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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소 못하면 시한폭탄이 된다”

“해소 못하면 시한폭탄이 된다”

중도우파 지식인의 중심격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양극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양극화 문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전형적인 선동형 포퓰리즘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에 영합하는 것이 소극적 포퓰리즘이라면, 대중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주입해 바꾸려고 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이며 선동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양극화가 아니라 신 빈곤층의 문제다. 그리고 그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해 추진해 나가는 데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간단한 문제지만 정부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계속 이슈화하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가 제기된 지 오래지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국민은 답답하다. 누구 말이 맞는지 갈수록 헛갈린다. 같은 현상을 놓고 너무나 다른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청와대와 ‘선진화정책운동’이 벌이는 ‘양극화 갑론을박’도 그런 예다. 지난 2월 중순부터 청와대는 대통령 비서관실이 중심이 돼 ‘양극화 특별기획팀’이라는 것을 조직했다. 최근까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11차례나 ‘양극화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다소 선동적인 글도 있지만 다양한 통계와 데이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양극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도성향의 지식인 모임인 선진화정책운동은 청와대가 글을 발표할 때마다 이에 대한 반박 글을 올리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분야 전문가인 박세일 교수와 서경석 목사, 이각범·나성린·안종범·현진권 교수 등이 모여 ‘선진화정책운동 양극화 특별기획팀’을 구성한 것이다. 이들이 펼치는 장문의 갑론을박을 지상(紙上) 대결로 재구성해봤다.

청와대 특별기획팀(이하 청와대) :
양극화는 ‘사회적 시한폭탄’이자 ‘한국 사회의 늪’이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빈곤층과 부유층의 집단적 소모전이 일어날 수 있다. 시골길을 가다가 ‘3㎞ 앞 벼랑’이라는 안내팻말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행로를 미리 바꾸겠는가, 끝까지 가서 벼랑이 실제 있는지 확인해 보고 돌아오겠는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선진화정책운동(이하 선진화) :
청와대의 양극화 문제 제기가 나라를 오도하고 있다. 청와대 주장의 허구성과 선동성이 놀랍다. 사실 ‘양극화’라는 용어는 학문적 근거가 있는 말도 아니며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정치적 선동용어일 뿐이다. 과거 빈곤층이 30%에 육박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지금보다 더 심했을 때도 정권이 직접 나서서 호들갑떤 적이 있었나.

청와대 :
여론 주도층(기득권층)이 양극화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 심화라는 내부 모순은 더욱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빈곤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며 못 본 체 한 것이다. 압축성장 시절 국가 지도자들은 국민을 향해 ‘선 성장, 후 분배’를 외쳤다. 그러나 이후 ‘분배’는 없었다. 돌아온 것은 대량실업이고 빈부격차의 확대였다. 외환위기 사태도 사실은 압축성장의 모델 속에 숨겨져 있던 시한폭탄이었다.

선진화 :
경제 개발 초기 단계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당시 상황에서 봐야지 현재 시점에서 당시 성장전략을 매도하는 것은 문제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득격차는 존재했지만, 국민소득 수준은 향상되고 빈곤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나라는 성장과 더불어 꾸준히 분배정책을 도입해 세계적으로 불평등과 빈곤 문제가 비교적 양호한 나라였다. 오히려 최근 빈곤층을 심화시킨 것은 현 정부다. 그럼에도 이 사회의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적반하장이다. 양극화는 경제 실패로 인한 경제 침체의 결과이지 양극화가 경제 침체의 원인은 아니다. 더욱이 문제의 본질은 ‘양극화’가 아니라, ‘신 빈곤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선진화정책운동의 논쟁은 문제를 들여다보는 출발점부터 틀린다. 진단이 틀리니 처방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합의를 보기 힘든 싸움인 것이다. 그래서 다음 대선까지 가는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는 전략적으로 양극화 전선(戰線)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압축성장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서강학파’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나선 것이나 양극화 문제를 총론에서 각론으로 세분류하며, 이슈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청와대 :
압축성장과 양극화 심화는 불균형 전략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 형제다. 두 쌍둥이가 시차를 두고 태어났을 뿐이다. 불균형 전략의 틀 안에서 노동운동(분배)이나 서민생활 안정(복지)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불균형 전략을 성장 지상주의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성장 지상주의자들은 아직도 ‘성장이냐 분배냐’ ‘성장이냐 안정이냐’를 외치며 성장 우선론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불균형 전략의 이론적 배경을 뒷받침해 준 것이 세칭 ‘서강학파’다. 하지만 압축성장 신화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로 끝났고, 이는 서강학파의 종언을 의미한다. 서강학파를 대체할 새로운 이론이 나와야 한다.

선진화 :
서강학파의 경제이론은 이미 20년 전 효능을 상실했으며 지금 서강학파를 주제로 논란을 벌일 정도로 한국 경제의 사정이 한가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 사태 이후 우리 경제가 이나마 회복된 원인이 무엇인가다. 외환위기 이후 불완전하나마 민간 중심, 시장 중심으로 경제구조 개혁이 일부분 이뤄졌기 때문에 회복 기운을 보인 것이다. 시장경제원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 상대적인 소득분배는 악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시장경제 기본 원리가 기여에 따르는 차별적인 보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득격차 확대가 곧바로 양극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화정책운동은 양극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양극화란 대상 집단이 두 개의 집단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 있고, 두 집단 사이의 동질성은 강화되면서 격차는 확대돼 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의 개인, 다양한 규모와 종류의 기업이 존재하는데 이렇게 구성원을 이분화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제기하는 양극화가 ‘경제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청와대 주장대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면, 그 해결책은 시장경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경제체제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이끌고,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경쟁할 수 없는 사회 구성원들도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확립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역시 양극화를 해소하는 두 기둥은 일자리와 사회안전망이라는 데서는 선진화 측과 일치한다. 하지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현격한 시각 차이를 보인다.

청와대 :
양극화 문제는 어느 시대, 어떤 나라나 발생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경제·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양극화가 ‘압축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자리가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고용 없는 성장 때문이다. 일자리 마련에는 경제 활성화가 필수적으로 중요하지만, 경제 활성화만으로는 일자리를 확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의 일부가 ‘성장 우선’이라는 낡은 신화에 집착하고 있다. 이런 낡은 성장의 함정에 빠져 있는 사이에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선진화 :
양극화의 원인을 왜 과거 탓, 남 탓을 하나. 양극화 시한폭탄은 바로 현 정권이 출발한 2003년부터 불이 댕겨졌다. 외환위기 이후 나아지던 소득분배와 빈곤상태가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2003년부터 다시 악화돼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기간의 경기침체에 눈을 돌려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경기침체가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고 빈곤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대부분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형상이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양극화 해소책이라는 걸 부정해서는 곤란하다.

청와대 :
사고와 의식구조가 과거 ‘성공의 함정’에 빠져 있다. ‘신화여, 다시 한번’을 애원하고 있지만 허황된 꿈일 뿐이다. 성장과 복지가 같이 갈 수 있고, 같이 가야 한다는 시대 흐름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 시장 활력을 강화하는 것과 아울러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작은 정부론’이라는 주문(呪文)을 되풀이하고 있다. 감세론 역시 결과적으로 대국민 서비스를 포기하거나 약화시키는 위험한 주장이다. 감세정책은 성공할 수도 없지만,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경제를 ‘카지노 경제’ ‘비정한 사회’로 이끌고 말 것이다. 양극화 해소는 잘사는 사람 것을 뺏어서 못사는 사람에게 나눠주자는 단세포적 주장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80%가 활력을 찾지 못하면 상위 20%도 성장동력을 잃게 된다. 복지 예산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신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고 경쟁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선진화 :
청와대가 아직도 증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아직도 OECD 통계책을 가져다 놓고 우리 조세부담률이 회원국 평균보다 아주 낮다고 말한다. 증세할 여지가 충분히 있음을 애써 강조하고자 하는 것인데, 바깥을 보지 말고 안을 보자. 우리는 어느 OECD 국가보다 세금 아닌 각종 부담금과 같은 준조세 규모가 크다. 준조세를 포함하면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결코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없다. 청와대 특별기획팀은 작은 정부를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에 ‘큰 정부’가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다. 정부 크기를 판단하려면 재정 규모를 비교해 보면 된다. 이때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공기업, 산하기관 등을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양측의 세 번째 맞대결에서는 결국 ‘정부 재정’ 얘기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정부가 양극화 이슈를 제기하는 목적의 단면이 읽히는 대목이다. 양극화는 존재하고,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정부며, 정부가 재정이 많아야 하고, 그래서 ‘증세’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증세가 필요하나’라는 질문 대신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나’라고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청와대 특별기획팀은 네 번째 양극화 시리즈를 내놨다. 제목은 ‘복지예산,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청와대 :
우리 앞에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있다. 홍콩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극저출산국 1위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2004년에 노인인구 비율은 8.5%로 이미 고령화 사회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다. 이대로 가면 국가 노쇠화도 1위다. 아무런 대책 없이 이대로 있으면 우리의 미래 사회와 아이들에게 크나큰 재앙이다.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대책이 필요하면 정책으로 만들고 거기에 필요한 재원을 만들어내야 한다.

선진화 :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직면할 심각한 문제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에 대해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복지 지출만 늘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청와대 :
‘세금 폭탄’이라는 정치적 공세로 미래 대비를 위한 준비와 노력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희망한국 21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하지만 맹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대책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정부 스스로 최대한 예산 낭비요인을 제거해 재원을 절약하고 과세 투명성도 높일 것이다. 그래도 재원이 부족하면 어떤 대책이 좋은지 진정 고민해 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복지 지출 수준은 국제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GDP 대비는 물론 재정 규모 대비 복지 지출 비중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선진화 :
사회복지 지출을 증가하기에 앞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누누이 강조했듯이 경제를 활성화해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신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노력을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한다. 성장 잠재력이 커지면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노력 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빈곤 문제와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사회복지 지출의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증세와 정부 지출 증대를 통해 선진국 수준의 사회복지 지출을 한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복지 지출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선진화정책운동은 모처럼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를 놓고 논박을 벌였다. 견해 차이는 분명했고 팽팽했다. 선진화정책운동은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 전환”을 주문했고, 청와대는 “복지 지출을 늘리면 성장이 훼손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일갈했다. 즉 ‘복지 투자’는 선 투자인가, 후 투자인가를 두고 기 싸움을 벌였다(세부적인 의견 차이는 ‘표’ 참조). 청와대 특별기획팀은 3월 중순 양극화 논쟁을 총론 차원에서 각론으로 좁혀갔다. 청와대가 첫 번째로 제기한 것은 ‘교육 양극화’였다. 이즈음에 여당 정치인들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방문하면서 “사교육비를 많이 들이는 학생이 좋은 학교에 간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옛날처럼 귀족계급이 생기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고 교육 양극화 문제를 제기했다.

청와대 :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입학률을 보면 교육격차를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이 가정환경임을 알 수 있다. 가계소득 최상과 하위 간 수능시험 점수 차이가 30점이라든지, 교육 양극화를 보여주는 통계들은 많다. 이는 지금 아이들은 결코 시험 점수로 골인 지점이 표시되는 100m 경주에서 같은 스타트라인 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불공정한 게임이다. 지금은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돼 빈곤층 아이들은 극복하기 어려운 계층적 벽을 느끼며 성장하게 된다. 이와 함께 중산층도 추락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된다. 한 번 추락하면 다시 올라올 수 없다는 절박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때문에 이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과도한 사교육비 투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양극화가 빚어내는 교육 문제들은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때문에 교육복지정책이 필요하지만 재정의 한계로 초보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사회적 수직 이동 통로로 되어 있는 대학 입시가 교육 양극화, 사회 양극화를 재생산해내지 않도록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조정(지역 균형 선발, 농어촌 특별 전형, 실업계 특별 전형 등)해 나가야 한다.

선진화 :
부자는 좋은 대학 입학, 가난한 자는 좋은 대학 불합격이라는 교육 양극화 등식이 진리라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교육의 문제를 돈이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 해서 단순화하는 것은 복잡한 교육의 문제를 올바로 접근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화해와 통합보다는 갈등과 분열을 더욱 조장하고 심화시키는 위험한 언어의 불장난이라 느껴진다. 그러면 지금 청와대에서 양극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분들은 부자로 좋은 대학을 나온 분들인가, 아니면 가난한 사람으로 좋은 대학을 못 나온 분인가? 물론 청와대가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에 교육의 현격한 격차가 존재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교육격차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소외 계층의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높여줄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는 얘기다. 청와대 특별기획팀은 일곱 번째 양극화 시리즈에서 드디어 ‘부동산’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는 부동산을 양극화의 최대 분수령이라고 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8·31 정책이 실패했다는 일부의 지적이 나온 것을 의식한 듯 청와대는 “8·31 체제를 한번 믿어보라”며 부동산 정책에 대한 강한 자신감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리포트는 상당히 감정적이었고, 선진화정책운동은 “감정적 부동산 대책은 부동산 가격을 결코 안정시킬 수 없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
주거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동산 소유의 편중도 문제다. 개인별·가구별 편중뿐 아니라 지역별 편중 문제도 심각하다. 6억원 이상 고가 주택은 서울, 그것도 강남권에 전국의 70.3%가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가 주택 가격이 서민 주택보다 빠른 속도로 오른다면, 곧 부동산 양극화의 심화가 아닐 수 없다. 부동산 자산 양극화는 세대 간 양극화의 가장 큰 요인이다. 자산 양극화가 세대를 이어 확대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현 정부 들어서만 수십 차례 대책을 내놓았고, 날짜가 붙은 정책만도 10·29, 5·4, 8·31 세 차례나 된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등 부동산 시장이 투명화됐고, 부동산에 대한 초과이익 환수체계를 강화했다. 분양가를 낮추고, 공영개발 방식을 통해 임대주택을 확대하기로 했다. 부동산 시장 불안이 나타나는 지역이나 주택 수를 보면 전체의 2% 미만이다. 8·31 정책이 흔들리지만 않고 시행된다면 5년 이내, 아무리 길어도 10년이면 망국적 부동산 투기라는 표현이 사라질 것이다. 8·31 정책은 실패하지도 않고, 실패하지도 않을 것이며, 실패해서도 안 된다.

선진화 :
부동산의 불평등한 분포가 양극화의 최대 분수령이다.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 가격의 급등이 양극화를 더 부추긴다는 청와대 진단에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먼저 부동산 가격 급등 원인은 투기 때문만이라고 매도하기 힘들다. 투기는 주택의 초과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 지역의 경우 우수한 교육 여건으로 인해 만성적으로 실수요 자체가 공급보다 항상 컸다. 그리고 강남 지역 집값 상승이 주변 지역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었다. 투기가 집값 불안정의 원인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진단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까지 대책들이 제대로 시행만 되면 5~10년 후 부동산 투기가 잡히고,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책임 실패를 호도하는 매우 무책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을 추진해 놓고 정권의 임기가 끝난 뒤 한참 후에야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양측의 논쟁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선진화운동 측은 “청와대의 새로운 주장이 나올 때마다 논리적으로 따져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청와대의 싸움수에 말려들어 오히려 양극화 문제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무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논쟁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얘기를 할수록 진위는 분명해진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말처럼 “양극화가 정파적 이익을 위한 선동적 포퓰리즘”인지, 노무현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주장하는 대로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인지 이들의 논쟁에서 힌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데나 '양극화'
▶경기 양극화 - 내수경기는 침체하고 수출은 호조. (민간소비 -0.5%, 수출 +31.0%) ▶제조업 양극화 - 기술집약 제품의 수출 호조와 경공업 소비재의 수출 감소. ▶산업 양극화 - IT산업의 생산 증가율은 25.1%, 비 IT산업은 3.0%. ▶업종 양극화 - 부가가치 노동생산 증가율이 제조업은 12.1%, 서비스업은 1.6%. ▶사회적 일자리 양극화 - 월 1인당 최고 인건비 180만원, 최저 인건비 20만원. ▶부동산 양극화 - 강남·송파·서초 지역 부동산 가치가 서울 전체에서 40.1% 차지. ▶영업실적 양극화 - 상위 10개사가 전체 영업실적 69.13%를 차지. ▶여성복 양극화 - 100만원 이상 고가와 1만원대 저가 여성복. ▶계급 양극화 -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계층구도가 뚜렷하게 나눠짐. ▶사회 양극화 - 전체 노동자의 56%인 850만 명이 비정규직. 사회적 차별 극대화. ▶기업 양극화 -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8.2%,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4.6%. ▶직장인 양극화 - 성과주의 도입으로 부서·개인 업무 능력 따라 동기간 연봉 차이 커. ▶문학계 양극화 - 판타지와 무협 등 한국 장르 문학들, 대중은 열광하나 비평가는 외면. ▶한국 교회 양극화 - 신도 수 75만 명 넘는 도시 교회와 10명 미만의 농촌 교회. ▶노동 양극화 - 일자리에 따른 소득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경제 양극화 - 부인부 빈익빈. 서로 다른 집단이나 계층의 형편이 점점 벌어짐. ▶부품사 간 양극화 - 매출액 500억원 기업 수익성은 낮고, 3000억원 이상 기업 수익성은 높음. ▶교육 양극화 - 2005년 서울대 입학생 중 서울 강남 출신이 강북 출신에 비해 9배 많음. ▶의료 양극화 - 공공 의료기관 비율 10% 불과. 사회계층별 의료 이용 불평등. ▶음식점 양극화 - 고품격화된 강남의 음식점과 가격 파괴형 중저가 음식점 공존. ▶자동차 시장 양극화 - 그랜저 8304대 판매해 1위, 1위 달리던 아반떼는 판매율 -43.2%. ▶휴가 양극화 - 해외 여행객 700만 명. 해외 휴가를 보내는 사람 늘고 휴가 못 가본 사람도 증가. ▶휴대전화 양극화 - 10만원대 흑백 제품과 60만원대 카메라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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