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태극 전사 “토고 깨고 스위스와 비긴다”

태극 전사 “토고 깨고 스위스와 비긴다”

한국 축구 대표 팀은 16강에 진출할까? 토고·프랑스·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누가 골을 넣고, 또 승부는 어떻게 될까? 예측만 난무할 뿐 잘 짜인 답안은 없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독자의 갈증을 덜어주고자 조금은 엉뚱한 시도를 해봤다. 서울 배문고등학교 3학년 서영원군에게 G조 4개 팀의 전력을 토대로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토록 의뢰했다. 서군은 최근 축구해설서 ‘Around of Ground―축구장 밖의 숨은 이야기’를 펴내는 등 해박한 축구지식으로 무장한 10대 축구광이다. 이 책은 일본어로도 번역됐다. 서군의 시나리오는 1승1무1패,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한다는 전망이다. 기세등등한 붉은 악마의 기대엔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임에는 틀림없다.
한국 대 토고

해외에서 이룬 첫 승 6월 13일 밤(한국시각) 프랑크푸르트 발트슈타디온. 아드보카트 감독은 FW에 설기현, 조재진, 이천수, MF에 김남일, 박지성, 이을용, DF에 이영표, 최진철, 김영철, 조원희, 골키퍼에 이운재를 선발로 내세웠다. 토고는 공격에 아데바요르(아스널), 미드필더에 아포 에라사(AS물린스), 수비는 분데스리가 수비수 투레(레버쿠젠), 구에데(함부르크) 등을 중심으로 나섰다. 경기가 시작되자 초반 분위기는 토고가 주도했다. 토고 미드필더진에서 찔러주는 패스 때문에 한국 포백 라인은 자주 흔들렸고, 아데바요르를 몸으로 막는 최진철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전반 중반이 지나며 김남일이 날린 35m 기습 중거리 슈팅은 분위기 반전의 신호탄이었다. 전반 24분쯤, 이천수가 오른쪽을 돌파해 반대편에 있던 설기현을 보고 롱패스를 했다. 투레가 가로챘지만 볼 처리가 미흡한 틈을 타 쇄도하던 박지성이 조재진에게 찔러주었다. 오프사이드를 절묘히 피한 조재진은 거침없이 과감한 슈팅을 날렸다. 3초 후 경기장은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토고 선수들은 오프사이드라며 항의했지만 심판은 단호했다. 한국은 여세를 몰아 공격의 고삐를 틀어쥐었다. 그러나 볼 점유율만 높을 뿐 이렇다 할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한 채 전반전을 끝냈다. 후반전엔 토고 수비진을 휘젓느라 지치고, 돌파 패턴이 읽힌 이천수 대신 정경호가 투입됐다. 그는 시원한 돌파와 위협적인 슈팅으로 수퍼 서브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6대4 정도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던 한국은 이을용이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올린 가로 패스 때문에 혼전상태가 벌어졌고 설기현이 흘러나오는 볼을 낚아채 깨끗이 성공시켰다. 스코어는 2:0. 후반 20분쯤 지나 아드보카트는 설기현과 최진철 대신 박주영·김진규를 투입, 공격과 수비의 체력적 균형을 유지했다. 선수 교체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수비 리더 최진철이 빠지며 포백이 엉성해졌다. 토고는 수비수 2명을 빼고 미드필더 1명, 공격수 1명을 보강했다. 토고의 공격 가담 인원이 전반보다 많아지자 한국은 상대적으로 수비에 치중했다. 후반 36분, 급기야 빠르게 넘어오는 공을 쫓던 아데바요르를 이을용이 급한 김에 거친 태클로 저지했다. 실점 위기를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페널티 박스 안이었음을 알았을 때 한국선수들은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다. 키커로 나선 아데바요르는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2:1로 따라붙었다. 이후 토고는 파상 공세를 펼쳤지만 전광판의 시계가 멈출 때까지 더 이상 만회골을 넣지 못했다. 한국이 해외에서 벌어진 월드컵에서 이룬 첫 번째 승리였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아드보카트의 용병술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시절의 유로 2004 체코전처럼 선수 교체를 잘못해 2:0에서 2:3으로 역전패당하는 경기가 재현될 뻔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하지만 경기 막판에 접어들면서 거친 반칙이 난무하고 반칙 수가 양 팀 합쳐 14개, 경고가 2개 나온 상황에서 주전들의 부상을 방지한다는 점에서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한편,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기는 프랑스가 스위스에 시종일관 6대4 정도로 밀렸다. 스위스는 기각스(릴)의 센터링을 받아 포겔이 헤딩슛을 성공시켰다. 패색이 짙던 프랑스는 종료 직전 비에라의 롱패스를 앙리가 방향만 바꾸는 멋진 슛으로 득점에 성공, 1:1 무승부로 끝났다.
한국 대 프랑스

붉은 전사들의 침묵 조별 예선 첫 경기인 스위스 전에서 비긴 프랑스는 초조했다. 반면 스위스는 방금 종료된 토고와의 경기에서 시종일관 압도적인 우세 속에 프라이(렌)가 2골, 바르네타(레버쿠젠)가 1골을 넣으면서 승리, 승점 4점으로 조 선두로 뛰어올랐다. 프랑스는 백척간두에 처했다. 도메네크 감독은 6월 19일 한국전에서 베스트 전력을 아끼지 않았다. FW에 트레제게·앙리, MF에 지단·말루다·비에라·마켈렐레, DF에 갈라스·붐송·튀랑·사뇰, GK에 바르테즈를 선발로 기용했다. 아드보카트는 FW 설기현·안정환·박지성, MF 김남일·김두현·이호, DF 이영표·최진철·김진규·김동진, GK 이운재로 진용을 짰다. 안정환은 프랑스리그에서 뛰어본 경험 때문에 낙점 받았다. 오른쪽 윙포워드에 기용된 박지성은 탱크와 같은 체력으로 프랑스 수비를 최대한 흔들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중앙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된 김두현은 미드필더를 거치는 롱패스를 이용해 프랑스와의 힘든 중원싸움을 최대한 피해보겠다는 아드보카트의 히든 카드였다. 토고전 때 경미한 부상을 입은 조원희·김영철 대신 각각 김동진·김진규가 나섰다. 호각이 울리는 순간부터 한동안 프랑스는 7대3의 볼 점유율을 자랑하며 경기를 압도했다. 아드보카트의 히든 카드 김두현은 기대와는 달리 롱패스에서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 안정환이 구사한 특유의 접기 기술은 아비달(리옹) 앞에 무력했다. 박지성과 갈라스의 대결은 박빙이었지만 박지성 혼자서 갈라스(첼시)-붐송(뉴캐슬)이 함께 구사하는 협력수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반 16분, 페널티 박스 오른쪽 외곽에서 앙리의 프리킥이 수비벽에 막혀 튀어나왔다. 이때 비에라(유벤투스)가 한풀이하듯이 대포알 슈팅을 날렸다. 이운재가 몸을 날렸을 때 이미 공은 그물망을 흔들었다. 프랑스에 기선을 빼앗긴 처지인데 중앙 센터 서클에서 거친 몸싸움을 하던 이호와 비에라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양측 다 옐로카드. 한국팀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와 대등한 몸싸움을 벌인 이호의 파이팅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전반 41분 드디어 한국에도 기회가 왔다. 오른쪽을 돌파한 박지성의 빠른 패스로 공을 넘겨받은 설기현이 왼발 슛을 날렸으나 골포스트 상단에 맞고 튀어올랐다.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한국팀은 또 한차례 실점했다. 5분도 안 돼 말루다(리옹)-앙리(아스널)-트레제게(유벤투스)로 연결되는 콤비플레이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장들이 주축인 프랑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비에라를 도라소(리옹), 튀랑을 멕세스(로마)로 교체했다. 한국도 안정환을 조재진, 김두현을 이천수로 바꿨다. 다시 토고전과 같은 미드필더와 공격진 운용이다. 이후 치열한 중원싸움에 주력한 한국에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프랑스 역시 별다른 움직임 없이 경기는 종료됐다. 한국은 전술 싸움뿐만 아니라 선수 개인 대결에서도 프랑스에 졌다. 김두현의 단순 롱패스로 프랑스 미드필더와의 중원싸움을 피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50%는 지고 시작하는 경기였다.
한국 대 스위스

승부는 끝내 원점으로 6월 24일 하노버 경기장. 경기를 할수록 조직력이 살아나는 스위스와의 마지막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타 구장에서 열리는 프랑스 대 토고 전은 프랑스의 승리가 확정적이었다. 따라서 스위스 대 한국 전은 사실상 2위 결정전이다. 스위스는 비겨도 올라가지만 한국은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한국은 FW 박주영·조재진·이천수, MF 이을용·박지성·김남일, DF 이영표·최진철·김영철·조원희, GK 이운재가 나섰다. 아드보카트는 토고와의 경기에서 안정적인 경기를 펼친 선수들을 선택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스위스는 평소처럼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듯한 패스워크, 빠른 돌파와 압박으로 한국을 위협했다. 특히 바르네타의 컴퓨터 같은 패스에 한국 수비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스위스는 찔러 주는 패스에 수비가 잘 뚫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이용해 이을용·박지성은 패스플레이에 주력했다. 김남일은 바르네타·포겔·카바나스와 1대3 맞짱을 떴다. 다소 밀릴지 모른다고 예상됐던 경기가 5대 5의 팽팽한 균형 속에 전개되자 한국은 자신감을 얻었다. 후반전 들어 아드보카트는 체력이 떨어진 김남일을 빼고 이호를 투입했다. 나이 든 김남일과 ‘한국형 다비즈’로 불리는 이호의 교체는 자동차에서 엔진을 바꾸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후반 11분 박지성이 오른쪽 측면으로 쇄도하는 이천수에게 감각적인 긴 패스를 내주고, 이천수는 다이렉트로 낮고 빠른 땅볼로 박주영에게 기회를 주었다. 85년생, 루니와 동갑내기인 어린 한국의 스타는 감각적인 슈팅을 성공시킨 뒤 운동장 위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전 세계 축구인들에게 보여줬다. 같은 시각 프랑스-토고전은 일찌감치 시세(리버풀)의 골로 프랑스가 앞서고 있었다. 실점한 스위스는 하칸야킨·기각스를 투입하며 중원 장악을 노렸다. 득점 이후 심해지는 압박에 몸이 둔해진 이을용을 빼고 패기의 백지훈이 투입됐다. 그리고 기동력 싸움이 되리라고 예상한 아드보카트는 박주영을 빼고 정경호를 투입해 경기를 스피디하게 이끌었다. 때에 따라 카테나치오(철벽수비), 토털사커를 구사하는 스위스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안다. 7년째 지휘봉을 잡아온 쿤 감독의 손짓 하나에 토털 사커로 변했다. “그들은 마치 딜러가 카드를 섞듯이 너무 쉽게 포지션과 역할을 바꿨다” -경기 종료 후 최진철의 인터뷰-. 바르네타의 미드필더를 거치지 않는 빠른 패스가 프라이에게 이어졌다. 프라이의 슈팅은 다행히 이운재의 손에 걸렸다. 그러나 후반 29분, 센데로스의 패스를 받은 기각스의 30m 중거리슛이 득점으로 이어졌다. 스위스는 득점 이후 카테나치오를 구사, 한국의 맹공을 끝까지 막아냈다. 해외 월드컵에서 첫승을 거뒀고 다소 불안하기는 했지만 프랑스전의 전술 착오를 제외하면 붉은 전사의 전체적인 경기력은 괜찮았다. 축구협회에서는 아드보카트와 남아공 월드컵까지 함께하겠다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기대·열정 그 모든 것을 쏟아부은 월드컵, 한국의 항해는 그렇게 끝났다. “우리는 예선에서 탈락하지 않았다. 단지 16강 진출을 4년 뒤로 미뤘을 뿐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스위스 전 종료 이후 한 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달라진 20대 결혼·출산관…5명 중 2명 ‘비혼 출산 가능’

2김승연 회장 “미래 방위사업, AI·무인화 기술이 핵심”

3 “청정함이 곧 생명, 무진복 3겹 껴입어”…GC셀이 오염 막는 방법

4우리은행, 25억원 규모 금융사고 발생…외부인 고소 예정

5'2000조 구독경제' 시장...2.0시대 온다

6만성적자 하림산업의 ‘소방수’ 강병규 부사장 운명은?

7'흑백요리사'가 바꾼 예능 판도…방송가 점령하는 셰프들

8'후려치고, 고치고' 머스크, 美 정부 예산 만지작?

9'나체로 여성과 누워있어' 타깃 안 가리는 '딥페이크'

실시간 뉴스

1달라진 20대 결혼·출산관…5명 중 2명 ‘비혼 출산 가능’

2김승연 회장 “미래 방위사업, AI·무인화 기술이 핵심”

3 “청정함이 곧 생명, 무진복 3겹 껴입어”…GC셀이 오염 막는 방법

4우리은행, 25억원 규모 금융사고 발생…외부인 고소 예정

5'2000조 구독경제' 시장...2.0시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