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달구는 최첨단 지도 경쟁
인터넷 달구는 최첨단 지도 경쟁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어스’와 ‘버추얼 어스’로 항공 사진 같은 3D 제공 600m 상공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이 짙은 청색으로 빛난다. 남쪽 능선을 지나자 금융지구의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시내를 굽어보니 낯익은 마천루가 도시의 협곡을 이룬다. 마켓 스트리트 옆 언덕길을 타고 내려오는 전찻길도 보인다. 바로 그때, 갑자기 베이 브리지 옆에 조그만 팝업창이 떴다. 교량 서단에서 교통사고가 났단다. 그리고 간선도로상에 붉은색 굵은 선으로 정체구간도 표시됐다. 어디 그뿐인가.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 건물 상공에는 난데없이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있는 부동산회사 집리얼티의 배너광고가 뜬다. 당황하지 마시라. 진짜 비행기 창문 밖 전경이 아닌 책상 위 컴퓨터 스크린에서 일어난 일이다. 11월 초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개한 온라인 서비스 ‘버추얼 어스 3D(Virtual Earth 3D)’는 아직 미완성이고(단지 15개 도시만 3D로 구현했다) 불완전하다(일부 건물은 그림자로 덮여 있으며 완벽하게 구현하려면 윈도XP나 윈도비스타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강력한 사양의 PC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3D 웹이라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기술의 출발이다. 기존 웹페이지의 텍스트·사진·동영상은 현실세계의 상황과상당부분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구글 어스(Google Earth)’ 같은 쌍방향 지도 프로그램 덕분에 이제는 PC에서 지구 곳곳을 눈 깜짝할 새에 이동하고, 위성과 항공사진으로 표시되는 지형을 자세히 관찰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MS의 버추얼 어스와 구글 어스는 모두 굉장한 인기를 누리며 각각 1억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MS는 기능이 향상된 버추얼 어스 3D 덕택에 몰입형 가상환경 지도의 인터넷 도입 경쟁에서 최소한 한 분야만큼은 구글을 앞서게 됐다. 일종의 빠진 이를 하나 추가한 셈이다. MS의 사진처럼 실감나는 버추얼 어스의 건물들은 지상에서 우뚝 솟아올라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현실 같지만 환상인 세계를 연상시킨다. 마우스(또는 PC에 연결된 X박스 컨트롤러)만 있으면 미국 도시 빌딩 숲의 위쪽, 아래쪽, 그리고 그 속을 항해하며 실시간 교통정보와 가끔 등장하는 간판 광고를 보게 된다. 그러나 현재 수준으로는 시간을 때우는 새로운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MS가 이미 많은 돈이 들어간 이 프로젝트를 개선해 나가며 도시를 계속 추가한다면 3D 웹은 현실세계의 복사판이자 광고, 사회적 네트워크, 검색, 그리고 전자상거래를 통합하는 강력한 새 토대가 될지 모른다. “씨앗 하나를 심었다. 앞으로 아주 흥미로운 다양한 열매가 열리게 된다”고 인터넷전문가 그렉 스털링은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완전히 파악하기 힘들다.” MS의 엔지니어들은 지구의 복사판을 창조해 항해가 가능하게 만들면 보다 직관적인 인터넷 서핑과 검색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길 안내가 필요할 때 종이지도 위에 그려진 도로만 따라갈 필요는 없게 된다. 나중에는 버추얼 어스를 통해 정확히 어떤 이정표에서 회전해야 할지를 확인하고 여행 예행연습도 가능할지 모른다. 볼티모어 부둣가 안쪽 브로드웨이에 있는 맥주집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버추얼 어스 3D에서 그 동네를 찾아 건물 앞창문에 쓰인 진짜 이름(맥스네 맥주집)을 보면 된다. “인터넷 이용자에게 가장 상식적인 모델은 바로 현실세계”라고 스티븐 롤러는 말했다. MS의 버추얼 어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총괄책임자이다. MS는 또한 버추얼 어스를 외부 개발자들에게도 공개한다. 따라서 예컨대 언젠가 음식점 출입문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예약이 되는 시스템을 어떤 프로그래머가 개발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3D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리 식당 안을 둘러보며 테이블을 직접 고르는 일도 가능해진다. 버추얼 어스 3D의 구상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9월 당시 빌 게이츠의 기술보좌관이었던 알렉산더 구나레스 MS 부사장은 내부 보고서 하나를 작성했다. 우리가 매일 문밖에 나서면 경험하는 현실세계의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MS가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됐다. “온라인 가상 지구를 상상하라. 전 지구를 상세한 3D 모델로 나타내 현실세계의 모든 정보를 담은 공동 자료보관소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경쟁업체 구글은 샌프란시스코의 위성영상기업 키홀을 인수해 MS와 생각이 같음을 보여줬다. 키홀은 나중에 엄청난 인기를 모은 무료서비스 구글 어스로 다시 태어났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빌 게이츠는 해마다 아무도 곁에 두지 않고 혼자서 미래기술의 방향을 구상하는 싱크위크 주간에 구나레스의 보고서 확대안을 검토한 후 곧 버추얼 어스를 승인했다. 당시 내부적으로는 ‘스페이스랜드’로 불렸다. 스페이스랜드 팀의 가장 커다란 과제는 지나친 비용부담 없이 사실감 있는 3D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할리우드는 도시 시뮬레이션에 능숙하다. 하지만 특수효과 디자이너들은 모든 장면을 손으로 직접 만든다. 사진 수십 장을 공들여 조합해야 3D 모델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작업을 하면 도시 몇 개 지구에 수백만 달러가 족히 든다. 한편 ‘세컨드 라이프’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다중접속 온라인게임도 풍부한 3차원 환경을 제공하지만 실사 사진에 의존하지 않고 프로그래머들이 그림을 그린다. MS는 콜로라도주 불더의 벡셀사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벡셀은 21년 된 디지털 영상 회사로 항공촬영 기업용 디지털 카메라를 납품한다. 벡셀은 1990년대 후반 닷컴 거품으로 한창 떠들썩할 때 도시지역을 3D로 재현해 통신회사에 납품하는 부대사업을 시작했다. 통신회사들은 전파의 흐름이 방해받지 않는 안테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벡셀의 카메라는 항공사진 한 장 한 장이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 알려준다. 벡셀의 비결은 그 카메라로 찍은 자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벡셀의 소프트웨어는 그 사진들을 결합해 겹쳐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3D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3D 웹을 구축하는 “비용이 10분의 1로 경감됐다”고 MS의 롤러는 말했다. 하마터면 기업인수가 실패할 뻔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존 컬랜더 벡셀 CEO는 MS가 소프트웨어만 사고 135명 종업원 다수를 해고할까 걱정했다. 그는 빌 게이츠에게 단독 면담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컬랜더는 MS의 창립자가 가진 3D를 향한 열망과 비전에 깊이 감화됐다. “MS만 가진 자산은 바로 인재의 힘”이라고 컬랜더는 말했다. MS는 벡셀의 인수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5000만 달러 이상이라고 전한다. 컬랜더와 직원들은 이제 막중한 일을 떠맡았다. MS는 내년 여름까지 버추얼 어스에 3D 도시 100개 이상을 구축하길 원한다. MS는 또한 미네소타의 퍼셋 테크놀로지에 의뢰해 도시의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점·주택·신호등 등의 고해상도 사진을 수백만 장씩 찍는다. 그렇게 찍은 생생한 거리사진을 조만간 버추얼 어스 3D 안으로 통합해 세밀한 현장묘사를 더욱 향상시켜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식당과 상점을 더 많이 찾게 해주리라. 참으로 멋진 계획이지만 돈이 엄청 많이 든다. 버추얼 어스 3D 구축에 수억 달러는 족히 들고 언젠가 MS의 열정이 시험대에 놓이게 되리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소요 자금의 일부라도 충당하려고 MS는 버추얼 어스에 배너광고를 시작했다. 스플린터셀 같은 비디오게임 안에 코카콜라 등의 대기업 광고를 실은 바 있는 MS의 자회사 매시브가 광고를 담당한다. 버추얼 어스의 광고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SBC 공원과 보스턴 현대미술관과 같은 유명한 상징건물 위에 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법적인 분쟁을 피하려고 실물과 똑같은 다른 건물들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쓴다.) 현재로서는 광고가 비용 중 작은 일부분만 감당해줄 뿐이다. “온 세상을 모두 구축하는 일은 실로 엄청난 작업”이라고 지구공간 기술전문가 에드워드 저케빅스는 말했다. “MS는 엄청난 시간과 품이 드는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MS는 검색엔진계의 거물 구글과 또 다른 경쟁에 돌입한 셈이다. 구글 어스는 더 인기가 많고 사용하기도 편하다. 구글의 총괄책임자 존 행크는 사진, 날씨, 교통정보 같은 콘텐트를 지도에 통합시키는 일이 3차원의 생성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글은 또 다른 전략으로 위험을 분산한다. 지난 3월에는 사용자들이 주택과 빌딩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3D 이미지를 직접 손으로 그리도록 도와주는 웹도구 스케치업을 사들였다. 이렇게 작성된 이미지 중 좋은 것들을 골라 올해 안으로 구글 어스에 추가할 계획이다. MS는 벡셀의 기술을 통해 사용자의 직접 참여에 의존하는 구글보다 훨씬 더 빨리 3D 웹의 세계로 진입하길 희망한다. 또한 구글은 색다른 방식으로 구글 어스를 발전시켜 나간다. 11월 셋째 주 구글은 뉴욕·런던·도쿄를 포함한 6개 도시의 고(古)지도 16개를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지도수집가 데이비드 럼지의 수집품을 활용했다. 구글 어스에서 해당 도시를 찾은 사용자들은 이제 클릭만 하면 100년도 더 된 잊혀진 과거 속 풍경으로 이동하게 된다. 다시 말해 MS가 3차원 세계를 추구한다면 구글은 4차원(시간) 세계로 뛰어오르는 셈이다. 우리를 진기한 세계로 인도해주겠다며 이 두 기업이 벌이는 최첨단 지도 경쟁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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