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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태에서 배울 교훈은] 정권 걸고 노동 유연성 확보 이유?

[프랑스 사태에서 배울 교훈은] 정권 걸고 노동 유연성 확보 이유?

프랑스 학생시위 사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가 노동법 개정으로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왜 최루탄을 맞아가며 거리로 나섰을까. 3월 내내 프랑스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최초 고용 계약(le Contrat Premiere Embauche: CPE)’법. 드 빌팽 총리가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야심작이다. 이 법안은 모든 기업들이 만 26세 미만의 젊은이를 고용한 뒤 첫 2년 이내에는 특별한 사유 없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드 빌팽 총리는 기업이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채용 부담을 덜어 청년 실업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미식 ‘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젊은이를 고용한 기업에는 3년 동안 사회보장 비용 부담을 면제하는 혜택을 주는 내용도 담겼다. ‘청년 실업과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드 빌팽 총리는 아마도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 이와 비슷한 제도를 통해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9월, ‘신고용 계약(le Contrat Nouvelle Embouchure: CNE)’ 제도를 시행했다. CNE는 직원 20명 미만의 기업은 취업 2년 이내 신규 취업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었다. 프랑스의 전체 실업률은 2000년대 들어 줄곧 10%가 넘었다. 하지만 지난해 연초부터 실업률 그래프가 아래로 꺾이기 시작했다. 연말에는 9.6%까지 내려갔다. 드 빌팽 총리는 “지난해 20명 미만의 기업에서 CNE 제도가 도입된 이후 28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밝힐 만큼 이 제도를 극찬했다. 프랑스 정부는 실업률이 한 자릿수로 내려간 것을 CNE 제도 덕택으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전체 실업률보다 더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난해 말 현재 프랑스 청년 실업률은 22.8%. 유럽연합(EU) 국가 중 가장 높았다. 결국 드 빌팽 총리는 CNE 제도의 성공을 발판으로 CPE 법안을 빼들었다. 그는 “프랑스 청년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년으로 EU 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두 배나 긴 시간”이라며 CPE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불안에 빠진 프랑스 노동계 하지만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드 빌팽 총리의 이런 구상은 빛도 보기 전에 꼬여 버렸다. 예비 취업자인 대학생들이 CPE 법안에 대해 고용 불안을 느끼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동계도 CPE 법안 추진이 30년 이상 유지돼온 노동시장 안정화 기조가 바뀌는 것으로 보고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사실 CPE 법안에 대한 학생들의 극렬한 반대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CNE 도입 때 이미 징조가 보였다고 할 수 있다. CNE가 도입되자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지난해 10월 4일을 ‘전국적인 행동의 날’로 정하고 반대시위를 벌였다. 이날 CGT 산하에서도 강성 노조로 꼽히는 인쇄노조의 파업으로 프랑스 일간지 대부분이 발행되지 못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 참가자 수만 50만 명(경찰 추산)에서 100만 명(노조 추산)에 이르렀다. CPE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이번 프랑스 학생 시위의 본거지가 된 소르본대 학생인 플로리안 루이(22)는 “프랑스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취업 기회가 많지 않아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기가 어렵다”며 “CPE 법안은 그동안 약자를 배려해 온 프랑스식 사회제도의 전통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35시간 근무제도 폐지 결국 최근 프랑스 사태를 고용 측면에서 본다면, 노동 유연성 확보와 고용 보호장치 제거라는 두 대립각의 충돌이다. 프랑스는 지난 30여 년 동안 고용시장 안정화 정책을 고수해왔다. 이웃 유럽 국가들이 노동 유연화 기류에 맞춰 정책을 추진해 온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런데 이제 와서 프랑스 노동계와 학생들은 정부가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한다는 데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90년대 말부터 실업 대책에 골몰했다. 35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것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드 빌팽 총리 역시 취임 때부터 실업률을 축소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해 왔다. 프랑스 내각은 경제지표 중 실업률을 가장 중시했다. 실업률 축소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하지만 35시간 근무제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 기대 이하의 효과만 거뒀다. 파이낸셜 타임스나 르몽드지는 한결같이 “35시간 근무제는 근로의욕 상실이라는 심각한 후유증만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 정책을 지휘했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2002년 대선에 쓴 잔을 마셨다. 결국 프랑스는 1998년 도입한 주 35시간 법정 근로제를 7년 만에 사실상 폐지했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22일 노동시간을 연간 최대 220시간까지 연장을 허용하는 법안을 찬성 350대 반대 135로 통과시켰다. 의회 다수당인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이 제안한 새 법에 따르면 주 35시간 근로제 원칙은 유지하되, 민간부문에서 노사 합의를 거쳐 주당 13시간까지 초과근무를 할 수 있다. 이 법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실업대책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고용조건의 완화, 즉 기업의 고용 유연성 확보를 꺼내들었다. 일단 직장을 갖게 되면 평생 자리가 보장되는 프랑스 사회의 고용 경직성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기업들이 고용의 부담을 갖기 때문에 일자리가 오히려 줄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에 고용 유연성을 주어 경제를 살리고 결과적으로 고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번 CPE 경우도 마찬가지다. 2년 동안 직원을 고용해 보고 고용주의 판단에 따라 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 많은 채용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고통 분담 합의 없어 더 반발 프랑스는 일단 취업한 사람은 ‘철밥통’이다. 반면 저성장 기조 속에 신규 취업은 대단히 어렵다.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직원 채용 후 해고할 경우 해고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면 75%가 승소한다는 통계가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취업하기는 미국보다 5배나 어렵지만, 직장인이 해고될 확률은 5분의 1로 낮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고용 유연성 정책의 대상을 약한 노동자, 신규 노동자로 삼았다는 데 있다. 여기서 반발이 생긴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 기득권 노동세력과 충돌을 피하면서 상대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기 쉬운 대상을 고른 셈이다. 20인 미만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CNE나 26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한 CPE를 통해 고용 유연성 정책을 도입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고통 분담의 원칙이다. 프랑스는 90년대 이후 저성장에 빠져 있다. 지난 10년 넘게 성장률이 OECD 평균을 밑도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1998~2001년에 2.1~4.2% 성장한 것을 빼고는 90년대 이후 거의 1%대 저성장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개혁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정부는 그 고통을 청년들에게 우선 돌리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대학생들이 “부모 세대가 누리던 안정을 왜 우리에게서만 빼앗아가느냐”고 반발하는 것이다. “왜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 자신들만 차별받아야 하나”라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살펴야 하는 것은 기존 기득권 노동세력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을 노동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은 가장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그들에게 밥그릇을 나눠먹자고 하기 힘드니, 아직 밥그릇을 챙기지 못한 청년들에게 고통을 안긴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로 우리나라 노동계도 연일 시끄럽다. 평균 실업률보다 2~3배가 높은 청년 실업률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 유연성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고통을 나누려는 사고의 유연성을 우리는 프랑스를 통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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