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의 근거지 라마디를 가다
반군의 근거지 라마디를 가다
이라크 주둔 미 해병대원들의 전투현장 동행취재기 7월 22일 미 해병대 소속의 더스틴 그로스 병장은 이라크의 라마디 거리에서 부서진 험비 장갑차 옆에 누워 있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중상을 입어 일어나지 못했다. 험비 장갑차의 이 사격수는 한동안 의식을 잃고 총탑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수많은 파편과 도로블록 조각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방금 전 매설된 급조 폭탄(IED)이 터지면서 험비의 엔진이 찢겨 갈라졌다. 엄청난 폭발력에 5t이나 되는 험비마저 공중으로 풀썩 솟았다가 떨어졌고, 운전석 문짝은 떨어져 나가 길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순찰대의 나머지 대원들은 신속히 자신들의 부상 여부를 점검했다. 모두 “나는 괜찮아!”라고 고함치며 그로스 병장을 구하러 달려갔다. 대원들은 그를 험비 옆의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갔다. 나도 그 옆으로 피했다(나는 뉴스위크 사진기자 한 명과 함께 그 순찰대를 동행 취재 중이었다). 적군의 기습 공격 조짐을 찾으려고 거리를 훑어보던 크리스 윈시프 하사가 “저쪽 모퉁이를 조심하라!”고 소리쳤다. 부하 해병대원 한 명이 쓰러졌고 장갑차가 망가진 만큼 윈시프로서는 절대로 오판해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 몇 초 뒤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윈시프의 부하들이 멀리 담벼락 뒤에서 나타난 일단의 반군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반군 한 명은 로켓추진 유탄발사기(RPG)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RPG를 발사하려고 쪼그려 앉는 순간, 미 해병대원 한 명이 먼저 유탄발사기를 쐈다. 그 반군은 즉사했다. 동시에 거리에 늘어선 건물들의 출입구와 창문에서 반군의 AK47 소총들이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미 해병대원들이 엄폐물을 찾기도 전에 남쪽과 서쪽에서도 총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해병대원들은 포위됐다. “저 집으로 들어가라!” 요란한 총소리 너머로 윈시프 하사가 소리쳤다. 부하들은 그를 ‘기계’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윈시프는 IED가 폭발했던 장소 옆의 울타리 쳐진 건물을 가리켰다. “건물 내부를 장악해! 지붕으로 올라가!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요즘 이라크에서는 저항세력이 준동하는 안바르주의 주도 라마디의 치안 상황이 가장 나쁘다. 윈시프와 그의 부하들을 포함해 그 지역에 주둔 중인 수천 명의 미군은 적군으로 가득한 도시를 상대로 싸우는 중이다. 적군은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고참 전사들과 골수 바트당(사담 후세인 치하의 집권당) 잔존 세력부터 거리의 주민 용병까지 다양하다. 이들 주민 용병은 에어컨이나 발전기를 얻으려고 자발적으로 IED를 길거리에 매설한다. 미군은 수니파 정치인들이 여러 달째 촉구하는 대로 라마디시에서 신속히 철수하거나 도시 외곽의 기지로 복귀하고 싶지만 계속되는 전투로 철수가 지연된다. 라마디의 미 해병대 측은 한 장교가 “미 서부시대 총잡이들의 대치 상태”라고 표현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해병대원들은 늘 그래왔듯이 일단 교전 상태에 들어가면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의 공격에 응수한다. 그러나 라마디의 일부 지역을 담당한 부대의 장교들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좀 더 부드러운’ 접근법을 사용하면서 희망적인 결과를 얻어왔다. 무력 대결보다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접근법이다. 이런 새로운 접근방식이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해병대원들에게 항상 인기가 있지는 않다. 그들은 이런 방식을 ‘전사답지 않다’고 경멸한다. 그러나 라마디 주둔 미군 사령관인 션 맥팔랜드 대령의 판단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는 수니파 반군을 상대로 하는 전투에서 라마디의 상황은 궁극적으로 미군의 대 이라크 정책 전반의 성공이나 실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맥팔랜드는 라마디가 일종의 ‘분기점’이 되는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7월 22일의 기습 공격 같은 사태는 윈시프 하사와 부하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 그들이 소속된 브라보 무기 중대의 임무는 도로를 순찰하면서 곳곳에 매설된 IED를 찾아내 제거하는 일이다. 미군 당국의 추산에 따르면 라마디 거리에 설치되는 IED의 숫자는 매일 50~100개다. 브라보 중대원들이 매일 제거해야 하는 목표치보다 많다. 윈시프 하사는 험비 4대로 구성된 순찰대의 선두 차량에 탑승해 운전병에게 제2의 눈의 돼 주었다. 그날 윈시프는 그로스 병장에게 “저쪽의 전깃줄들을 조심해. 오른쪽으로 붙어서 가라”고 경고했다. 뉴스위크 종군 기자 팀을 대동한 순찰대는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20번가로 들어갔다. 암갈색의 가옥들과 셔터를 내린 상점들, 그리고 시든은 대추야자수가 늘어선 대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그날 오후 일찍 해병대원들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산책하고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봤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나쁜 징조다. 주민들은 언제 저항세력의 공격이 개시될지 미리 아는 경우가 많다. 해병대원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해병대원들이 IED 폭발 뒤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총격전이 시작됐다. 미군들이 ‘복합 공격’이라고 부르는 반군의 전술이었다. 처음엔 폭탄으로, 곧 이어 총포로 공격하는 전술이다. 10여 명의 반군이 세 방향에서 미 해병대원들을 맹렬히 공격했다. 애머린더 그레월(24) 병장이 사격한 뒤 새로운 지점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 놈 맞혔다!”고 소리쳤다. 윈시프의 부하 몇 명이 근처의 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겁에 질린 이라크인 부부가 있었다. 그 여성은 울어대는 아기를 가슴에 부둥켜 안고 큰 소리로 기도문구를 거듭 외쳐댔다. “인샬라! 인샬라!(알라의 뜻대로!)” 해병대원 네 명이 신속히 지붕 위로 뛰어올라갔다. 아직도 거리에 남아 공격을 받고 있는 동료들을 엄호하기 위해서였다. 마크 페팃 일병이 지붕 난간 뒤에서 몸을 드러내더니 “이 ×구멍 같은 놈들이 정말로 한바탕 놀고 싶은 모양이구먼!”하고 소리치더니 M16을 갈겨댔다. 무전기에서 또 다른 나쁜 소식이 들렸다. 대대 측에서 IED 폭발로 망가진 험비를 제거하려고 견인 트럭을 보냈는데 그 트럭마저 IED 두 개의 제물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미군의 F-18 호닛 전폭기가 조명탄을 투하했다. 순찰대의 상황이 악화될 경우 공중 지원을 하려고 준비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반 시간 뒤 해병대원들은 마침내 반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망가진 험비를 견인해 본대로 돌아왔다. 험비의 두툼한 장갑 덕분에 해병대원들은 한 명의 부상자만 내고 반군 5명을 사살했다. 맥팔랜드 대령의 제1 전투 여단이 지난 3월 라마디에 왔을 때 저항세력의 공격은 보다 치열했지만 어떤 점에서는 맞서 싸우기가 좀 더 쉬웠었다. 30~40명으로 구성된 반군 집단들이 해병대 기지와 순찰대를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인원 수가 많은 만큼 죽는 반군들도 많았다. 그 이후 반군의 대규모 공격은 감소했고, 그들은 대신 장기전에 대비하는 듯했다. 고위 미군 장교들은 알카에다가 라마디 전역의 주유소들을 장악한 채 판매세를 부과하고 주유소의 기름값을 세 배로 올렸다고 전한다. 알카에다는 그렇게 거둬들인 현금으로 실직한 이라크인 청년들을 고용해 폭탄들을 매설하고 기습을 가하도록 사주한다. 임무의 민감성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해병대 정보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알카에다는 지속적인 전투 역량을 확보했다. 그들이 라마디의 통제권을 장악하기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런 전망과는 반대로 맥팔랜드 대령은 새로운 적극적인 전략을 추진 중이다. 현지 부족장들의 도움을 얻는 전략이다. 부족원들을 훈련시켜 자체적인 경찰을 구성하는 대가로 마을의 경제 개발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한다.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맥팔랜드는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매일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다.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저항세력은 이라크인 경찰관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 길거리에 그들의 시체를 버려둔다. 미군에 협조하려는 주민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다. 그러나 경찰 지망자들은 계속 찾아온다. 라마디의 서쪽 변두리 지역에서는 또 다른 접근법이 효과를 거두는 듯하다. 그곳에서 리마 중대의 맥스 바렐라 대위는 주민들의 가옥 출입문을 발로 걷어차 여는 행동을 여러 달 전에 중단했다. 대신 노크를 하고,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정중히 묻는다. 집안에 들어가면 여러 시간씩, 때론 밤 늦게까지 집주인과 ‘잡담’하며 보낸다고 한다. 최근에는 관할 지역 내 2000가구를 대상으로 호구조사를 했다. 바렐라는 “관할 구역 내의 모든 가정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알카에다 같은 적군과, 이라크의 독립을 위해 싸운다고 자처하는 ‘민족주의적 반군’을 구분한다. “우리는 주민들을 오랫동안 구금해야 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그냥 내버려둔다는 방침이다. 우리가 민족주의적 반군과 얼마나 솔직히 터놓고 대화하는지를 알면 모두 놀란다”고 바렐라는 말했다. 리마 중대의 관할구역에서는 지난 3개월 동안 폭력 사건이 70% 이상 감소했다고 맥팔랜드 대령은 확인해줬다. 아이들이 통금 시간에도 거리에서 놀고, IED 공격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러나 라마디의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영구적 전쟁 상태다. 도시 중심부에서 킬로 중대 소속 해병대원들은 폭파 방호벽 뒤에 피신한 채 반군 전사들에게 포위됐다. 반군들은 미군 본부 중대의 정문에서 불과 몇m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 잔해(‘죽음의 구역’으로 불린다)에 잠복해 있다. 킬로 중대 3소대 소속 해병대원 중 온전히 살아남은 사람은 5명뿐이다. 나머지 7명은 모두 전사했거나 부상했다. 라마디시에 주둔 중인 해병대원의 대다수는 한 번 이상의 IED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지난 4월 이래 라마디에서는 최소한 해병대원 24명이 사망했다. 라마디 주변 지역에서는 그보다 두 배가 넘는 대원들이 전사했다. 라마디의 미 해병대는 야간 순찰을 더 좋아한다. 야간용 장비가 반군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위험한 임무이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날 밤 뉴스위크 취재진은 바렐라 대위와 부하들의 도보 순찰에 동행했다. 반군들이 득실대는 지역의 어느 시장 한복판까지 진입했다. 대부분의 경우 해병대원들이 들어가지 않는 구역이었다. 그날 밤의 순찰 임무는 현지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바렐라는 테러분자들이 출몰하는 17번가 부근의 한 2층 가옥에서 주인인 변호사와 우호적인 잡담을 나눴다. 바렐라의 부하들이 순찰을 재개할 무렵 도시 저쪽에서 천둥 같은 폭발 소리가 들렸다. 곧 소식이 들어왔다. 또 다른 해병 순찰대가 리마 중대원들이 지나간 구역을 따라오던 중 줄리언 레이먼(22) 상병이 지뢰를 밟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날 밤 끝내 사망했다. 그 폭발 사건 뒤 바렐라와 부하들은 순찰 경로를 변경했다. 좀 더 안전한 서쪽 구역으로 향했다. 너무나 긴 하룻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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