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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주년 특집] 토지에서 금융자본가로 진화

[창간 3주년 특집] 토지에서 금융자본가로 진화

한국 부자의 변천사는 곧 한국적 자본주의 발달사다. 광복 이후 산업의 발달과 시대·사회상의 변화가 반영됐다. 그 결과 만석꾼으로 통했던 토지자본가에서 상업자본가, 그리고 산업자본가, 금융자본가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구한말 농경사회에선 ‘부자’하면 천석꾼·만석꾼 떠올렸다. 말 그대로 천석·만석 등 한 해 쌀 수확량에 따라붙은 이 명칭은 농토가 많은 부자를 의미했다. 만석꾼으론 12대 400년 동안 부를 유지했다는 경주 최부잣집이 유명한데, 만석 이상 재산을 모으지 않는다는 가훈에 따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소작료를 낮춰 주는 방법으로 독점을 스스로 차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이 땅에 근대적 의미의 산업의 태동하기 이전에는 정미소나 양조장을 운영하거나 운수업을 하면 부자로 통했다. 또 인삼 등 지역 특산물을 거래하는 상인이 큰돈을 만지면서 화신이나 개성상회 등 상업자본이 형성된다. 상업자본은 자연스럽게 섬유나 신발겱컸?등 산업화 초기 단계의 경공업을 일으키는 산업자본으로 연결됐다. 이렇듯 한국의 부자 변천사는 산업의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 광복 이후 부자 세계의 변화를 크게 보면 토지자본가에서 상업자본가·금융자본가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맞춰 부동산 부자, 재벌, 사채시장과 주식시장의 큰손, 벤처 부자가 등장한다. 1966년 말 시작된 강남 개발사업은 복부인과 떴다방, 강남불패론 등으로 이어지는 신조어를 낳으면서 부동산 투기 현상을 초래했다. 60년대 초 평당 300원이었던 말죽거리(현 양재역 부근) 땅값은 지금 평당 5,000만원을 호가한다. 산업자본가의 변화는 재벌의 명멸과 흐름을 같이 한다. 70년대 정부가 수출주도형 고도성장을 추구하면서 재벌(종합무역상사)은 수출창구 역할을 했다. 이어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전기·전자·기계·자동차·화학 등 중공업으로 산업의 중심이 바뀌면서 재벌이 급성장했고, 부실기업 인수와 해외 건설시장 진출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 잘 보여 승승장구한 곳이 있는가 하면, 국제그룹처럼 밉보여 해체에 이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97년 초 한보를 시작으로 진로·삼미·기아·한라에 이르기까지 30대 그룹 중 8개가 쓰러짐으로써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는 깨졌고, 대우 사태와 ‘왕자의 난’ 끝에 현대가 셋으로 쪼개지면서 산업자본 부자의 역사는 새로 쓰여지고 있다. 90년대에 반도체가, 2000년대 휴대전화가 주력 수출품으로 등장하면서 재벌의 판도가 달라졌고, 이제 대기업들은 디지털과 바이오 쪽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신흥부자는 금융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나왔다. 주가선물시장이 뜨고 증시가 살아나면서 선물(先物) 고수 및 억대 연봉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가, IT 분야가 각광을 받으며 벤처 부자가 탄생했다. 이들은 대부분 30?0대 젊은층으로 물려받은 유산 없이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사교육 시장이 커지면서 학습지와 입시학원 등 교육산업이 신흥 부호의 산실이 됐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 기업가들도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영화·가요 등 대중문화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연예인 부자도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부자는 시대 및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주목의 대상도 달라진다. 93년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자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가, 2000년 코스닥시장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자 벤처 부자가, 2003년 이후 거듭되는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에도 아파트값이 진정되지 않자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자가 관심을 받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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