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뒤덮은 ‘재개발 폭탄’] 2006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은평구 뒤덮은 ‘재개발 폭탄’] 2006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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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2, 23일 찾아간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은 마치 폭격 맞은 전쟁터 같았다. 집들이 대부분 철거돼 스산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고물을 수집하는 소형 트럭만 분주할 뿐이다. 곳곳에 붙어 있는 ‘이주대책 수립 요구 관철’‘철거 반대’와 같은 플래카드와 전단지가 찬바람에 날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곳은 몇 년 후면 105만 평의 화려한 도시로 변신할 것이다. 통일로 건너편은 이미 공사가 시작돼 타워크레인이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옛것을 해체하는 전사들 같았다. 올해 환갑인 이성구(남·가명)씨는 반쯤 부서진 집 마당에서 건너편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낮인데도 취한 상태다. 그는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7800명, 올해 9200명이 떠난 마을에 남은 몇 안 되는 주민이다. “집이 하천을 메운 시유지에 있어서 보상비가 거의 없어. 무허가 집인데, 300만원 준데. 그 돈으로 어디를 가?”
“3000만원 갖고 어디로 가나요” 옆에 있는 김제일(43·남)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12년 전 마포에 살다가 재개발이 되면서 진관동으로 이사 온 그는 또다시 쫓겨나야 할 판이다. 그는 “5년 동안 투쟁하다가 포기하고 떠난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이제 내 집 지켜보겠다고 남은 사람은 몇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에게 ‘서민주거 안정’이라는 뉴타운 개발의 취지는 헛소리다. 서울시와 시행사인 SH공사는 ‘충분한 보상이 됐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지역은 30년 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그래도 시골 같아 재미있게 살았다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문제는 이들이 새롭게 탈바꿈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찌 새로 지은 반듯한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지 않겠는가? 진관동 입구 무허가 슬래브집에서 살다가 불광동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 온 김미영(40·여·가명)씨가 그런 경우다. 김씨는 할인마트 판매직으로 일하고,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다. 김씨의 가족은 방 두 개짜리 13평 집에서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을 주고 6년 동안 살았다. 뉴타운 개발로 김씨 가족은 한 달 전 이주비 3000만원을 받고 이사했다. 뉴타운이 완성되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지만 걱정이 앞선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월세도 제대로 못 내고 살았는데, 새로 임대주택에 들어간다 해도 2억원이나 되는 보증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월 관리비는 감당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딱지(입주권)라도 팔 수 있었다면 모르지만, 그것도 불법이라 일단 들어가야 하긴 할 텐데….” 그나마 김씨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이곳에 23년 동안 살았다는 황정순(78) 할머니는 하천 부지에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 황 할머니 가족은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12월 중순이나 돼야 이사할 것 같다고 했다. 둘째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함께 살았는데, 보상받은 돈으로는 네 식구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아들이 우유 납품을 하는데, 겨우 대출을 받았나 봐. 그 돈 합해서 연신내나 불광동으로 전세 간다지?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지. 비싸서 어디 올 수나 있겠어? 여기서 나간 사람들 죄다 전세로 갔어. 저기 경기도 넘어 이사 간 사람도 많아.” 실제로 그랬다. 본지가 은평구청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은평 뉴타운 이주민 중 같은 구 안으로 전입한 비율은 16%였다. 올해는 절반 가량이 불광동·구산동·연신내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나마 지난해보다 올해 보상비가 많아서 같은 구 내로 이주하는 비율이 늘었다. 그렇다면 지난해 진관내·외동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차라리 북한으로 가게 해달라” 유중공 은평구 의원은 “은평구가 그나마 집값이나 전·월세도 서울 다른 지역보다 쌌는데, 받은 보상비로는 어디 갈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며 “경기도 양주·장흥·고양시 변두리로 많이 이사했다”고 말했다. 양주와 고양시 소재 부동산에 확인해 봤다. 양주시 소재 부동산 중개인은 “문의는 많았는데, 양주는 개발 기대 심리로 땅값이 올라 계약이 성사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고양시 쪽은 다수의 부동산 업체에서 “은평구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확인해줬다. 특별히 군락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고양동·관산동·덕양구 변두리 쪽 싼 전·월세를 찾아 많이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멀더라도 살 곳을 찾아다닐 수 있는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뉴타운 이주민 중 정말 심각한 것은 공공용지 땅 거주자, 무허가 세대, 세입자, 영세 상인들이다. 아직까지 폐허가 된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50여 가구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방아다길 인근에 13가구, 울푸레길 주변에 40여 가구다. 은평 뉴타운 공공용지 주민 대책위원장인 백숙자(59·여)씨는 사무실로 쓰는 낡은 컨테이너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그는 “3-1지구 하천부지에 20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버티고 버티다 3000만원 받고 다 나가고 13가구만 남았다”고 했다. 손은 차갑게 얼어있었지만 5년간 싸워온 만큼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갈현동에서 진관동으로 오는 박석고개를 ‘망해서 넘어오는 고개’라고 해요. 그만큼 하루 벌어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요. 집도 다닥다닥 작은 평수가 대부분이고. 집 있는 사람이래봤자 15평짜리에 평당 보상비 700만원 받으면, 1억정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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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약속과 너무나 달라요” 이곳에 터전을 잡았던 영세 상인들도 눈물을 머금고 대부분 떠났다. 한 시민단체가 보내 온 ‘사진 속(사진 참조)’ 상인들. ‘영세 상가 죽이는 게 뉴타운 사업이냐’고 외치던 이들은 늘봄식당 214만원, 신신스튜디오 307만원, 대명식당 300만원, 풍년식당 270만원의 영업보상비를 받고 어디론가 떠났다. 은평 뉴타운 3지구 진입로에서 17년 동안 순댓국집을 운영해 온 김금녀(54·여)씨는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여기서 순댓국 팔면서 아이들 셋 다 가르쳤수.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여태 장사하고 사는데 보상금 660만원 준다면서 나가라고 하네. 길 건너편 사람들은 사업자번호(허가 상가)가 있다고 몇천 만원씩 받고 나갔는데, 난 이 돈 받고 어디 가서 장사를 하나. 2월까지는 나가라고 하는데, 나는 그 돈 받고 못 나가. 구파발에서 가게 얻으려면 권리금하고 해서 300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상가 분양권 달라고 했어? 그저 몇십 년 이곳에서 먹고 살았으니 조그만 가게 차려 먹고 살 수 있도록 적정한 보상만 해달라는 거 아니야. 장사를 그만둬야지.” 문제는 쫓겨나는 신세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관동 이주민 중 상당수는 자녀 학교, 직장 문제로 불광동·녹번동·응암동 등 같은 은평구로 전입했다. 집값이 오르고 전세난이 심하지만, 그래도 서울 시내에서 은평구만큼 싼 곳을 찾기도 어렵다. 문제는 이주해 온 곳마저 ‘재개발’이 된다는 데 있다. 은평 뉴타운이 개발되면서 불광 3구역으로 이사 온 이모(54·여)씨는 재개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저 보증금과 월세가 싼 곳을 고른 것이다. 이 지역은 이미 주민의 80%가 이주 신청을 했다. 나머지는 이씨처럼 재개발 인가가 난 후 이사를 온 세입자들이다.
35평 아파트 한달새 1억 올라 은평 재개발의 슬픈 아리랑은 비단 진관동에서 이사 온 주민들 얘기만은 아니다. 은평구 내 29개 재개발 지역에서도 ‘새마을’을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이삿짐을 싸야 할 가족이 많다. 특히 세입자나 소형 평수 주택소유자 중 상당수는 은평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3년 전 불광동 신축빌라로 이사 온 박은미(37·여)씨는 집주인으로부터 내년 4월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막했다. 이미 이웃들은 하나 둘 이사를 해, 박씨가 살고 있는 빌라의 여덟 집 중 네 곳은 빈집이다. 박씨는 살 곳을 알아봤지만 가진 돈 갖고는 구할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그는 “양주시 쪽 집값이 싸다고 해서 집을 알아봤지만, 그쪽도 매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불광동 건너편 신사동에 보증금 2700만원, 월세 23만원짜리 빌라를 계약했다. 전세로 살다가 월세 신세가 된 것이다. 그것도 지금 살던 집보다 더 작은 집으로 더 많은 돈을 내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박씨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울컥하지만 별달리 방법은 없었다”며 울먹였다. 은평구는 현재 불광 1구역, 응암 6구역 등 2곳의 재개발이 완료됐고, 29개 구역이 재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개발 열풍은 서울에서 재정자립도가 세 번째로 낮고, 상대적으로 집값이 쌌던 은평구를 들쑤셨다. 은평 뉴타운 영향으로 인근 M아파트는 2001년 1억9500만원(35평형) 하던 것이 지금은 4억5000만원에 거래된다. 최근 한 달 사이에 호가가 1억원이 더 뛰었다. 은평 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이 있던 직후다. 은평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심했다. 신사동 H아파트 28평형을 2002년 1억600만원에 구입했다는 서경석씨는 “비슷한 시기에 통일로 인근 아파트를 구입한 지인의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말했다. 서씨의 집보다 3배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아파트도 그 사이 4000만원 정도 올라 내심 좋아했는데, 몇 억원이 올랐다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했다.
서민 주거 안정은 ‘헛구호’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20일 주민총회를 연 H 2차 아파트에서도 확인된다. 이날 주민 대표는 “집을 내놓을 때는 꼭 관리실을 통해 내놔야 한다”며 “제대로 집값을 받으려면 물량이 적을 때 집값을 올려놔야 한다. 30평 이상 아파트는 2억7000만원 이하로는 절대 내놓으면 안 된다”고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이 지역은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곳이 아니지만, 뉴타운에서 재개발로 이어지는 여파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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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는? | ||
인구 47만의 ‘서민의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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