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과 ‘전작권’의 함수
동북공정과 ‘전작권’의 함수
우리에겐 아직도 북한 뉴스가 제한적으로 전달된다. 과거엔 분단국가의 특성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요즘은 북한 사회 자체 때문이라 해야 한다. 철저한 통제 사회인 데다 제대로 된 언론이 없으니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다. 요즘 국제사회는 한층 더 북한을 옥죄는 듯하다. 고립 무원의 북한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핵실험은 어찌 되나?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제재에 맞서 얼마나 더 버텨낼까. 최근 열린우리당의 최재천 의원은 정부 관계자로부터 들은 북한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얼마 전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북한의 정치·교육 관련 문건을 입수했다. 그 내용은 김정일 위원장 결사 보위 체제 확립과 전시를 대비한 육체적 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이 준전시 상태에 대비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 문제 전문가의 얘기는 보다 자극적이다. 그는 정통한 소식통의 전언이라며 “지금 북한엔 인민 폭동이 일어나면 즉시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다. 단순한 우발 사태가 엄청난 소요로 번질지 모르는 형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만큼 북한 사회가 강퍅한 상황에 내몰려 있다는 말이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져 버린 지 오래다. 반면 북한의 유사시를 대비하는 한국·중국·미국의 물밑 교섭은 활발해졌다는 인상이다. 북핵의 외교적 해법만 애오라지 추구해 오던 중국과 한국조차 북한의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대응방안을 모색한다는 조짐도 감지된다. 이 3국 간의 물밑 교섭은 3개의 축을 매개로 이뤄진다. 3개의 축이란 동북공정(한-중), 전시작전통제권 환수(한-미), 북한 빅딜설(미-중)이다. 이들은 외형상 별개의 사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보면 그 중심에는 모두 북한 급변 사태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한다. 북한 급변 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 지도자 변고, 쿠데타, 주민봉기 등을 들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 급변 사태와 관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왔으며, 상황별로 시뮬레이션 작업까지 마쳤다고 한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일단 유사시 남한 정부의 북한 접수 행동 요령은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준비돼 있다고 한다. 언제 어디로 누가 가서 어떤 일을 한다는 정도까지 구체적인 계획이지만 북한을 의식해 그 계획의 존재 자체를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한다. 중국도 북한 급변 사태를 독자적으로 대비해 왔다. 가장 두드러진 준비는 동북공정이다. 동북공정은 크게 나눠 연구(기초와 응용), 외국 관련 서적 번역, 자료수집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중 기초 연구는 고대사의 새로운 해석에 집중돼 있지만 응용연구 분야는 한반도 정세변화와 그에 따른 동북아 국제질서 변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나 동북아전략 등과 관련돼 있다. 따라서 이 응용연구는 전적으로 비공개다. 동북아역사재단 윤휘탁 박사는 “동북공정의 핵심은 바로 응용연구 분야”이며 따라서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한 작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동북공정은 수조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한국 고대사를 중국사에 넣겠다고 몇 년씩 투자할 만큼 중국은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 통일연구원 조민 박사는 중국이 북한의 미래에 모종의 단언을 내렸기 때문에 동북공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들 중에서 북한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는 별로 없다. 오래가기 힘들다고 본다. 중국은 북한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국가다. 우발적 동기든, 계획된 움직임이든 북한 상층부의 변화는 언제 어떤 형태로든 오게 돼 있다. 중국은 유사시 한반도 북부에 진출하려고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만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도 “동북공정은 한반도 통일에 대비해 통일한국의 만주 지역 영토·민족회복 의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북한 지역 영향력이나 연고권을 주장하려는 의도”라고 못박았다.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도 “중국이 옌볜(延邊) 지역에 15만 병력을 주둔시키고, 백두산 주변에 비행장 만들고 있다. 유사시에 얼마든지 군사적으로 전용 가능한 구조”라며 경계했다.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은 “북한 정권의 위상이 흔들릴수록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강해진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빌미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공세적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오히려 한반도 통일 이후 만주지역이나 그 지역에 사는 조선족과의 절연을 분명히 하려는 방어적 요소가 없지 않다는 얘기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중국 문제 전문가인 김흥규 교수도 “이 시점에 중국이 역사 해석과 영토 문제를 놓고 한국과 등을 지기에는 손실이 너무 크다”고 강조한다. 지속적인 경제 개발을 위해서는 동북아 안정과 주변국과의 우호 협력 관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중국은 시장경제가 발전해 갈수록 분배 불균형 등 경제적 모순이 심화돼 왔다. 그 결과 지난해 50명 이상이 가담한 폭동과 시위가 보고된 경우만 8만7000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가 더 많았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또 중국의 45∼65세 연령층의 80%는 제대로 된 사회보장체제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연 10%대의 경제성장과 1조 달러대의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중국 경제의 그늘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사회·경제 민주화 욕구가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14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변경 안정은 국가 통합의 핵심 과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동북공정은 공산주의 이념을 대체해 중국의 국가적 통일성을 유지시켜 줄 신중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쌓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외용이 아니라 중국 내부 단속용의 뜻이 더 강하다는 이야기다. 한·중 양국 전문가들이 북한 급변 사태를 논의하기 시작한 접점은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수세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김흥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에 따르면 얼마 전 중국 측은 북한의 유사시 대응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한국 측에 해 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교류에만 응하기로 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자극할까 우려해 급변 사태 관련 용어 사용마저 자제해 온 마당에 덥석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 정부가 중국에 경도됐다고 생각하는 미국 일각의 시선도 의식해야 한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와 민간의 중간 수준인 ‘1.5 트랙’에서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하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요점은 북한 체제 유지를 후원해 온 양국이 북한 급변 사태를 논의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지난주 예정에 없던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정비젠(鄭必堅) 중국개혁개방논단 이사장이 급히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대외정책 입안 브레인이다. 후 주석과 언제든지 핫라인으로 통화할 수 있는 중국 학자다. 중국개혁개방논단은 후 주석의 주요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연구기구이기도 하다. 정 이사장은 한·중 간 쟁점으로 떠오른 동북공정 문제를 상의해 보자고 김 교수에게 요청했다. 김 교수는 출국에 앞서 “중국 내부의 주요 그룹들이 동북공정이 얼마나 폭발적인 사안인가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근 한·중 간의 대화는 동북공정으로 불필요하게 야기된 양국 간 갈등의 수위를 조절하고 북한의 유사사태 발생에 대비하는 다각적인 노력으로 보인다. 동북공정은 중국과 미국의 ‘빅딜설’에도 맞물린다. 빅딜설은 북한 급변 사태시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핵 등 대량살상무기를 중국이 제거하면 미국은 중국에 북한에 관한 배타적 권리를 인정한다는 시나리오다. 북핵 문제가 꼬이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인 지난 7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가 한 발언 때문에 이 문제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힐 차관보는 “한반도에서 정치적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그로부터 미국이 어떤 전략적 이득을 취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과실을 얻는 대신 북한 지역, 나아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됐다.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교수는 빅딜설이 나올 법도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제2기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은 중국을 북핵 해결의 ‘키 플레이어(key player)’로 존중하기 시작했다. 기업으로 따지면 부장이나 과장급에서 소유지분과 책임을 공유하는 임원급 정도로 격상된 셈이다. 지난해에는 로버트 졸릭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도 중국의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북핵 제거를 전제로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중국은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는 틀 안에서 북핵 제거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거절하고 지난 7월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판이 헝클어졌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이 때문에 북·중 관계는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윤 교수는 “북한 유사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빅딜도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한 급변 사태시 중국이 고려할 만한 카드 중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친중인사로 권력층을 교체하는 방안도 포함된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정치권도 빅딜설을 경계한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미국은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기만 하면 한반도에서 우월적 지위를 중국에 양보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로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긴 이상 빅딜설과 같은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구한말 일본은 한반도를,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는 걸 묵인한 조약)’이 우려된다고 한 대표는 덧붙였다. 빅딜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통일은 더욱 요원해진다. 통일연구원 조민 박사는 지난 8월 서울의 국제학술회의에서 ‘빅딜’이 가능한 배경을 해부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을 없애고 북한 지역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두어야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다각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최선책이 어렵다면 차선책을 택해야 한다. 바로 ‘핵 없는 북한’이다. 이는 중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결단을 통해 가능하다. 미국은 북한 핵만 제거하면 북한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용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나리오다. 미국이 소련과 대치할 때 한반도는 자본주의 진영을 지키는 동북아의 교두보였다. 한반도는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지켜야 할 사활적 요충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소련이 해체됐고 미국에 도전하는 국가는 사실상 지구상에 없다. 중국이 잠재적 경쟁자로서 봉쇄 정책의 대상으로 거론은 되지만 경제는 이미 미국과 같은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했다. 한반도가 중국 쪽으로 기운다 해도 크게 보면 미국의 패권구도에 속한다. 반면 북한의 핵보유는 중국에도 위험하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대만 등 주변국들의 핵 무장을 부추길 테니 말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핵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중국에 일을 믿고 맡길 만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최근 중국과 북한을 방문한 한 인사는 중국 정치권에서 나도는 소문의 일부를 뉴스위크 한국판에 전했다. “북한 급변 사태로 체제가 붕괴되면 중국과 미국이 북한을 신탁통치한다. 과거 광복 직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 신탁통치를 결정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에는 한국이 관여할 여지가 거의 없다. 신탁통치 후 북한에 독립 정권을 세울지, 남한과 통일시킬지는 강대국들의 마음이다.”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활발한 논의가 벌어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인상이다. 중국 정부 측은 빅딜설을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일축했다. 중국의 한 정부인사는 “우리는 패권주의의 희생자였다. 부강한 국가가 되더라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부인했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견은 있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대만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을 중국에 넘긴다면 중국은 대만에 행사하려는 ‘배타적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빅딜이 구체화되면 대만도 이지스함을 들여오고, 미사일방어계획(MD)에도 참여하면서 독립국가의 길을 밟으려 들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런 상황을 “중국이 용납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과 대만을 모두 중국에 넘기면 되겠지만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중국과 북한 사이는 예전 같지 않다. 북한은 중국의 강한 만류를 뿌리치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에 지지표를 던졌다. 북한은 1992년 한·중 국교 수립 조치에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시 중국은 2000년 올림픽 개최를 희망할 때다. 북한은 중국의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해 호주의 시드니를 후보지로 지지했다. 양국은 혈맹의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때론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의 북한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외교부와 공산당 대외 연락부 젊은 관료들의 사고는 보다 실용적으로 변해 간다고 외교안보연구원 김흥규 교수는 말했다. 국무원 내에서 북·중 관계를 국가 이익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기류가 정착돼 간다는 의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현재의 중국을 불신하기는 마찬가지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이양 문제도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에 뿌리가 닿아 있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전작권이 있고 없고가 한반도 운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늘 그래왔듯이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이 유사시 한반도에 개입하려들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므로 전작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급변시 전작권을 우리가 갖지 못하고 미국이 앞서 나가면 중국도 개입할 여지가 있다. 북한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대등한 당사자로 나서야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할 명분이 약화된다.” 지난 8월 국회 국방위 김성곤 위원장의 발언은 정부가 전작권 환수에 나서는 속내의 일단을 보여줬다.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는 향후 북한 정권이 붕괴됐을 경우나 만약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을 수복하는 군의 주체가 어디인가의 문제도 있다.” 이 발언은 전작권 환수의 본질을 반영했지만 반짝 쟁점으로 끝나고 말았다. 김 위원장이 이후에 외국 방문에 나서고 여권에서도 입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최재천 의원은 김 위원장의 발언을 이렇게 풀이했다. “전시 상태가 아닌 북한 내 급변 사태를 맞아 미국이 과도하게 북한에 개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바로 작계 5029의 문제다. 한미연합사는 2004년부터 미국 쪽 요청에 따라 북한 내부 유사시를 상정한 ‘작전계획 5029-05’를 작성해 왔다(현재는 한국의 요청으로 논의가 중단됐다). 군사기밀이라 세부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간헐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북한 내부의 소요와 정권 붕괴가 발생할 경우 그에 상응한 군사적 조처를 담았다고 알려졌다. 북한 정권이 내부 통제력을 상실할 경우 북한이 보유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외부 유출을 우려해 급변 사태 초기에 한미연합사는 군사행동에 나서게 된다. 작전 계획 초안에 따르면 북한 정변시 ‘데프콘(방어준비태세) 3’을 발령한다. 데프콘이 4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면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이전된다. 북한의 급변 사태는 전시 상황이 아닌데도 한국의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넘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이를 ‘주권 침해’ 상황으로 보고 작전계획 수립 절차 중단을 요청했다.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 당국은 추진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최재천 의원은 “여권 수뇌부는 미국이 북한에 돌발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봤다”고 했다. 작계 5029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현직에 있는 한 군사전문가는 ‘주권 침해’라는 정부의 해석에 반론을 제기했다. “현 체제에서는 전시가 되면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넘어간다. 하지만 전시라는 개념은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합의에 달려 있다. 전쟁이 발발했는지의 여부는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합의로 결정한다. 한미연합사 창설 당시 전략지시 1, 2호에 명시된 사항이다. 데프콘 3도 양국 대통령이 합의해야 전환된다. 한국이 반대하면 미국은 개입하지 못한다.” 물론 한국 정부도 이런 정황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미국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환수를 추진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이 전문가는 추정했다. 최재천 의원도 북한 급변 사태시 한국이 원치 않아도 작계 5029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에 들어간다고 예상했다.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은 이처럼 한·미 간 군사작전 담당자와 양국 정부의 당면하고도 구체적인 고민거리가 됐다. 종전에도 북한 급변 사태가 임박했다고 말하던 사람은 많았다. 1990년대 중반 극심한 식량난과 94년 1차 북핵 위기 때가 그랬다. 하지만 98년 국방위원장에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선출되고, 권력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면서 그런 관측은 빗나갔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는 체제가 안정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또 바뀌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북한발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중국과 한국은 북한을 계속 지원할 명분을 잃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북한 변수와 안보 리스크’ 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응징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바야흐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결자해지’를 해야 할 시점이 가까워 오는 것 같다“고 했다. 묶인 걸 누가 푸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가 좌우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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