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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매각의 교훈] 기업 정보 유출 등 거센 논란

[외환은행 매각의 교훈] 기업 정보 유출 등 거센 논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계기로 몇 가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문가들은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기업 정보 유출 문제를 제일 먼저 꼽는다. 국내 은행이 보유한 수많은 기업의 고급 정보가 무방비로 해외에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론스타는 지난해 외환은행 대주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동아건설(매각주간사 외환은행)의 파산채권 입찰에 참여하려고 시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이라는 창구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입수한 이후 ‘돈이 되겠다’ 싶어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금융계는 관측하고 있다. 따가운 여론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투기성 펀드가 은행을 인수할 경우 우려됐던 기업 정보 유출이라는 부작용이 드러난 셈이다. 세계적 헤지펀드 운영자인 조지 소로스가 2004년에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뛰어 들었을 때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지 소로스가 실제 인수 의사가 없는데도 국내 대형 증권사 정보를 빼내기 위해 인수전에 참여했다는 시각 때문이다. 조지 소로스는 2002년 대한투자신탁 실사에 참여해서도 이 회사의 영업망 등 기업 정보를 파악한 뒤 최종 협상에서 부실문제를 들고 나왔다. 마지막에 협상을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전력이 있는 것. 일부에서는 당시 소로스가 LG카드를 노리고 LG투자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추론까지 내놓기도 했다. LG투자증권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업체에 LG카드에 대한 실사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실사 또는 지분 인수 후 내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기업들의 내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막는 장치를 감독당국이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는 현재 여론이 뜨거운 세금문제다. 제일은행을 매각한 뉴브리지캐피털에 이어 론스타 역시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스란히 대박을 챙겨 떠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초 외국 자본 유치의 근본적인 이유였던 선진 금융기법 이전이나 건전한 외국 자본 육성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론스타가 지난해 매각한 강남 스타타워.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으로 챙길 수 있는 돈은 대략 4조5000억원.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 주식 3억2585만 주를 주당 4245원에 사들였다. 매입 원가는 1조3832억원이다. 국민은행은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50.53%)을 주당 1만5400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매각대금은 5조181억원에 달한다. 매각 차익만 3조6349억원을 챙긴다. 여기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2, 3대 주주였던 수출입은행(13.87%)과 코메르츠은행(6.48%) 지분을 싼 가격에 추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14.09%(9088만 주)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한 뒤 국민은행에 되팔면 6489억원의 차익이 발생한다.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환율이 1180원대에서 1000원대 이하로 떨어지면서 환차익 역시 2500억원가량을 거둬들일 수 있다. 결국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매각으로 2년6개월여 만에 투자 원금의 3배에 가까운 4조5000억원대의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로서 론스타가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을 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 지난해 스타타워 등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내지 않아 국세청으로부터 140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지만 못 내겠다고 버티고 있다. 더군다나 국세심판원에 국세청의 추징금 부과에 불복해 ‘심판청구’까지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추징금 1400억원도 내지 못하겠다는 론스타가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외환은행 지분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을 낼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이 론스타가 한국에 설립한 론스타코리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지사라는 점을 입증하면 과세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기업과 마찬가지로 25%의 법인세가 부과돼 론스타는 1조635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또 외환은행의 형식적인 대주주(LSF-KEB홀딩스)가 위치해 있는 벨기에를 조세 회피 지역으로 지정하면 국내법에 따라 소득세 등을 원천징수할 수 있다. 론스타는 총 매각대금(6조4179억원)의 10%인 6417억원을 원천징수당한다. 론스타가 환급받기 위해서는 국세청과 쉽지 않은 씨름을 해야 한다. 이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고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7월부터 적용된다. 만약 6월 말까지 외환은행 매각 절차가 끝나 버리면 과세가 쉽지 않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르는 또 다른 이유다. 지난해 1조9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달성한 외환은행이 무배당 원칙을 밝힌 점도 논란거리다. 겉으로는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가 대주주로서의 배당 차익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해 배당 압력을 높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론스타가 내부 유보를 높여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더 높이기 위해 자신들의 사소한(?) 이익을 포기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외환은행이 시중은행의 평균 배당성향인 10% 정도만 배당해도 론스타는 약 1000억원(세전)에 가까운 배당금을 챙길 수 있다. 론스타가 배당금보다는 매각 차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또다시 불거진 ‘금산법’ 논란
“금융·산업자본 분리원칙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박승 한은 전임 총재, 3월 15일) 뉴브리지캐피털에 이어 론스타까지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면서 국부 유출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이로 인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막고 있는 금융·산업 분리원칙 폐지 논란도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로 인해 국부가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살 때는 국내 금융기관은 이를 살 여력이 없었다. 더구나 대기업 등은 금산법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고 군침만 흘렸었다. 금융산업법은 산업자본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4% 이상 인수할 수 없다는 내용이 골자다.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산업 지배나 재벌의 은행 소유를 막기 위한 조치다. 박승 총재의 발언에 앞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역시 “앞으로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자본은 외국 자본과 국내 산업자본밖에 없는데 국내 산업자본이 밉다고 외국 자본에 은행을 내줄 수만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박 총재와 윤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외국 자본에 역차별 당해 오히려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재계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금산 분리원칙을 은행과 비은행으로 나눠서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은행법이나 보험법 등 개별적인 규제로도 충분히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윤 교수는 “지금은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200% 이하로 낮아 굳이 은행에서 돈을 조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은행을 소유해도 예전처럼 돈을 빼내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논란의 해결점은 쉽게 찾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덕수 부총리가 금산 분리 문제에 대해 “현재로서는 아무런 정책적 변화 가능성이 없다”며 박 총재의 발언을 일축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 역시 금산 분리원칙의 완화는 대기업의 순환출자 규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선진국 어디에도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며 “특히 외환은행 매각과정을 놓고 보면 윤 금감위원장의 금산 분리 완화 발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금감위는 외환은행 입찰에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DBS은행(옛 싱가포르개발은행)을 대주주(테마섹)가 산업자본이라는 점을 문제삼아 떨어뜨렸다. 외국 자본에는 금산 분리원칙의 잣대를 대면서 국내 자본만 풀어주자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석남식 기자·st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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