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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인터넷 세상’을 가다

노인들 ‘인터넷 세상’을 가다



“나이야 가라!” 24시간 사이버 서핑

잠을 잊은 老티즌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은 지금 한국에서 제3의 매체에서 실질적으로는 신문·방송을 압도하는 제1 주류 매체가 되고 있다. 이 정보 혁명의 바람은 잠자던 노년 세대까지 흔들어 깨웠다.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은퇴 노년 세대는 24시간 컴퓨터의 키를 두드려 대고 있다. e-메일, 카페, 블로그를 통한 그 사이버의 세계에서는 도대체 무슨 콘텐트가 교신되고 있을까. 이제는 특수한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이들 ‘노(老)티즌’의 세계를 탐색해 본다. 노티즌이야말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다. 잠이 없으니 새벽 2시에도, 4시에도 자판을 두드린다. 아름다운 시와 그림과 음악이 넘친다. 노티즌들이 주고받는 영상물들은 품격이 있다. 인생을 그만큼 살아온 연륜이 콘텐트에 묻어난다. 이해인의 시, 법정의 가르침, 그리고 ‘좋은 생각’ ‘아름다운 글’은 단골 메뉴다. 베토벤과 쇼팽이 부활하고 패티 페이지의 ‘체인징 파트너’는 젊은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인기 품목은 ‘야-그’다. 웃기는 소리를 잘들도 쏘아 올린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기 품목이었는데 최근에는 이해찬 국무총리, 최연희 의원, 이명박 시장이 뜨고 있다. 노티즌들이 만든 작품이 아니라 대부분 여기저기 소스에서 퍼온 것들이다. 그래서 ‘제공’ ‘전달’ ‘옮김’ ‘아무개 올림’이라는 오프라인 시대의 용어가 등장한다. 하도 말이 많으니 지적 소유권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뉴스도 가끔 등장한다. 생생한 뉴스라기보다는 논평들이다. 우파 진영의 지만원, 조갑제의 메시지와 김동길의 규탄이 자주 등장한다. 표적은 김대중과 노무현. 으레 장중한 음악이 시그널이 되면 ‘보수의 목소리’가 전개된다. 그러나 노티즌의 사이버 세계가 엄숙주의라고만 생각하면 오판이다. ‘파격’도 많다. 이 세계에서 인기 품목의 하나는 ‘조심!!’이라는 암호로 시작되는 포르노성 사진들이다. 등장하는 모델들은 주로 일본 여성. 은밀한 곳까지 아주 까발린다. 요즘은 중국 미녀(?)도 자주 등장한다. 김홍도가 그린 춘화도, 일본 사무라이들의 성 민속화 등 업그레이드된(?) 작품들도 선보인다. 카페나 블로그, 메일로 띄우는 콘텐트는 삼위일체여야 한다. 그림이 좋아야 하고 글의 내용이 좋아야 하고 선곡이 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 3초도 안 가 ‘삭제’다. 또 완성도가 높아야 유통이 잘 된다. 전달 횟수를 알리는 ‘FW’가 여러 개 겹쳐 나오는 콘텐트일수록 흥미를 갖게 한다. 노티즌들도 게임을 한다. 고스톱, 포커, 바둑 등. 그런데 기계식 게임에 익숙지 못하고 젊은 게이머들의 스피드가 빨라 골탕을 먹기 일쑤다. 게다가 채팅 창을 통해 상대가 약을 올리면 혈압이 높아진다. 기원 급수 4급인 한 바둑 애호가는 인터넷 게임에서 10급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 1년이 걸렸다. 블로그를 만들고 메일을 띄우는 작업은 엄청나게 시간을 소비한다. 돈이 생기는 작업이 아니지만 노티즌들은 기꺼이 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백수가 과로로 쓰러진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미국 LA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수년 동안 메시지를 쏘아 올리던 T씨는 지난 3월 중순 돌연 한 장의 사과문을 띄웠다. 잠시 작업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하루 소화 물량이 50건. 그러다 보니 과로에 건강까지 나빠져 다운된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려대도 아직 그의 메일 박스에는 1000건이나 밀려 있다고 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클릭 클릭’

인터넷은 내 친구

▶M형이 보낸 시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의 이미지 사진.

새벽 5시. 하룻밤 사이 54건의 메일이 밀려 있다. ‘받은 편지’의 첫 번째 화면에 뜬 것은 토머스 데커의 아름다운 그림. 배경 음악도 졀立?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대표 화가 엘리엇 버질의 인상적인 빛과 그림자가 이어지고 중국 화가 지아 루의 여체는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다음’을 클릭했다. 기분 잡친다. 광고다. 그것도 미국에서 쏘아올린 재테크 선전, 상품 선전. 최고급 롤렉스 시계를 200 몇십 달러만 주면 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스팸을 차단했는데 어떻게 들어왔을까. 또 나온다. 이번에는 국내. ‘쇼킹 할인 찬스 드디어 왔다’란다. 오긴 뭐가 와. 다음 페이지. M형의 메시지. ‘이승에서 즐거운 자 저승에서 즐거우니…’. ‘봄은 하늘의 뜻이 자연에 따르는 계절…’. 폴 모리아 오케스트라의 ‘종달새’가 흐르고 연못 속에서 오리 세 마리가 놀고 있다. 지난 겨울 양재천에서 놀고 있던 오리 일가족이 생각난다. 찰칵! 클릭. 멜로디가 흐른다.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어느덧 사라진 청춘 시절. 가슴 속 깊은 곳 아련한 향수.
“최연희 인권은 어디에…” 다음 화면. 어! 이건 무슨 제목? 일본 시골 사찰에 모셔진 안중근 의사? 혼슈 북쪽 미야기(宮城)현 구리하라(栗原)시 다이린지(大林寺) 전경. 부처님 옆에 특이한 제단. 영정 세 장이 현시되어 있는데 지바 도시(千葉十七) 부부와 안중근 의사. 일본 헌병 출신 지바는 감옥에 있던 안 의사의 인격과 애국정신에 감복하여 전쟁이 끝난 뒤 고향에 안 의사의 위패를 모셨다는 인물이다.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휘호가 걸려 있는데 안 의사의 예의 손바닥 낙관이 선명하다. 해묵은 사실도 컴퓨터가 있어 또다시 생생하게 재현된다. ‘역사는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맑은 바람’이란 ID의 사람이 한 줄 댓글을 덧붙였다. “안 의사의 생애를 돌아보면 마음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다음 화면. 부부 간의 지혜로운 화해를 다룬 에피소드. 노부부가 싸움하고 서로 말을 안 해 할아버지는 답답하다. 할머니는 빨래만 차곡차곡 개키고 입을 열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그 광경을 보다가 “옳지”하고 무릎을 치고는 열불나게 장롱을 뒤지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속으로 “저걸 누가 다 치우라고…”. 참다 못해 한 마디. “도대체 뭘 그렇게 찾수?” 그러자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목소리지. 이제야 찾았네.” 글쎄…. 엽편 소설(짧은 소설) 같다. 그런데 저 노랫소리는? 폴 앙카다. 이 메시지에는 잘 안 어울리는 노래인데…. 하긴 ‘유아 마이 데스티니’였으니. 너는 내 운명이라…. 드디어 ‘주의!!’가 나왔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여체가 화폭이 되어 화조화, 산수화가 어우러져 있다. 하긴 여체 위에 초밥까지 얹어 놓고 먹는 엽기 사진도 등장하는 판국이니…. ‘조심!!’이 나오면 이 분야의 사진 전달에 원조격인 C군이 생각난다. 여러 노티즌에게 야단을 맞고 “이제 이 작업을 그만 접는다”고 고별사까지 띄우더니 얼마 안 가서 다시 예의 미녀 화첩을 복원했던 그다. ‘거시기 그림’이 없어지니까 심심해졌다는 반론들이 만만치 않자 조심스럽게 조금씩 띄우게 되었다는 ‘재개의 변’을 올렸다. 다음은 ‘보수들의 목청’시리즈다. 김동길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보기 싫은 사람 김대중이야. 엉, 거짓말만 잘하는 사람이지. 뭐, 김정일이가 사려 깊은 인물 어쩌고 엉?” 얼마 전 국민행동본부 행사장에서 한 연설. 메일 전달자는 자기와 코드가 맞았는지 “시원합니다”란 제목을 크게 붙여 놓았다. 다음은 토론 방. ‘최연희의 인권은 어디로 실종되었나’가 제목이다. “그렇게 인권을 들이대던 시민단체와 여당이 인권을 마구 짓밟고 있다” “국회의원은 선출직이지 임명직이 아니다. 옷 벗기려면 주민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주민소환제를 도입하는 게 민주적이다” “마녀사냥이다”. 제도권의 여론몰이와는 다른 방향이다. 그러다가 문제의 핵심을 집어낸다. ‘언론의 접대 유착증’이란다. 여기자의 귀책사유로까지 튀어 오른다. “자유당 때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피해자들의 고소를 다룬 재판에서 판사가 한 말이 있다. ―정조는 지킬 가치가 있을 때 보호받을 수 있다―.” 상상은 자유겠지만 비약이 좀 심하다. 이러다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접대를 자신들의 특권으로 알고 있는 수구꼴통(언론)이야말로 언론계가 자진해서 퇴출시켜야한다.” 성추행이 아니라 ‘언론사건’이라는 주장이다. 엄청난 댓글이 이 토론 뒤에 꼬리를 물고 있다. 내용을 놓고 보면 어느 것이 보수고 어느 것이 진보인지 헷갈린다. 인권 하면 진보인데 결과적으로는 최연희 의원을 방어해 준다는 측면으로 보면 보수꼴통이고….
세계 명승지 ‘눈요기 관광’ 돌연 화면에 베네수엘라의 카나이마 국립공원이 뜬다. 시야도 생각도 이런 식으로 급회전하는 게 사이버의 세계다. 3만㎡의 이 공원은 장엄한 자연 조형물로 유명하다는 소개. 희귀동물의 서식지로 뛰지 못求?개구리가 있단다. 언론계 출신 K군은 벌써 12번째로 세계 명승지를 ‘눈요기 관광’시켜주고 있다.

▶중국 화가 지아 루가 그린 아름다운 여체.

다시 국내로. 이번에는 북한 관계가 연이어 대기하고 있다. 우선 가벼운 지식부터 소개된다. 차양은 짧고 뚜껑 부분은 엄청나게 커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 여자 경찰 스틸 사진. 남색 치마, 검은 단화, 흰색 재킷에 파란 넥타이, 군인 같은 계급장. 정리해야 할 자동차가 눈에 보이지 않아 약간 어색해 보이는 풍경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남쪽 남자 교통경찰이 끼고 있는 검은 안경. 그쪽 여자 교통경찰도 예의 검은 안경이 심벌처럼 되어 있다. 교통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엄격하단다. 사고로 사람이 다치면 벌금에다 6개월에서 1년간 면허정지다. 사고로 사람 죽으면 강제수용소행이다. 술은 물론이지만 운전 중 담배를 피워도 면허정지다. 음주 측정은 기계가 아니라 냄새로 판별한다. 하지만 걸려도 도망갈 구멍은 있다. 고급 담배나 술로 무마할 수 있다. 북한 생활 지식에서 화면은 싹 바뀌어 ‘김일성 시신 궁전’이다. 분통이 터진 메신저는 이렇게 감정을 표출한다. “음악을 넣을 가치도 없어 (음악을) 안 넣었다.” 외부와 내부를 공개한 북한 인터넷 사진을 퍼온 것이다. 총 부지 면적은 350만㎡. 앞마당은 군중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시신 접견 때는 정장이 아니면 입장 불가다. 탈의실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 메신저가 붙인 제목은 ‘300만의 생명과 바꾼 김일성 시신 궁전’ 8억9000만 달러가 이 궁전 짓는데 들어갔는데 이 돈이면 당시 국제 가격으로 강냉이 600만t을 수입할 수 있는 금액이다. 2300만 인민이 3년간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한편에서 300만이 굶어 죽어갔다는 분노의 메시지다. 다시 이어지는 분노. “생선은 더 모어 더 베터”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의 메시지도 들어보자. ‘김정일과 공조하는 자는 공멸할 것’이라고 썼다. 탈북자 영화인 정성산의 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인 듯하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뮤지컬을 봐주는 게 신앙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호소한다. 또 다른 소스의 ‘요덕 스토리’는 뮤지컬의 주요 장면과 내용을 소개했다. 이야기는 조선인민군 경비대 제2915부대와 수용소다. 굶주림, 공개 처형, 아버지를 채찍으로 내려치는 아들…. 처참하고 비인간적 행태가 횡행하는 세상이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독재 하의 아르헨티나 살인부대 같기도 하고 독립기념관에서 본 일제의 만행과 너무도 흡사하다. 분노를 넘어 가슴이 떨리며 눈물이 돈다. 이것이 이 땅의 또 한쪽, 불과 몇 시간만 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이 뮤지컬은 관객이 밀려 재공연이 예정돼 있다. ‘반북’의 기류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예비역 육군 병장’이란 이름으로 규탄한다. ‘반역자들아, NLL(북방한계선)은 단 1mm도 내 줄 수 없다!’ 3월 초에 열렸던 장성급 회담이 표적이다. 3주 동안 끈질긴 인터넷 공세가 계속됐다. 표적은 더 깊이 역사 속으로 쑤시고 들어간다. ‘나는 왜 김구 사냥에 나섰는가’. 제목이 심상치 않다. 역시 ‘지만원 칼럼’이다. 아주 긴 글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독파한다. 글이 길어지면 인터넷에서는 접속 기피지만 그 논리가 궁금해진다. 지씨는 이렇게 설파한다. ‘김구는 상놈이다. 동학 접주를 했다. 동학이면 왕정 반대쪽이다. 그런데 명성황후 죽인 놈을 죽였다고 한다. 그래 그 왜놈이 할 일이 없어 황해도 구석까지 와 맞아 죽었단 말인가. 황해도에서 농민단체가 난동을 부리니까 안중근의 부친 안태훈이 의병을 일으켜 토벌을 했다. 그때 김구는 양반 토호 안태훈의 식객이 되었다. 이건 변절이다. 상놈이 양반에게 붙었다는 논리다. 해방이 되자 김구는 적장(김일성)과 내통해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을 사사건건 반대했다. 그런데 지금 이승만과 박정희 위에 김구를 올려놓고 있다. 왜? 대한민국에 반역자의 공화국을 세우자는 것이다. 보수우파도 갈 데까지 가기로 했나? 아무래도 ‘역사 바로 세우기’가 빚어내는 부산물 같다. 조갑제의 메시지도 있을 터인데…. 역시 있다. 그런데 메시지가 점잖다. ‘일류 국가들의 습관’. 그 공통점 추출이 흥미롭다. 하나 깨끗한 화장실, 둘 낮은 목소리, 셋 역사 인물들의 동상, 넷 친절과 절도, 다섯 간소한 옷차림, 여섯 일은 즐겁게, 일곱 보통 국민도 글을 잘 쓴다, 여덟 경찰에게 대드는 자가 없고 경찰도 듬직하고 친절하다. 한국도 대만이나 이스라엘과 더불어 선진 문턱에 있으니 근대화, 선진화 하자는 점잖은 제창이다. 이래저래 조갑제는 보수의 위안이다. 세상사에 머리 무거워진 걸 위로함인가. 빈 심포니의 연주곡 ‘사랑의 힘’이 흐른다. 뒤이은 ‘오늘의 야-그’. 늙은 아내는 귀가 먹었다. 저녁 퇴근한 남편 “오늘 저녁은 뭐야?” 아내 “……”. 대답이 없으니까 남편이 또 묻는다. 그래도 대답이 없다. 가까이 가서 아내 등에 손 얹고 남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오늘 저녁 뭐지?” 아내는 “칼국수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요?” 반전효과가 웃긴다. 그런데 가슴이 아리다. 진짜로 아내는 자식들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더니 한쪽 청력을 잃고 있다. 다시 그림이 뜨고 패티 김의 노래 ‘가시나무 새’가 흐른다. 빈이 나오고 우울증 극복하는 십계명도 나온다. 단것 먹지 말고 담배는 싹둑 자르고 생선은 ‘더 모어 더 베터(the more the better)’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내가 띄운 메일이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미국을 한바퀴 돌고 온 편지는 ‘일장춘몽’이다. 부귀영화 다 한바탕 꿈이라. 그래 허망하다는 게 아니고 그걸 알고 사는 게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이란 어느 분의 말씀이 그 내용이다. M형이 보낸 메일이 편집이 잘 되어 있어 동창 C군에게 보냈는데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한바퀴 돌고 불과 하루 만에 되돌아 왔다. 오늘의 에필로그는 전날 새벽 4시에 띄운 M형의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이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 수채화가 한 폭이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까지 / 오랜 세월 하나가 되어 / 황혼까지 동행하는 사랑 /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가. 오랜만에 시류를 타고 다시 나온 혼혈 가수 함중아가 노래를 부른다. ‘내게도 사랑이 있었다면…. ’ 컴퓨터가 있어 노티즌의 황혼은 바쁘지만 풍요롭다.


老티즌 세계에 화제가 됐던 블로그 한 페이지

생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작품’
빈 배 한 척이 외로이 떠 있는 흑백 사진 한 장. 그리고 시가 흐른다.
나 이제 저자에서 돌아가리 갈잎에 소소히 부는 바람에 사랑도 미움도 휘파람처럼 허공을 적시며 사라지노니 먼 훗날 길손이 나를 찾거든 목숨이 부끄러워 숨었다 하라. 나 이제 저자에서 돌아가리라 바위에 산산이 부서진 파도가 청춘도 원망도 물보라처럼 바다를 때리며 스러지노니 먼 훗날 길손이 나를 찾거든 목숨이 부끄러워 숨었다 하라. 이 메일은 강북의 한 구청 노인복지 회관에서 컴퓨터를 가르쳤던 배테랑 노티즌 P씨가 다른 사연 없이 담백하게 띄운 소품이다. 그는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동호인과 제자들이 화면에 뜬 그림과 시를 보며 헨리 맨시니의 ‘집시 바이올린’의 애절한 멜로디를 쫓을 땐 이미 고인이 되었다. 바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나 했던지 이 컴도사는 생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작품’을 남기고 곧바로 세상을 뜬 것이다. 사진 작품에 영정처럼 검은 테를 둘러친 것이 눈길을 끈다. 목숨이 부끄러워 이젠 고만 숨어버리자고 작심한 듯하다. 컴퓨터는 기계지만 그것을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더욱이 그 생산물은 상상의 세계로부터 만들어진다. 아무래도 영감이라는 요소가 어느 구석엔가 내장되어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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