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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출 희망만으론 안 된다

원전 수출 희망만으론 안 된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지난 8월 2일자 표지 기사로 ‘한국 원전의 헛된 꿈’ 을 실었다. 한국의 원자력발전 수출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 헛발질만 해대며, 국제 원전업계의 판도 변화로 한국이 중대한 위기 국면을 맞았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읽고 정부에서 원자력 발전을 담당하는 산업자원부가 기고문을 보내 왔다. 반론을 제기하려는 차원이 아니라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부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고 이인호 원자력산업팀장은 기고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산자부의 기고문에서 뉴스위크 한국판의 기사가 부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했다는 지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러 저러한 사안을 꼭 그렇게 야박하게 볼 필요가 있느냐는 산자부 입장 설명이 기고문의 근간이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산자부의 기고문을 원문 그대로 싣기로 했다. 뉴스위크 한국판의 지적에 정부의 관련 부서가 공식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8월 2일자 표지 기사의 일부 내용을 다시 환기시켜 독자들이 산자부의 기고문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산자부는 기고문에서 ‘한국 원전의 경제성과 안정성이 충분히 입증된다면 원천기술 보유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진출할 여지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뉴스위크 한국판이 8월 2일자 23~24쪽에서 누누이 강조했듯이 정부의 그러한 희망사항이 모두 충족될 가능성은 ‘여전히’ 아주 작다. 산자부의 기고문은 정부가 희박한 확률에 기댄다는 뉴스위크 한국판의 비판을 극복할 만한 새로운 근거를 제공하지 못했다. 산자부는 기고문에서 ‘정부가 부품수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뉴스위크 한국판은 그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정부가 플랜트 수출에만 집착해’(21쪽 셋째 칼럼 하단)라는 대목은 있다. 자세히 읽어 보면 이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플랜트 수출에 매달리는 실태를 비판한 어법일 뿐 정부의 부품수출 무관심을 지칭한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기사는 26쪽 첫째 칼럼 상단에 한국이 부품수출에 앞서나가며 실적도 3억5600만 달러를 올렸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 원전의 헛된 꿈’ 기사가 나간 뒤 적잖은 파장과 반응이 뒤따랐다. 원자력 공학을 가르치는 한 대학 교수는 “이 글이 원자력 산업이 국부를 창출하는 기술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는 e-메일을 보내 격려해 주었다. 함께 보낸 글에서 이 교수는 한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자력 업계에 종사하는 한 인사는 원자력 발전 업계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제보도 보내 왔다. 한편 원자력 업계 일각에서는 원천기술이 없어도 원전 플랜트 수출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1981년 1월 24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하곤 한다. 그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프라마톰사(현 아레바)는 1980년 울진 1, 2호기를 한국에 수출했다. 그러나 당시 프리마톰사는 원천기술이 없었다. 그런데도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프라마톰에 기술이전을 해준 웨스팅하우스사가 프라마톰의 한국 원전 판매를 사전 동의해 주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원전 플랜트 수출도 희망이 있다고 여겨진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아레바(당시는 프라마톰) 측에 진위를 문의했다. 누차에 걸친 전화와 e-메일을 통한 끝에 아레바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진작에 원천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웨스팅하우스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오트만 아레바 극동 담당 부사장은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자력 기술을 제공받을 당시 미국 이외의 지역에는 원전 판매가 가능하도록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레바가 한국으로 원전을 수출할 때 미국 측의 사전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울진원전 1, 2호기 입찰에 앞서 웨스팅하우스와 아레바는 영광 1, 2호기 입찰에서 맞붙기도 했다. 이때는 웨스팅하우스가 승리했다. 이후 울진 1, 2호기 입찰에서는 아레바가 웨스팅하우스를 꺾었다. 이처럼 난타전을 벌이는 업체 사이에서 기술이전이니 사전 동의니 하는 거래 자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트만 부사장도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했다면 웨스팅하우스사는 아레바가 입찰에 참가해 자신들과 경합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뉴욕타임스 기사 중 기술이전과 사전승인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나 워낙 오래된 얘기인 탓에 웨스팅하우스나 뉴욕타임스 기자의 얘기를 모두 다 들어보지는 못했다. 무엇이라 확고한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뉴스위크 한국판은 아레바 주장에 더 무게를 둔다. 당시의 정황과 프랑스가 기술 독립을 추구한 과정을 감안하면 아레바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프랑스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기술 독립을 이뤘다. 그러면 아레바 사례를 거론하는 한국 원전 업계는 그 정도의 독립 준비와 각오는 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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