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T ‘뻥카’치고, 정통부 ‘콜’ 불렀다?
LGT ‘뻥카’치고, 정통부 ‘콜’ 불렀다?
"LG텔레콤이 동기식 IMT-2000 사업권을 포기하면 본인이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것을 남용 사장이 몰랐을 리 없다. 충분히 예측하고 내민 카드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LGT가 승리한 게임이다. 덕분에 SK텔레콤과 KTF도 정보통신부를 상대로 꽃놀이패를 계속 쥘 수 있게 됐다. 이번 게임의 패자는 정통부다. 정통부의 이동통신 정책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를 것이다.” 전직 정보통신부 고위 관료의 얘기다. LGT가 동기식 IMT-2000 사업권 포기를 선언(7월 4일)하고, 정통부가 사업허가 취소와 남용 사장 퇴진을 결정(7월 19일)한 보름간의 숨막히는 과정을 두고 한 말이다. 이번 사태의 파문은 컸다. 지난 7월 4일 LGT 창립 10주년 기자회견에서 남용 사장이 ‘사업 포기 의사’를 밝힐 때부터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정통부는 바로 다음날 노준형 장관이 직접 나서 “사업 포기 의사를 밝혔으니 검토 조치하겠다”고 받아쳤다. 사업권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일부에서 “LGT가 뻥카(bluffing)를 쳤는데, 정통부가 ‘콜’을 부른 격”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돌발 이슈가 터졌다. LGT가 사업권을 포기하면 남용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조항이 전기통신사업법에 명시(6조 2항)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조항은 2002년 법제처가 모든 법률에서 민간 사업자에 대한 규제 조항이 미약하다는 명분으로 삽입된 것이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부각된 것은 10일께부터. 이때부터 상황이 꼬여갔다. 정통부의 속앓이가 시작됐고, LGT는 동정 여론을 등에 업기 시작했다. “정부가 사기업 대표이사를 함부로 내칠 수 있느냐는 것”이 동정론의 핵이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정통부나 LGT가 이 조항을 사전에 몰랐느냐는 것이다. 노 장관은 “7월 들어서 보고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LGT에는 정통부에서 미리 알려줬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LGT 측 관계자들은 “서비스 상용화 시한에 임박해서야 알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동기식 IMT-2000 서비스는 원래 2003년 6월부터 개시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준비 부족을 이유로 올 6월로 연기된 것이다. LGT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업 포기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정통부로부터 IMT-2000 서비스 이행을 안 한다는 이유로 경고 조치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허가권 취소’와 관련된 법 조항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수장이 낙마할 수 있는 조항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 이에 대해 LGT의 한 관계자는 “정통부나 LGT나 이 문제를 미리 꺼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알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이유가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LGT가 사전에 조율을 통해 관련 조항을 삭제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경우 남용 사장의 퇴진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을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양측 모두 이 문제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사실상 사업 포기 서비스 상용화 마감 시한이 임박해서야 ‘파국의 시나리오’를 내민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변재일 열린우리당 의원은 “동기식 IMT-2000이 시장성이 없다는 것은 업계도 정부도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관련 칩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됐던 퀄컴이 이미 칩 개발을 포기했고, 삼성전자나 국내 업체들도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 상태였다. LGT도 기존 2세대 망을 이용해 3세대 서비스가 가능한 ‘EV-DO’에 투자했을 뿐 애초 허가됐던 ‘2㎓ 대역에서의 EV-DV’ 투자는 시늉만 내는 정도였다. 세계적으로도 동기식 IMT-2000 사업을 하겠다는 곳은 LGT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했는데도, 정통부는 ‘이미 정해진 정책 이행’이라는 원칙만 가지고 LGT를 압박해 왔다.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배경이다. LGT 입장에서는 사업 실패가 뻔하고, 시장성도 없는데 2조원 넘는 투자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LGT가 “사업 포기는 불가항력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LGT가 책임을 다 면할 수는 없다. 기업 입장에서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부작용이 있더라도 진작 포기 선언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LGT는 2005년 초부터 “EV-DV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때 LGT는 “시스템 개발은 진행이 됐으나 일부 단말기에 문제가 있었고 3G 자체가 2G와 차별화되지 못하고 사업화하는 것이 경쟁성이 없다고 판단해 정통부와 합의해 투자를 2006년으로 미룬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정통부나 LGT는 동기식 IMT-2000 시장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번 허가취소 발표를 하면서 LGT에 많은 것을 양보하는 방안을 발표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특유의 ‘약자 전술’과 업계를 시끄럽게 하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으로 정부로부터 LGT에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냈던 남용 사장이 퇴진하는 아픔에 비해 LGT는 더 많은 것을 얻어냈다는 평이다. LGT는 동기식 IMT-2000 사업을 접음으로써 향후 납부해야 할 출연금 9300억원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LGT가 사용하던 기존 주파수 대역(1.8㎓)에서 3세대 서비스나 마찬가지인 ‘EV-DO 리비전A’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 이 경우 신규 설비투자비는 동기식 IMT-2000의 30% 정도로 줄어든다. 서비스 수준도 현재 SKT, KTF가 출연금만 1조3000억원을 납부한 비동기식 IMT-2000(W-CDMA)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사장이 퇴임하는 경영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괜찮은 거래’다. 정작 정통부의 고민은 지금부터다. 나머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KTF는 정통부 발표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LGT에 기존 대역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정책의 일관성도 저해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SKT는 일단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 속에 관망하는 자세다.
정통부 ‘규제 정책’ 고수할까 이동통신 업계는 늘 이런 식이었다. 정통부가 어떤 정책을 내도 업체 간 유·불리가 분명한 경우가 많다. ‘통신 3강 구도’라는 목표 아래 선·후발 사업자 간 차별 규제 정책을 펴온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후발 사업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나오면 선발 사업자가 반발하고, 2위 사업자는 나도 좀 달라는 일이 반복돼 왔다.
정부는 그동안 SKT에는 강한 규제, 후발 사업자인 KTF와 LGT에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펴왔다. 특히 3위 사업자인 LGT에 유리한 정책을 펴다가 SKT와 KTF에서 ‘볼멘소리’를 해오면 어쩔 수 없이 들어주는 입장을 취해왔다. “LGT는 LGT대로 보호를 받고, SKT와 KTF는 역차별을 강조하며 이득을 취해가는 ‘꽃놀이패’로 활용해 왔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많은 전문가가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의 정책을 지양하라’고 했고, 이주헌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은 “업계가 광화문(정통부)만 바라보는 꼴”이라고 비판해도 정부는 ‘유효경쟁체제(차별규제정책)’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통부의 과도한 통신시장 개입은 된서리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IMT-2000이 사실상 ‘정책 실패’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회도 9월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강도 높게 다룰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노준형 정통부 장관은 그러나 “정책 실패로 보고 있지 않다”며 “기본적인 정책목표는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동의하는 업계 관계자는 많지 않다. 현 상황만 봐도 그렇다. LG텔레콤이 3세대 사업을 포기한 마당에 정통부가 SKT나 KTF에 3세대 투자를 강요하기는 힘들어졌다. 2003년 W-CDMA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고작 3만 명도 안 되는 가입자를 유치한 경험이 있는 양사 역시 LGT처럼 기존 망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설비투자 면이나 가입자 지속 면에서 유리하다. 이번 사태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자 칼럼을 통해 ‘LGT의 상황은 한국에서 널리 퍼진 정부 규제의 위험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비난했다. 또 “한국 정부가 특정 사업 분야에서 선두 업체들과 신규 업체들 사이에 개입해 사업 허가권으로 시장을 조절해 왔다”며 과도한 규제를 문제삼았다. 국내에서도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에 대한 비난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이미 10년 동안 유지해 온 유효경쟁체제는 구축되지 못했다. 정부가 ‘정책 실패’를 자인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 유연한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얘기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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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사실상 사업 포기 서비스 상용화 마감 시한이 임박해서야 ‘파국의 시나리오’를 내민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변재일 열린우리당 의원은 “동기식 IMT-2000이 시장성이 없다는 것은 업계도 정부도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관련 칩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됐던 퀄컴이 이미 칩 개발을 포기했고, 삼성전자나 국내 업체들도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 상태였다. LGT도 기존 2세대 망을 이용해 3세대 서비스가 가능한 ‘EV-DO’에 투자했을 뿐 애초 허가됐던 ‘2㎓ 대역에서의 EV-DV’ 투자는 시늉만 내는 정도였다. 세계적으로도 동기식 IMT-2000 사업을 하겠다는 곳은 LGT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했는데도, 정통부는 ‘이미 정해진 정책 이행’이라는 원칙만 가지고 LGT를 압박해 왔다.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배경이다. LGT 입장에서는 사업 실패가 뻔하고, 시장성도 없는데 2조원 넘는 투자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LGT가 “사업 포기는 불가항력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LGT가 책임을 다 면할 수는 없다. 기업 입장에서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부작용이 있더라도 진작 포기 선언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LGT는 2005년 초부터 “EV-DV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때 LGT는 “시스템 개발은 진행이 됐으나 일부 단말기에 문제가 있었고 3G 자체가 2G와 차별화되지 못하고 사업화하는 것이 경쟁성이 없다고 판단해 정통부와 합의해 투자를 2006년으로 미룬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정통부나 LGT는 동기식 IMT-2000 시장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번 허가취소 발표를 하면서 LGT에 많은 것을 양보하는 방안을 발표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특유의 ‘약자 전술’과 업계를 시끄럽게 하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으로 정부로부터 LGT에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냈던 남용 사장이 퇴진하는 아픔에 비해 LGT는 더 많은 것을 얻어냈다는 평이다. LGT는 동기식 IMT-2000 사업을 접음으로써 향후 납부해야 할 출연금 9300억원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LGT가 사용하던 기존 주파수 대역(1.8㎓)에서 3세대 서비스나 마찬가지인 ‘EV-DO 리비전A’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 이 경우 신규 설비투자비는 동기식 IMT-2000의 30% 정도로 줄어든다. 서비스 수준도 현재 SKT, KTF가 출연금만 1조3000억원을 납부한 비동기식 IMT-2000(W-CDMA)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사장이 퇴임하는 경영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괜찮은 거래’다. 정작 정통부의 고민은 지금부터다. 나머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KTF는 정통부 발표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LGT에 기존 대역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정책의 일관성도 저해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SKT는 일단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 속에 관망하는 자세다.
정통부 ‘규제 정책’ 고수할까 이동통신 업계는 늘 이런 식이었다. 정통부가 어떤 정책을 내도 업체 간 유·불리가 분명한 경우가 많다. ‘통신 3강 구도’라는 목표 아래 선·후발 사업자 간 차별 규제 정책을 펴온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후발 사업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나오면 선발 사업자가 반발하고, 2위 사업자는 나도 좀 달라는 일이 반복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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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재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위원 | ||
“기업이 가는 길, 정부가 막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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