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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뛰어넘는 대안은 없다”

“시장경제 뛰어넘는 대안은 없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현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사진)가 또다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남 전 총리는 6월 27일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 개소식에 참석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우월하는 대안은 없다”며 “정부가 실정을 모르고 정책을 입안하는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덕우 전 총리는 서강학파의 대부로 통한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1969년 재무부 장관을 맡으면서 서강학파의 길을 텄다. 그는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민들이 국가 이념과 시장경제 원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계몽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장경제의 이론과 실제’라는 ‘정부 계몽자료(?)’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이 ‘시장경제 이론을 잘 정리한 명문’이라고 평가한 이 리포트를 요약 발췌했다. 시장경제는 쉽게 말해 ‘시장의 법칙’ 에 따라 움직이는 체제를 뜻한다. 애덤 스미스가 시장은 정부의 개입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시장에 완전 경쟁이 가능하고, 개인의 경제활동에 아무런 외부적 간섭이 없어야 한다는 게 전제다. 그래야만 모든 재화의 수요량과 공급량이 균형을 이루는 가격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은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생산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도 경제적 후생이 극대화되는 합리적 자원배분(재화의 공급은 그 생산에 사용된 자원 배분의 결과다) 상태라고 본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뿌리는 자본주의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법에 위반되지 않는 한 인간 또는 기업의 이윤 추구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시장경제에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사유재산의 인정이다. 자신의 노동과 노력으로 얻은 과실을 사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없어진다. 따라서 재산의 사유를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는 인간의 자유와 양립하는 제도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재산의 사유는 사회적 자산의 보존과 유지의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내 땅이 아니면 열심히 농사지을 필요가 없다. 반대로 내 소유의 땅이면 어떻게든 땅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다. 땅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바람직한 일이다. 사유재산제도를 기초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하에선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또한 예방할 수 있다. 예컨대 언론기관이 정부 소유라면 ‘언론의 자유’ 라는 말이 무의미할 것이다. 물론 재산 소유 편중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과 사업적 성공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를 부도덕한 체제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밀턴 프리드먼은 “탐욕과 무관한 사회조직이 과연 있는 것일까? 사회 조직의 기본 문제는 그 조직 하에서 일어나는 탐욕의 폐단을 최대한 적게 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인데, 자본주의가 바로 그러한 체제” 라고 일축한 바 있다. 모든 체제나 이론들이 그렇듯 시장경제론에도 문제는 분명 있다. 교과서적 시장경제 모델은 시장경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지만 실제 경제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 ‘시장 실패’의 이유로 미시경제학자들은 불완전 경쟁, 외부 경제, 정보의 비대칭성, 사회적 불공정 등 네 가지를 든다. 그중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사회적 불공정으로 생각된다. 시장경제 아래에서 소득의 형성은 생산요소의 가격결정을 통해 이뤄진다. 노동의 경우 근면과 교육 등으로 노동능력을 향상시키면 보다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자본이나 토지자산의 경우엔 사용 방법의 개선, 신규 투자 등으로 자산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소득과 자산의 분배는 생산요소의 사회적 공헌에 대한 보수라고 볼 수 있다. 또 그러한 인센티브가 있기에 노력과 투자, 그리고 기술혁신과 발달이 촉진된다. 그러나 실제의 시장에선 이러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개인의 노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소득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병이나 사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소득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상속이나 부동산 투기로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또 교육이 소득 증가의 조건이라지만 개인의 교육 기회는 본인이 아니라 부모의 소득에 주로 의존한다. “개천에서 용 났다” 는 옛말은 그래서 나온다. 부(富)가 사람들 사이에 균등하게 분포돼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이런 상태하에 시장이 실현하는 소득분배는 결코 공평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시장경제 최대 약점인 셈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규제 등의 방법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분배 방식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들 간의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 때문에 쉽지가 않다. 정부의 개입은 시장경제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정부 규제가 타당시되는 경우도 많지만 국민의 경제적 후생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불필요한 정부의 개입이 시장 실패를 부추긴다는 주장도 있다. 시장 실패보다는 정부의 실패가 훨씬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규제가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정부가 확실하고 필수적 정보 없이 정책을 설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 공무원이 복잡한 기업 경영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국민생활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든 일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실정을 모르고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는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지금의 부동산정책에 관한 시비도 그 일례다. 둘째로 정부 스스로가 규제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법치주의는 시장경제 운영과 사회 안정에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불법행위를 규제하는 법률을 정치적 이유로 엄격히 집행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정부가 집단이기주의와 노사관계를 다루는 태도에서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셋째로 정부 당국자가 시장경제의 운용 원리를 모르거나 무시한 채 정책을 운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때문에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시민을 괴롭히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일례로 옛날에 서울시가 경로 캠페인을 위해 버스회사에 노인들의 무임승차를 의무화한 일이 있다. 그 결과 버스마다 노인을 태우려 하지 않고 때로는 밀어붙이기도 했다. 심지어 한 노인이 넘어져서 다쳤다는 보고까지 있었다. 차라리 서울시가 세금 중에서 약간의 자금을 염출해 승차권을 사서 동회를 통해 노인에게 나눠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왼쪽부터 노성태 한국경제연구원장, 김광두 서강대 교수,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손병두 서강대 총장, 남덕우 전 국무총리,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 이장규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

유럽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정부의 규제가 구조적 실업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의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기는 쉬워도 해고하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거나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정책은 고용된 사람들의 실업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기업의 신규 고용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결국 유럽과 미국 사이에는 실업률의 차이가 큰 상태다. 1990~2000년 사이의 평균 실업률을 보면 프랑스의 11.1%, 이탈리아의 10.5%, 영국의 8.0%, 독일의 7.9%에 비해 미국은 5.6%에 그치고 있다. 정부 규제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회계층 간의 ‘평준화’다. 그러나 경쟁사회에는 언제나 강자와 약자가 있게 마련이다. 모든 계층과 개인 간의 격차를 평준화할 방법은 없다. 평준화를 강요하면 경쟁적 발전과 향상이 저해된다. 이뿐 아니라 평준화는 약자들의 향상 의지와 기를 꺾게 되기도 쉽다. 그러므로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동시에 약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별도로 강구해야 한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격차는 존중하되 그 외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격차(상속, 투기, 탈세 등)는 좁혀가도록 하는 것이 자유민주 정부들의 공통된 정책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운영에 정부 규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규제는 가급적 적게 해서 경제자유도를 높여야 한다. 또 그 방법에 있어서도 가급적 시장친화적인 방법을 택해야 효과적이라는 것이 여러 나라의 경험과 시행착오에서 얻는 교훈이다.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지적, 사회주의에서 그 대안을 찾는 학자들이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42년에 출간한 유명한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Capi 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에서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결국에는 사회주의로 이행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자본주의의 위대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경영 형태가 점점 사회화되고 사람들은 본래 초이성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러 국가의 사회주의 실험은 그의 예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회주의 체제에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정부가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계획과 통제로 자원 배분을 결정한다. 옛소련은 70년 동안 이 제도를 실험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붕괴했다. 근본적 이유는 자유와 빵의 문제를 양립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경제를 실시하면 자원은 물론 인적자원도 국가가 관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개인들의 직업, 교육, 거주, 여행, 가정 생활에 관한 선택을 통제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자원을 국가 소유로 하되 자원 배분에 있어선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그 예로 1920년대 소련의 신경제정책(NEP) 과 1950~60년대의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체코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능률과 형평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했던 이들 나라의 실험은 단기로 끝났고 그 결과도 좋지 않았다. 이 체제 역시 인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과실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는 권리와 자유가 없으면 인간이 땀 흘려 일하거나 창의를 발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을 입증해 준 셈이다. 위의 이유들로 볼 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서로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의 장래』에서 자본주의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러나 결국 그의 결론은 “자본주의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케인스도 자본주의는 “여러모로 대단히 문제가 많은 체제” 이지만, “현명하게 관리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다른 체제보다도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가장 효율적인 체제로 만들 수 있다” 고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관계도 결코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1인 1표제지만 시장경제에 있어서는 적자생존의 경쟁논리가 지배적이다. 경제적 경쟁에 패한 자는 시장에서 물러나야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1인 1표이기 때문에 패자들이 단합해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시장경제를 현명하게 운용할 능력이 있는가? 사실상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능을 계속해 왔다. 예컨대 복지국가의 제도를 만든 것은 현실을 무시한 좌익 정치가가 아니라 보수주의 정치인들이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취임 연설에서 “자유사회에서 다수의 빈자를 돕지 않으면 소수의 부자를 보호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민주적 대의정치가 시장경제를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가 말한 대로 “정치 권력으로 시장이 창출하는 불평등을 줄이는 데에는 곡예와 같은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여러 정치체제들과 시장경제의 갈등 속에서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낙관적이었다. 그는 ‘자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 ‘자연적 질서(natural order)’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자연적 질서에는 자기 치유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필경 인간은 자유와 합리를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우월(優越)하는 대안은 없다. 한국이 표방하는 민족통일도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체제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민주와 시장경제가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 이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지도자들은 그것을 힘써 창달하려 하지도 않고 있다. 국민도 국가 이념의 중요성과 그를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현재 한국 경제가 그나마 돌아가고 있는 것은 시장경제의 강인한 자율기능 덕택일 것이다. 정치 수뇌부와 국민이 국가 이념과 시장경제 원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계몽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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