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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Ⅱ] 내수 한계 극복하려 “밖으로 밖으로”

[Special ReportⅡ] 내수 한계 극복하려 “밖으로 밖으로”

▶9월 12일 부산에서 열린 'CDMA 전략적 제휴 이후 진행결과 협의를 위한 워크숍'에서 만난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오른쪽)과 차이나 유니콤 창샤오삥 회장.

국내 IT 업계의 해외 M&A는 내수 비중이 절대적인 통신·인터넷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내수만으론 성장의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세계 시장을 겨냥해 M&A에 나섰던 삼성·LG 등은 해외 거점을 이미 구축했기 때문에 별다른 큰 움직임은 없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M&A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통신서비스·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대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장 장악형’ M&A가 늘고 있다. 이와 달리 반도체·통신장비 등 IT 제조업 부문에서는 ‘기술 확보형’ M&A가 여전히 눈에 많이 띈다. 이 밖에 해외 시장 개척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외 진출형’ M&A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7월에 차이나유니콤(聯通)의 전환사채(CB) 10억 달러어치를 인수한 SK텔레콤은 시장 장악형에 가깝다. SK텔레콤은 포화상태에 이른 한국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몽골·베트남·미국 등에서 사업을 벌여 왔다. 그러나 이 회사의 해외 진출 실험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였다. 통신 산업은 특성상 국가 기간산업이게 마련이어서 규제와 견제가 심한 탓이 컸다. 중국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SK그룹의 행보가 빨라지면서 SK텔레콤도 통 큰(?) 베팅을 했다. SK텔레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로 중국 2위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차이나유니콤에 한 발을 담갔다. SK텔레콤이 인수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차이나유니콤의 지분 6.67%를 손에 쥘 수 있다. 물론 차이나유니콤과 이런저런 사업을 벌여 보고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2년 후에는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도 포함돼 있다. 최악의 경우 원금과 이자를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전환사채의 전환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SK텔레콤으로선 투자 위험을 줄이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매킨지 출신으로 SK텔레콤의 굵직한 M&A 거래를 도맡아 온 서성원 신규사업본부장은 “거래를 성사시키느라 막판 석 달 동안 중국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가입자 1억3,000만 명에 중국 시장 점유율 33.6%인 차이나유니콤을 지렛대 삼아 중국 시장에서 SK텔레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동통신 시장이 열리는 2007년을 중국 사업의 사실상 원년으로 삼겠다는 SK텔레콤은 시장을 장악할 계획도 속속 내놓고 있다. 2007년 1월에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알파(α) 프로젝트’란 초고속 무선 인터넷(VAS) 서비스를 내놓는다. 젊은층을 겨냥한 서비스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삼은 ‘3세대 중국 방식 이동통신 기술(TD-SCDMA)’의 상용 서비스도 차이나유니콤과 공동 개발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 전역의 도시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게 목표다. 서 본부장은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 SK텔레콤의 노하우와 역량을 쏟아 부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 또는 투자 목표”라며 “부호분할다중접속 방식(CDMA) 방식 서비스가 약한 차이나유니콤은 그런 점에서 저평가돼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확보형 M&A의 대표 사례로는 LG전자가 인수한 제니스(Zenith)를 꼽을 수 있다. LG전자는 95년 7월 18일에 제니스 지분 57%를 3억6,6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 한국산 가전제품에 미국의 보복 관세가 판을 치던 시기여서 미국 시장을 파고들려면 제니스가 요긴했다. 더구나 제니스는 미국 전자업계의 3대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LG전자는 제니스를 미국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제품을 팔면 팔수록 적자가 쌓여 인수 첫해부터 적자에 시달렸고, 급기야 99년에는 미국 법원에 기업회생계획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다급해진 LG 측은 브라운관 TV·라디오 등을 만들던 제니스를 수술대에 올렸다. 연구·개발 부문을 빼고는 모두 정리했다. LG전자는 이 과정에서 제니스의 지분율을 100%로 끌어올렸다. 제니스가 미국 토종 기업인데다 고화질 TV 관련 특허도 많아 언젠가 ‘한 방’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LG전자의 실낱같은 희망은 현실이 됐다. TV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니스가 가진 미국식 디지털TV의 핵심 기술(VSB 전송기술)이 빛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세계 디지털 TV시장 비중은 미국식 40·유럽식 40·일본/중국식 20% 정도로 나뉜다. 이 가운데 미국을 포함한 북미 시장이 가장 크며 기술 발전 트렌드도 이끌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미주 지역에 디지털 TV를 팔려면 제니스의 칩을 달아야 한다”며 “원천기술 덕에 제니스는 2~3년 후부터 세계 100여 개 디지털TV·셋톱박스 제조업체로부터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로열티를 받을 전망”이라고 전했다. 기술 혁명의 전환기에 M&A로 미리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게 효자 노릇을 하게 됐다. 해외 진출형 M&A 사례는 국내 포털업계에서 곧잘 볼 수 있다. 먼저 중국 IT업체 하이훙공고유한공사로부터 중국에서 가장 큰 게임 포털 ‘아워게임’의 지분 50%를 인수한 NHN은 비교적 순항하고 있다. 사업 초기에 중국 당국이 게임머니를 사용하는 웹 보드 게임을 도박 사업으로 규정해 서비스를 중단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게임 다변화로 중국 진출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동양증권의 정우철 애널리스트는 “중국 아워게임의 매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치열한 경쟁에도 이미 안정적인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중국 게임 포털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장성을 감안하면 NHN의 장기 성장엔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달리 이른바 ‘글로벌 원년’을 외치며 2004년 8월에 인터넷업체 라이코스의 지분 전량을 인수했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은 ‘M&A의 덫’에 걸려 몇 년간 고생했다. 당시 이재웅 사장은 “국내 인터넷 시장이 5·10년 후에도 고성장을 거듭할지 의문”이라며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는 데 문화적 차이는 큰 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기술이나 문화적으로 앞서 있는 한국 인터넷 문화를 이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라이코스란 브랜드 인지도는 높았지만 당시에 이미 미국 포털 시장에서 밀려난 회사”였다며 “다음이 ‘추락 후 추락의 법칙’이 지배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라이코스를 되살리기란 애초에 어려워 보였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스페인의 테라 네트웍스가 2000년에 125억 달러를 주고 사들인 라이코스를 다음에 9,500만 달러에 팔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해외 진출이란 방향은 맞았지만 굳이 무리해 가며 외국 기업을 인수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부정적 전망이 들어맞기라도 한 듯 다음은 라이코스 인수 후 부진을 거듭했다.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게다가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다음도 몰락한 1세대 벤처의 전철을 밟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은 발목을 잡던 라이코스의 몸집을 대폭 줄여 자회사 리스크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음은 쿼트닷컴(300억원)과 와이어드뉴스(250억원)의 매각으로만 550억원을 회수하면서 라이코스 탓에 진 짐을 꽤 덜어냈다. 덕분에 올 2분기에는 7분기 만에 연결 기준으로 영업 흑자를 냈다. 다만 비싼 수업료를 낸데다 해외 인터넷 사업 축소설이라는 루머에도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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