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 역대 최고 성적
한인들 역대 최고 성적
지난 7일 실시된 미국의 중간선거에 한국계 17명이 입후보해 14명이 당선됐다. 이는 역대 최대 출마에 최다 당선이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일반선거에서는 한국계 정치인 14명이 출마해 절반이 조금 넘는 8명이 당선됐었다. 그에 앞서 있었던 선거에서도 한국계 출마자들의 숫자는 보통 10명을 넘지 못했고, 당선율 또한 50%를 밑돌았었다. 미주 중앙일보가 LA와 뉴욕 등 각 지사망을 통해 집계한 한국계 선출직 공직자 현황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이 시작된 이래 선거를 통해 미 정계에 진출한 한국계 정치인은 총 59명이며 현직에 있거나 이번 선거를 통해 당선이 확정된 현역 정치인은 35명에 이른다. 특히 2000년 이후 미국 정계에 진출한 한국계만 꼽아보면 모두 24명이다. 최석호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의원은 “8년 전 정계 입문의 계기가 됐던 어바인 교육위원 선거 당시 정치인 선배로는 정호영 전 가든그로브 시의원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고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고홍주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나 부시 행정부의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등 고위 임명직 공직자 대열에 올라선 한국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의 엄격한 심판을 받고 당당하게 시의원이나 교육위원 등 지방자치단체 공직에 선출된 경우는 임명직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서부에서 동부로 확장 한국계 이민자들의 정치력 신장은 미주 한인 이민사의 발전사와 궤도를 같이한다.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태동했던 정계 진출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내 한인 최대 밀집지역인 서부지역에 굳건한 토대를 형성한 데 이어 최근에는 동부에서도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한인들이 미국 정계에 처음 진출한 해는 1958년이다. 한국인들의 이민이 공식 시작된 1903년 이래 55년 만이다. 사탕수수 이민자들의 후손인 로버트 장씨와 필립 민씨가 각각 하와이 주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역시 하와이 출신으로 1960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 몬터레이파크 시의회에 입성한 앨프리드 송(작고)씨는 한국계는 물론 아시아계 최초로 1961년과 65년 캘리포니아 주하원 선거와 주상원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 큰 족적을 남겼다. 1982년과 90년에는 하와이 이민 2세인 도나 머카도 김씨와 재키 영씨가 각각 하와이 주하원의원에 당선돼 그 맥을 이어나갔다. 하와이 출신 한국계 이민자들이 주도하던 미 정계 진출은 1990년대 들어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등 미 서부지역에서 한인 후보들이 잇달아 당선되면서 도약의 시대를 맞았다. 1990년 로스앤젤레스 동부지역 다이아몬드바 시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김창준씨와 이듬해인 1991년 워싱턴주 시애틀 시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마사 최씨가 시동을 걸었다. 92년 선거에선 김창준씨가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같은 해 임용근씨가 오리건 주상원, 신호범씨가 워싱턴 주하원 선거에서 각각 승리해 한인 이민사회가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을 잇는 ‘서부 벨트라인’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가 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인들의 정치력은 동진을 거듭 중이다. 2004년 남가주의 교육도시 어바인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강석희씨와 최석호씨가 한인 이민 사상 최초로 동반 당선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미시간주에서는 한국계 입양인 훈영 합굿(민주)씨가 2002년 주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했고, 어머니가 한국계인 프랜시스 O 앨런(공화)씨는 2004년 네바다 주하원에 입성했다. 미 서부지역에 비해 한국계 정치인 배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니아주 등 동부지역의 경우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계 정치지망생들이 교육위원 선거에서 잇달아 당선되며 역량을 축적했다. 마침내 2004년 뉴저지주 펠리세이즈파크 교육위원을 역임했던 제이슨 김씨가 같은 지역 시의원 선거에서 승리, 동부지역에서도 정치적 교두보가 확보됐다. 이어 2005년 특별선거에서는 최준희씨가 뉴저지주 에디슨 시장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에는 매사추세츠주의 샘 윤씨가 보스턴 시의회 입성에 성공했고, 펜실베이니아주의 패티 김씨도 해리스버그 시의원에 선출됐다. 2006년에는 뉴저지주 레오니아 시의원직에 도전한 최용석씨와 리틀폴스 시의원 선거에 나선 크리스티 허씨가 승리 소식을 전해 왔다.
선출직 공직자들의 성향 35명의 현지 정치인을 직책별로 살펴보면 아트 윤(캘리포니아주 허모사비치)씨를 비롯해 시의원이 12명으로 가장 많고, 각급 의회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교육위원직에도 문일룡(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씨 등 11명이 포진했다. 이어 실비아 장 루크(하와이주)씨 등 주 하원의원 6명, 도나 머카도 김(하와이주)씨 등 주상원의원 2명, 해리 김(하와이주 빅아일랜드)씨 등 시장 2명, 주 조세형평국 위원 1명(캘리포니아주 미셸 박 스틸 당선자), 주 지방법원 판사 1명(지명희 워싱턴주 킹카운티) 순이다.
출마자 절반 이상이 여성 이번 중간선거에 출마한 한인 후보 17명 중 10명이 여성이었다. 이 중 캘리포니아 주하원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매리 정 하야시씨 등 9명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35명의 현역 정치인 중에선 14명이 여성이다. 남성과 여성을 합쳐 이민 1세들 숫자는 박영민 워싱턴주 페드럴웨이 시의원, 최용식 뉴저지주 레오니아 시의원 등 8명이다. 한국계 입양인(신호범 워싱턴 주상원의원, 훈영 합굿 미시간 주하원의원)과 부모 중 한쪽이 한국계(조엘 피터슨 캘리포니아주 라카냐다 교육위원, 프랜시스 O 앨런 네바다 주하원의원)인 경우도 각각 2명씩이다. 소속 정당으로는 민주당이 압도적이다. 정당별 예비선거를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주상원과 주하원 의원, 주 조세형평국 위원을 기준으로 할 때 6명이 민주당 소속이었고 3명만이 공화당 출신이다.
한국계 후보들이 선전한 이유 먼저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거나 민주당 성향이 강한 한국계 후보들이 전원 당선됐다. 이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중간선거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미민주당협회(회장 그레이스 지) 측 관계자들은 한인사회가 이번 선거로 막을 연 ‘민주당 시대’와 흐름을 같이하게 돼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현직에 있다 재선에 나선 8명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을 확정지었다는 점은 한국계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주류사회의 눈에 ‘편견’ 대신 ‘인정’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화당 소속으로 통산 5선 고지에 오른 임용근 오리건 주하원의원은 선거운동 막판 공화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탁월한 업무수행 능력과 깨끗하고 근검한 정치활동이 유권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면서 무난히 승리했다고 자평했다. 한인들의 이민역사가 100년을 넘어서면서 활발해진 2~3세의 정치참여도 한몫을 했다. 한국계 2~3세 정치인들은 1세가 당면했던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이미 극복한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장점이 있다. 최석호 어바인 시의원은 아무리 훌륭한 소신과 정치철학이 있다 할지라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1세 정치인들이 겪어야 했던 완벽한 언어 표현의 어려움, 한국식 악센트에 따른 유권자들의 거부감과 같은 고충을 2~3세들은 상대적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한인사회의 성장이 가져다준 심리적·경제적 요인이다. 로스앤젤레스 한인상공회의소의 정주현 회장은 백인을 비롯한 타인종들이 한인들이 운영하는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일하면서 한인과 한인사회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 이들은 선거에 출마한 한국계 정치인들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예비훈련 과정을 거쳤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제2의 오바마’ 배출도 가능할까 한국계 이민자들의 정치력을 신장하려는 미주 한인사회의 움직임은 크게 유권자 등록과 투표참여 운동, 그리고 한국계 정치인 네트워크 구성 등으로 나뉜다. 2000년도 미국 연방 센서스 조사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총인구는 107만6872명에 이른다. 이 중 투표할 권한이 있는 시민권자는 절반이 채 안 되는 42만3393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시민권자라 하더라도 투표권이 자동적으로 부여되지는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등록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관계 기관 추산으로는 한국계 시민권자들의 유권자 등록비율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평균 투표율이 중간선거의 경우 40%, 대통령 선거는 60%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표로 연결될 만한 한국계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유권자등록 캠페인에 앞장서온 민족학교의 윤대중 사무국장은 전 세계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한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유권자 비율은 전체의 1%도 안 된다며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 대도시의 정계에 진출한 동포들이 아직 없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권 취득을 유권자 등록으로 연결시켜 정치적 세력화를 부추기려는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계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계 예비 정치인을 양성하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정치인들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 작업이 곳곳에서 추진된다. 한미연합회(전국회장 찰스 김)는 미주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지난해 4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현직 선출직과 임명직 공직자들을 초청, 한국계 정치력 신장과 네트워크 구성 방안을 논의했다. 신호범 워싱턴 주상원의원은 미국 50개 주마다 한인 정치인이 배출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한미정치교육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미 동부지역에서도 한인 2세 정치지망생이 주축이 된 KALKA가 구성돼 있다. 어바인 시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강석희씨도 보다 많은 한인 정치인이, 보다 많은 지역에서 승리하도록 전략적인 후보 발굴과 계획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는 바락 오바마 일리노이 주지사는 케냐 출신 흑인 이민자 가정의 2세다. 오바마의 연설장에선 오히려 백인들이 더 환호한다. ‘흑인이라는 강박관념이 없는 흑인’이 워싱턴 정가를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이 이들을 흥분케 한다. 한인사회에 뿌리를 두되 주류사회의 민심을 읽어내는 한국계 ‘오바마’를 배출하는 날이 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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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에서 동부로 확장 한국계 이민자들의 정치력 신장은 미주 한인 이민사의 발전사와 궤도를 같이한다.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태동했던 정계 진출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내 한인 최대 밀집지역인 서부지역에 굳건한 토대를 형성한 데 이어 최근에는 동부에서도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한인들이 미국 정계에 처음 진출한 해는 1958년이다. 한국인들의 이민이 공식 시작된 1903년 이래 55년 만이다. 사탕수수 이민자들의 후손인 로버트 장씨와 필립 민씨가 각각 하와이 주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역시 하와이 출신으로 1960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 몬터레이파크 시의회에 입성한 앨프리드 송(작고)씨는 한국계는 물론 아시아계 최초로 1961년과 65년 캘리포니아 주하원 선거와 주상원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 큰 족적을 남겼다. 1982년과 90년에는 하와이 이민 2세인 도나 머카도 김씨와 재키 영씨가 각각 하와이 주하원의원에 당선돼 그 맥을 이어나갔다. 하와이 출신 한국계 이민자들이 주도하던 미 정계 진출은 1990년대 들어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등 미 서부지역에서 한인 후보들이 잇달아 당선되면서 도약의 시대를 맞았다. 1990년 로스앤젤레스 동부지역 다이아몬드바 시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김창준씨와 이듬해인 1991년 워싱턴주 시애틀 시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마사 최씨가 시동을 걸었다. 92년 선거에선 김창준씨가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같은 해 임용근씨가 오리건 주상원, 신호범씨가 워싱턴 주하원 선거에서 각각 승리해 한인 이민사회가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을 잇는 ‘서부 벨트라인’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가 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인들의 정치력은 동진을 거듭 중이다. 2004년 남가주의 교육도시 어바인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강석희씨와 최석호씨가 한인 이민 사상 최초로 동반 당선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미시간주에서는 한국계 입양인 훈영 합굿(민주)씨가 2002년 주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했고, 어머니가 한국계인 프랜시스 O 앨런(공화)씨는 2004년 네바다 주하원에 입성했다. 미 서부지역에 비해 한국계 정치인 배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니아주 등 동부지역의 경우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계 정치지망생들이 교육위원 선거에서 잇달아 당선되며 역량을 축적했다. 마침내 2004년 뉴저지주 펠리세이즈파크 교육위원을 역임했던 제이슨 김씨가 같은 지역 시의원 선거에서 승리, 동부지역에서도 정치적 교두보가 확보됐다. 이어 2005년 특별선거에서는 최준희씨가 뉴저지주 에디슨 시장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에는 매사추세츠주의 샘 윤씨가 보스턴 시의회 입성에 성공했고, 펜실베이니아주의 패티 김씨도 해리스버그 시의원에 선출됐다. 2006년에는 뉴저지주 레오니아 시의원직에 도전한 최용석씨와 리틀폴스 시의원 선거에 나선 크리스티 허씨가 승리 소식을 전해 왔다.
선출직 공직자들의 성향 35명의 현지 정치인을 직책별로 살펴보면 아트 윤(캘리포니아주 허모사비치)씨를 비롯해 시의원이 12명으로 가장 많고, 각급 의회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교육위원직에도 문일룡(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씨 등 11명이 포진했다. 이어 실비아 장 루크(하와이주)씨 등 주 하원의원 6명, 도나 머카도 김(하와이주)씨 등 주상원의원 2명, 해리 김(하와이주 빅아일랜드)씨 등 시장 2명, 주 조세형평국 위원 1명(캘리포니아주 미셸 박 스틸 당선자), 주 지방법원 판사 1명(지명희 워싱턴주 킹카운티) 순이다.
출마자 절반 이상이 여성 이번 중간선거에 출마한 한인 후보 17명 중 10명이 여성이었다. 이 중 캘리포니아 주하원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매리 정 하야시씨 등 9명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35명의 현역 정치인 중에선 14명이 여성이다. 남성과 여성을 합쳐 이민 1세들 숫자는 박영민 워싱턴주 페드럴웨이 시의원, 최용식 뉴저지주 레오니아 시의원 등 8명이다. 한국계 입양인(신호범 워싱턴 주상원의원, 훈영 합굿 미시간 주하원의원)과 부모 중 한쪽이 한국계(조엘 피터슨 캘리포니아주 라카냐다 교육위원, 프랜시스 O 앨런 네바다 주하원의원)인 경우도 각각 2명씩이다. 소속 정당으로는 민주당이 압도적이다. 정당별 예비선거를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주상원과 주하원 의원, 주 조세형평국 위원을 기준으로 할 때 6명이 민주당 소속이었고 3명만이 공화당 출신이다.
한국계 후보들이 선전한 이유 먼저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거나 민주당 성향이 강한 한국계 후보들이 전원 당선됐다. 이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중간선거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미민주당협회(회장 그레이스 지) 측 관계자들은 한인사회가 이번 선거로 막을 연 ‘민주당 시대’와 흐름을 같이하게 돼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현직에 있다 재선에 나선 8명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을 확정지었다는 점은 한국계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주류사회의 눈에 ‘편견’ 대신 ‘인정’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화당 소속으로 통산 5선 고지에 오른 임용근 오리건 주하원의원은 선거운동 막판 공화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탁월한 업무수행 능력과 깨끗하고 근검한 정치활동이 유권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면서 무난히 승리했다고 자평했다. 한인들의 이민역사가 100년을 넘어서면서 활발해진 2~3세의 정치참여도 한몫을 했다. 한국계 2~3세 정치인들은 1세가 당면했던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이미 극복한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장점이 있다. 최석호 어바인 시의원은 아무리 훌륭한 소신과 정치철학이 있다 할지라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1세 정치인들이 겪어야 했던 완벽한 언어 표현의 어려움, 한국식 악센트에 따른 유권자들의 거부감과 같은 고충을 2~3세들은 상대적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한인사회의 성장이 가져다준 심리적·경제적 요인이다. 로스앤젤레스 한인상공회의소의 정주현 회장은 백인을 비롯한 타인종들이 한인들이 운영하는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일하면서 한인과 한인사회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 이들은 선거에 출마한 한국계 정치인들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예비훈련 과정을 거쳤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제2의 오바마’ 배출도 가능할까 한국계 이민자들의 정치력을 신장하려는 미주 한인사회의 움직임은 크게 유권자 등록과 투표참여 운동, 그리고 한국계 정치인 네트워크 구성 등으로 나뉜다. 2000년도 미국 연방 센서스 조사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총인구는 107만6872명에 이른다. 이 중 투표할 권한이 있는 시민권자는 절반이 채 안 되는 42만3393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시민권자라 하더라도 투표권이 자동적으로 부여되지는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등록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관계 기관 추산으로는 한국계 시민권자들의 유권자 등록비율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평균 투표율이 중간선거의 경우 40%, 대통령 선거는 60%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표로 연결될 만한 한국계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유권자등록 캠페인에 앞장서온 민족학교의 윤대중 사무국장은 전 세계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한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유권자 비율은 전체의 1%도 안 된다며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 대도시의 정계에 진출한 동포들이 아직 없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권 취득을 유권자 등록으로 연결시켜 정치적 세력화를 부추기려는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계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계 예비 정치인을 양성하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정치인들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 작업이 곳곳에서 추진된다. 한미연합회(전국회장 찰스 김)는 미주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지난해 4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현직 선출직과 임명직 공직자들을 초청, 한국계 정치력 신장과 네트워크 구성 방안을 논의했다. 신호범 워싱턴 주상원의원은 미국 50개 주마다 한인 정치인이 배출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한미정치교육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미 동부지역에서도 한인 2세 정치지망생이 주축이 된 KALKA가 구성돼 있다. 어바인 시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강석희씨도 보다 많은 한인 정치인이, 보다 많은 지역에서 승리하도록 전략적인 후보 발굴과 계획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는 바락 오바마 일리노이 주지사는 케냐 출신 흑인 이민자 가정의 2세다. 오바마의 연설장에선 오히려 백인들이 더 환호한다. ‘흑인이라는 강박관념이 없는 흑인’이 워싱턴 정가를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이 이들을 흥분케 한다. 한인사회에 뿌리를 두되 주류사회의 민심을 읽어내는 한국계 ‘오바마’를 배출하는 날이 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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