는 건 아주 잘못입니다. 국회가 있으면 사회단체도 있는 거이고, 학생 대표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기런 단체들의 목소리를 왜 전부 막습니까. 문익환 목사는 종교인으로 온 거인데 처벌을 하니 기래가지고 어케 통일 논의를 하자는 겁니까. 남조선 대학생들이 국토행진 하갔다는데 정부가 막아서 못했고 13차 청년체전 참석도 정부가 막아서 못했습니다. 인민은 인민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북한이 남한을 아주 잘못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막은 적이 없고 막을 수도 없습니다. 누구나 주장은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통일 문제는 국가적인 테마인데 대화하는 창구를 정부 창구로 일원화해야지 단체마다 창구를 따로 한다면 중구난방이 되는데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문 목사 문제도 그렇습니다. 북쪽이 몇몇 사람을 내세워 대한민국 국민의 사상을 변화시키거나 공산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왜 문 목사가 공개적으로 우리 정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은밀하게 그랬는지 이해 못합니다. 통일 문제는 떳떳하게 발언하고 떳떳이 행동해야 합니다.” 이렇게 YS는 첫 소련 방문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을 돔 프리에모프 영빈관에서 만났던 것이다.

“맞선 보러 가서 애를 낳아 왔다”

▶지난 1990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전격 회동하기 위해 그렘린궁을 방문한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이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프리마코프 연방회의 의장과 재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에 앞서 소련으로부터 김영삼(YS) 민주당 총재를 초청하겠다는 공식 서한은 일본 주재 소련 대사관을 경유해 도착했다. 1989년 5월 초였다. 소련의 공식기관인 국제관계·세계경제연구소(IMEMO)가 한국의 야당 정치인을 공식 초청한 것은 초유의 일이었고, YS는 정재문 의원을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초청장을 받아들고 감흥에 젖은 YS와 정 의원이 나눈 대화록 일부. “백곰의 속은 미국의 인공위성도 모른다고 하는데, 한국의 야당 정치 지도자한테 초청장을 보냈다? 아무리 고르바초프가 동북아의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고 역설을 했다캐도 이거야말로 역사적인 사건 아이가?”(YS) “총재님이 제의하신 동북아 6개국 의원 협의체와 고르비의 5개국 협의체 제안이 상통하는 면이 있고, 뭣보다 우리 한국의 경제력이 절대적으로 소련에 필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거 아이겠습니까. 제 생각입니다만 총재님이 소련을 가실 때 우리 경제인들을 대동하시는기 좋을 것 같습니다.”(정재문) “하여간 정 의원은 참 대단하다이? 소련 간다는 말도 없이 가갔고, 그것도 맞선 보러 가는 정도였을 긴데 대번에 애를 낳아갖고 와삐린 셈이니 말이야, 하하하.” “애를 낳는 쪽은 소련인데 실탄이 좋아서 첫눈에 반했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인비테이션(Invitaion·초청장)이라는 이름까지 지어갖고 보내왔으니 키울 일은 총재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하하, 문디이…. 정 의원 위트는 따를 사람이 없다.” 그러나 초청장은 문제가 있었다. 이 무렵까지도 소련은 초청에 필요한 기본 절차나 양식도 갖추지 않은 편지 형태였던 것이다. 정 의원의 회고.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어느 나라도 그런 형태의 초청장은 없거든요? 초청장은 일정한 양식이 있단 말입니다. 6월 초순에 오셨으면 좋겠다, 이것만 적혀 있고 일정은 어찌 되는지, 수행은 몇 명이 하는 건지, 정치인 외에 경제인도 대동했으면 좋겠다든지, 세부적인 사항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이런 초청장은 자칫 정치권에서 비웃음이 될 수도 있고, 여당이나 청와대의 역공이 날아올 수도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까지 있었다. 초청장이 허술했기 때문에 결국 정 의원이 선발대로 떠나야 했다. 이것이 5월 27일이었다. 그 무렵 노태우 대통령은 최호중 외무부 장관을 불러 경제계의 소련 진출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구체적인 기업체까지 거명해 최 장관을 놀라게 했다. 노 대통령은 “소련은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있는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삼성과 진도에서 소련 진출을 검토하고 있고, 현대도 종합상사팀을 보내 구체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데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세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최 장관은 이미 민간 교류 차원에서 외교적으로는 대(對) 소련 물꼬를 터놓은 상태였다. 박철언 특사나 정치인들의 행보가 시작되기 전에 제3국에서 최초의 영사처 개설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최호중 전 장관의 회고. “경제계 인사들이나 기술진들, 무역인들, 그리고 비록 보따리 장사꾼이더라도 제3국을 통하면 소련 입국이 반드시 어렵다고 보진 않았어요. 올림픽의 영향으로 사회주의권에서 동요가 상당했는데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선언까지 나왔으니까 공산권 전체가 예전하곤 딴판이었단 말이지요. 당시 은밀히 싱가포르에서 우리 실무팀이 소련 외무부 팀들과 만난 겁니다. 그때 내 지시가 순수한 민간 경제인들은 제한 없이 오갈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하고, 영사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소련과 협상하라고 한 겁니다. ‘영사처’라는 이름도 제가 붙인 거지요.” 바로 이것이 한·소 양국의 상공회의소 개설과 직결되고 영사처 설치로 이어졌다. 공식적인 한·소 경제 교류는 ‘최호중 외교’의 작품이 되는 셈이다.

YS의 깜짝쇼 넘어선 소련의 의전술

IMEMO 측과 초청 내용에 대해 협의한 핵심들은 무엇입니까?
“소련이 그렇습디다. 어느 것도 즉각 대답이 없어요. 총재의 수행원은 몇 명까지 받을 수 있느냐, 숙소는 어디냐, 총재가 오면 누구를 만나게 되느냐,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미팅이 잡혀 있느냐, 총재께서 동포들이 많은 타슈켄트를 방문하려고 하는데 가능하느냐,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레닌그라드를 보고 싶으니 준비를 해달라, 프라우다와 이즈베스티야 신문들과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 이런 등등의 협의를 하는데 ‘모든 것을 알았으니 잘 될 것이다’라는 한마디뿐이에요.”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막상 소련 측의 준비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YS보다 하루 앞서 도착한 기자단들은 모스크바 국제방송국 기술팀들과 중계 문제를 충분히 협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9박 10일 일정으로 YS와 부인인 손명순 일행 13명이 6월 2일 오후 4시30분 세레메티에보 공항에 도착해 역사적인 소련 방문을 시작하자 언제 그런 준비를 했는지 투숙할 돔 프리에모프 영빈관의 방 배정까지 일일이 서열 순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정 의원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서열을 캐치했겠지만 빈틈이 없었다. 어제까지도 일체의 협의가 없다가 하룻밤 사이에 해치우는 솜씨는 YS의 깜짝쇼를 능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조짐이 있었어요. 총재를 초청한 IMEMO의 프리마코프 소장이 공항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겁니다. 대신에 마르티노프 수석 부소장이 영접을 하면서 소장이 급한 일로 못 나오게 됐다는 겁니다. 그 순간에 저는 와아, 결정됐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오후 10시30분쯤에 프리마코프 소장이 영빈관 4층 별실로 총재를 방문하면서 나를 찾아요. 갔더니 교포 유학구 박사의 통역으로 총재님 하고 대화하던 프리마코프 소장이 대뜸 보드카 한 잔을 가득 채워주며 수고했다는 겁니다. 바로 그날 프리마코프 소장이 소련의 서열 3위인 연방회의(국회) 의장으로 결정돼서 내일 선출 절차를 밟게 됐다는 거지요. 이건 굉장한 뉴스 아닙니까.” YS를 초청한 프리마코프가 소련의 국가체제에서 서열 3위로 부상했다는 것은 YS의 방문을 그만큼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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