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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굴뚝 위에 무성한 ‘첨단 숲’

사라진 굴뚝 위에 무성한 ‘첨단 숲’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선 구로디지털단지의 야경.

공장도 굴뚝도 없다. 가발을 만들던 여공도 선반공도 보이지 않는다. 낡고 칙칙한 공장들의 대명사였던 구로공단은 이제 이름도 모습도 모두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아파트형 공장이라 불리는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었다. 최저임금의 여공 대신 신기술로 무장한 수만 명의 벤처맨이 이곳의 주인이 됐다. 구로공단의 변신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채 5년도 걸리지 않았다. 구로디지털단지(공식 명칭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전체 입주업체는 이미 5500개를 돌파했다. 2001년 849개의 6배가 넘는 규모다. 96년 입주 업체가 397개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전체 입주사 가운데 정보기술(IT) 업체는 4083개로 80%를 육박한다. 반면 구로공단 시절 주력 업종인 섬유의복·종이인쇄 업체 수는 10%도 안 된다. 그만큼 첨단화한 것이다. 첨단업종 중 44%가 디자인·영화·온라인 정보 제공 등 서비스업체다.

1년 생산 규모만 6조원대 고용도 크게 늘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2001년 3만1245명에서 현재 7만4000명을 넘어섰다. 지역 상권도 살아났다. 병원·커피전문점·외국어학원·헬스클럽·골프연습장 등 의료·문화·레저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업체 수가 급격히 늘면서 생산량도 96년 4조4750억원에서 지난해 5조4108억원으로 상승했다. 현재 생산규모 6조원대의 첨단산업 단지로 급부상했다. 최근 입주 기준이 완화돼 더욱 많은 연구개발형 기업들을 흡수하며 ‘제2의 벤처밸리’로 자리를 굳혔다.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옛 구로공단역) 주변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커먼 굴뚝들만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첨단의 고층 아파트형 공장들이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15~20층 규모의 첨단 아파트형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구로디지털단지 성공하려면?


벤처 생태계 형성(지식 생태계 활성화) 지식의 창출과 확산이 자유롭고 유기적으로 발생하도록 건물 및 공간을 다양화해서 기술 벤처 중심의 지식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광역적 밸류 체인(value chain) 연계 강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지방 산업단지의 기술 및 인력, 상품 정보가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을 확보하고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클러스터 브랜드 이미지 제고 미국 실리콘밸리나 스웨덴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처럼 그 속에 속해 있는 것 자체가 기업의 대외 이미지나 신뢰도에 도움이 되도록 클러스터 자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산업단지 선도기업 창출 클러스터 구성원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핵심 선도기업이 있어야 한다.

핵심 R&D 거점 형성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구개발센터나 교육훈련시설을 설치, 명실 공히 첨단산업 분야의 지식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아파트형 공장은 호텔급 인테리어에 밝고 쾌적한 작업공간을 제공한다. 입주사 직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성큰(sunken)가든, 체육·웰빙 공간, 그리고 고급스러운 구내식당도 자랑거리다. 폭 2m의 전용 발코니 서비스 면적과 전용률 63%로 사무실 쾌적성을 높였다. 이들 아파트형 공장 입주 업체만 4787개로 전체 입주 기업의 89%에 달한다. 아마도 아파트형 공장이 없었다면 이들을 수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파트형 공장은 공장부지 가격이 급등하고 기존 건물의 노후화 문제가 제기되면서 2003년 이후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한때 짓기만 하면 한 동당 150억원 수익은 남겼다고 한다. 중견 건설업체들이 앞다퉈 빌딩을 올릴 만했다.

강남서 하루 2개꼴로 이주해와 구로공단에 등장한 아파트형 공장 1호는 96년 세워진 7층 규모인 동일테크노타운. 이를 시작으로 풍림·대륭·에이스 등 중견 건설사들이 15~20층 규모 첨단 아파트형 공장 건설에 뛰어들면서 아파트형 공장은 57개로 늘어났다. 구로동의 1단지에 이어 가산동의 2, 3단지도 이미 15층짜리 아파트형 공장이 밀집한 첨단 산업단지로 부활 중이다. 현재 건설 중인 빌딩만 해도 16곳에 이르며 착공 준비 중인 빌딩도 10개나 된다. 구로디지털단지가 벤처밸리로 급부상하면서 요즘 하루 3개 정도의 업체가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겨오고 있다. 서울지방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구로디지털단지 입주기업이 대부분인 서울 강서지역 벤처업체(인증업체) 수가 1년 만에 300개가 더 늘어 2006년 현재 1000개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입주한 벤처기업 중 70%는 강남권 특히 테헤란로에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강남에서 하루 2개 업체꼴로 이주해온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벤처업체들의 자구책이다. 벤처 거품이 꺼지고 수익성과 유동성 문제로 고정비용을 줄여야 하는 강남의 벤처업체들은 고가의 임대료에 허덕이다 2001년 이후 저렴한 사무실과 공장을 찾아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상당수가 구로디지털단지로 모여든 것이다. 게다가 구로단지는 대부분 새 건물이고 채광이 좋아 업무환경이 쾌적하다는 것이 입주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입지도 훌륭하다. 구로디지털단지는 시흥대로·서부간선도로·남부순환도로가 교차하는 요지다. 또 인천국제공항·김포공항·인천항 등 세계로 통하는 연결망도 확보하고 있어 여러모로 편리하다. 구로디지털단지로 이전을 준비하던 벤처 CEO들은 처음에 ‘구로공단’ 이미지가 회사 이미지와 직원들 사기를 떨어뜨릴까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막상 와 보고는 강남 못지 않은 시설과 환경에 감탄하게 됐다고 한다. 첨단 아파트형 공장은 24시간 쾌적하게 완전 가동되기 때문에 벤처인들의 업무 행태에도 적합하다.
성남과 인천 남동공단이 제품 생산에 기반한 입지라면 구로디지털단지는 기술 개발에 전념하고 일부 시제품 생산에 적합하다. IT 벤처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협력업체들도 따라오게 돼 물류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업체들이 대규모로 모여들자 시중 은행들도 따라 짐을 풀었다. 심지어 농협까지도 기업 고객을 찾아 단지 내에 지점을 냈다. 디지털단지의 성장성을 높게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벤처기업들이 대거 구로단지로 빠져나오자 강남 테헤란로에는 성형외과·피부과 등 병원들이 들어서고 있다. 1997년 이곳에 6층짜리 아파트형 공장을 지은 13개 중소 전자부품 업체는 구로디지털단지 입주 1세대. 현재 남은 9개 기업이 모여 ‘한국전자협동’이란 공동체를 만들었다. 나산정밀·동성정공·동우자동도어·동진산업사·시코정보기술·원샤프트정공·이레전자산업·파워넷·내외시스템이 바로 그들이다. 입주 당시 종업원 5명 안팎의 영세업체에서 모두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타벤처들도 출현 중이다. 휴대전화 부품업체 엠텍비젼은 구로디지털단지에 회사 터를 잡은 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구로디지털단지의 대표 벤처 중 하나다. 2001년 입주 당시 매출액 36억원에 3억8000만원의 적자를 냈지만 2002년 내장형 카메라폰 칩 개발에 성공하면서 지난해에는 매출 1788억원, 영업이익 344억원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숫자로 본 구로디지털단지


63빌딩 능가하는 공장빌딩 분양가 인근 지역 절반 수준 내년 총 고용인원 9만 돌파 양질의 점심이 단돈 3500원

· 46년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역사.

· 198만1552㎡
디지털단지 전체 면적. 약 60만 평 정도다.

· 5500개사
구로디지털단지 입주기업 수.

· 80%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디자인·지식산업 등 미래형 성장산업의 비중

· 7만4000명
단지에서 근무하는 벤처인 수.

· 5조4400억원
2005년 단지 총 생산액.

· 15억5200만 달러
단지 총 수출액. 국가 총 수출의 3.2% 차지.

· 73개
2005년 12월 말 현재 단지 내 아파트형 공장 수. 총 입주공간은 연면적 100만 평에 이름.

· 400만원
단지 내 아파트형 공장 평균 평당 가격.

· 500여 곳
금천구가 추산하는 아웃렛

· 3500원
아파트형 공장 구내식당 식대.
이 밖에 모바일게임업체 ‘컴투스’, 디지털도어록업체 ‘아이레보’, 컴퓨터 주변기기업체 ‘잘만테크’, 초소형 카메라폰 모듈업체 ‘엠씨넥스’, 모바일 솔루션업체 ‘모빌탑’, DB전문업체 ‘알티베이스’, DVR업체 ‘윈포넷’ 등이 구로디지털단지가 배출한 스타 벤처들이다. 구로디지털단지가 강남시대를 대체하면서 우수 협력사와 인력을 찾는 대기업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통합 단말기 연구소를 짓고 입주했고 CJ인터넷, SK 계열사인 OK캐쉬백서비스, GS넥스테이션, 신세계I&C 등도 들어왔다. 구로디지털단지는 지금도 계속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점점 가속화될 전망이다. 내년 말이면 구로디지털단지 조성이 마무리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측은 27개 아파트형 공장 외에 삼성IT밸리 등 3개 건물이 준공되면 입주자는 5000명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 사이 가리봉동 125번지 일대는 균형개발 촉진지구로 지정돼 본격적인 도시개발 사업에 들어간다. 이 지역 8만4000평에 대해 도시환경 정비계획을 수립했다. 균형개발 촉진지구는 지난 2월 확장공사에 들어간 디지털단지로(옛 공단로)가 핵심지역이다. 구로구와 금천구는 이곳에 2011년까지 호텔·컨벤션센터 등을 유치해 디지털단지를 지원하는 비즈니스 거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쪽방으로 상징되던 구로동의 주거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구로 3,4동 재개발을 통해 660가구의 두산위브가 입주를 앞두고 있고 498가구의 한신휴플러스 아파트도 내년 7월 준공 예정이다. 구로구청은 구로본동과 2동 22만 평에 대규모 주거지도 조성할 계획이다. 훌륭한 주거 시설과 아파트형 첨단공장이 어우러진 첨단 클러스터로 변신하는 셈이다.

‘클러스터 효과’ 회의적으로 보기도 최근 서울시는 2010년까지 서울을 권역별로 첨단·창의산업벨트 등 ‘4대 산업벨트’로 나누어 조성하기로 했다. 그 중 구로디지털단지를 마곡MRC(연구·개발시티)·관악벤처밸리 등과 함께 서남첨단산업벨트로 묶어 정밀기기·의료소프트웨어·나노메카트로닉스 등을 클러스터로 만들 계획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수십 층짜리 첨단 아파트형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있으나 편도 2차로인 도로 사정은 20여 년 전 구로공단 시절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현 교통체계가 구로공단 조성 당시인 1964년에 구축돼 도로 간 연계성이 부족하고, 주차공간도 협소한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구로디지털단지의 클러스터 효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클러스터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업체들의 협업으로 나타나는데 구로디지털단지 입주 업체들의 경우 사업 경력들이 짧은 탓에 네트워크 구성에 익숙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산·학 협동을 위해 조직된 서울산학기술포럼(SIF)의 경우만 해도 대학에서는 관심을 보이는데 오히려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형편이다. 구로디지털단지는 국내 산업단지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올 초‘수도권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기획단’(가칭)을 설치하면서 “최근 산업구조에 맞지 않는 산업단지가 많다”며 “구로디지털단지처럼 업종 고도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조성태 홍보팀장은 “앞으로 10년 뒤 한국을 먹여살릴 새로운 성장동력이 다시 구로에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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