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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항구가 뚫린다?

미국의 항구가 뚫린다?

No Safe Harbor Here 대통령 측근들에게 아랍이 미국 항구들을 접수하려 든다고 처음 경고한 사람은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마이클 새비지였다. 부시의 한 최측근이 밸런타인 데이 직전 ‘새비지 네이션’ 방송을 듣다가 이 과격한 진행자의 성난 목소리를 접했다. 새비지는 한 두바이 회사가 미국 내 여섯 항구의 터미널을 관리하려 든다고 흥분했다. 미국은 9·11 테러에 관련된 한 아랍국에 안보를 내맡기는 꼴 아니냐고 비꼬았다. 그러나 그 부시 측근은 거래 승인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는 바 없었다. 그 뒤 일주일 동안 새비지의 독설을 잊고 지냈다. 사실 신경 쓸 일이 어디 그뿐인가. 딕 체니 부통령이 메추라기 사냥을 나가 사람을 쐈고,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국내 도청 프로그램의 입법화에 반기를 들었다. 해당 거래를 심사한 하급 관리로부터 의회를 상대하는 백악관 보좌관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사안의 중대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항만 운영사의 인수가 어쩌다 정치적 재앙으로 바뀌었나? 첫째 올해는 선거의 해다. 지난 두 차례의 선거유세에서 칼 로브는 민주당의 안보관이 허술하다는 인상을 심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은 이번 두바이 건으로 멋지게 설욕할 기회를 얻었다. 일반 국민은 미국의 항구를 지키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려를 표명한다. 공화당 지도부는 그런 국민에게 이번 거래를 설명해야 하는 수렁에 빠지길 원치 않았다. 선거구민들의 전화 공세에 혼쭐이 난 그들은 공개적으로 부시와 선을 그은 뒤 이 거래의 연기나 봉쇄에 주력했다. 계산은 간단했다. 라스무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거래에 찬성하는 응답자는 17%이고, 부시는 자신의 등록상표 격인 국가안보 면에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근소하게 뒤졌다. 한편 백악관의 사태 인식은 굼떴다. 페닌술라 앤드 오리엔털 스팀 내비게이션 컴퍼니(P&O로 알려졌다)라는 영국 항만 운영사의 인수전을 예의주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체니의 사냥 사고가 있던 날 AP통신 보도에 주목한 사람도 없었다. AP는 엘러라는 마이애미 소규모 항만 운영자가 언급한 안보상의 우려를 전했다. P&O의 파트너로서 이번 거래가 못마땅했던 엘러는 어느 아랍국 정부의 항만 인수로 정치적 후폭풍이 일면서 사업이 위태롭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의 변호사들이 FBI에 문의했지만 무시됐다. 안보상 검토는 오래전에 끝났다는 답변이었다. 그 마이애미 회사말고도 걱정스러워한 사람은 많았다.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공화당 위원장인 피터 킹 의원은 AP 보도가 나간 지 며칠 뒤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내용을 물었다. 한 고위관리가 걱정말라면서 두바이 회사를 조사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는 모른다고 시인했다. 킹 의원이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말하자 그 관리는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맘대로 하시라”고 말했다. 다음날 킹은 척 슈머 상원의원(민주)과 함께 거래중지를 촉구했다. 바로 그날 앤디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그 사건의 첫 번째 보고를 했다. 화요일 오전 부시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덴버 인근에서 재활용 에너지 관련 새 정책을 홍보하던 중이었다. 공화당의 상하 양원 지도자 빌 프리스트와 데니스 해스터트가 이번 거래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백악관에 통보했다. 부시는 거래 검토에 관련된 장관들을 접촉해 결정에 아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라고 보좌관들에게 지시했다. 대통령 일행이 워싱턴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 장관들이 문제없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안심한 부시는 전용기 회의실로 기자들을 불러 거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아랍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말하면서 거래를 봉쇄하려는 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언명했다. 부시의 고위 보좌관들(그들 중 상당수가 토머스 프리드먼의 최근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를 읽었다)은 거래를 무산시키면 교역 파트너들을 소외시키고 대통령의 경제적 과제가 위태롭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럼에도 먹구름은 계속 번졌다. 부시는 박빙의 승부전을 펼치는 후보들을 지원하러 주중에 오하이오주에 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를 스티브 채벗 하원의원(공화)이 영접했다. 채벗은 그날 아침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지에 나온 시사만화를 대통령 손에 쥐어줬다. 아랍 왕족이 웃는 얼굴로 미국의 항구 위에 두 팔을 벌리는 모습이었다. 설명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안심하세요. 국토안보부는 정상근무 중입니다. ” 많은 전문가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아랍 회사는 인원 구성이 워낙 국제적이어서 자국에서조차 아랍인을 많이 쓰지 않는다고 욕먹기 때문이다. 항구야 누가 소유하든 안보는 여전히 해안경비대와 세관, 그리고 미국 노조를 통해 고용하는 항만 근로자의 손에 달렸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 두바이 회사의 나라인 아랍에미리트는 9·11 테러범들의 자금 지원에 그들의 허술한 은행 체제가 이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그러나 그 뒤로 미국 군·정보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왔다. 두바이 포츠 월드는 전부터 미국에 우호적이어서 미 해군 함정이 진주할 때마다 다른 상업용 선박의 왕래를 봉쇄했다. 따라서 지난해 10월 중순 항만 인수 문제로 FBI에 처음 문의했을 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 관리들은 그 회사에 보안 관련 지시를 따르고 관리기록을 열람토록 하겠다는 서약을 요구했다. 그런 뒤 1월 중순 더 이상 조사하지 않고 조용히 공식 검토를 마쳤다. 지난주 후반 이 회사는 당장의 정치적 압력을 완화할 목적으로 미국의 항만 관리자들을 당분간 그대로 두겠다고 자청했다. 밥 도울과 빈 웨버(칼 로브의 절친한 친구) 같은 왕년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의회를 진정시키려고 출동했다. 그것이 쉽지는 않으리라. 이 거래는 이번주 목요일 마무리된다. 법적으로 심사 재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측 입장이다. 그러나 양당 의원들은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겠다는 각오다. “이 문제를 오늘 표결에 부치면 로사 파크스를 기리는 법안처럼 쉽게 통과될 것”이라고 공화당 지도부의 한 보좌관은 이름 공개를 꺼리며 말했다. 부시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떠나는 화요일 다시 의회가 소집되면서 전투가 재개됐다. 갑판에 선장이 없는지라 불안한 선원들은 선상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 With MARK HOSENBALL and MICHAEL ISIK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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