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패션 반란’
젊음의 ‘패션 반란’
All Dressed Up for the Youthquake 눈이 녹고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다. 옷장을 뒤져 봄 옷을 챙길 때다. 미니스커트, 베이비 돌 원피스(프릴이나 레이스 장식이 많은 헐렁한 원피스), 버블 스커트(주름을 풍성하게 넣어 부풀린 스커트), 통굽 구두. 재미 삼아 입는 푸치 프린트(1960~70년대 이탈리아 디자이너 에릴리오 푸치가 유행시킨 알록달록하고 기하학적인 무늬의 의상) 아이템 하나. 나들이용으로 적합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의 랩 원피스 한 벌. 그런데 잠깐. 디자인을 시대의 반영이라고 본다면 도대체 올해가 몇 연도란 말일까? 캘빈 클라인의 흰색 베이비 돌 원피스부터 발렌시아가의 최신 스타일 바지정장까지, 패션쇼 무대가 온통 1960~70년대 스타일로 넘쳐나니 지금이 21세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베이비부머들이 성년을 맞았던 시대의 스타일은 아직도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올해는 특히 복고풍이 강세다. 사실 여성 패션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끝무렵까지 급격하게 변했다. 베이비붐이 끝난 이후 베트남전쟁부터 1980년대까지 발생한 변화보다 더 급격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 시대는 출발이 요란했다. 반(反)문화(기성사회의 가치관을 타파하려는 1960~70년대 젊은이 문화)가 1960년대 초 재키 케네디의 세련된 하이 패션으로 대표되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전통을 무너뜨렸다. 히피들은 진바지와 부츠, 싸구려 인디언 튜닉(박스형의 긴 상의)을 착용했다. 그들은 또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 1960년대 비틀스를 주축으로 한 영국 록 그룹의 미국 팝 시장 공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을 초래했다. 비틀스뿐 아니라 모드 패션(mod fashion: 1960년대 런던의 카나비 스트리트에서 시작돼 폭발적으로 유행한 스타일. 미니 스커트·화려한 꽃무늬 셔츠·좁은 바지 등이 대표적 아이템)도 함께 들어왔다. 미국 디자이너 노르마 카말리는 1964년부터 주말이면 29달러짜리 항공편을 이용해 런던에 다녀오던 때를 회상했다. 킹스 로드 주변의 작은 상점에서 “기막힌 옷들을 봤다. 난생 처음 보는 물건들이었다. 뉴욕에 돌아와 내가 미니스커트를 처음 입자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봤다.” 미국인들의 옷 입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전설적인 패션 잡지 편집자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이런 현상을 지진에 비유해 유스퀘이크(youthquake: 젊음의 반란)라고 명명했다. 음악에서와 마찬가지로 패션에서도 영국이 첨단유행을 주도했다. “1960년대 ‘영국적’이라는 개념의 대부분이 스트리트 스타일(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일시적인 거리의 유행 현상)을 통해 전해졌다.” 오는 5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열리는 ‘영국 숭배: 영국 패션의 전통과 도전’을 기획한 큐레이터 앤드루 볼튼의 말이다. 음악은 “모드족과 로커들의 사고방식, 카나비 스트리트의 패션 혁명, 런던의 멋스러움을 함께 들여왔다.” 1970년대 음악과 연관된 스트리트 스타일은 펑크의 등장과 함께 한층 더 강력해졌다.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런 경향을 의상 제작에 이용했다. 십자가가 거꾸로 새겨진 찢어진 레이어드 T셔츠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주류 패션에 크나큰 충격을 던져줬다. “비비안의 작업은 자신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했다”고 볼튼은 말했다. “그녀는 이런 경향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해체주의와 종족주의, 유니섹스 스타일을 표현했다. 그것은 패션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디자이너들이 스트리트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프랑스 오트 쿠튀르(하이 패션)의 당당하던 위세는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기울었다. 한동안은 속옷조차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증하면서 또 다른 종류의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주류 패션이 점차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된 이유는 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섹시하고 여성스러운 의상에 여권주의자들이 반발했기 때문이었을까?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단순히 여성들이 직장에 갈 때 입을 점잖은 옷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요구는 바지 정장이라는 형태의 유니섹스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1960년대 말에 일어난 이 중요한 패션 혁명의 주역은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다. 그는 팝 문화의 특성을 파악해 그 문화에 걸맞으면서도 아름다운 의상을 제작했다(그의 화려한 러시아 농부 스타일 의상을 누가 잊겠는가). 그러나 바지 정장이 유행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일부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오랫동안 여성 고객의 바지 정장 차림을 금하는 복장 규정을 유지했다. 1990년대 들어서야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 공식적인 행사에서 바지 정장을 자주 입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캘빈 클라인과 랠프 로렌 등 미국 스포츠웨어 디자이너들이 유럽 디자이너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성복 세퍼레이츠(위·아래가 따로 떨어진 여성복)는 여성의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창의적으로 조합이 가능했다. 한편 당시 젊은 디자이너였던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기술 발전으로 향상된 니트 원단을 이용해 1970년대의 또 하나의 걸작, 프린트 랩 원피스를 창조했다. 직장여성들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가격에, 사무실뿐 아니라 복장 규정이 있는 식당에도 입고 가기에도 맞춤했다. 또 도나 캐런은 니트 저지 소재를 이용한 보디수트(위·아래가 붙은 몸에 꽉 끼는 여성복)를 개발했다. 타이츠나 레깅스(다리에 착 달라붙는 여성용 바지), 스커트와 함께 착용하도록 한 이 제품은 현대의 또 다른 걸작이 됐다(타이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1960년대 패션 혁명 중 가장 큰 사건인 팬티스타킹의 발명을 잠시나마 조용히 생각해 보자. 팬티스타킹이 없었다면 몸에 꽉 끼는 미니 스커트를 어떻게 입었을까?). 물론 1980년대 이후에도 독창적인 디자인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돌고 도는 유행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포스트모던 미술이나 팝 음악에서처럼 패션에서도 기존 작품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마크 제이콥스·뮤치아 프라다 등 오늘날의 최고 인기 디자이너들도 컬렉션에 내놓을 작품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스타일을 뒤지곤 한다. 그들은 음반 제작자처럼 샘플링(기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 한 부분을 이용해 새로운 창작을 하는 작업)과 리믹싱(기존 작품을 그대로 살리면서 여러 요소들의 조합만 새로 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다. 베이비부머의 전성시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1960년대에 개점한 런던의 유명 패션 의류점 비바는 최근 벨라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가 트위기와 줄리 크리스티가 입었던 의상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한 새로운 브랜드를 들여놓고 다시 문을 열었다. 이제 59세가 된 폰 퍼스텐버그는 자신이 1970년대에 유행시킨 랩 원피스가 빈티지 의류점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을 알고, 몇 년 전 라인을 확장해 이 원피스를 다시 선보였다. 그녀는 올 전세계 매출액을 약 1억 달러로 예상한다. 또 1980년 면플리스 소재를 이용한 작품을 내놓았던 노르마 카말리는 에버래스트의 맵시 있는 새 운동복을 디자인했다. 카말리의 일부 유명 작품은 여전히 잘 팔린다. 1973년에 발표한 슬리핑백 코트(몸 전체를 감싸는 두툼한 소재의 롱코트)가 대표적이다(“특히 9·11 사태 이후 잘 팔렸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 코트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고치 같았다.”). 이런 패션 대부분이 편안하고, 친숙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오래전 처음 선보였을 당시의 충격적인 맛은 없다. 당시의 디자인들은 예상 밖이었고, 무례했으며, 파괴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디자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멋질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획기적이지는 않다. With RUTH TENENBAUM 정경희 newsw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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