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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싸움 관리 못하면 ‘부메랑’

파벌싸움 관리 못하면 ‘부메랑’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파벌싸움’에서 기업들은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사실 파벌 문제는 기업들에 ‘남의 일’만은 아니다. ‘사내 정치’‘누구 누구 라인’이라는 말은 일상어에 가깝다. 모두들 밝히기를 꺼려서 그렇지 특정 파벌이 없는 기업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특히 파벌은 합병 기업에서 두드러진다. 다른 두 조직이 물리적·화학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파벌 형성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래서 회사가 통합될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이 ‘파벌을 용서치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출범한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통합 초대은행장인 신상훈 행장도 출범식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이런 메시지를 강조했다. 신 행장은 “출신에 따른 차별과 틈을 벌이는 파벌문화가 일절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파벌은 왜 생기는 것일까. 파벌의 결과는 무엇일까. 과연 파벌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 최근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에 대한 힌트를 준다.
생산적인 파벌이면 좋다 한국 쇼트트랙의 파벌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 간의 파벌다툼으로 보지만 속사정은 더 복잡하다. 쇼트트랙의 대부로 불리며 과거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었던 전 감독 A씨와 빙상연맹의 고위 간부 B씨 간의 끊임없는 알력싸움이 그들의 제자들로 이어지면서 엉뚱하게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의 파벌싸움으로 번지게 됐다는 게 빙상계의 정설이다. 수년 전부터 코칭스태프 선임 문제를 놓고 선수들이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고, 동계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을 놓고 학부모 측과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대립각을 세우는 등 끊임없는 불화에 몸살을 앓았다.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녀 쇼트트랙 대표팀은 훈련기간에 파벌로 나뉘어 따로 훈련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일부 남자 대표선수들은 특정 코치의 선임에 반대한다며 입촌을 거부하기도 했다. 파벌싸움으로 대표팀 코치가 1년 사이에 다섯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팀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경기나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거림을 받던 쇼트트랙팀은 일순간에 국민적인 환호를 받았다. 파벌싸움에 대한 따가운 논쟁도 봉합되는 듯했다. 문제는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업이건 쇼트트랙 대표팀이건 조직 내에서 갈등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생산적인 갈등이라는 것도 있어서다. 부서 간(혹은 파벌 간) 경쟁을 통해 오히려 순기능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번 토리노 올림픽에서의 성과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생산적 갈등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서로 더 잘하려고 하니, 더 좋은 성적을 낸 것이다. 두 파벌의 대표선수격이던 안현수와 이호석 선수가 남자 5000m 계주에서 협력해 금메달을 딴 것이 좋은 예다. 이때 만약 빙상협회가 기회를 살려 두 파벌 간 누적된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와 같은 추태는 연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관리자의 역량이 부재했던 결과다. 이와 관련해 강진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갈등관리, 조직 경쟁력 강화의 첩경’이라는 보고서에서 “조직 내 갈등은 관리되지 않으면 당사자 간의 질시와 반목 등 부정적인 감정 표출을 유발시켜 소모적 갈등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갈등 생기면 최대한 빨리 해결” 더 중요한 것은 신속한 대처다. 파벌 간이든 부서 간이든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면 최대한 빨리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갈등의 해결이 늦어질수록 해결을 위한 수고는 더 커지게 되고,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쇼트트랙 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2003년 말 구타 파문이 있었을 때 연맹에서 파벌 문제도 함께 정리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최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악의 추태를 벌이고 말았다.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끼리 밀어서 금메달을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코치가 다른 나라에 금메달을 줘도 좋으니, 국내 다른 선수를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모 선수의 인터뷰가 공개되기도 했다. 팀 자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기업 내 파벌싸움 역시 방치할 경우 비수가 돼 돌아올 수 있다. 검찰발 한파가 불어닥친 현대자동차가 그런 경우다. 현대자동차 수사의 ‘딥스로트’(결정적 내부 제보자)가 사내 파벌싸움에서 밀린 고위 임원 출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에 보내진 현대자동차 관련 투서에서도 “모 임원들이 그룹 내에서 워낙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앞뒤 가리지 않고 이들만 쳐다보며 목숨을 거는 세력들이 생겨났다”며 파벌싸움에 대한 강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파벌은 일종의 ‘밥그릇 싸움’이다. 쇼트트랙팀이 전형적인 예다. 빙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쇼트트랙은 한국 동계올림픽 종목 중 유일한 금메달 종목이어서 이에 따른 이권다툼과 반목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나라에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종목이기 때문에, 상황이 열악한 다른 종목과 달리 일단 태극마크만 달게 되면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아주 높다. 금메달을 따게 되면 남자 선수에게 필수인 병역면제는 물론 다양한 포상제도의 혜택이 뒤따른다. 토리노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안현수와 진선유의 경우를 보면 각각 3억원 이상의 포상금을 받았고 여기에 앞으로 받아야 할 연금과 매년 순위에 따라 세계빙상연맹에서 주는 포상금을 합치면 그야말로 로또 대박을 맞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혜택은 큰데 합리적인 선수 선발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으니 부정과 승부 조작, 특정 코치의 입김이 선수 선발을 좌지우지하는 일 등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진병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기 사람 챙기기와 잠재적 경쟁자 가지치기는 유능한 경영자를 육성하는 것을 막는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자기 사람 챙기기가 횡행하면 구성원들은 실력을 쌓기보다는 리더에게 충성하는 데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줄서기가 강요되고, 정적을 쳐내듯 반대파가 제거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편의주의적인 조직 운영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장의 실적을 위해 갈등을 덮고, 편의적으로 사람을 배치하는 것도 좋은 관리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빙상연맹이 그런 경우다. 빙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서로 나뉘어서 훈련하는 파벌끼리의 경쟁이 올림픽에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파벌싸움이 밖으로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선수들에게 끌려다니다 보니 결국 스스로 발등을 찍는 우를 범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업 내 파벌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알게 모르게 파벌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관리가 중요하다. 파벌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다음에는 경영자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한쪽은 승리하고 패자는 조직을 떠나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이때 기업은 떼밀려 나간 이들로 인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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