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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못하면 회장도 해고될 수 있구나…"

“경영 못하면 회장도 해고될 수 있구나…"

"3대째 회장님 사진을 찍는데, 지금의 회장님이 ‘사진발’을 제일 안 받아요. 인물은 좋으신데….” SK그룹에서 3대째 회장 사진을 찍는 사진사가 최근 어떤 행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 최태원 SK㈜ 회장은 특유의 퉁명스러워 보이는 얼굴과 인상 때문에 ‘사진발’이 잘 안 받는다. 사진사는 회장 얼굴이 잘 안 나와 고민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원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봉사 등 최근 대외 활동이 활발한 최 회장을 가까이서 본 SK그룹의 한 직원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 최 회장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요즘 최 회장 얼굴이 참 좋아졌다. 웃음도 많고…”라며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사의 고민과는 반대로 요즘 최 회장은 다른 4대 그룹 회장들에 비해 여러모로 표정이 좋다. 비자금 사건이다, X파일 사건이다 해서 다른 그룹 회장들은 경영 전면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3년 전만 해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최 회장은 최근 16개월 만에 미국 출장을 재개하는 등 활발한 경영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 헌트 오일 회장과 코노코 필립스 회장을 잇따라 만나는 등 해외 유전개발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오는 길에는 최근 미국 내 서비스를 시작한 이동통신 브랜드인 힐리오 사업을 점검했다. 지난 4월에는 4박5일간의 짧은 중국 출장에서 총 3500㎞를 움직이며 중국 내 SK 사업 현황을 점검했다. 서울~목포 간 왕복거리인 700㎞를 매일 이동한 셈이다. 이동 중간 중간에 중국 현지 임원들과 캔미팅(캔음료를 마시면서 하는 약식 회의)을 하면서 향후 중국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모았다. 최 회장의 이런 적극적 행보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지난해 초 홍콩 해외IR을 시작으로 미국·중국·터키·쿠웨이트·싱가포르 등 3개 대륙 6개국을 방문했다. 비행 거리만 따져도 8만5000여㎞로 지구 두 바퀴를 돈 셈이다. 연이은 최 회장의 해외 경영은 올 초 제시한 ‘글로벌리티(Globality)’라는 화두와 연결된다. 최 회장은 SK그룹 신년사에서 “SK그룹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글로벌리티를 강조했다. SK그룹에 따르면 “글로벌리티란 기업의 글로벌화된 수준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리티는 실제 영어단어에는 없다. 그러나 몇 년 전 다보스 포럼에서 이 말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기자가 이 의미를 SK그룹의 여러 임직원에게 물었을 때 정확하게 뜻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최 회장은 이 단어와 관련해 “단순히 시장 확대 차원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아니라 SK 각 회사와 임직원이 국제적인 수준, 세계적인 속성을 지녀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실제 최 회장은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사업의 ‘6대 전략 거점 구축’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장기 전략을 세우고 있다. 6대 전략 거점은 중국·미국·일본·인도·베트남·쿠웨이트 등 6개국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화를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최 회장의 판단이다. 최 회장은 글로벌리티와 함께 ‘깊이의 심화’를 경영의 축으로 삼고 있다. 2000년대 IT붐 이후 다소 정체돼 있는 그룹을 다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신사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SK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회장께서는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사업 분야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깊이의 심화는 여러 분야에서 목격된다. 전통적으로 석유 정제 사업에 치중해 왔던 SK㈜는 올해 들어 해외 유전 탐사·개발 분야의 인력을 대폭 늘리고 있다. 2년 전 15명이었던 이 인력이 지금은 30명에 이르렀고, 향후 70명까지 보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해외 유전에서 SK가 생산하는 원유량을 2010년까지 하루 평균 10만 배럴로 대폭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현재는 하루 2만4000배럴을 생산한다. SK㈜ 김현무 상무는 “정제사업은 국제가격에 영향을 많이 받아 수익성이 크지 않다”면서 “세계적인 오일회사들이 수익이 높은 개발사업에 강점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해외 유전 개발 강화도 깊이의 심화의 한 예다. 엔크린 보너스 카드와 SK텔레콤의 광범위한 고객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것도 컨버전스를 통한 깊이의 심화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사업을 개발하기보다 기존의 사업과 연관된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 방식이다. 이런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이 최 회장이다. 요즘 나오는 글로벌리티나 깊이의 심화도 역시 그의 머릿속에서 차근차근 진행돼 온 것들이다. SK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2년 그가 ‘투비(To-Be)모델’에서 ‘생존’을 화두로 제시했다(투비모델은 경영컨설팅 용어로 회사를 분석해 미래 경영전략을 세울 때 쓰는 말이다. 현재 회사의 상태를 As-Is라고 하고, 현재의 상황이 개선되었을 때의 모습을 To-Be라고 한다. 일종의 성장 모델을 일컫는다). 총수로서 이미 문제를 감지한 그가 그룹의 화두를 생존으로 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2004년 ‘행복경영’을 대대적으로 제시한 것도 이와 연관된다. 최 회장은 2004년 4월 8일 그룹 창립기념일에 기업문화실에서 써준 기념사 원고 대신 손으로 쓴 메모지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읽었다. 그때 나온 것이 바로 행복경영론이다. 당시 그는 2003년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하며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을 처음 꺼냈다. 그리고 2005년부터 SK그룹의 투비모델 화두는 ‘성장’으로 바뀌었다. 글로벌리티나 깊이의 심화 등을 비롯, 최 회장이 적극적인 경영을 펼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대외활동이 눈에 두드러지지만 최 회장은 이미 2~3년 전부터 조직을 추스르는 등 경영 전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2003년에는 7개월여 수감생활을 끝내고 그해 9월 ‘신입사원과의 대화’ 등 내부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에 주력했다. 회장 공백에 따른 어수선한 그룹 분위기를 다잡고 수감생활 중 가다듬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내부 조직부터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도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까지는 내부 커뮤니케이션이나 행사에 더 치중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그룹 창립 기념식에서 ‘행복경영’을 주창하고 나서 2004년 5월 15일 울산대공원 2차 시설 기공식에 참석했다. 최 회장이 출소 뒤 처음으로 대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같은 해 6월 4일에는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SK-페루 우정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특히 이 두 행사는 수감생활 내 최 회장의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최 회장은 당시 2차 시설 기공식에서 “회사 성장·발전의 터전으로, 지난 40년간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돼준 울산시민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그룹은 기업 이념인 ‘행복 극대화’와 함께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 대외행사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인 울산대공원 기공식이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그의 머릿속에 뭔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2003년 구속 당시 최 회장은 울산 시민들의 SK돕기 운동을 듣고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최 회장으로 하여금 기업과 사회를 함께 고민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SK-페루 우정의 날’ 행사에서 최 회장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였다. 이 행사는 SK㈜가 투자한 페루 카미시아 가스전의 상업생산을 앞두고 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였다. 행사가 무르익고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지자 최 회장과 부인 노소영씨는 같이 라틴댄스와 블루스를 번갈아 가면서 췄다. 최 회장의 라틴댄스는 수준급이었다.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재킷을 벗고 흥겹게 어울리는 모습이 여느 대기업 총수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주변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처럼 최 회장은 ‘고난’을 거치면서 과거와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 과거 최 회장을 만나본 사람들은 특유의 첫인상을 기억하고 있다. 시카고 대학 유학 시절 최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기업의 임원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멀뚱멀뚱 사람들을 쳐다봐 오해를 많이 샀다”고 설명했다. 오죽하면 비서실장조차 사외이사들에게 “회장님이 좀 무표정하신 편이니 양해해 달라”고 했을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내외에서 받는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사회에 참석하는 한 인사는 “겸손하고 조용하며 신중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 회장에 대해 “평소 말수가 적은데 질문에 답변하거나 강의할 때는 상당히 유창한 편”이라고 했다. SK의 한 직원도 “예전에는 무표정하게 지나갔는데 요즘에는 사원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웃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사회공헌 활동과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매년 1000억원씩 사회공헌 기금을 내놓고 있기도 하지만 그 자신도 봉사활동에 적극적이다. 소외계층에 집을 지어주는 해비탯 운동이나 연탄 나르기 등 4대 그룹 중 총수가 직접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은 최회장이 유일하다. 실제 T미팅(SK㈜ 임원회의로 최 회장 이름의 첫 이니셜을 따 붙였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고 얘기했을 정도다. 그룹 회장으로서 1년에 두 차례 공식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 외에 그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1년에 3~4차례 용산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을 간다. 최 회장은 임원들에게도 봉사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최 회장이 이렇게 변한 것은 그룹과 자신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되뇐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룹 관계자는 “2003년에 최 회장의 모든 고민은 ‘왜 나와 우리 SK가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할까?’ 였다”고 했다. 회사 내에서는 법무팀이나 홍보팀에 대한 문제 제기나 전문경영인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이 있었다. 실제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사건을 담당한 한 변호사는 “일부 전문경영인이 검찰 조사를 받고 나서 변호사와 대책 상의를 하지 않고 잠적해 검찰 조사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개 소송 사건에서는 검찰 조사 뒤 조사받은 내용을 변호사와 상의한다. 그래야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뒤 변호사와 상의하지 않으면 그룹으로서는 향후 조사에 대응할 수 없다. 하지만 최 회장은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했다. ‘기업 경영을 왜 해야 하는가?’ 실제 그는 출소 뒤 사석에서 “한때 회사를 포기하고 수천억 주주로서 편하게 살 생각도 해 봤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교도소에서 그는 매주 2권에 가까운 책을 읽어가며 고민했다고 한다. 경영서적은 물론이고, 에세이·전기 등 다양한 분야가 망라돼 있었다. 그가 이런 깊은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소버린의 영향도 있다. 소버린은 경영권 공격 과정에서 최 회장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몰아붙였다. 실제 소버린자산운용의 제임스 피터 대표는 2004년 11월 8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최 회장을 “부랑아(pariah:불가촉천민·인도 카스트제도에서 최하층민으로 분류된 사람들로서 접촉하면 안 되는 부류)”라고 몰아붙였다. 피터 대표는 최 회장이 수감생활 후 회장직에 복귀한 것과 관련해 “정부가 왜 다른 나라에서는 부랑아로 간주되는 인물이 회장이 되는 것을 허용했는지 알고 싶다”고 주장했다. SK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회장에게 구속은 43년간의 자신의 삶과 그동안의 그룹경영을 처음부터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수감생활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은 자신의 직책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최 회장의 한 측근은 “소버린이 경영권 분쟁을 시도하면서 초기에 여론도 등을 돌리는 등 충격을 겪었을 것”이라며 “그전까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회장 자리를 당연히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소버린 사태 이후 ‘경영을 제대로 못하면 회장 자리도 언제든 뺏길 수 있구나’하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자신이 그동안 국가와 국민, 임직원에게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론이 싸늘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악덕 경영자’ ‘국가 경제에 파탄을 일으킨 사람’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울산 시민의 도움에 대해 눈시울을 붉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최 회장이 사회공헌에 적극적이고, 고객이나 협력사의 행복을 중시하는 행복경영에 포커스를 맞춘 것도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활동은 단순히 이미지 개선 차원이 아니라 끊임없이 투자해 자신의 우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최 회장은 그룹을 거의 잃을 뻔하다가 다시 건졌다. 선천적으로 회장으로 태어난 그는 이제 후천적으로 회장이 되는 법과 회장이라는 직책을 지키는 법을 공부하고 있다. 글로벌리티를 강조하면 전 세계로 직접 비즈니스를 다니는 것도 자신의 자리와 아버지의 기업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경영성과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그룹 임원들에 따르면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10년 뒤’라고 한다. 하루하루를 급박하게 달려온 최 회장이 이제 심호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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