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인들“나도 별장 주인”
부유층의 특권은 이제 옛말…지중해 연안 ‘선벨트’가 가장 인기 런던에서 채용 컨설턴트로 일하는 에리히 슈미트는 1년 반 전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휴가 때 지낼 집을 돈 주고 빌릴 이유가 어디 있지? 그냥 한 채 사면 되잖아.” 그래서 크로아티아에 휴가용 별장을 장만했다. 1991~95년 독립전쟁에 휘말렸던 크로아티아와 아드리아해에 면한 아름다운 서부 해안지방은 최근에 와서야 슈미트 같은 사람들의 안전한 투자처로 떠올랐다. 슈미트는 브라크 섬에 있는 침실 일곱 개짜리 석조 주택을 23만 유로에 구입했다. 영국 기준으로 치면 헐값이다. 지금은 50만 유로 아래로는 팔 생각이 없다. 아예 아드리아해 연안의 달마티아에 있는 집 일곱 채를 더 사들여 휴가객들에게 세를 놓는다. 요즘 유럽에서는 슈미트처럼 외국에 별장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런 경향은 일조량이 많은 지방에 집을 갖고 싶어하는 북부 유럽인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리스 섬 지방부터 남부 이베리아까지 펼쳐진 지중해 연안 ‘선벨트’ 지역의 모든 주택 중에서 10~15%가 별장이다. 가장 강력한 시장은 역시 세계 1·2위 관광지로 꼽히는 프랑스와 스페인이다. 그러나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투자 전망도 아주 밝다) 요즘은 크로아티아와 불가리아 같은 나라들에도 많이 몰린다.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변동 상황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라고 파리에 있는 주택금융 회사 UCB 인터내셔널 바이어스의 세바스티앙 뒤케스네는 말한다. 별장을 소유하는 일이 일부 부유층의 특권이었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한때 상류층만 누렸던 생활방식이지만 이제는 저변이 확대됐다. 런던의 외환 회사 캑스턴 FX는 현재 유럽 대륙에 별장을 소유한 영국인의 수를 75만 명으로 추정한다. 런던의 평범한 택시 기사가 스페인에 별장을 소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장소는 다를지 몰라도 독일의 교사나 벨기에의 중간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부의 분배가 확실히 이루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서유럽의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 증가하면서 별장 구매 증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캑스턴은 2001년 이후 별장 시장이 연평균 16.2%씩 성장했다고 추정한다. UCB에 따르면 지난해 스페인에 별장을 구입한 영국인·독일인·네덜란드인 등이 8만~10만 명에 이르며 프랑스에 별장을 구입한 인구는 4만5000~6만 명에 이른다. 아일랜드는 부(富)의 증대가 별장 시장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아일랜드인들은 일본인들에 뒤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부유한 국민이 됐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요인이다. UCB에 따르면 2005년 아일랜드의 구매자들은 프랑스에 7000채, 스페인에 1만2000채의 별장을 구입했다. 인구 400만 명의 국가로서는 엄청난 수치다(인구가 8200만 명인 독일의 구매자들은 프랑스에 1만7000채, 스페인에 2만4000채의 별장을 구입했다). 그중 약 절반 정도가 ‘투기성’ 구매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이용할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투자 차원이다. 아일랜드인들뿐 아니라 유럽 사람 대다수에게 별장 구입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캑스턴의 CEO 루퍼트 리-브라운은 근로계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갑자기 모든 일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다. 1985년 솅겐 협정으로 입국 관리와 국경 통제가 완화됨에 따라 “유럽인들은 자신을 유럽 시민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고, 국경을 넘나들며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일이 더 매력적이 됐다”고 런던 경제대학의 이언 베그는 말했다. 또 무선 통신과 고속 인터넷 덕분에 여행 중 연락하는 일이 쉬워졌다. 게다가 기내 서비스가 없는 저가 항공사들 덕택에 여행 비용도 저렴해졌다. 저가 항공사들의 급성장은 별장 시장의 덕을 보는 동시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유럽 최대의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와 이지젯은 지난해 6700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으며, 올 여름 안에 유럽 내에 58개의 새 노선을 개설할 계획이다. 라이언에어 웹 사이트의 주요 광고주가 휴양지 개발회사인 마제스틱 월드와이드인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마제스틱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크로아티아와 불가리아의 부동산을 매매한다. 마제스틱의 컨설턴트들은 기꺼이 공항까지 승객들을 마중 나와 팔려고 내놓은 집들을 둘러보는 투어를 실시한다. 별장 시장은 변동 상황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간다. 일례로 1990년 이전 스웨덴에 별장을 소유한 독일인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91년에는 1500명에 이르렀고, 지금은 1만 명이 넘는다. 94년 프랑스에서 외국인에게 매각된 별장은 1만4000채였지만 2005년에는 7만5000채로 늘었다. 스페인에서는 97년 3만5000채, 2005년에는 13만5000채의 별장이 외국인에게 팔렸다. 유럽 국가 중 자연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꼽히는 슬로베니아에서는 체코인들이 큰 구매자다. 러시아인들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발트해 연안의 휴양지인 라트비아의 유르말라로 몰린다. 한 때 리처드 버튼·소피아 로렌 등 유명인들이 휴양지로 이용했던 신생독립국 몬테네그로는 저가 항공사가 곧 취항하리라고 예상돼 주목받는다. 두브로브니크 남쪽의 경관이 아름다운 항구 코토르는 독일인·이탈리아인,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인들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포르투갈의 알가르베에는 영국인들이 어찌나 많은지 영국 정당들이 그곳에서 기부금을 모금할 정도다. 또 아일랜드의 게일어 사용 지역에는 게일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언어 보존주의자들의 우려를 산다. 유럽의 별장 소유 붐은 산불처럼 번져 최근에는 모로코(2005년 2만~2만5000채)와 터키(1만~1만5000채) 등 유럽 변두리 지역까지 확산됐다. 많은 유럽인의 비난을 받는 유럽연합(EU)의 관료주의가 이 별장 소유 붐을 부추긴 주요 동인(動因) 중 하나로도 꼽힌다. EU는 여행을 권장하고 유럽인들이 유럽 내 다른 국가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도록 허용했다. 그뿐 아니라 새 회원국들에 사회 기반시설 개선 용도의 ‘구조 기금’ 수억 유로를 지원했다. 이런 후한 지원금은 한 때 이웃 국가에 뒤처졌던 국가들을 변모시켰다.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서는 EU의 지원금이 울퉁불퉁한 도로를 매끈한 초고속도로로 바꿔놓았다. 이런 변모는 기후 등 자연적 이점과 어우러져 막대한 효과를 낳았다. 스페인은 EU 회원국이 된 1986년 이후 별장의 숫자가 적어도 75% 증가했다. EU가 날씨까지 좌지우지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회원국 폴란드도 유사한 혜택을 받게 된다. 바르샤바와 그단스크는 외국인들을 위한 후한 주택융자(보증금 없이 연이율 2%) 덕분에 벌써 구매자들을 끌어 모은다. 별장 구입 붐을 두고 유럽의 꿈이 실현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독일인들이 스페인 이비사 섬의 부동산을 사고, 스웨덴 사람들이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일종의 유럽합중국 탄생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현실적 생각인 듯하다. 유럽 전역에 별장 소유 붐이 치솟은 반면 반(反) EU 감정도 치솟았다. 별장 소유 붐의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가족의 즐거움과 경제적 이득을 염두에 둔 선택이다. 런던 금융가에서 채권 중개인으로 일하던 닉 포드(45)는 6년 전 가족 6명 전원이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로캬른으로 이주했다. “삶의 질을 생각했고, 스트레스가 적은 생활을 원했다. 그리고 그저 프랑스에 살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10~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기이한 존재로 취급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재 그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면서 한 달 평균 세 채의 집을 판다. 이런 변화가 포드 가족의 경우처럼 누구에게나 순탄하지는 않다. “여기 오는 영국인 90%가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포드는 말했다. “그러면 고립되기 쉽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권태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마을 전체가 이주 사회가 되다시피하면서 이 점 역시 달라진다. “알가르베의 호화 주택단지에서는 영어나 독어 억양이 섞이지 않은 말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고 런던에 사는 한 영국계 미국인 사업가가 비꼬듯 말했다. 그 역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별장이 있다. 토스카나는 영국인 휴가 인구가 어찌나 많은지 종종 키안티셔[토스카나산 와인 이름 ‘키안티’와 영국의 주(州)를 나타내는 ‘셔’(shire)를 합성한 말]로 불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꼴불견 별장족’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전형이 자리 잡았다. 그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들 폐쇄적 지역사회는 대개 새 골프 코스에 인접해 있고, 런던 금융가의 직장에서 1년에 열한 달씩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은행간부들과 경영자들이 모여 산다. 그들은 8월이면 떼지어 브리티시 항공편으로 포르투갈 파로로 가서 자기네 별장의 수영장 주위에서 비뉴 베르데(포르투갈산 와인)를 홀짝거린다.” 물론 별장을 구입하는 모든 사람을 이 부류에 포함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우선 많은 사람이 별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기가 사는 집과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 이 곳(프랑스 롯 지역)에 별장을 구입한 영국 사람들은 이 지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파리에서 회사 중역으로 일하는 위베르 파트리코는 말했다. 그는 그 지방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그곳에 별장이 있다. “그들은 거기 와서 시골 생활에 젖어들었다. 강에서 카누를 타고, 하이킹을 하고, 현지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대다수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외국인들의 유입을 반긴다. 낙후한 지역일수록 더 그렇다. “현지인들은 외국인들이 돈을 갖고 오기 때문에 그들을 반긴다”고 불가리아 소피아의 보이코 보리소프 시장은 말한다. “충돌이나 장애는 전혀 없다.” 헐값의 부동산을 찾는 서방 구매자들이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부동산값이 치솟자 집을 팔려는 현지인들은 특히 외국인을 반긴다. 지난 한해 동안 불가리아의 부동산 가격은 적어도 25% 올랐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낮은 지역에 속한다. 슬로베니아 산속의 버려진 농가들에도 요즘은 영어나 이탈리아어로 ‘집 팝니다’라고 쓴 팻말이 나붙었다. 19세기에 건설된 부다페스트 대로 변의 웅대한 아파트들이나, 헝가리 휴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름 휴양지인 발라톤 호수 인근의 주택들은 수요가 꽤 많다. 별장 붐에 관련해 좀 더 심각하게 우려되는 점은 물리적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사는 E!샤프 잡지의 창업자 폴 애덤슨은 지난 8년 동안 프랑스 바르 지역의 몽토루에 있는 별장에서 휴가를 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경관과 분위기가 바뀌었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 전에는 운이 좋아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 한 부를 구했는데 지금은 런던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모두 구해진다. 그러나 창 밖으로 “포시즌스 호텔 건설 현장이 보인다”고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그래도 여기저기 우뚝 솟은 호텔쯤은 스페인의 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난 7월 그린피스 보고에 따르면 8000km에 이르는 스페인의 해안선이 과도한 건설로 ‘심한 궤양’을 앓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해안선의 4분의3이 완전히 개발돼 해변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 이것들은 모두 유럽인들이 안고 가야 할 문제다. 별장 붐 현상은 21세기의 특징이 될 듯하다. 영국인들도 최상류층을 제외하고는 외국 여행을 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노동자들은 1년에 1주일씩 받는 휴가 때면 가족을 블랙풀(랭커셔의 해안 휴양도시)로 데려갔다. 나중에 패키지 여행이 생기면서 일반인들도 잿빛 하늘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게 됐다. 1984년 24%에 불과하던 영국인의 여권 소지율은 현재 80%로 상승했다. 또 프랑코 총독의 스페인부터 동유럽, 전후의 발칸 반도까지 폐쇄됐던 유럽 지역이 개방됐다. 그리고 아일랜드와 에스토니아 같은 나라들은 그리스도 누려보지 못한 부를 맛보기 시작했다. 여행과 통신에 관련된 신기술은 이런 역사적 변화를 한층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평범한 유럽인들에게 별장의 소유가 최신 유행인 시대도 곧 막을 내리고, 그저 생활 방식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올 듯하다. With KARLA ADAM and WILLIAM UNDERHILL in London and GINNY POWER in Paris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Klout
Klout
섹션 하이라이트
섹션 하이라이트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 모아보기
- 일간스포츠
- 이데일리
- 마켓in
- 팜이데일리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충격 패배에 이정효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 말이..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충격 패배에 이정효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 말이..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트럼프 “한국 군사비 수십억달러…관세 협상과는 별도”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3분만에 완판된 일본 신칸센 토큰증권…비결은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美3상 성공에 HK이노엔, 비만약 신기술에 인벤티지랩 ‘상한가’[바이오맥짚기]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