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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영상 마케팅] ‘이준기 방’‘정진영 방’주세요

[부안의 영상 마케팅] ‘이준기 방’‘정진영 방’주세요

정부도 마케팅을 한다? ‘마케팅’하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의 전유물처럼 느껴져 어딘가 생소하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전문가는 정부의 마케팅 활동을 백안시한다. 그러나 시대적 조류를 어찌할 것인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지방정부나 민간기업이나 마찬가지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던 지방정부들이 이제 내놓고 마케팅 작업을 한다. 누가 성공했나, 어떻게 성공했나. 「이코노미스트」가 그 성공사례를 찾았다. 편집자 "정진영 방 있나요?” “이준기 방 주세요.” 전남 부안군 시내에 있는 모텔 ‘블랙 하우스’에는 여느 모텔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손님들이 국내 영화사상 최대 히트작 ‘왕의 남자’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방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실인 6층 601호가 ‘이준기 방’ 특실인 608호가 ‘정진영 방’이다. 특실인 ‘감우성 방’(603호)과 ‘강성연 방’(303호)도 손님들이 자주 찾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모텔에 ‘왕의 남자’ 출연 배우와 촬영진이 머물렀던 때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배우·스태프 등 40여 명이 이 모텔 3층부터 8층까지 26개의 방을 썼다. 물론 여기에는 정진영·감우성·강성연·이준기씨가 머물렀던 방도 있다. “정진영·감우성·강성연씨는 특실을, 이준기씨는 일반실을 썼다”고 말하는 모텔 주인 곽덕림(36)씨는 “어디서 들었는지 손님들이 찾아 와 배우들이 썼던 방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곽씨는 3개월 동안 배우·스태프들과 함께 지내며 영화 속 ‘스타’가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의 그들을 봤다. 곽씨는 “반바지·트레이닝 복장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스타들의 모습은 한 편의 영화였다”고 그때의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모텔 구석에 딸린 주인방에서 주인과 배우들의 오붓한 술자리도 벌어졌다. “정진영씨는 카운터까지 봤다”고 한다. 서울 식당에도 스타들의 사인이 붙어 있으면 장사가 잘 된다. 하물며 부안 같은 외진 시골 모텔에 대스타들이 머물렀다면 그 자체가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주인은 스타들과 일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고객들은 곽씨의 ‘아주 특별한 경험’에 동참하며 즐거움을 나눈다.
“스타들과의 일상 체험 공유” “이준기씨를 처음 봤을 때는 여자가 너무 키가 크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진영씨는 소탈한 분이시지요. 술 한 잔 하다 손님이 오면 칫솔이나 면도기를 내주면서 손님도 받았어요. 물론 손님은 방 안을 볼 수가 없어 정진영씨인 줄 몰랐겠지요. ‘어서 오세요’ ‘편히 쉬세요’ 했던 분이 정진영씨인 줄 알면 놀랄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해 드리면 손님들이 정말 즐거워하시지요.” 블랙 하우스만 그런 자산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호텔이 없는 부안이라 숙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모텔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모텔에서 자야 하고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스타들이 전혀 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곳에 그들의 발자취가 배어 있다. 곽씨는 “몇몇 모텔이나 식당은 아예 방이나 식당 벽에 사인과 사진을 걸어놓았다”며 ‘스타들의 힘’을 새삼 강조했다. 부안이 이렇게 관광객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안 된다. 2000년 초만 해도 못 먹고 못 사는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산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천혜의 관광지 변산반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최대 시장인 수도권과 너무 떨어져 있었고 관광객이 없으니 개발의 손길도 미치지 않던 곳이었다. 호텔 하나 없으니 또 까다로워진 손님이 찾을 리 없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한때 10만 명이 넘던 인구도 6만 명으로 줄었다.
‘영상 테마파크’ 성공이 계기

▶부안영상테마파크 전경. 2002년 10월 건립이 결정되면서 부안 영상마케팅에 획기적 전기를 가져왔다.

부안의 변화는 2001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KBS는 종합사극 촬영 세트장 건립을 계획 중이었다. 2004년 KBS의 대하 사극 드라마 ‘태조 왕건’이 시청률 50%를 넘기며 ‘대박’을 치자 방송국에서는 사극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문제는 촬영 세트였다. 한 번에 많은 돈을 투자해 만든 세트를 일회성으로 끝내고 버리는 것보다는 돈을 더 쓰더라도 복원 형식으로 만든다면 반복해 쓸 수 있어 경제적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부안군은 이를 결정적인 기회로 봤다. ‘태조 왕건’의 촬영지 문경이 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지자체들 역시 촬영 세트와 관광지의 연계를 통한 높은 부가가치에 눈을 떴다. 2001년 말 부안군은 재빨리 촬영 세트장 유치 TF팀을 구성했고 2002년 단체장 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김종규 군수의 지휘 아래 본격적인 유치 활동을 벌였다. 부안 군민에게 촬영 세트장 유치는 숙원사업이었다. KBS는 2002년 10월 부안의 손을 들어줘 군민의 숙원을 풀어줬다. 부안영상테마파크는 부안 영상 마케팅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전라북도·부안군·KBS가 96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왕궁을 비롯한 서민촌, 양반가, 성벽, 연못 등을 조성하는 테마파크는 무엇보다 다른 촬영 세트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의 대부분 촬영 세트가 일회용이었던 반면 ‘테마파크’는 반영구적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왕궁의 경우에는 실물을 70%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고증까지 받았다. ‘테마파크’라는 이름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또 ‘테마파크’ 조성은 지속적으로 촬영을 유치할 수 있게 했다. 사극은 세트 없이 촬영이 불가능하다. 세트를 새로 짓느니 기존의 세트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촬영지로서의 성가를 높임으로써 사극 외에 일반 드라마나 영화 촬영도 가능해진다. 특히 변산반도는 개발이 안 된 지역이어서 자연미를 강조할 수 있는 곳으로는 여기 만한 곳이 없다. 2004년 9월 방송을 시작해 전국적인 화제를 끌었던 KBS의 대하 사극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다시 한번 부안의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서정술 부안군 주민지원과 영상지원 담당 계장은 “관광객이 말 그대로 물 밀듯 쏟아져 들어왔다”고 당시를 평가했다. 부안 인터체인지에서 40분이면 갈 수 있는 촬영지가 2시간이 걸렸을 정도였다. 수치도 서 계장의 말을 입증한다. 2003년 315만 명이었던 관광객 수는 2004년 360만 명으로 늘었고, ‘불멸의 이순신’이 피크에 오르던 2005년에는 700만 명으로 또다시 두 배나 증가했다.
‘불멸의 이순신’ 촬영장도 ‘불멸’
더 중요한 것은 ‘불멸의 이순신’이 끝난 지도 반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촬영지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3월 중순 평일이었음에도 전라좌수영 촬영지를 찾은 관광객은 얼추 100명이 넘어 보였다. 주차관리원은 “주말 관광객은 400명, 평일에도 200명은 온다”고 설명했다. 왜? 촬영 세트가 일회용이 아닌 실물 그대로인 데다 경치도 빼어나 ‘불멸의 이순신’의 명성 없이도 관광지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효과가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한번 촬영이 개시되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이 넘도록 묵는 촬영진들이 숙식을 해결해야 하고 개방·방영 중일 때의 홍보효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광객 수의 증가가 놀랍다. 지난해 한국은행 전북본부는 “2005년도 상반기 중 도내 초과환수액이 1079억원에 달했으며 이는 변산반도의 영화·드라마 촬영 세트를 찾은 관광객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부안 영상 마케팅의 성공사례를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인 부안군 기획감사실 최연곤씨는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위기의식이다. 최씨는 “2001년 말 지역경제가 특히 나빴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공무원 모두가 함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미지 전략이었다. ‘개발에서 소외된 낙후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천혜의 자연조건이 잘 보존된 지역’이라는 이미지로 바꾼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씨는 ‘리더십’을 꼽았다. “군의 수장이 직접 KBS 사장과 노조, 실무자들을 만나며 강력한 추진의사를 보여준 것이 유치에 큰 힘이됐다”고 평가했다. 부안은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연계상품 개발이 중요하다. 부안은 지난해 하반기 인기 드라마였던 SBS의 ‘프라하의 연인’을 촬영하며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 변산반도 남쪽 끝 고창군 접경지 촬영장 인근에 우포자연생태공원을 만들어 변산반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0’자형 관광벨트가 형성된 것이다. 관광객은 하루 코스로 영상테마파크~이순신 세트장~자연생태공원~석불산 영상랜드를 순회할 수 있다. 하지만 부안은 더 큰 계획을 갖고 있다. 테마파크 인근에 현대극을 촬영할 수 있는 오픈 세트를 추가하고 이순신 촬영장은 한옥 펜션단지를 포함한 체험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왜관거리로 등장한 세트에도 근·현대극 세트를 추가해 영화 촬영 공원을 건립한다는 계획도 있다. 여기에 영상 관련 인재를 배출할 ‘대학’이 더해지면 부안은 명실공히 ‘한국의 할리우드’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ㅣ김종규 부안군수

“영상대학 세워서 영상 메카 되겠다"
김종규 부안군수는 마케팅에 밝다. “지역 마케팅을 펼쳐 ‘명품 지역’을 만들겠다”거나 “자연도 리모델링 시대”라며 ‘자연 마케팅’을 강구하겠다는 생각도 있다. ‘숫자 마케팅’ 전략도 갖고 있다. “새만금이 33km이니 매년 3월 3일을 기해 ‘3·3 마케팅’을 펼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마케팅을 전공했거나 그 방면에서 일한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치단체장을 준비하다 보니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 군수는 “부안은 영상 마케팅으로 성공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촬영 세트 유치를 강화시켰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부안군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지만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또 이미지가 너무 정적이지요. 자연조건을 활용하며 이미지를 동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영상 마케팅’을 선택했습니다.”

특별히 마케팅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행정의 패러다임이 바뀐 때문입니다. 정부의 서비스행정보다는 경영행정을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지역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데요, 민간기업과 같은 직접적인 이윤보다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기업가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족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불멸의 이순신’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했습니다만 젊은층이 빠져 있었습니다. 마케팅 차원에서 이들을 끌어 모을 필요가 있었지요.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적극 유치한 것도 이 때문이었지요.”

향후 부안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영상의 메카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트장 유치로 인한 관광객 증가에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현재 도립영상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사되면 이곳 출신 인재들이 부안을 이끌며 명실상부한 영상 메카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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