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속으로 골병드는거대 석유 회사들

속으로 골병드는거대 석유 회사들


고유가 덕택에 큰 돈 벌었지만 비용늘고 값 떨어져 노심초사 전망 어둡자 자구책 마련 부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존 브라운 경이 지휘봉을 잡은 11년 동안 색다른 석유회사라는 평판을 얻었다. 환경과 여직원 등 온갖 문제에서 좀 더 친절하고 온화한 회사라는 평이었다. 브라운은 종종 “가장 존경받는 최고경영자” 명단의 정상에 오르고는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변화가 생겼다. 텍사스시티에서 정유소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알래스카에서 기름이 유출됐으며, 한 계열사가 에너지 시장을 조작한다는 혐의를 받았다. 대주주들은 제도적 문제를 따졌다. 미국 하원의원들은 BP 중역들이 안전기준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미 법무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조사에 나섰다. BP는 전직 판사를 고용해 내부 고발자들의 주장을 검토했다. 이들은 회사가 은폐를 기도한다고 말하는데 회사는 단호히 부인했다. 브라운 경은 올 여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비상시국을 맞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상황은 BP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엑손모빌과 셸에 이은) 세계 3위의 이 석유회사는 분명 호되게 경을 치르는 중이다. 그러나 미래 걱정을 하는 석유회사 최고경영자가 존 브라운만은 아니다. 밖에서 보면 석유업계는 역대 최고의 유가, 이윤, 최고경영자 연봉이라는 3박자를 즐기는 부자집단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경영자는 신속히 상승하는, 아니 적어도 이윤보다 신속히 상승하는 원가에 신경을 쓴다. 과거 경험도 무시 못한다. 유가의 고공행진이 오래갈 전망이 아니니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기 때문이다. 유가가 최근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떨어지자 신규 공급이 늘면서 40달러나 심지어 3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첫 조짐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사실 최근의 유가 폭등 전만 해도 석유업계는 여러 해 동안 유가 관리에 무척 신경을 써왔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는 머지않아 BP 같은 대기업이 안전과 유지보수 기준을 어겼다는 혐의를 받게 되리라고 내다봤다. 석유업계 최고경영자들이 장사가 안 된다는 소리를 하면 허튼소리로 들리겠지만 사실 석유 메이저들은 유가 폭등 전보다 그다지 풍족하지 못하다. 지난 6년 동안 수익이 제자리에 머물렀다. 골드먼 삭스에 따르면, 서구 종합석유회사의 평균수익은 투자자본의 19%로 2000년 이후 약 2%가 늘었을 뿐이다. 자본집약도가 높은 석유산업에서는 자본수익성이 주요 잣대다. 회사가 얼마나 버는지 말해줄 뿐 아니라 그 비용이 얼마인지도 말해주기 때문이다. 요점만 말하자면, 석유회사의 가치 창출이 휘청거린다. 업계의 수입은 전보다 늘었지만 이윤 창출에 전에 없이 많은 돈을 쓴다.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년 동안의 투자부족, 석유 민족주의의 부상, 바닥을 드러내는 매장량, 위험한 탐사 프로젝트의 증가 등등. 그런 모든 요인이 한데 뭉쳐 서구 메이저들이 쉽게 석유를 얻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으면서 유가 폭등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단지 석유회사의 세입을 보면서 엄청 큰돈을 번다고 생각한다”고 골드먼 삭스의 상품 연구실장 제프리 커리는 말했다. “오늘날의 영업환경이 제기하는 막대한 난제들과 온갖 어려움은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일반인들보다 그런 어려움을 더 잘 인식한다. 최근의 이윤에도 불구하고 석유업계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 원인이 거기에 있다. S&P 500 지수에 편입된 석유재벌들의 평균 주가수익률은 9.8로 역대 평균의 약 절반이라고 S&P의 선임연구원 하워드 실버블래트는 말했다. 역대 주가수익률 평균치보다 약 20%나 떨어지는 전체 대기업 주식의 평균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석유회사의 경영자들이 흐뭇해할 일은 못 된다. 평균적으로 2000만 달러를 훨씬 넘는 연봉을 받지만 말이다.“최고경영자들의 입장에선 결코 즐거운 상황이 못 된다”고 케임브리지 에너지 연구협회(CERA)의 대니얼 여긴은 말했다. 여긴은 석유산업의 역사를 다룬 책 ‘프라이즈’(The Prize)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최고경영자들은 새로운 자원에의 접근을 막는 제약 강화, 자원 민족주의의 부상, 인력 부족, 원가 급상승을 걱정한다. 석유는 장기 산업이며, 10~15년 후 에너지 공급 체제가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큰 의문에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몇 해 동안 석유회사들을 전에 없이 부자로 만들어준 유가의 고공행진이 반드시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조짐은 벌써 보인다. 브라운을 비롯한 업계 최고경영자들은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로 떨어진다는 가정 아래 중장기 투자계획을 세워 왔다. 올 여름만 해도 브라운은 장차 배럴당 25달러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많은 전문가가 그 수치에 동의했다.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넘는 현상은 불과 2년밖에 안 됐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50달러를 넘은 것도 1년밖에 안 된다”고 브라운은 말했다.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골드먼 삭스 같은 투자은행들은 동절기 난방시즌이 시작되면서 75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그러나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석유는 부침 현상이 심한 변덕스러운 산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의 바닥가(평균유가가 배럴당 20달러이고 심지어 10달러까지 내려간 적도 두 차례 있었다)야말로 BP뿐 아니라 업계 전체의 일부 문제를 일으킨 요인이다. 공급이 넘치는 데다 1990년대의 아시아 금융위기로 수요가 다소 줄면서 유가는 2002년까지 낮게 유지됐다. 그 기간에 석유 업계에서 대규모 합병이 이뤄졌다. 임금이 폭락하고, 예컨대 미국에선 100만 명 이상이던 고용인원이 50만 명으로 줄었다. 서구 석유기업 약 400개가 도산했다. 넘어가지 않은 기업들은 비용과 용량 절감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석유산업의 한 세대가 실종됐다. “10년 전의 젊은이들은 광산이나 광물 엔지니어링 산업에 종사하기를 싫어했다”고 이탈리아의 석유 메이저 ENI의 전략담당 부사장 레오나르도 마우제리는 말했다.“패자로 인식됐다.” BP와 셸이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비용을 절감한 회사로 알려졌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기업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제 큰 의문은 BP가 너무 멀리 나간 나머지 이윤을 위해 안전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내부 고발자들은 우선 이 회사가 알래스카 시설의 유지보수를 게을리 했고, 텍사스시티에서 낡은 장비를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1990년대의 BP 문화는 엑손이나 셰브론과 크게 달랐다”고 업계의 한 고위직 베테랑은 익명을 요구하며 말했다. “지금 곤경에 빠진 원인을 운수 탓으로만 돌리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BP가 너무 심하게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여긴 같은 전문가들의 입장에선 프루도만이나 텍사스시티의 실정을 정확히 판단하려면 몇 달 더 조사한 뒤 보고서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시장은 가장 적극적인 비용절감자에게 상을 준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1990년대 초에는 BP의 주식이 인기 없었다”고 ING의 석유 분석가 제이슨 케니는 말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이 되자 인기주가 됐다.”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였다. 15년 이상 투자를 게을리 한 2000년이 되자 업계는 예비용량(땅속에서 손쉽게 빨리 뽑아낼 수 있는 석유의 분량)까지 빼냈다. “그제서야 마침내 모두들 투자를 시작했다”고 골드먼 삭스의 커리는 말했다. 그러나 투자 속도가 충분치 못했다. 석유 시출장비(몇 달이나 몇 해 전에 미리 주문해야 하는 대형 기계)와 기사 등 모든 것이 모자라는 데다 중국·인도 등 급성장하는 나라의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비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CERA는 2000년 이후 전체 역외비용이 68% 증가했으며, 특정 유형의 기계와 장비의 비용은 그보다 더 빨리 증가했다고 추산했다. 많은 대형 프로젝트가 인력 부족으로 중지되거나 예산을 수십억 달러씩 초과했다. BP의 바쿠-세이한 송유관은 건설사와 자재 납품업자들의 청구액이 급등하면서 예산보다 적어도 10억 달러를 넘길 전망이다. 셸의 캐나다 유사(油砂) 프로젝트는 지난해 예상액보다 50% 높은 자본비용에 직면했다. 강관(鋼管)과 내식특수강 등 모든 자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뛰었다. 브라운은 심해(수심 1500m 이하)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장비를 대여하느라 BP가 지불하는 하루 최대비용이 2004년 이후 2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로 뛰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비용은 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내다봤다. “석유업계에는 감가상각이 거의 없다. 영원히 떠안아야 하는 추가적 고정비다.” 비용 앙등에 석유 민족주의라는 대형 추세까지 겹치면서 사태는 한층 복잡해졌다. 몇 해 전 유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멕시코·러시아·베네수엘라 등은 유전관리권을 환수하고 새 시추지역에 서구 메이저들의 접근을 막았다. 에너지 컨설팅 전문사 PFC 에너지(워싱턴 DC)에 따르면, 그 결과 오늘날 서구 메이저들이 이용하는 석유는 알려진 부존량의 25%에 불과하다. 1960년대의 85%보다 크게 떨어졌다. “다른 분야에선 세계화가 대세인데 석유업은 그 반대로 간다. 에너지에 관한 한 세계는 평평하지 못하다”고 로빈 웨스트는 말했다. PFC 대표인 웨스트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내무부 차관보를 지냈다. 이 나라들은 외부인을 참여시킬 때 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요구한다. 전에는 전체 석유세입의 70~80%를 요구했지만 지금은 약 90%를 가져간다. 셸의 최고경영자 예룬 반데르 베어는 요즘 석유회사 경영자가 그 작은 파이나마 먹으려면 개도국 정치인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들고 공손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련한 말일까. 시베리아에서 진행되는 셸의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는 서구 석유 메이저들이 매장 에너지를 찾아 금융·정치적으로 더 큰 위험을 무릅쓰며 전보다 더 험지로 진출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셸은 최근 험준한 지형과 인건비·자재비 때문에 사할린 프로젝트가 예산을 100억 달러 정도 초과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그것이 러시아 정치인들의 분노를 샀다. 비용이 상승하면 자기 몫을 찾아먹는 데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러시아 정부는 셸이 사할린에서 사업하는 데 필요한 환경인가를 취소했다. 그로써 사업이 백지화될 수도 있다. 러시아 정부는 엑손을 비롯해 그 지역에서 일하는 다른 회사들에도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개개의 석유회사는 대형이고 돈이야 많지만 지배자가 아니라 피지배자”라고 웨스트는 말했다. 그것이 바로 석유 메이저들이 역대 최고의 이윤에도 기뻐하지 않는 주 원인이다. 엑손모빌의 현 광고 캠페인은 딱할 정도로 방어적이다. 예컨대 진짜 수혜자는 정부라고 주장한다. 엑손모빌이 지난해 30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세금을 990억 달러나 냈기 때문이라고. BP가 미국에서 위기를 겪기 전에도 유럽과 미국 정치인들은 공히 석유재벌들의 불로소득에 세금을 매기라고 로비했다. 셰브론의 멕시코만 대박 이후 미국 정부는 로열티 재협상 추진에 나섰다. 석유재벌들의 몫이 어차피 줄게 마련이라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일부 분석가는 석유재벌들이 국영기업의 컨설턴트로 변신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하고 줄어드는 몫을 받게 되리라고 말했다. 에너지 경제 연구원 필립 벌레거는 전형적인 서구 메이저가 축소돼 GM보다는 메르세데스처럼 된다고(차별화 전략) 말했다. 이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증거도 이미 있다. 최근 노르웨이의 스타토일과 미국의 발레로는 일부 메이저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다. 그 이유는 종합사업을 안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탐사에서 소매까지 석유사업의 전 과정을 취급하지 않는다. 신경 쓰는 분야가 적기 때문에 비용과 위기의 관리가 덜 복잡하다. 어찌 됐든 앞으로는 더 어려워지고 더 비싸질 전망이다. 대다수 업계 인사들은 BP 같은 문제를 겪는 회사가 더 나온다고 예상한다. 20년 동안 투자를 하지 않았기에 사람과 장비가 한계상황에 내몰렸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안전과 인프라 지출을 늘리는 일이 시급하다. 기업들이 좀 더 험준한 지형과 심해로 진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셸 같은 회사들은 그런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초강력 신합금소재 개발에 적지 않은 돈을 쓴다. 얼마 전 BP의 선더호스 플랫폼이 기울어진 사고는 석유의 새 전선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브라운은 이 사태의 결말을 볼 일이 없다. 마침 BP의 창립 100주년인 2008년 최고경영자직을 그만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양새로 보건대 앞으로 석유산업의 100년은 지금까지의 100년보다 더 험할 듯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민주당, 김건희 여사 녹취 공개...“극우·극좌 없어져야”

2오리온이 ‘생(生)감자칩’ 원료로 특허 낸 ‘이 감자’

3윤상현 "불법수사 자행한 검찰총장 사퇴하고, 윤석열 대통령 즉각 석방하라"

4트럼프 취임 첫 주 지지율 45%...취임 직후보다 소폭 하락

5“하루만 넣어도 이자가”...설날 세뱃돈, 고금리 파킹통장에 넣어볼까

6설 명절, 사위가 듣기 부담스러워하는 말 “자고 가라”

7설 당일 문 연 병원 어디 있나...비대면 진료 플랫폼으로 찾는다

8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 “89초”

9모건스탠리 “韓 경제성장률, 1.5%에 그칠 것”

실시간 뉴스

1민주당, 김건희 여사 녹취 공개...“극우·극좌 없어져야”

2오리온이 ‘생(生)감자칩’ 원료로 특허 낸 ‘이 감자’

3윤상현 "불법수사 자행한 검찰총장 사퇴하고, 윤석열 대통령 즉각 석방하라"

4트럼프 취임 첫 주 지지율 45%...취임 직후보다 소폭 하락

5“하루만 넣어도 이자가”...설날 세뱃돈, 고금리 파킹통장에 넣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