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은행 경영 민간에게 맡겨라
우리나라에서 은행업은 유달리 공공성이 강조되는 분야다. 개인이 운영하면 공공성을 해치고 사금고화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국가 소유의 은행이 쉽게 공금고화됐던 사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은행 역시 여수신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즉 돈이라는 상품을 매개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기업으로서 제조업을 하는 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은 민간이 주체가 됐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잘할 수 있다는 점도 명백하다. 근대적 의미의 우리나라 은행들은, 이제는 간판을 내린 조흥은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산(敵産·일본이 패망하고 남기고 간 자산)을 이어받은 국가 소유였고, 민영화 과정에서는 국내 민간 자본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배제됐다. 은행을 설립하거나 인수해 운영할 수 있는 은행 기업가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런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외환은행은 미국의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지배주주가 되기 전까지 국내 최대주주는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이었으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의 위험가중 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8% 미만의 부실 은행이라는 진단에 따라 2003년에 론스타에 매각됐다. 그러나 요즈음 감사원의 감사 결과 BIS 자기자본 비율이 조작됐고 제 값을 받지 못한 채 매각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시 이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수사 결과가 밝혀져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뤄 보면 론스타 의혹은 실질적인 주인이 없는 은행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 사건이다. 주인이 있었다면 부실 판정의 기준이 된 BIS 자기자본 비율이 그렇게 춤추듯이 오락가락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이 없다고 해도 최고경영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는 있다. 문제는 주인이 없는데 그런 경영자가 언제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현행 은행법은 은행 소유 규제를 국제기준에 맞게 사전적인 소유 제한은 완화한 반면, 금융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함으로써 건전한 금융자본의 출현을 유도하고 은행의 자율 책임경영을 촉진하기 위해 2002년 4월 27일에 개정·공포된 것이다. 그러나 개정 은행법에도 동일인은 원칙적으로 10%를 초과해 전국 영업망을 가진 은행 주식을 소유할 수 없게 돼 있다. 특히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는 은행 주식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으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4%를 초과해 보유하는 경우에도 그 주식에는 의결권이 없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지주회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은행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는 은행가가 나오기 어렵다. 개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과 캐나다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다만 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소유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스웨덴·스페인·이탈리아·룩셈부르크 등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독일·프랑스·영국·네덜란드·스위스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다. 은행업이 효율성을 갖춘 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민간 은행가가 출현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개인의 은행 주식 소유와 의결권 제한 법률을 개정해 민간 은행가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 벽을 없애야 한다. 자본은 똑같은 자본일 뿐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금융산업에 투자하면 금융자본이고 다른 산업에 투자하면 산업자본이라고 부를 뿐이다. 굳이 구분해야 한다면 민간 은행가들이 출현한 이후 한쪽을 선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이름 아래 은행은 물론 국내 기업을 외국 자본의 인수·합병 대상으로 쉽게 내모는 관련 법규를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 특히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기업 간 출자총액 제한과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조항, 그리고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법률 및 은행법 등의 관련 조항을 개정해 개인은 물론 여타 국내 자본이 금융업을 포함해 모든 분야에 제한 없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은행에도 민간 주인이 필요하다. 이 점이 바로 이번 외환은행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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