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진입 위해 맨 먼저 풀어야
선진국 진입 위해 맨 먼저 풀어야
"지금 같은 노사관계로는 소득 3만 달러는커녕 2만 달러 진입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쏟아져 나온 말이다. 오피니언 리더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노사 갈등’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모두 78명이 답했다.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20.5%가 ‘노사 갈등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순위로는 여섯 번째다. 아니나 다를까. 연초 개각 때 노동부 장관이 바뀌고 노사 환경도 적잖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노사 갈등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 파업으로 대기업들의 물류에 비상이 걸리는가 하면, 3월 초 나흘 동안 파업을 벌였던 철도공사 노조도 사측이 협상에 소극적이라며 재파업을 벼르고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과 GM대우차 창원공장에서도 분쟁이 일고 있다. 4월 춘투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갈등을 풀 대화 채널은 쉽사리 가동되지 않고 있다. 노사정 회의가 우여곡절 끝에 재가동에 들어갔으나 민주노총이 불참해 반쪽 회의에 그치고 있다. 노사 간 의견 차이가 쉽게 좁혀지기 어려운 구도가 돼 노동계 관계자들도 노사정 회의의 앞날을 어둡게 보고 있다. 3월 31일 본 위원회 회의가 열렸으나 노동계 주변에서는 민주노총의 반발 때문에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부터 나돌고 있다. ‘사회적 협약기구’인 노사정 회의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경우 당장 비정규직 법안 처리도 쉽지 않고 노사관계 선진화법을 둘러싼 마찰도 예상된다. 재계 역시 올해 노사관계를 불안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경총이 1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노사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이 무려 75%나 됐다. 55%가 ‘지난해보다 불안해질 것’으로 봤고, 20%는 ‘훨씬 더 불안해질 것’으로 답했다. 노사정 협상 전망도 매우 어둡고, 분규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칫 올 한해가 ‘갈등 증폭의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까지 있다. 이처럼 불안감이 높은 것은 노사정 모두 올해를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 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철도파업에서도 불거졌듯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고, 노사관계 선진화법 역시 올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노사관계 선진화법은 향후 노사관계를 결정지을 핵심 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진입을 위해서는 노사관계부터 선진국 수준에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선한승 한국노동교육원장은 “2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한 최대의 장벽이 노사문제”라며 “노사관계 선진화법은 노사관계의 지형을 바꿔 새 질서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향후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느냐, 아니면 지금과 같이 투쟁적이고 소모적인 구태를 되풀이할 것이냐가 올 한 해에 결정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사실 노사 갈등은 한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취약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평가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 경쟁력은 60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2004, 2005년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2003년에는 끝에서 두 번째인 59위였다. 노사관계가 그만큼 적대적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노조의 파워는 ‘세계 최강’으로 꼽힌다. 자칫 대형 분규가 발생하면 지역 경제가 위축되고,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며, 민생의 불편도 늘고, 나아가 경제 전체의 활력도 떨어진다. 대외적으로는 국가 이미지가 추락하고, 다국적 자본의 국내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한국 투자를 고려할 때 노사문제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국내 대기업에서 분규가 발생하면 해외 주요 언론들이 다투어 톱뉴스로 보도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1990년대 들어 줄어들던 노사분규 건수는 2000년대 들어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하루빨리 고쳐야 할 최우선 과제로 노사 갈등이 꼽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코노미스트」의 이번 오피니언 리더 조사에서도 “노동운동이 경직화하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산업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 가능성도 저해된다” “합리적인 노사관계 없이는 안정적인 경제 발전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의가 2월 일반 국민 4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에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노사 갈등 등 기업 환경’이 첫 번째(27.1%)로 꼽혔다.
2만 달러 시대 최대 장벽
노사 간 갈등구조가 고착화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인사와 노사 분야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복층화가 가속되고, 비정규직·공무원 노조의 본격적 활동으로 노사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또 인력구조의 고령화·다양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며, 주 5일제 확대 시행으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둔감한 준법의식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선한승 노동교육원장은 “법의 아노미 현상(무규범 상태)이 만연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동운동의 경우 법을 지키지 않고 투쟁하는 것이 법을 지키는 것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개인 경력 관리에도 도움이 되다 보니 ‘지키면 손해’라는 의식이 폭넓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 현장에서는 투쟁 경력이 많은 이들이 더 대접받는 경우를 손쉽게 볼 수 있다. 준법의식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는 것이다. 노동계가 기업 중심의 활동으로 조합원의 권익을 늘리는 것보다는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국회의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등 정치성 짙은 활동을 하는 것도 갈등 확산 구조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기업 역시 갈등구조를 증폭시키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노사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대편을 압박한다. 경총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이들의 임금을 정규직 수준으로 높일 경우 기업의 추가 부담이 연간 42조6000억원이며 이 가운데 39조7000억원이 중소기업 몫이 될 것이라는 자료를 최근 내놓기도 했다. 이런 갈등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사문화가 절실하다. 방향은 ‘상생’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 이견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3월 28일 대한상의에서의 특별 강연에서 “노사 간 상생 협력”을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노사관계 선진화법 역시 이를 위한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더 이상 미루기도 어렵게 돼 있다. 문제는 풀어가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가 대화다. 양보와 타협을 통해 사회 통합의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쪽짜리 노사정 회의는 하루빨리 정상화돼야 한다. 민주노총도 대화 채널에 참여해 성실한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노든 사든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나서 얻을 것은 얻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기업에 대해서는 아직도 폭넓게 남아 있는 가부장적 노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연구위원은 “노조는 명분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실리적 노사관계를 추구해야 하며, 기업은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에 솔선수범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 역시 법·제도와 인프라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 및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영 경총 회장은 “노사 상생은 단순한 비전 정도가 아니라 이루지 않으면 안 될 절실한 과제”라며 “노사 어느 쪽에 유리한지를 따지지 말고 이제는 크게 합의해 노사관계의 국가적 모델을 만들자”고 말했다. 서로 불만이 충돌하는 지금 같은 노사관계를 버릴 때 선진국 진입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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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달러 시대 최대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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