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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표 칼럼] 조지 소로스, “역사흐름 거스르지 마라"

[홍세표 칼럼] 조지 소로스, “역사흐름 거스르지 마라"

최근 서구 경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학파로 스탠퍼드 학파가 꼽히고 있다. 사물이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있고, 또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이론. 이들은 경제의 중요 요소로 상호작용성(reflexibility)과 반향(feedback)을 꼽는다. 서로 영향을 받으며 반응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특성에 주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보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저렴한 납품업체를 선택한 기업이 있다. 하지만 이 납품업체에서는 저임금에 불만이 많은 근로자들의 파업이 시작됐다. 이로 인해 생산 일정이 늦어져 오히려 손실을 보게 됐다. 파업의 원인은 한 근로자의 아이 입원비 부족으로 열악한 환경에 반발한 것. 그 뒤에는 커지는 적자폭에 고민하며 병원비를 올려오던 병원 원장이 있을 수도 있다. 스탠퍼드학파는 이런 인과관계와 그로 인한 영향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사회 시스템을 분석한다. 이들이 인정받고 있는 배경에는 너무 복잡해져 기존 경제이론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있는 현대사회가 있다. 종전의 케인스학파나 화폐이론학파 등 이른바 거시경제학파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이 학파가 생겼다. 이를 처음 개념화한 사람은 1993년 노벨상을 수상한 더글러스 노스다. 그는 한 국가가 발전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정책을 도입하다 실패하는 일이 많다는 데 주목했다. 보통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서 성공했거나 그렇게 평가되는 정책을 도입하게 된다. 정책 자체에는 문제가 적었다. 문제는 두 나라 사이의 비공식 규칙, 즉 역사적ㆍ문화적 차이다. 아무리 같은 조건에 같은 정책을 사용하더라도 비공식 규칙으로 인한 차이를 넘어서기 힘들었다. 더글러스 노스는 과거 50년간의 정보를 분석했다. 특히 사회주의 제도의 탄생, 실패와 몰락, 미국 월스트리트의 위기 등과 관련된 경제학 이론 실패를 분석해 결론을 도출했다. 정책은 완벽한데 왜 실패할까? 여기서 우리는 현 정권의 분배이론이나 이를 기초로 한 외골수적인 부동산정책, 고용정책, 큰 정부 지향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스탠퍼드학파는 제도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하나의 균형상태에 도달한다고 강조한다. 오랜 기간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겪으며 이해관계의 균형이 팽팽하게 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때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하나의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이는 정책이 더욱 유연하고 가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경제는 빠르게 변화하며 새로운 균형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 정부의 경직된 정책 고수 매너리즘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이론을 가장 지지하는 사람이 바로 헤지펀드의 거물 ‘조지 소로스’다. 우리는 흔히 이 사람을 투기자본의 첨병, 또는 세계적 경제질서 교란자로 낙인찍고 기피인물 리스트에까지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그는 철학자 칼 포퍼의 제자인 경제철학자다. 소로스는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인간은 반드시 과오를 범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잘못을 시인하고 시정해 나가는 열린 사회(Open Society)가 바로 이상적 사회라고 주장하는 포퍼의 이론에 경도됐다. 이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세계 각국에 재단을 설립해 사회주의 국가와 개발도상국 사회개혁에 진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소로스에 공감하는 것은 헤지펀드 수장으로서 풍부한 실물시장 경험을 갖는 한편 또 다른 한쪽에서는 포퍼 사상으로 무장된 철학적 시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로스는 “경제 분석은 자연과학과 달리 보편적으로 옳을 수 없다. 경제 분석 내지, 정책 실패의 이유 또는 시장경제학이 일단 옳다고 판단해 수용한 모든 사회적ㆍ정치적 기관이 끝내는 불안정화하는 이유는 아직도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의 실패는 오로지 우리들의 경제이론 이해가 불충분하거나 통계자료가 부족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고 자신의 경제 철학을 피력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위기』에서도 기존 경제 분석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경제적 사건은 경제를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좌지우지되다 결국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뀌곤 한다”고 지적했다. 꼭 우리 정부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지식 부족은 물론 저간의 잘못된 각종 행위가 떠올라 입맛이 쓰다. 그들은 어째서 정책다운 정책도 펴지 못하면서 자기들 주장만이 옳다고 강조할까? 왜 실물경제에 맞추어가고자 하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는 것인가? 거시경제 이론으로는 힘들다 소로스는 또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이론이 아무리 옳다손 치더라도 교과서에 없는 변수들이 나타나는 순간 그들의 주장은 더 이상 타당성을 지켜갈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이야말로 오늘의 우리 경제정책 담당자가 숙연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의미심장한 말같이 느껴진다. 상호작용성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의 기대와 현실 간에 또는 인간과 인간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소로스는 이 상호 작용성의 개념을 축으로 시장이 하나의 균형점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경기상승(boom), 붕괴(bust)의 사이클 함수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그 예로 동아시아(특히 한국)와 미국에서도 지난 10여 년 동안 이 사이클이 반복돼 왔다고 주장한다. 그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위기』를 집필한 동기도 바로 이 동아시아 경제위기였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잘못하면 지난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나 다른 형태의 위기가 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스탠퍼드학파는, 비교제도 분석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구조개혁은 바로 제도개혁을 뜻하는바 이를 몇 가지 개별문제 해결(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 균형발전, 행정수도 이전, 지엽적 부동산 대책, 거칠게 급조되는 분배정책, 뜻도 실체도 불분명하게 낱말만 난무하는 개혁 내지 혁신)만으로는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제도가 자생적으로 창출된 게임 규칙상의 균형인 이상 그리 간단히 해결될 수 없다. 제도의 여러 요소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기 때문에 한쪽 규칙이 불변이면 다른 쪽 규칙도 변하지 않는다는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의 최대 문제점은 정책 입안, 집행에 있어 제도의 보완성 의식 또는 제도가 균형 상태라는 의식이 전혀 없음은 물론 우선순위 감안조차 없이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부작용이나 정책 실패의 후유증에 대한 심각한 검토도 없왔던 것 같고 이로 인한 민생고 악화는 아예 안전에 없었던 것 같다. 본격적 구조개혁, 제도개혁을 위해서는 이 제도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당위적 의의, 여러 게임의 규칙과 구성원 간의 상호 작용성 등을 충분히 분석해야 한다. 이 분석을 기초로 제도를 하나의 균형상태에서 또 다른 하나의 균형상태 또는 복수의 균형상태로 원활하게 이행시키느냐는 전략 플랜을 짜야 한다. 또 어느 방향에서 어떤 타이밍으로 정책을 시행해 나갈지를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비교제도 분석의 구도는 글로벌 시대의 구조개혁, 제도개혁의 시대에 아주 유효하고 현실적인 이론적 틀로 고려될 만하다. 고전적 거시경제학의 이론적 틀이 사회주의적 개념 틀을 넘어 구조가 안정된 시대에 오랫동안 유효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변화다. 제3차 산업혁명이나 글로벌화라는 엄청난 환경변화를 겪는 지금 거시경제학의 지반 침하가 일어나고 비교제도 분석 같은 새로운 이론적 틀의 현실적 의의가 점차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정부는 거시경제학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학자의 고집스러운 주장만 듣고서 시곗바늘을 역으로 돌려 옛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틀어놓으려 하고 있다. 이런 우리 정부를 향해 소로스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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