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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BIZ 시네마] 大作‘징기스칸’은 끝내

[임준수의 BIZ 시네마] 大作‘징기스칸’은 끝내

영화 이상으로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한 원로 영화인이 홀연 우리 곁을 떠났다. 풋내기 감독 시절엔 아름다운 여배우를 아내로 맞는 행운을 누렸고 중년기엔 전국의 ‘고무신 부대’를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스크린의 마법사로 명성을 떨쳤으며, 늘그막엔 살벌한 독재 나라에 납치를 당해 억지로 영화를 만들다가 탈주에 성공한 풍운의 사나이-. 지난 11일 타계한 신상옥 감독이 그 사람이다. 신 감독의 인생 유전은 탈주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마수를 벗어나자 미국 망명생활이 시작됐고 10여 년 만에 그리던 고국을 찾았으나 싸늘한 눈초리에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02년 영구 귀국 후부터는 일이 좀 풀리는가 싶었지만 이미 80 고개에 넘어선 그의 쇠잔한 건강은 4년 이상 이승에서 머물 수 없게 했다. 최인규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뒤 1952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악야(惡夜)’를 연출하여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될 때까지 7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평양 억류생활 중에도 7편의 북한 영화를 만들었으며, 86년 탈북 이후 미국 체류기간에도 메가폰을 놓지 않았다. 여생을 고국의 영화 발전에 쏟겠다는 생각으로 귀국했을 당시 신 감독은 이미 70대 중반을 넘은 상태였지만 나이란 그에게 숫자에 불과했다. 안양에 영화 아카데미를 세워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필생의 대작 ‘징기스칸’을 제작하기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의 야심작은 꿈으로 끝났고 소품으로 만든 ‘겨울 이야기’만 유작으로 남게 됐다. 신상옥 영화의 재미에 흠뻑 빠졌던 이들이 가장 잊지 못하는 영화는 아마 ‘성춘향’일 것이다. 61년 신 감독이 36세 때 아내 최은희를 주연 배우로 세워 라이벌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맞선 흥행 대결은 한국 영화사의 전설로 남아 있다. 당시 홍 감독은 아내 김지미를 출연시켜 한판 승부에 나섰으나 결과는 신 감독의 압승이었다. 국내 영화계의 쌍벽이었던 두 감독과 당대 최고의 두 미녀 배우가 짝을 이루어 부창부수의 대결을 벌인 것 자체가 장안의 화제였다. 불과 수백m 간격을 두고 두 명문 개봉관 국도극장과 명보극장에서 벌어진 ‘성춘향’과 ‘춘향전’의 대결은 두 감독에게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서울 관객 38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신 감독은 이후 10여 년간 난공불락의 아성을 쌓으며 한국 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다. 61년에 내놓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한국 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상록수’는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칸영화제(2003년) 회고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가 북한에서 만든 ‘불가사리’는 고려시대 민담을 담은 것으로 2000년 서울에서 개봉돼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북한 영화 1호가 됐다. 신상옥 감독은 남북한의 두 독재자와 한때 두터운 친분 관계를 맺고 영화를 만든 특이한 경력도 있다. 유신 이전까지는 개봉 안 된 자신의 영화를 미리 보여줄 만큼 박정희 대통령과 친했으며 북한 체류 중엔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영화 제작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타고난 영화인이었던 신상옥은 비즈니스에 대한 열정과 감각도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66년 안양촬영소를 인수하여 설립한 ‘신필름’은 당시 한국 최대의 영화사로 우리나라 첫 메이저 스튜디오형 회사라는 기록이 있다. 신 감독은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제작, 편집, 각본, 연출, 기획 등 영화 제작의 분업 시스템을 갖추고 직접 조직의 전문성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제작을 PD에게 맡기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신필름 설립 이후 승승장구하던 신상옥은 75년 뜻밖의 액운에 걸려 자신의 평생 꿈이 담긴 영화사가 문을 닫는 비운을 맞는다. 영화 ‘장미와 들개’의 예고편에 검열 미필 장면이 삽입되었다는 이유로 군사 정부로부터 등록 취소를 당한 것이다. 이때 큰 충격을 받은 신 감독은 국내의 검열망을 피해 홍콩에 영화사를 차릴 계획을 세웠으나 그에게 결과적으로 따라붙은 것은 납치-탈출-망명 등 기구한 인생 유전이었다. 미국 망명기간에도 신상옥의 영화사업에 대한 정열은 식을 줄 몰랐다. 90년대 초 할리우드를 무대로 독립영화사를 차린 그는 가족영화 ‘닌자 키드’ 시리즈를 제작해 적잖은 성공을 거두었고 KAL기 폭파사건을 다룬 ‘마유미’와 김형욱 실종사건을 다룬 ‘증발’ 등 민감한 소재의 영화를 만드는 노익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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