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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꿈의 ‘과학+예술’ 연구 도시 생긴다

[단독취재] 꿈의 ‘과학+예술’ 연구 도시 생긴다

과학자 3000명과 예술가 1000여 명이 함께 사는 도시. 매일 아침이면 물리학자와 화가, 공학도와 조각가가 곳곳에서 티 타임을 가지며 서로의 철학을 공유하고 수시로 포럼을 여는 곳. 직경 8km의 중이온 가속기가 도시를 관통하고 200개의 연구단지와 대학, 해외 연구진들이 함께 사는 도시. 이 도시 이름은 ‘은하도시’다.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국내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대장정에 올랐다. 지난 9일 서울 신문로 역사박물관 강당에서는 국내 과학자와 예술인, 경제인 등 100여 명이 모여 ‘은하도시 포럼’ 창립총회를 갖고 활동을 선언했다. 이날 창립 총회엔 은하포럼의 운영위원장인 서울대 민동필 물리학부 교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인석 디자인과 교수, 서울대 노정혜 생명과학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들이 제시한 청사진은 21세기 최첨단 기초과학과 예술적 감성을 결합시키는 공간을 창조하겠다는 것이다. 1970년대 포항제철로 대변되는 ‘산업 비즈니스’로부터, 80년~90년대 삼성전자로 대변되는 ‘기술 비즈니스’에 이어 차세대엔 은하도시의 ‘과학 비즈니스’ 시대를 이어가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은하도시 포럼은 2008년까지 도시건설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확정하고, 이후 5년간 건설에 돌입해 2013년엔 도시 형태를 갖출 계획이다. 이를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은 총 3조원. 도시 안엔 기초과학연구소와 예술가들의 작업실, 연구를 응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기업연구소 등이 상주하게 된다. 과학자 3000여 명이 상주하고 500여 명의 엔지니어링과 공학도, 기업체 연구소, 1000여 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주변 인원까지 합치면 30만~50만 명의 규모를 갖춘 도시가 된다.

“선진국 되려면 반드시 필요” 은하도시 건설은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왔을까? 민동필(59·서울대) 교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국내 기초과학 연구지원시설의 열악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에 2년 전부터 새로운 환경을 창조해 보자는 신념 아래 미래지향 환경도시를 구상하게 된다. 민 교수는 이때 “과학과 아주 동떨어진 다른 분야인 예술과 아이디어를 소통하면 전혀 새로운 아이템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과학과 예술을 결합시켰다. 예술 쪽에서는 박인석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자인과 교수가 주축이 됐다. 박 교수는 “중진국까진 공학이나 디자인만으로 승부해 돈을 벌 수 있지만 선진국에선 과학과 예술의 역량에 따라 국력이 길러진다”며 은하도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지난 2년간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과 자연과학을 하는 교수들의 만남이 꾸준하게 진행되면서 은하도시의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실례로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장재호 작곡과 교수는 자신의 작품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물리학의 개념인 양자 역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민 교수가 과학자와 예술인의 모임에서 그의 작품을 본 후 물리학의 양자 역학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최무영 교수는 설치미술가 김현주 작가의 작품을 보고 “물리학적으로 복합 다체계적인 구조”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김현주 작가는 과학자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세계의 의미에 대해 좌담회도 열었다. 예술작품은 형상화돼 있는 것이고, 물리학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시킨 것이 예술 작품인 셈이다. 물리학의 개념을 형상화시킬 수 있다면 과학자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동기 부여는 없을 것이라는 게 민 교수의 말이다. 창조와 발명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예술가이자 동시에 과학자였다. 그는 회화와 소묘 속에서 인간 지식의 미개척 분야를 발견했다. 다빈치에게 회화는 과학의 한 분야로 간주됐다. 앞으로는 기술보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과학과 예술은 서로 충돌하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은하포럼 회원들이 가진 생각이다. 이때 은하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운 것이 ‘가속기(Accelerator)’다.


숫자로 본 은하도시
● 인구 : 30만~50만 명(국내 과학자 3000명 + 예술가·기업인 1000명+엔지니어링·공학도 500명 +α 해외 과학자·예술가·가족) ● 도시 설립 초기 자본 : 3조원(대형 가속기 1조원 + 연구단지 등 기초 인프라 2조원) ● 설립 이후 투자유지비 : 연 1조원
가속기는 물질 내부를 들여다보는 내시경이라 할 수 있다. 수소나 헬륨 같은 극미한 물질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서로 충돌시키면 그 물질이 파괴되거나 에너지 변환에 의해 새로운 ‘미지의 물질’이 생성된다. 이때 극미 물질을 가속하고, 충돌시키며, 생성된 미지의 신물질을 들여다보려면 특별한 장치가 필요한데 그게 가속기다. 가속기는 극미 물질의 깊은 속까지 들여다보는 정밀한 사진기인 셈이다. 물질의 내부구조를 이해하면 물질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밝혀낼 수 있고, 그러면 신약개발이나 동위원소 등 신물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원리다.


은하도시란?


실험실 ·국립기초과학연구소다 ·중이온 복합가속기 중심이다 ·생명·건강·환경 등을 포괄하는 글로벌 사이언스 콤플렉스다 ·에너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추구한다 ·3000명의 과학자가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교다

커뮤니티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연구 공동체다 ·과학과 예술의 대화가 있는 문화의 장이다 ·기초과학 연구를 비즈니스화한다

성장의 동력 ·국가성장의 신형 엔진이다 ·국토의 가치를 키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생산한다
가속기가 물질을 서로 충돌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듯이 과학과 예술의 결합과 충돌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뜻이 여기에 있다. 중이온 복합 가속기는 1000조 분의 1m의 펨토 사이즈(1나노의 100만 분의 1 크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가속기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과학연구소(CERN)에 있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소설 ‘천사와 악마’는 이 가속기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속기는 직경 8km에 길이 27km에 이르는 도넛처럼 생긴 원형 튜브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다. 프랑스와 스위스 영토에 걸쳐 있으며 제네바 시를 지하에서 둘러싸고 있다.” 국내에는 포항공대에 ‘방사성 가속기’가 있고, 경주엔 ‘양성자 가속기’가 건설 중이지만 이보다 규모가 큰 가속기를 국내에 만들어 신성장 동력으로 사용하겠다는 게 은하도시 포럼 회원들의 목표다.

가속기 주위에 연구소 200개 건설 가속기 주위엔 200여 개의 연구소가 공존하게 된다. 복합적인 과학연구 단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연구와 아이디어들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기업과 연관시켜 비즈니스화한다. 도시 전체를 연구과학단지화하고 대학 캠퍼스화하겠다는 꿈이다. 가속기 설치비용은 1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은 리켄(riken) 연구소에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속기를 지었다. 일본으로 하여금 레이더 기술을 터득하게 한 것이 가속기 때문이었다. 이 리켄 연구소엔 3000~4000명의 연구원이 지금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매년 기초과학에 4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대덕 연구단지가 있다. 하지만 대덕단지 한 연구소에는 고작 4~5명 정도의 연구원이 있을 뿐이다. 신물질 창조 인력으로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민 교수는 “국내엔 6000여 명의 기초과학 연구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절반이 자신이 전공한 것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사람을 길러 놓고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가 나서서 인재들을 수용하고 가치 창조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대안이 은하도시 건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에는 155개의 기초 연구용 가속기가 있는 데 비해 한국은 아직 한 대도 없다는 현실은 은하도시 건설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은하도시 포럼 누가 참여하나


·물리학계(13명)

▶민동필 은하도시포럼 회장

김채옥(한국물리학회장), 김정구(서울대 교수), 황정남(전 물리학회장), 김철구(연세대 교수), 오세정(서울대 자연대학장), 남궁원(포항공대 교수·전 가속기연구소장), 김우영(경북대 교수), 최선호(서울대 교수), 이춘식(중앙대 교수), 홍병식(고려대 교수), 강주환(연세대 교수), 우종천(서울대 교수), 방형찬(서울대 교수), 남홍길(포항공대 교수),

·화학·생물학계(10명)
김건(고려대 이공대학장), 김성근(서울대 부학장), 노정혜(서울대 교수), 석영재(서울대 교수), 설대우(피츠버그대 교수), 손연수(이화여대 석좌교수), 신석민(중앙전산원부원장), 정인권(연세대 교수),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의학계(4명)
왕규창(서울대 의대학장), 서정선(서울대 교수), 이영성(충북대 교수), 호원경(서울대 교수)

·공학계(3명)
김도연(서울대 공대학장), 김수원(고려대 공대학장), 이준승(이화여대 교수)

·문화예술계(11명)
민현식[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교수], 이종호(건축가·한예종 교수), 이순종(서울대 교수·전 한국디자인학회장), 황성호(작곡가·한예종), 공성훈(성균관대 교수), 김주현(작가·설치미술), 서혜경(피아니스트·경희대 교수), 도정일(철학자·문화예술시민연대), 이한구(한국철학회장), 오세훈(삐우&삐우 인터내셔널 대표), 박지수(한예종 디자인과)

·경제계(16명)
조남욱(삼부토건 회장), 성완종(경남기업 회장), 박한상(갑을건설 사장), 이관수(동진 스포츠센터 회장), 문길주(건우 캐피털 회장), 엄승룡(드림성모 안과 원장), 고광한(하늘과 바다 사장), 이재옥(제알케 인터내셔널 사장), 이갑수(제일모직 직판장), 천상윤(청아치과 원장), 최영균(두레중기 전무), 이석봉(대덕넷 대표), 김경준(회계사·딜로이트 상무), 정경현(마이크로통신 대표), 남기열(동부증권 본부장), 남미희(구구닷컴 부장)

·언론 및 기타(4명)
조동성(전 서울대 경영대학장), 유인촌(서울문화재단), 서경주( MBC PD), 김한수(변호사)
이런 도시는 어떤 입지조건을 갖춰야 할까? 첫째, 어느 정도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도시여야 한다. 불모지에서 시작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쓰쿠바도 나리타 공항과 도쿄의 삼각형 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국제 도시여야 한다. 세계적 첨단 연구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연구하고, 해외 투자자 유치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대한 공동 관심을 갖기 위해 대학에서의 관심도 필수다. 주변에 대학도 가까이 있다면 더 좋다. 또한 거대한 시설 투자가 이뤄지는 것인 만큼 부지의 발전 가능성도 있어야 한다.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해 현재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는 은하도시의 부지는 새만금과 인천 송도, 특별자치구역인 제주도 등 세 군데 정도다. 올 연말까지 회원 1000명 유치 현재 은하포럼의 회원은 과학계 26명, 문화예술계 11명, 경제계 16명 등 61명이다. 올해 말까지 1000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추천은 회원이 다른 회원을 추천하는 식이다. 회장은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며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연구소 설계위, 도시설계위, 산학연협력 설계위 등을 두고 있다.

▶은하도시의 유력한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는 새만금.

무엇보다 관건은 투자 유치다. 눈에 보이는 산업도 아니고 기초과학에 투자할 기업이 몇 군데나 있을 것인가. 가속기 설치 비용이 1조원, 주변 인프라 구성에 2조원이 든다. 도시를 만들어 놓은 이후에도 매년 1조원 정도의 유지비를 감당해야 한다. 굳이 고비용을 들이면서까지 국내에 기초과학 연구단지를 반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신약 개발이 좋은 사례다. 신약 개발 하나에 1조원 정도 비용이 드는데, 그걸 국내에서 개발하느니 차라리 외국에서 들여오는 게 더 속 편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많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언제까지 우리가 지식의 식민지로 있을 수는 없다”며 “창조적인 생산은 환경이 조성됐을 때 이뤄진다. 은하도시는 우리 과학자와 예술가들에게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마당”이라고 말했다. 신과학도시 건설은 예전부터 거론됐다. 과학자들이 삼삼오오 청와대에 의견을 올렸지만 번번이 실패하자 이번에 아예 단체로 조직을 만들어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은하포럼을 구성했다는 말도 나온다. 학자들만 움직이면 꿈만 꾸다 말 가능성도 크다. 정치 공론화도 필요하고, 기업의 투자를 위해 전경련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자체와의 갈등도 고려해야 한다. 기초과학 연구단지면 중금속 등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대선을 앞두고 눈 먼 돈을 모으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7년 안에 도시 건설을 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 플랜이라곤 2년 안에 아이디어를 확정하고 5년 동안 건설 기간을 갖겠다는 것 정도이기 때문이다. 은하도시 포럼 운영위 관계자는 “의사결정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연구는 물론 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과학 예술도시를 주제로 한 토론회와 여론조사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라며 “과학계의 의사를 결집하기 위해 ‘유저(이용자)협의회’를 결성하고 각 조직위원회를 통해 이달부터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포럼 관계자는 “앞으로 1년간 ‘가속기 연구소 개념 설계’ ‘도시 개념 설계’ 등을 위해 연구 조직과 학술 토론회, 외국 전문가 초청 토론회 등을 주관하기 위해 5억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이 돈은 관심을 가진 기업인들을 상대로 사단법인 찬조금 형태로 도움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정 운용은 사단법인 ‘은하도시 포럼’에서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하도시 포럼 회원들은 프로젝트의 현실화를 위해 대선 공약 압박을 할 계획도 갖고 있다. 대선 공약 압박은 과학예술 도시를 주제로 한 여러 토론회 등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계획이란다. 누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더라도 과학예술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벤치마킹한 일본 쓰쿠바


박사만 5000명…노벨상 수상자도 배출
1963년 도쿄 근교에 연구와 교육도시로 설계됐다. 80년 40개 이상의 연구 및 교육기관이 설립됐다. 면적은 284㎢(8500만 평), 연구 교육인구 10만 명, 주변 외곽지역 주민 12만 명이다. 개발비용은 94년 기준으로 20조원 정도 들었다. 128개국에서 온 7200명의 외국인이 상주하며 외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시 재정은 9750억원. 교육기관은 쓰쿠바 대학, 쓰쿠바 기술대학 등 3개와 고등학교 8개, 중학교 15개, 초등학교 39개가 있다. 도시 기능의 핵인 고에너지가속기(KEK)가 있으며 물질재료 연구기구·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등이 함께 있다. 민간연구기관으로 히타치 엔지니어링·엡손 외 300개 정도의 중소기업이 벤처단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일본 국내 연구소의 30%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도시 내의 연구자 수는 1만9000명. 이 중 박사학위 소지자만 5000명에 달한다. 2000년 이곳에서 노벨 화학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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