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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이제는 먹을 곳도 없다

노숙자 이제는 먹을 곳도 없다


미국 여러 시에서 식사 제공마저 불법으로 규정…인권단체들 반발 올랜도(플로리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가상도시 시헤븐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깨끗한 보도, 말끔한 상가, 수목이 우거진 공원과 호수들은 너무 완벽하다. 따라서 진짜 문제, 특히 불어나는 노숙자 집단으로 시 당국이 골머리를 앓는 문제가 있는 진짜 도시가 아닌 듯하다. 시 당국은 구걸행위를 금지한 법률이 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자 다른 규제를 생각해냈다. 처음에는 걸인들에게 신분증을 발급했고, 다음에는 보도에 1m×5m 넓이의 ‘구걸 구역’을 페인트로 칠해놓고 그 안에서만 구걸하도록 했다.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올 여름에는 공급 측면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시내 공원에서 노숙자들을 모아놓고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나 사회운동가들을 단속했다. 이제는 걸인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돕는 사람도 여차하면 잡혀갈 판이다. 이런 강경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시청이 노숙행위 방지를 법제화하려고 취한 여러 조치 중에서 식사제공 금지법이 가장 최근에 이뤄졌다고 말한다. 전국노숙자연합(NCH)의 올해 보고서를 보면 구걸이나 공공장소에서 앉거나 눕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이 2002년 이후 두 자릿수로 늘었다. 올랜도가 법령을 통과시키기 일주일 전 라스베이거스는 공원에서 단 한 명의 걸인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 법은 정부 지원을 “신청하거나 수령할” 자격이 돼 보이는 사람으로 걸인을 정의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비도덕적이다. 소득 기준으로 범죄행위를 정의함으로써 말 그대로 계급제도를 강요한다”고 시민자유연맹(ACLU) 네바다 지부의 대외업무 담당 리 롤랜드는 말했다. ACLU는 지난 8월 식사제공을 불법화한 라스베이거스의 법률이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시청 공무원들은 식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노숙자가 사라질 줄 안다”고 NCH의 마이클 스툽스 사무처장은 말했다. 그러나 올랜도의 경우는 따뜻한 날씨와 비숙련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때문에 노숙자가 증가한다. 계절별 농업인구를 포함한 노숙자 인구는 7000명 선으로 추정된다. 시청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약 2000명이다. 사회운동가와 교회 단체들이 식사제공 프로그램으로 그 간극을 메우러 나섰다. ‘폭탄 대신 음식’(Food Not Bombs)이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최대 프로그램은 올랜도의 공원들 중에서 보전상태가 가장 좋은 에올라 호수공원에서 주 1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뜻은 좋았지만 인근 주민들이 엉뚱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경찰은 대규모 식사제공 행사가 여러 차례 열린 뒤 주거 무단침입이나 풍기문란 행위의 신고와 범죄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시내에서 거주환경이 가장 좋은 지역으로 노숙자 수백 명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마당에 싸 놓은 변을 치우고 정원 덤불 속에서 자던 사람들을 쫓아냈다”고 변호사 로버트 하딩은 말했다. 그의 사무실은 에올라 호수공원 인근의 모퉁이에 있다. 법이 무서워 식사제공의 규모와 횟수가 줄기는 했어도 ‘폭탄 대신 음식’은 공원 건너편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들 뒤쪽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편법을 개발했다. 시청 청사 앞에서, 또는 버젓이 시청 안에서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당국을 조롱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 따라서 과연 집행이 가능한 법인가 하는 의문마저 제기됐다. 시청은 지금 그 법의 정당성을 법원에서 옹호할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폭탄 대신 음식’은 ACLU의 지원을 얻어 올 가을 초 그 법의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단체의 대표 벤 마켄슨은 음식은 “권리이지 특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도시는 마치 영화 촬영장처럼 보이지만 샌드위치를 타려고 줄선 사람들은 배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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