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국내 체류 외국인 100만 명

국내 체류 외국인 100만 명

교과서에서 배웠던 대로 한국은 아직도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졌을까? 정서적으로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가는 과도기다. 지난해 말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74만7467명으로 전체 인구(4829만 명)의 1.55%다. 가장 최근 통계인 올 4월 기준으로는 82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전 세계 188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100만 명을 넘어서리라고 법무부는 추정한다. 외국인들이 한국 거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다. 1990년 0.11%에 지나지 않으나 95년 0.6%, 2000년엔 1.1%로 급상승했다. 2010년께에는 2.54%에 이르리라고 법무부는 추정한다. 외국인 비중이 20년간 25배나 늘어난다는 말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한국은 이미 수많은 이민자가 거주하는 이민사회”라고 규정했다. 외국인이 늘어난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데다 출산율 저하,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때문이다. 특히 3D업종은 인력난이 더욱 심화됐다.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늘 수밖에 없다. 최근 10년 사이에 국내 외국인 근로자는 144%가 증가했다. 95년 14만2000명에서 2005년 34만6000명이 됐다. 게다가 농촌 총각들이 중국·동남아 등 외국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늘면서 결혼 이민자도 대폭 증가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어촌 결혼 남성의 35.9%가 외국인 배우자를 맞았다. 외국인 배우자는 올 3월 말 현재 7만7000명으로 2001년 2만5000명에서 3배 넘게 증가했다. 국적취득 건수도 지난해 1만6974건으로 5년 전(1650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또한 3월 말 현재 심사 중인 국적신청 건수는 이미 2만5000여 건이다. 국제 수준에 견줘봐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비율은 결코 낮지 않다. 국제이주기구가 펴낸 국제이주보고서 2005년 판에 따르면 이주자 비율은 전 세계 인구의 2.9%다. 한국도 세계 평균치에 많이 근접했으며 증가 폭으로 보면 곧 따라잡게 된다. 따라서 한국의 기업들도 요즘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판촉활동을 벌인다. 일부 은행은 외국인 중 상당수가 본국에 급여를 송금하는 데 착안해 일요일에도 점포를 연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주중에 업무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몽골인들이 몰려 사는 서울 을지로 5가 지점을 외국인 근로자 국외 송금 특화 점포로 지정했다. 여기에선 일요일에도 국외 송금과 환전서비스를 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의 정체성과 문화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신분이 자유롭지 못하고, 독자적인 정체성과 문화를 한국 사회에 이식할 토양이 없어서다. 이는 한국이 외국인을 아주 선별적으로만 받아들이는 현실과 직결된다. 한국 정부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외국인의 국내 취업 관련 사증 (査證· visa)을 발급한다. 주로 3D업종에 종사하는 단순 기능 인력에게는 영주권을 주지 않고, 일시적인 취업자격만 부여한다. 외국인력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지만 일정 기간 취업 후에는 나가라는 얘기다. 정부가 2004년 8월 17일부터 실시해 온 고용허가제도(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도 이런 기능을 보충한다.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우리 기업이 정부(노동부)로부터 인력부족확인서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외국인력을 근로자로 고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기간은 3년이다.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눌러앉지 못하도록 취업 기간을 제한했다. 3년이 지나면 출국해야 한다. 이후에도 남아 있으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불법체류자가 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한국의 공무원들이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단속·적발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돌아가야 할 교육과 의료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그런 각종 차별을 무릅쓰면서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 오자면 많은 돈을 현지 중개자에게 줘야 한다. 자신들이 지불한 원금을 뽑고 ‘코리안 드림(Korean Dream)’까지 성취하자면 3년의 기간으론 부족하다. 불법체류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다. 모든 외국인 근로자가 같은 처지는 아니다. 취업 활동이 가능한 비자 중에서 교수(E-1), 회화지도(E-2), 연구(E-3), 기술지도(E-4), 전문직업(E-5), 예술흥행(E-6), 특정활동(E-7) 비자를 발급받는 전문기술인력은 고용허가제의 대상이 아니므로 시한에 구애받지 않는다. 국내 업체와 고용계약을 갱신하면 원할 때까지 체류가 가능하다. 한국에도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영주권 제도가 있다. 2002년 4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장기체류외국인(화교 등)과 투자 외국인 중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영주자격(F-5)을 부여하도록 했다. 영주권은 고액투자 외국인, 첨단기술 분야, 특정 분야 능력 소유자, 특별 공로자, 연금 수혜자, 5년 이상 국내 체류자, 국민 또는 영주(F-5) 자격을 가진 자의 배우자 등이 신청할 수 있다. 고급 기술이나 자본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가 영주권을 취득하자면 결국 5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 기능 인력은 고용허가제에 따라 D-3(산업연수), E-8(연수취업), E-9(비전문취업) 비자로 국내에 취업한다. 이 고용허가제는 취업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므로 3년 뒤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천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할 길이 차단돼 있다. 영주 자격을 신청한 외국인은 2005년 8월 기준 1만907명으로 외국인 증가 폭에 비하면 미미하다. 이들의 대부분은 화교다. 그렇다면 기술과 자본을 가진 외국인들이 영주권 취득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결과적으로 영주권 제도는 현시점에서 고급 기능인력이든, 비숙련 기능인력이든 양쪽 다 끌어안지 못하는 셈이다. 한국 정부가 단순기능 인력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는 이유는 간명하다. 외국인의 국내 고용시장 잠식과 임금·노동조건 저하를 방지하려는 뜻이다. 실제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국내에 정주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국내 노동시장을 잠식하고, 비슷한 기술을 가진 한국인의 일자리가 줄어든다. 결국 내·외국인 간 갈등이 프랑스처럼 사회적 골칫거리로 부상할지 모른다. 외국인 인권 관련 단체들도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영주권 부여 문제에는 신중하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대책협의회의 이철승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 이민이 아닌 교체순환(rotation) 정책을 취하는 대다수 국가가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화를 금한다. 노동계의 저항과 사회적 갈등 증폭에 따른 공공 비용 증가를 정부는 우려한다. 지금 당장 영주의 전면 허용이 현실적인 해법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도 언젠가는 부족한 노동력 보충 차원에서 외국인 정주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종전까지 한국에는 제대로 된 이민정책이 없었다. 결혼과 간이귀화를 통한 예외적인 이민은 인정했으나 외국처럼 초청이민이나 취업이민 같은 건 없다. 한국은 ‘이민 제도’가 아니라 단기간 고용 후에 내보내는 ‘이주 노동자’ 제도에 가깝다고 설동훈 교수는 강조했다. 그러나 영구정착을 막으려는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로 남거나, 한국인과의 결혼으로 국내에 정착하는 사례는 늘어간다. 결국 한국은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다수의 이주자가 사는 국가인 셈이다. 도중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위원은 “국가 간 인적 교류 정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외국인의 원활한 유입과 다가올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명확하고 투명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정부는 외국인정책위원회를 만들고, 이민 대책을 포함한 외국인 정책에 관한 기본법 마련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이민법을 완화해 한국에 와서 오래 노동하고,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이민정책을 새로 다듬어 준비하고 있다”며 한국 이민정책이 전환기에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정부는 국민 재형성에 관한 장치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는 설 교수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때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SK온, ‘국내 생산’ 수산화리튬 수급...원소재 조달 경쟁력↑

2‘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김치 원산지 속인 업체 대거 적발

3제뉴인글로벌컴퍼니,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두번째 글로벌 기획전시

4의료현장 스민 첨단기술…새로운 창업 요람은 ‘이곳’

5와인 초보자라면, 병에 붙은 스티커를 살펴보자

6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삼성전자 HBM 승인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 중”

7‘꽁꽁 얼어붙은’ 청년 일자리...10·20대 신규 채용, ‘역대 최저’

8'로또' 한 주에 63명 벼락 맞았다?...'네, 가능합니다', 추첨 생방송으로 불신 정면돌파

9LG·SK·GC…국내 바이오 산업 네트워크 이곳으로 통한다

실시간 뉴스

1SK온, ‘국내 생산’ 수산화리튬 수급...원소재 조달 경쟁력↑

2‘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김치 원산지 속인 업체 대거 적발

3제뉴인글로벌컴퍼니,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두번째 글로벌 기획전시

4의료현장 스민 첨단기술…새로운 창업 요람은 ‘이곳’

5와인 초보자라면, 병에 붙은 스티커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