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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스토리] “가격 파괴는 어리석은 일”

[이코노 스토리] “가격 파괴는 어리석은 일”

첫눈에도 그는‘보통 인물’이 아닌 듯했다. 악수를 하면서 눈을 마주치기 위해 한참을 ‘우러러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낯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재차, 삼차 키를 묻자 그는 “195cm”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공군(에 복무하던) 시절엔 (공군 내) 최장신이었다”고 덧붙였다. “키가 너무 커서 놀랐다”고 다시 감탄하자 그는 “아들은 2m”라며 씩 웃었다.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유럽 경영학계의 석학 헤르만 지몬(59) SKP 전략&마케팅 컨설팅 회장의 키는 그렇게 예상 밖으로 컸다. 삼성전자의 강의 초청을 받아 방한한 지몬 회장은 한국에서는 낯선 감이 있다. 미국계 컨설팅 회사들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케팅 분야, 그중에서도 가격설정(Pricing) 전략 분야에서 지몬 회장은 손꼽히는 대가다.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SKP는 현재 미국 보스턴 지사를 비롯해 11개에 달하는 해외 사무소와 300여 명의 컨설턴트를 보유하고 있다. 지몬 회장은 1997년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독일 중소기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숨은 강자들(Hidden champions)』이라는 책으로 국내에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은 전 세계 15개국에서 출간된 베스트셀러였다.

‘진지한 글로벌화’ 2세대 걸려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이지만 인터뷰는 처음”이라는 지몬 회장을 지난 10월 23일 오전 9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 시간 동안 만났다. 통역은 지몬 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이번 초청강연을 주선한 유필화 성균관대 교수가 맡았다. 『숨은 강자들』이 출간된 지 10년쯤 됐습니다. 당시 10가지 비결을 추출했는데 10년 동안 변한 게 있습니까? “노(no)! (10가지) 성공요인은 (오늘날) 더 중요해졌습니다. 더 강화되는 추세죠. 사실상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겁니다. 예전에는 제품 하나만을 팔았다면, 이제는 시스템 전체를 팔기 때문에 상품 제조가 더 힘들어지고 있는 거지요.” 그래도 그 10가지 비결 중 중요성이 더해진 게 있을 텐데요. “세계화(globalization)죠. 세계화가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건데요. 왜 독일에만 그런 세계적인 중소기업들이 유독 많습니까? “두 가지가 있죠. 첫째는 독일은 엔지니어링 토대가 두텁습니다. (노트북 컴퓨터를 보여주며) 여기 ‘에너콘(Enercon)’이라는 곳은 중소기업이지만 세계 풍력발전 특허의 42%나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웃으면서) 한국은 이웃한 나라가 북한밖에 없지만 독일은 이웃 나라가 많아요. 이런 이웃 나라는 국내 비즈니스의 자연스러운 연장이기 때문에 태생부터 국제화가 필수적이죠. 과거에는 전쟁 원인이 됐지만(웃음) 지금은 무역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 때문에 중소기업의 생존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21세기에도 숨은 강자들이 나올까요? “그럼요. 아마 (숨은 강자들은) 세계화된 기업(Global company)에서 나올 겁니다. (이전과 다른 점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숨은(hidden) 챔피언’이었는데 이제는 ‘빅(big) 챔피언’이 되는 거죠. 이제는 세계적인 IT 기업이 된 SAP가 좋은 예인데, 이런 기업들은 성숙시장에서도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를 이뤘기 때문이죠. (21세기 숨은 강자들이 나올 곳을) 분야별로 보면 태양에너지나 풍력발전 같은 에너지 분야와 나노 쪽이 유력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고객과의 거리입니다.” 지몬 회장은 인터뷰가 끝난 후 노트북 컴퓨터로 설명했던 자료를 e-메일로 보내주면서 “ ‘21세기의 숨은 강자들(Hidden Champions of the 21st Century)’이라는 제목의 책이 1년 안에 나올 것”이라고 설명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요즘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세계화에 적응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숨은 강자들은 세계화를 어떻게 이뤘습니까? “세계 시장을 석권한 중소기업을 분석해보니 인재 확보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국제 정세에 정통하면서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 인재를 구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들을 보면서 느낀 것인데, 세계화를 하려면 국내에서만 인재를 구할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인재 구하기에 나서야 합니다. ‘진지한 글로벌화’에는 2세대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 삼성과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브랜드와 디자인은 확실히 삼성이 일본 기업보다 낫습니다. 하지만 미국(기업)보다는 못해요. 애플의 아이팟이나 모토롤라의 휴대전화인 레이저를 예로 들면 기술은 삼성이 더 좋은데 결국 브랜딩(Branding)에서 못 미치지 않습니까.” 그는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이라는 전제조건을 달면서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디지털카메라 같은 전자제품을 출시할 때 처음부터 가격파괴를 무기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고 평했다. 무조건 저가정책을 취하는 게 좋은 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의 이런 ‘혹독한 평’은 이날 오후 3시 수원 삼성전자에서 열린 강연에서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에 올라서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삼성전자의 고민을 반영하듯 이날 오후 수원 삼성전자에서 열린 강연회는 성황을 이뤘다. 대개 120여 명 이하에 머물던 참석자 숫자가 340명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어로 진행된 강의에 이 정도 참석자가 몰린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몬 회장을 초청한 조은정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연구소장은 “사실 누구나 프리미엄 프라이싱(Premium Pricing: 高價)을 하고 싶은데 지몬 회장의 말대로 실패할까 봐 겁나서 못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지몬 회장은 (삼성의) 프리미엄 프라이싱이 충분히 가능함을 각종 데이터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몬 회장은 1시간20분의 강연 동안 삼성전자의 가격전략을 꼼꼼하게 분석한 자료를 통해 삼성전자가 어떻게 가격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특히 “원가에 적절한 이윤을 붙여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나 경쟁제품에 근거한 가격설정이 아닌 고객이 인정한 제품 가치에 근거한 가격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정 소장은 “삼성전자의 가격이 점유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시점에서 경쟁사들은 또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여줘 우리 모두 놀랐다”면서 “참석자들 대부분이 ‘우리도 이제 저런 (가치에 근거한) 방식을 시도할 때가 됐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평이 많았다”고 반응을 전했다.


■ ■ ■ ■ 헤르만 지몬 회장의 삼성전자 강연 들어보니… ■ ■ ■ ■


“중요한 건 점유율이 아니라 이윤”

▶삼성전자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헤르만 지몬 회장. 보기 드물게 34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요즘 한국 기업들의 고민은 더 이상 박리다매형 성장전략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부가가치 브랜드로 재빨리 옮아갈 수도 없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경영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것은 프리미엄 가격이지만 성숙기 시장은 불가피하게 가격 인하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무한 출혈경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가격 담당자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그런 점에서 헤르만 지몬 회장의 삼성전자 특강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300명이 넘는 삼성전자의 핵심 인재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던 것도 이런 고민의 소산일 것이다. 지몬 회장은 가격전략 분야의 최고권위자이다. 교수 생활을 통해 가격전략에 관한 이론을 많이 정립하기도 했지만, 직접 컨설팅회사를 설립해 가격과 관련된 전략적 이슈를 세계 유수기업들에 조언을 해주고 있는 성공적인 사업가이기도 하다. 이론과 실무 경험을 겸비한 지몬 회장의 특강은 참석자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는데, 나도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일부라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핵심 메시지 : 지몬 회장의 핵심 메시지는 의외로 매우 간단한 원칙적인 것이었다.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경영하라(Manage for profit, not for market share)”는 것이다(최근 그가 출간한 책 제목과 동일하다). 최근에 질적인 경영으로 전환하고 있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양적인 성장을 위해 달려온 한국기업들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이윤 공식 : 지몬 회장에 의하면, 이윤 창출의 공식은 아래와 같다. 이윤= 가격 x 생산량 - 비용 (Profit = Price x Volume - Cost) 공식에 들어 있는 생산량(Volume)은 운영상의 효율로 연결되는 핵심역량이지만 성숙기 시장에서는 더 이상 차별화가 곤란해지는 특성이 있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이윤창출의 동력은 비용(Cost)이지만, 이 또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들 간의 원가경쟁이 한계상태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기업들이 추가로 고려할 수 있는 이윤추구의 동력원은 가격(Price)전략이 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문제는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교육이 부족해 현업에서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가격전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몬 회장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브랜드 경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가격전략이 뒷받침된 이윤추구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요타 자동차다. 도요타 자동차는 생산량으로 보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12%를 차지하지만, 이윤 측면에서 보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나오는 이윤의 3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이윤지향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사례를 자신이 행한 실제 프로젝트와 비교하면서 가격을 올리면 일반적으로 매출액은 다소 줄어들지만, 이윤은 오히려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격전략을 통해 2% 정도 인상할 수 있다고 했는데, 가격을 2% 인상하면 일반적으로 21.6%가량의 이윤이 평균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삼성전자의 가격전략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액을 795억 달러, 영업이익을 75억 달러(마진을 9.4%로 추정했을 때)라고 할 경우, 가격을 2% 인상하면 이윤은 15억9000만 달러(75억 달러 x 21.2%)로 뛴다. 이 액수는 1달러당 1000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 돈으로 1조6000억원의 추가 이윤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격인상의 제약요건 : 물론 일방적인 가격상승이 항상 이윤증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지몬 회장은 고객가치를 고려한 가격전략(Value Pricing)을 제시했다. 상황에 따라 그리고 핵심고객들이 자사 제품에 대해 느끼는 가치에 따른 가격전략을 통해 프리미엄 가격을 사용해 이윤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브랜드 경영의 가치는 더 빛나게 된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무형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심은 기업은 다른 경쟁자에 비해 가격인상을 하더라도 더 많은 이윤을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도요타와 GM이 합작, 공동으로 만들어 미국에서 시판한 도요타의 코롤라(Corolla)와 GM의 지오 프리즘(Geo Prizm)이다. 사실 이 두 차는 기술적으로 동일한 자동차다. 다만 생산하는 주체에 따라 하나는 도요타 브랜드를, 다른 하나는 GM 브랜드를 달고 출시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우선 자동차의 판매가격(9000달러 대 8100달러)이 달랐고, 판매량도 달랐다(20만 대 vs. 8만 대). 도요타가 같은 차를 더 비싸게 팔았는데도, 더 많이 팔았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윤이었다. 도요타가 2억3500만 달러의 이윤을 남긴 데 반해 GM의 이윤은 제로(0)였다. 같은 차를 팔았는데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났을까? 지몬 회장은 이 차이를 브랜드에 의한 무형의 가치 차이(브랜드 가치)로 설명했다. 코롤라는 가격지수가 118로 프리즘보다 더 비싼 가격을 매겼지만 오히려 프리즘보다 더 큰 이윤을 창출했다. 브랜드에서 비교우위가 있을 때 가격상승을 통해 더 큰 이윤을 볼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경쟁이 심화되면 대개 가격 인하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선방향 : 지몬 회장은 단기적으로는 가격의 최적화(Price Optimization)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중기적으로는 가격운영 프로세스(Price Process) 개혁을 통해 추가적으로(평균 2% 정도) 이윤증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가격의 최적화를 어떻게 달성해야 할까? 그는 시장점유율 중심의 경영에서 이윤 중심의 경영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비전문적으로 가격운영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이외에도 그는 많은 가격설정 기법과 적절한 활용사례 등을 소개했다.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다차원가격설정방법(Multi-Dimensional Pricing), 묶음가격설정방법(Bundle Pricing) 등과 가격전쟁을 회피하는 방법(Signaling)을 흥미롭게 설명했다.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한국 기업들은 이제 일본 기업을 더 이상 모방할 수 없는 시장선도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가격전략 측면에서도 더 이상 그대로 모방할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몬 회장의 강의를 요약하면 우선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격에 있어서의 원칙은 고객지향적인 가격설정 방법(Value Pricing)이다. 지몬 회장과 같은 특정한 분야를 깊이 연구한 전문가들을 많이 초청해 경험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지름길로 보인다. 둘째, 타산업 분야 1등기업의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이제 같은 산업 내에는 더 앞선 기업이 없기 때문에 분야가 다르지만 특출한 업적을 쌓은 기업의 사례를 많이 연구해 간접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혹은 태도의 변화이다. 성장 위주의 경영보다는 내실(이윤)추구형으로 전환해 고객과 함께 더불어 성장하는 기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이석규 성균관대 경영학부(마케팅) 교수·sukeky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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